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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143화 (1,133/1,794)

템빨 58권 - 23화

이름:그리드

레벨:412

직업:파그마의 후예, 지공, 서사시의 마검사

칭호:전설이 된 자 외 39개

생명력:330,682 마나:70,020

투기:50 검기:1,200

근력:3,850(+480)★1,082▲

체력:2,422(+1563)★996▲

민첩:3,900(+430)★1,082▲

지력:2,896(+1,943)

★표시는 투기 자원의 효과로 추가 상승하는 능력치를 뜻합니다.

손재주:5,742(+980)

끈기:2,037(+430)

평정:1,363(+430)

불굴:1,598(+490)

위엄:2,271(+430)

통찰력:2,161(+430)

용기:1,417(+430) 행운:806

정치력:356(+430) 의지:236(465)

신위:12

잔여 능력치 포인트:0

지난 한 달 동안 사냥에 전념한 결과다.

동료들과 함께한 덕분에 그리드의 레벨링은 수월하게 진행됐고, 앞으로 보름 후쯤엔 413레벨을 달성할 것으로 추측됐다.

그때까지도 마의 구간(399레벨)을 헤매고 있을 크리스와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그리드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깨달음 버프와 드래곤의 가호 버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네펠리나와의 만남도 내겐 큰 축복이었던 셈이군....’

기왕이면 다른 동료들에게도 가호를 내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하지만 네펠리나는 부탁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열망 무기 시리즈를 양산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잡는 편이 현실적일 듯하다.

‘지금 실력이면 도전해 봐도 좋겠지.’

그리드가 수년째 애용 중인 열망의 무아검은 행운의 결정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력만으로 제작할 수 있는 영역의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손재주를 꾸준히 키우고 대장기술을 발전시킨 그리드의 실력은 수 년 전과 비교가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졌다. 시간과 재료 등의 여건만 뒷받침된다면 열망의 무아검뿐만 아니라 활, 도, 창, 둔기 등 열망의 무기 시리즈를 충분히 제작할 수 있었다.

“.....”

상태창과 스킬창을 열어놓고 스스로를 점검하던 그리드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거대한 위험이 다가옵니다.]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난다 싶더니 시야에 붉은 경고창이 점멸했다.

어느새 소문을 듣고 모여든 세계 각국의 방송사 카메라를 스쳐지나 도약한 그가 성벽 위에 올라섰다.

광활한 초원 끝에 펼쳐진 지평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주시하자 곧 작은 점이 나타났다.

점차 커지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리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번쩍━

초월자의 안력이 있기에 간신히 포착한 빛.

아주 미약한 빛이 짧게 번쩍임을 엿본 그리드가 발악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화면을 통해서 그리드의 모습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의아한 행동이었다.

그들은 지평선에서부터 점차 다가오는 작은 점의 존재조차 눈치 채지 못했으니까. 그 작은 점이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수밖에.

꽈아아아아앙!!

『....!!』

『....!!』

성벽 위에 홀로 올라 세계를 오시하는 지존의 자태를 감상하며 상황을 중계하던 각국 방송사의 해설진이 동시에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드가 갑자기 몸을 비튼다 싶더니 바로 직후에 날아온 폭탄이 성벽의 일각을 날려버린 까닭이었다.

와르르, 무너지는 성벽을 피해 날아오른 그리드의 시선을 쫓은 카메라들이 폭탄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것은, 사슴의 뿔이었다.

숲에서 누구나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뿔.

고작 사슴의 뿔이 날아와 요새의 높고 두꺼운 성벽을 부셔버린 것이다.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최근 반신마저 쓰러뜨렸다는 그리드조차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으니 각국 방송사는 그리드의 표정을 자꾸만 강조했다. 성벽의 잔해에 꽂혀있는 뿔의 모습과 그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리드의 얼굴이 화면에 연속적으로 교차됐다.

바로 그때.

『저곳을 보십시오...!』

미국의 한 방송사가 지평선이 있는 곳에서부터 다가오는 점의 존재를 포착하고 줌을 당겼다.

세상을 숨죽이게 만든,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그리드가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제13위 대악마, <광란의 왕 벨레드>가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질풍과도 같이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탄 그의 모습은 기존의 대악마들과 달랐다.

모든 면에서 인간과 흡사했고 기괴함이 없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수염과 두발, 맵시 있는 옷차림과 고아한 왕관에 이르기까지.

벨레드의 행색에는 도리어 품격이 있었다.

『놀랍군요. 야만적이었던 기존의 대악마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

벨레드의 외관을 보고 감탄하던 해설진의 눈살이 급격히 찌푸려졌다.

어느새 카메라에 가까워진 벨레드의 표정을 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화를 짊어진 듯이 분노에 찬 놈의 얼굴은 품격과 거리가 멀었다.

““어서 지옥으로 되돌아가고 싶구나!!””

노이즈 낀 음성으로 외치는 벨레드의 양쪽 콧구멍에서 불길이 솟구쳤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콧김이었다.

화르르륵!!

지면으로 내려앉는 콧김이 초원에 불을 지핀다.

벨레드가 지나는 경로가 모조리 붉게 물든 뒤 곧바로 검게 타들어갔다.

『....영락없는 악마로군요.』

해설진이 말을 정정하는 그 순간.

끼히힝!!

하얗다기 보단 창백한.

마치 시체 같은 말의 고삐를 휘둘러 속도를 높인 벨레드가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인간의 흔적 전부를 세상에서 지우겠다는 듯이, 이미 텅텅 비어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망루들과 목책 등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시설물들을 파괴하며 진격했다.

급기야 요새의 성문 앞까지 다가선 놈이 입에서 화염을 뿜었다.

콰르르르르릉!!!

『....!』

요새는 궁극의 방어시설이다.

대도시의 성벽과 성문 레벨이 최대 20인 것에 비해 요새의 성벽과 성문 레벨은 최대 30이었고 그만큼 내구력이 높았다.

한데.

쿠구구궁....

벨레드는 단 한 번의 화염을 토한 것으로 성문을 불태우고 넘어뜨렸다.

요새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광경이었다.

『스킬 계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듯합니다. 천하의 그리드라도 공격을 허용하는 순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은데요.』

『이거 야단났군요. 과연 서열이 높은 만큼 이전까지 보았던 대악마들과는 격이 다른 듯합니다....』

황제 바사라는 그리드가 최소 13분의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홀로 하나의 국가를 멸망시키고 수만, 수천 명의 랭커들을 압살했던 베리드가 22위 대악마였을진데 무려 13위 대악마인 벨레드를 그리드 혼자서 발을 묶어야한다고?

당연히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외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리드는 지존이니까.

여태껏 그가 일으킨 기적들을 사람들은 똑똑히 기억한다.

수많은 불가능을 극복해온 사람이 바로 그리드였다.

13위 대악마?

그리드 혼자서 발을 묶기는커녕 어쩌면 쓰러뜨릴 수도 있다....

사람들은 생각했고, 그건 각국 방송사의 해설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음.... 하지만 그리드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쉽사리 들지 않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드에겐 기사들을 소환하는 권한도 있고 말이죠. 우선 조금 버텨보다가 안 되면 바로 기사들을 소환해서 역으로 벨레드를 레이드하지 않을까요?』

『레이드까진 힘들어도.... 13분 동안 버티는 일쯤이야 그리드 혼자서도 충분할 듯합니다. 스킬 삭제기와 분신까지 활용한 여러 개의 반격기, 그리고 갓 핸드와 화살받이용 해골들을 보유한 그리드의 전력을 고려해봤을 때 그리드가 시간을 못 채우고 죽을 가능성은 매우 낮죠. 네임드 NPC에 버금가는 체력은 굳이 말해봤자 입 아플 지경이고요.』

『....그 가끔씩 소환하는 언데드들이 화살막이였나요?』

『사실상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드가 상대하는 적들의 수준과 비교했을 때 질이 너무 떨어져 보이던데.』

가파르게 상승하는 시청률에 흥분한 해설진이 열심히 떠드는 동안에도 화면 속 벨레드는 광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성문을 넘어뜨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성벽을 마구잡이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한편 그리드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놈, 기척을 읽는 능력이 떨어지는 건가?’

처음 성벽 위에 올랐던 그리드는 다가오는 적에게 보란 듯이 자신의 격을 드러냈었다. 템빨왕 그리드라는 존재를 만천하에 뽐냈다.

그러자 귀신 같이 이를 읽은 벨레드는 짐승의 뿔을 던졌고, 거기에 당할 뻔한 그리드는 잔뜩 위축됐다. 반사적으로 숨을 죽이고 벨레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벨레드는 처음에 무너졌던 성벽의 잔해 뒤에 숨어있는 그리드를 모른다는 듯이 요새의 파괴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내가 죽은 줄 아나보군.’

성벽을 파괴하는 뿔의 위력을 보는 순간 저런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13분을 버티나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 솟아날 구멍이 있었다.

압도적인 공격력이 무섭긴 하지만 대신 기감이 약하다는 약점을 지닌 듯했으니 시간을 버는 정도야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죽은 자들의 왕이 될 수도?”

콰앙! 쾅!! 콰콰콰쾅!!

벨레드가 광란의 축제를 벌이자 발생하는 소음에 그리드의 음성이 묻혔다.

딱! 딱딱!!

땅을 파헤치며 등장한 템빨골들의 이 부딪치는 소리 역시 소음에 묻혔다.

딱딱! 딱딱딱!!

지난 한 달 동안 레벨을 잔뜩 올린 템빨골들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리드를 돌아봤다.

<스켈레톤 소드댄서>로 3차 전직한 템빨골1은 전보다 골격이 우람해져 어엿한 전사처럼 보였고 멋진 검과 갑옷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반면 <스켈레톤 비숍>으로 3차 전직한 템빨골2는 여전히 왜소했지만 경건한 표정으로부터 은근한 위엄이 뿜어져 나왔다. 화려한 지팡이와 로브가 템빨골2가 범상치 않은 해골임을 온 세상에 알렸다.

든든하게 성장한 녀석들에게 그리드가 명령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뛰어나가서 몸빵 해.”

딱! 딱딱!!

“뼈다귀를 206개로 조각내줄까?”

딱딱! 딱!

전직을 거듭할수록 표정이 다채로워지는 템빨골들이었다.

그리드의 명령에 불만을 표출하다가 금세 활짝 웃는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그리드가 속삭였다.

“저 녀석이 너희들을 한 대 때리면 난 열 대로 복수해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하고 맞아라.”

템빨골은 죽지 않는다.

생명력이 0이 되는 순간 역소환되어 다시 땅속에 묻힌 뒤 재생하고, 회복하고, 부활했다.

그리드가 템빨골들을 의지하는 이유다.

브라함, 피아로, 메르세데스 등의 기사들은 자칫 위험할까 데려오지 못했음에도 템빨골들은 거침없이 출진시킬 수 있었다.

“지금!”

파앙-!

성문 좌우의 성벽을 무너뜨린 후 요새 안으로 진입한 벨레드의 뒤통수를 노리고 매직 미사일이 쏘아졌다.

눈도 돌리지 않고 손등으로 매직 미사일을 쳐낸 벨레드가 다소 의아하다는 듯 자신의 손등을 살펴보더니 결국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의 옆으로 템빨골1이 춤을 추며 달려들고 있었다.

굉장히 어설프지만 마치 그리드의 검무를 재현하듯이, 온 몸의 관절을 삐그덕 거리고 움직이며 춤을 추는 녀석의 검 끝이 태양 아래 예리하게 번뜩였다.

““베리아체의....?””

템빨골의 정체를 바로 알아본 벨레드가 다가와 칼을 휘두르는 템빨골의 두개골을 한 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땅에 한 번 박아 기세를 꺾은 다음 던져 멀찌감치 서있는 템빨골2에게 적중시켰다.

까르릉!!

템빨골들의 뼈가 볼링공에 얻어맞은 핀처럼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사지가 분리돼 흩어져버린 녀석들이 허우적거리는 그때 벨레드의 등 뒤에서 그리드가 나타났다.

“살(殺).”

찌르기의 가장 큰 강점은 거리에 있다.

시간을 벌어야하는 입장인 그리드는 우선 탐색전을 펼쳤다.

기습으로 벨레드의 반응속도와 방어력을 파악한 뒤, 혹시 모를 반격에는 언제라도 대응해 뒤로 뺄 수 있도록 일부러 살을 썼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리드는 상상도 못한 전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답잖군.””

이번에도 역시 눈으로 보지도 않고 손등을 휘둘러 살의 검무를 쳐낸 벨레드의 주먹이 그리드의 안면에 정확히 꽂혔다.

꽈앙!!

강렬한 충격 속에서 그리드는 깨달았다.

‘X 됐다.’

이놈, 내 기척을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던 거다.

쿠당탕탕탕!!

[69,03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

여태까지 기껏 올려온 방어력은 뭐가 되는 거지?

지난 모든 노력을 부정당하는 듯한 일격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그리드가 허탈감에 휩싸였다. 충격에 떠밀려 날아온 어느 건물의 지붕 위에 널브러진 채 잠시 멍해졌다. 전문용어로 현자타임이었다.

한편 벨레드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욱씬!

인간의 기습을 쳐냄과 동시에 내질렀던 주먹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무기’를 휘두르는데 통증이 동반 된다라....

잠시 가만히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던 벨레드가 멀찍이 날아가 있는 인간을 향해서 질문했다.

““뮐러의 진전을 이은 녀석이냐?””

“핫, 지긋지긋한 질문이구만.”

콧방귀 뀐 그리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레이단 연금시설에서 공수해온 극상의 체력 회복물약을 꿀꺽꿀꺽 들이키더니 빈병을 뒤로 던지며 말했다.

“나는 그리드다.”

파그마의 후예 또한 나의 일부일 뿐.

“세상에서 제일 끈질긴 놈이니까 잘 기억해두라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버티고 인내하며 살았던 몸이다.

고작 13분?

내게는 찰나에 불과하다.

단언하는 그리드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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