템빨 59권 - 05화
크라우젤의 목표는 늘 하나였다.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또 초월해서 진정한 한계를 마주하는 것.
바로 극한에 도달하는 것이다.
‘동요할 필요 없다.’
네가 약한 이유는, 네가 뮐러의 검술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짓밟고 선 채 이죽거리는 괴완공 살레오스의 도발을, 크라우젤은 묵묵히 흘려보냈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뮐러의 진전을 잇는 순간 극한을 논할 자격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크라우젤이 염원하는 극한은 뮐러를 ‘초월’하는 것.
어차피 뮐러의 그늘에 가려질 거였다면 처음부터 뮐러의 진전을 잇고 편한 길을 걸었을 테지.
[검성의 명성이 추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검성의 잦은 패배는 세계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검성이 즉 최강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무쌍심법>의 구결을 외워야합니다.]
무쌍심법.
검성의 직업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얻은 뮐러의 흔적이다.
뮐러 또한 전대 검성으로부터 얻었다는 그것은 <무한의 검기>를 논하고 있었다.
사용하는 스킬마다 검기를 소모하고, 검기의 현재 보유량이 높을수록 스킬의 위력이 증가하는 크라우젤의 입장에서 무쌍심법의 습득은 최강을 향한 지름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쌍심법을 익힌 크라우젤은 ‘검성 크라우젤’이 아닌 ‘제2의 뮐러’가 되고 만다.
[이미 당신은 몇 번의 패배를 겪은 상태입니다. 새로운 패배는 당신의 자격을 의심할 것입....]
재차 떠오르는 경고창을 스킵한 크라우젤이 <청운진>을 일으켰다.
푸르게 뻗어나가는 검기의 구름이 살레오스의 모든 감각을 일시적으로 앗아갔고, 그 틈에 몸을 일으켜 살레오스의 허리를 벤 크라우젤이 하늘 위로 몸을 날렸다.
““하핫! 수치심이라는 게 없는 거냐?””
청운진이 일으키는 혼란을 단 1초 만에 극복한 살레오스가 되돌아온 감각으로 크라우젤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곧바로 도약해 청운진의 영역을 벗어나면서 크라우젤의 뒤를 쫓았다.
““....!?””
기세 좋게 날아올랐던 살레오스가 당황하며 멈춰 섰다.
크라우젤이 있어야할 자리에 둥실둥실 떠있는 검 한 자루가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같잖은 놈이 내 감각을 속여?’’
하늘 위에 홀로 떠있는 검으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크라우젤의 그것을 닮아있음을 재차 확인한 살레오스가 이를 갈았다. 쥐새끼처럼 벗어난 크라우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눈을 돌리던 그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악!!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짐승의 포효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기이하고 흉포한 굉음이 지상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움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타고난 존재답게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왔던 살레오스가 생전 처음으로 위축됐다. 다급히 몸을 비틀며 두 팔을 교차시키는 그의 시야를 새카만 검기의 파도가 덮쳤다.
“번헬리어의 절규.”
악룡 번헬리어.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놈의 집착을 표현해 창조한 검술.
크라우젤의 새로운 궁극기는 모든 속성의 우위에 선다.
심지어 대상의 속성이 무(無)라고 할지언정 상극의 피해를 입혔다.
이치를 거스르는 검성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활용하여 드래곤의 불합리한 힘을 재현한 것이다.
““크윽....! 크아아아악!!””
빌어먹을 레베카의 신성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다.
전신의 피부가 벗겨지고 근육이 뜯겨지는 고통에 휩싸인 살레오스가 비명을 지르며 몸서리쳤다.
『서, 설마?』
크라우젤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던 각국 방송사의 해설진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시청자들 또한 두 주먹을 불끈 쥐느라 채팅창에 헛소리를 지껄이지 못했다.
모든 방송사의 실시간 채팅이 갱신을 멈췄다.
세상사람 전부가 역사에 길이 남을 역전극의 시초에 집중하는 그때였다.
““이걸론.... 부족하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살레오스가 이를 악 물고 소리쳤다.
새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크라우젤을 노려보는 놈의 모습은 마치 악귀를 연상시켰으니 이제야 비로소 대악마 같았다.
““더....! 나를 더 즐겁게 해봐라!!””
쾅!
콰쾅!
콰콰쾅!!
드디어 고통을 떨쳐낸 것일까.
경직됐던 몸을 움직여 하강을 개시하는 살레오스의 기세는 이전까지와 차원이 달랐다. 그가 크라우젤과의 거리를 좁혀나갈 때마다 연달아 파공성이 폭발하며 하늘이 일그러졌다.
그대로 지상에 떨어지기라도 했다간 대륙의 일각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반면.
“후우.... 후우....”
화면에 클로즈업 되는 크라우젤은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서서히 걷히는 청운진의 중심에 선 그의 가슴이 연신 부풀어 올랐고, 늘 똑바로 앞을 보던 눈동자는 자꾸만 흔들렸다. 미칠 듯이 경련하는 손과 다리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릴 지경이었다.
『방금 전 스킬을 사용한 여파일까요?』
『19위 대악마를 긴장시킬 정도의 스킬이었으니까요. 위력이 큰 만큼 당연히 페널티도 크겠죠.』
해설진은 곧 벌어질 일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어차피 모든 시청자가 뒷일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살레오스의 말에 따르면 아직 뮐러의 진전을 잇지 못한 크라우젤.
‘불완전한 검성’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모두가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스륵.
크라우젤의 등 뒤로 빛의 날개 한 쌍이 나타났다.
때 묻지 않은 순백으로, 순수를 상실한 칠흑으로 점멸하는 날개였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펑!!
마침 크라우젤에게 도달한 살레오스의 주먹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둘러진다. 물리적인 개념을 초월한 그의 주먹은 찰나에 수십 회씩 뻗어나가 크라우젤의 몸을 관통했고, 찢어발겼다.
참혹하게 흩어져나가는 크라우젤의 잔해를 목격한 시청자들이 침음했고,
““....!?””
살레오스가 공세를 멈췄다.
손끝에 아무런 감각이 없음을 자각한 것이다.
그렇다.
그가 찢어발긴 크라우젤은 크라우젤이 남긴 잔상에 불과했다.
비장(裨將)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진 모든 공격을 회피하는데 성공했고,
스칵━
다시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 검으로 만월을 그렸다.
여전히 번헬리오의 포효 효과에 시달리고 있는 즉,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살레오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새기는 검술이었다.
““노...옴.....””
푸화하하하하학!!
살레오스의 몸이 다시 한 번 반으로 갈라졌다.
절단면으로부터 후두둑 쏟아진 그의 장기들이 또 다시 수천, 수만 가닥의 혈관을 뽑아내 서로 얽히기 시작했다.
우주 검에 베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즉시 복구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가만히 지켜볼 크라우젤이 아니었다.
“초 폭풍검.”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지정 범위에 수십 회의 피격을 입히는 다단히트 스킬.
휘몰아치는 폭풍의 검기가 살레오스의 몸을 수복시키려는 혈관들을 모조리 찢어발기자 살레오스의 수복이 수포로 돌아갔다.
쿵!
““....노...ㅁ.””
몸이 반으로 잘린 채 쓰러져버린 살레오스가 장기로부터 재차 혈관을 뽑아냈으나,
번쩍!
하늘과 땅 전역을 장악해버리는 최강의 광역기 <천지파열무>의 발현이 다시 한 번 살레오스의 수복을 훼방 놓았다.
그리고 크라우젤에겐 여전히 수많은 검술이 남아있었다.
그리드만큼이나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고, 극복했기에 지존일 수 있었던 크라우젤의 모든 경험이 빚어낸 정수들이었다.
““....노옴!!””
재차 몸의 수복에 실패하고 불안을 느낀 살레오스가 마력을 폭사시켰다.
오직 힘으로 대상을 압살하고 승리해온 그가 따로 마법을 익혔을 리 만무하다.
단지 타고난 마력을 폭발시킬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대마법 이상의 파괴력이 발생했다.
크라우젤이 선전하는 동안 살레오스의 특징을 파악하고 스스로를 충분히 점검한 랭커들이 전선에 다시 합류하는 순간 그 폭발에 휩쓸려 사방으로 쓰러져나갔다.
반면 검막을 펼치고, 금강불괴를 발휘하여 마력의 폭발을 견딘 크라우젤은 살레오스의 잘려나간 몸통 중 한쪽에 붙는데 성공했다.
뻐엉!!
자진모리.
궁극의 발차기에 걷어차인 살레오스의 반쪽 몸이 차징 효과에 밀려 수십 미터 바깥으로 날아가자 살레오스의 몸을 수복하기 위해 재차 얽히고 있던 수천, 수만 가닥의 혈관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결국.
““크아악!!””
살레오스는 몸의 수복을 포기했다.
크라우젤이 타고 오른 혈관들을 스스로 끊어낸 놈이 반쪽으로 나뉜 몸들을 벌떡 일으켜 좌우에서부터 동시에 크라우젤을 덮쳤다.
크라우젤은 이미 백광보를 전개한 상태였다.
둘로 나뉜 살레오스의 몸의 동선을 겹치게끔 유도한 뒤 심검을 발현, 동시에 베어버렸다.
그러자 도합 20퍼센트의 생명력을 잃은 살레오스가 처음으로 눈치 챘다.
새로운 검성이라고 했던가?
만약 이놈을 만난 시기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내가 졌을 것이다.’’
꿈틀, 꿈틀!
동선이 겹쳐진 덕분에 가까워진 살레오스의 몸이 드디어 다시 하나로 붙었고,
“허억.... 허억.....”
크라우젤은 아직 지혜의 탑을 방문하기 전의 그리드가 겪었던 고질병을 체험하고 있었다.
스태미나를 완전히 잃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뮐러가 아닌 검성.””
저벅.
끝을 직감한 살레오스가 한 걸음.
““크라우젤이라는 그 이름, 내가 기억하겠다.””
저벅.
두 걸음, 크라우젤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먹을 날렸다.
꽈앙!!
불사의 상실.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크라우젤의 생명력이 최소치로 떨어져 고정됐다.
바닥에 맥없이 널브러진 크라우젤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제 5초가 고작이었다.
“도망치자!”
백요와 흑요 자매 등,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크라우젤에게 잠시 빌붙었을 뿐인 대부분의 랭커들은 이미 요새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크라우젤!”
나이트 등, 플레이어의 터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크라우젤에게 합류했던 일부 랭커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크라우젤이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자신들이 죽을 것을 알고도 살레오스에게 돌격했다.
““크하하하하핫!! 용기가 가상하구나!!””
살레오스가 대소를 터뜨렸다.
새로운 검성의 실력을 체험한 직후인 그의 입장에서 다른 인간들의 개입은 터무니없이 하찮았다. 웃길 정도로 말이다.
꽝, 꽝, 꽈앙!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랭커들의 머리를 수박처럼 깨부수는 살레오스의 일방적인 학살전이 시작됐다.
랭커들은 자신의 한계에 절망했고, 해설진은 상황의 중계를 포기했으며, 시청자들은 TV 앞을 떠나 캡슐로 향했다.
자신들의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서 크라우젤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다가 일제히 석상처럼 굳어 섰다.
TV로부터 아득히 들려오는 해설진의 외침 때문이었다.
『....서사시!』
“....!”
시청자들이 다시금 TV 앞으로 달려갔다.
화면을 가득 채운 <무구의 비>가 살레오스를 폭격하는 광경이 보였다.
무구의 비 사이로 지존 그리드가 강림하고 있었다.
첫 번째 서사시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일까.
시스템은 서사시의 주인공의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템빨왕 그리드가 일곱 번째 서사시를 써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