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141화 (1,131/1,794)

템빨 58권 - 21화

야탄교는 Satisfy를 대표하는 최고의 세력이었다.

플레이어(데미안)가 교황이 되기 전, 레베카교가 한창 힘들었을 시기에는 Satisfy 최강의 2세력 중 하나로 손꼽혔을 정도다.

사하란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위세가 굉장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야탄교는 생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악역이라는 한계.

야탄교는 모든 국가에게, 또 대다수의 플레이어에게 적대가 걸린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만 했다. 플레이어들이 성장함에 따라서 차근차근 보복을 당하기 시작했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설 자리를 거의 잃었다.

대륙 어디에서나 들렸던 야탄교의 악명은 이제 듣기 힘들었다.

대악마를 강림시켜 세계를 파멸로 인도할 뻔했던 야탄교의 최근 악행은 코흘리개를 납치하려다가 미수에 그치는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

세계엔 축복이었으나....

“우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수모를 감수해왔다.”

야탄교의 입장에선 떨쳐내야 할 고통이었다.

야탄교는 처녀들을 납치해서 악마 부활의 의식 재료로 삼았고, 어린아이들을 납치해서 광신도로 육성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최근 1년 동안 계속 된 템플러의 끈질긴 추격 탓에 야탄교의 모든 성장발판은 차단당하고 말았다. 어딜 가나 넘쳐나는 적들에게 너무 많은 피해가 누적되기도 했다.

이대로는 야탄교가 멸망하고 만다.

악신 야탄의 위대함을 세상에 전파하는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근심에 휩싸인 야탄의 종들은 33일 동안 기도를 지냈고, 그중에는 로제도 포함돼 있었다.

무려 33일 동안 사냥도 못하고 퀘스트도 못하며 기도 의식에만 참가했던 그녀는 솔직히 큰 회의감을 느꼈다.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가입한 야탄교에서.

핏빛마녀 유라의 그림자에 가려진 몇 년 동안 이를 악 물고 고생한 결과가 이것인가, 하는.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싶었고, 이제라도 야탄교를 떠나 새 삶을 살아야하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아모락트의 계시가 모든 걸 비틀어버렸다.

“오라루리타란프스.”

“루베리드리라트나.”

“할랄라르아차라.”

거대한 이계의 틈 앞에 모여 선 야탄의 종들.

그들과 함께 대악마의 부활 주문을 외우는 로제의 전신에 오싹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들을 수 있었다.

주문에 호응하는 대악마들의 울부짖음을.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점차 더 크게 벌어지는 이계의 틈을.

그녀는 느꼈다.

쿠우우우우웅....!

점차 가까워지는 대악마의 존재를.

[대륙 어딘가에 존재하던 <이계의 틈>이 확장되었습니다.]

[제27위 대악마 <로노베>가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제25위 대악마 <단탈리안>이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제19위 대악마, <괴완공(怪腕公) 살레오스>가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아, 아아아....”

이계의 틈을 벌리며 등장한 대악마들에게 고개를 조아린 로제는 여태껏 느낀 적 없던 전율을 느꼈다.

19위 대악마 살레오스의 존재감이 원인이었다.

로제가 상상해온 모든 것을 초월하는 존재.

말보다 큰 악어 위에 눕듯이 올라앉은 그는 여태껏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30위대, 20위대 대악마와는 다른 격을 지니고 있었다.

““나도 드디어 중간계의 땅을 밟아보는군. 어때, 기쁘냐? 팔로스.””

크륵.... 크르륵....

번들거리는 악어의 눈이 야탄의 신도들을 쓰윽 훑자 야탄의 종을 포함한 신도들이 모두 굳어버렸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발동한 ‘석화의 저주’ 탓이었다.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겁에 질린 신도들에게 엉금엉금 다가가는 악어, 팔로스를 살레오스가 다독여주었다.

““지천에 먹을 것 천지다. 굳이 아모락트의 노예들을 먹을 필욘 없어.””

크르륵....

살레오스의 진정에도 불구하고 침을 질질 흘리는 악어의 눈동자엔 여전히 탐욕이 가득했다. 그를 본 야탄의 신도들이 아연실색하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이계의 틈으로부터 뻗어 나온 거대한 ‘손’이 악어의 머리통을 짓뭉개버렸다.

황급히 악어로부터 뛰어내린 살레오스가 손을 노려보았고,

빰빠밤-! 빠바밤!!

팡파르가 울려 퍼지며 거대한 광산에 메아리쳤다.

씩씩한 악곡의 파괴력은 굉장해서 수천 년 동안 존재했다는 엘리테르 광산을 진동시키고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히, 히익!!”

악어가 죽자 석화에서 풀린 야탄의 신도들이 사색이 되어선 뒷걸음쳤다.

누구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은 다름 아닌 로제였다.

이대로 광산이 붕괴되면 잔해에 깔려죽을 것을 우려한 그녀는 이미 인파를 제치고 멀찌감치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제13위 대악마, <광란의 왕 벨레드>가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제12위 대악마, <슈트리오>의 손이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13위 대악마와 12위 대악마-의 일부-의 출현.

반신을 초월하는 무력과 권능 지녔다는 ‘진짜’들의 출현을 목도할 기회를, 로제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동영상 녹화 모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재차 확인한 그녀가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그곳엔....

““감히 미물들 따위가 나를 소환해?””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광란의 왕이 창을 찌르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가 내지른 시뻘건 창이 야탄의 종들을 한꺼번에 꼬챙이 끼우기 직전에 멈췄다.

““개자식, 싸구려 연주로 슈트리오를 자극하다니, 미친 거냐?””

살레오스의 개입 덕분이었다.

슈트리오의 손에 곤죽이 된 악어를 애도하듯 눈물 지은 그는 슈트리오의 손이 아닌 벨레드에게 원한을 표출하고 있었다.

괴완공이라는 이명을 지닌 만큼 힘 싸움에선 ‘무조건’ 이기는 살레오스에게 창이 가로막히자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던 벨레드가 한 발 물러섰다.

““그건 내 의도가 아니었다. 사과하도록 하지.””

““빌어먹을!””

33인의 대악마는 서로 경쟁하는 사이다.

누가 더 많은 지옥의 땅을 정복하느냐를 놓고 겨루며, 궁극에는 신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살레오스와 벨레드는 바알의 휘하에 있는 대악마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해선 안 됐다.

때문에 한 발씩 물러선 그들의 얼굴엔 짜증과 불만이 역력했다.

십년감수하고 있는 야탄의 종들에게 살레오스와 벨레드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물었다.

““슈트리오의 손은 아모락트 그 음흉한 놈이 가져다 놓은 거냐?””

““어서 피를 보고 싶다. 가장 많은 인간이 살아가는 곳으로 나를 인도해라.””

***

[제27위 대악마 <로노베>가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제25위 대악마 <단탈리안>이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제19위 대악마, <괴완공(怪腕公) 살레오스>가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제13위 대악마, <광란의 왕 벨레드>가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제12위 대악마, <슈트리오>의 손이 인계에 강림하였습니다.]

충격적인 월드 메시지가 세상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22위 대악마 베리드 한 명에게 멸망의 위기를 겪었던 인류는, 이제야말로 진짜 종말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과거 사하란 제국이 발굴했던 고대의 유적에는 10위대 대악마부터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녔다는 기록이....』

『단탈리안의 책에는 세계의 비밀과 과거의 일,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이 기록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지혜를 관장하기 때문에 그를 해치는 건 뮐러조차도 불가능했다고 알려졌죠.』

『서대륙의 모든 국가가 협력할지언정 13위 대악마 벨레드 한 명도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세계 각국의 방송사에서 회의적인 분석을 내놓기 바빴다.

전문가들은 작금의 사태를 놓고 ‘종말’이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서대륙이 멸망한 이후,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모두 동대륙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며 그때부터 Satisfy의 시즌 2격 에피소드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거라고 분석했다.

그래야만 동대륙의 수준이 서대륙의 수준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가 설명된다는 말을 덧붙였으니 사람들은 왠지 그럴 듯한 해석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랭커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드 덕분에 양반들의 실체를 엿본 그들은 동대륙이 서대륙 이상으로 음흉하고 혹독한 환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대륙이 멸망하는 순간 플레이어들을 기다리는 건 지옥밖에 없다.

그러므로 서대륙이 멸망할 일은 없다.

대악마의 침공을, 우리는 막아내야 한다....

각자의 세력을 이끈 랭커들이 각오를 다지는 그때였다.

[사하란 제국의 황제 ‘바사라’가 대륙 전역에 선포합니다.]

[“제국이 창과 방패가 될지니, 모든 인류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대악마의 진격을 막아야합니다.”]

[제국의 황제 ‘바사라’가 대악마의 진격 루트를 공개합니다.]

띠링~

새로운 월드 메시지와 함께 모든 플레이어의 지도에 5개의 별표가 떠올랐다.

대악마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표시였다.

친절하게도 이동 경로까지 예측하고 있었다.

“과연 제국의 실시간 정보 수집력은 세계 최강이군.”

지도를 살핀 탐험가 랭킹 1위 스컹크가 감탄했다.

자신이 만든 지도보다 제국의 지도의 완성도가 더 높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 그가 라우엘에게 말했다.

“신뢰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라우엘이 템빨단 전원을 소집해서 이동을 개시했다.

황제 바사라가 집결지로 제시한 장소에 도착해 보니 이미 수많은 플레이어가 도착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템빨단....!”

라우엘이 이끌어온 템빨단의 등장이 일대의 소란을 잠재웠다.

위기 속에서도 서로의 세를 과시하기 바빴던 각 길드의 콧대 높은 수장들도 모두 템빨단 앞에서는 순한 양이나 다름없었다.

“어서 오세요, 재상.”

“천년 제국을 인도하실 위대한 황제, 바사라 폐하를 뵙습니다.”

안 그래도 입을 다물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템빨단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렇지, 설마 황제가 친히 달려 나와 그들을 반겨줄 거라곤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템빨단원들의 면면을 살펴본 바사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드 전하께서는....?”

“그것이....”

어색한 표정을 지은 라우엘이 지도를 펼쳐 별 하나를 지목하자 바사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광란의 왕에게 찾아가셨다고요?”

라우엘은 부정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자리에 모인 수만 명의 플레이어들을 한 번 쭉 둘러본 후 말했다.

“네, 저희가 로노베와 단탈리안을 처치하는 동안 혼자서 시간을 벌어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

그 누구도 뭐라고 반응하지 못했다.

라우엘의 선언이 워낙 허무맹랑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그리드가 지존이라지만, 무슨 수로 혼자서 대악마와 맞서 싸운단 말인가?

침묵이 길어진다 싶을 때였다.

“그리드에게 전해. 딱 5분만 버티면 충분하다고 말이야.”

얼음술사 랭킹 1위 봉드레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지금 막 현장에 도착한 그의 곁에는 군신 아레스와 그를 따르는 수천 명의 랭커들이 함께였다.

그리드와 십공신이 카오스 산맥에서 사냥을 시작한지 딱 한 달이 지난 날.

바로 이날 대악마의 대규모 공습이 개시됐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