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139화 (1,129/1,794)

템빨 58권 - 19화

266.759퍼센트의 경험치.

번헬리어의 가호가 깃든 심장.

새로운 검무, 용(龍)의 가능성.

그리드가 헬레나를 레이드하고 얻은 보상 목록이다.

과연 레벨이 높았던 헬레나는 그리드에게 막대한 경험치를 선사했고, 덕분에 그리드는 411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적지만 공헌도를 나눠 갖은 그리드의 기사들도 제법 짭짤한 경험치를 올린 눈치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환희보다 의문을 느꼈다.

‘종의 정점이 아니었나?’

그리드에겐 <이족의 왕>이라는 칭호가 있다.

<이족의 왕>

인간 외 종족을 포용하여 왕의 자격을 증명했습니다.

★영구 효과

*이족에게 큰 호의를 받습니다.

*대상이 이족일 경우 호감도 상승 확률이 2배 상승합니다.

*단, 일부 호전적인 종족들은 당신의 능력을 시험할 것입니다.

★제한 효과

*칭호 효과로 ‘계약’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계약의 사용 가능 횟수는 총 3회입니다. (1/3)

★현재 계약을 맺고 있는 대상

1.하오(플레이어, 반용족)

*계약 효과*

스킬 <용의 날개> 활성화

반용족의 호전성을 소폭 억제

2.테루찬(NPC, 어스름족 오크)

*계약 효과*

<체력> 능력치의 계수가 1.8배 증가

이처럼, 그리드는 반용족 하오와 계약한 상태이다.

그리드는 반용족 로드와의 어떤 이벤트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벤트는 쥐뿔도 없었다.

헬레나는 그리드를 단순하게 적대했을 뿐이다.

‘내가 이미 많은 반용족을 해치웠기 때문에?’

원한이라도 생긴 건가?

아니, 그렇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반용족의 동족애는 전무할 정도인데다 헬레나는 그리드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눈앞에 적이 있으니까 싸운다, 라는 느낌으로 그리드 일행에게 맞섰을 뿐이다.

더군다나 경험치를 많이 줬을 뿐이지, 경험치를 제외하면 보상 목록도 별로였다.

<번헬리어의 가호가 깃든 심장>

등급:레전드리 (귀속 아이템)

내구력:131/131 마법 저항력:150

마법 공격을 차단하는 장신구입니다.

최대 2회의 마법 공격을 차단합니다.

차단 가능 횟수는 12시간에 1회씩 충전됩니다.

착용 조건:없음

무게:13

헬레나가 죽으며 남긴 목걸이.

‘마법을 차단한다.’는 성능이 필시 대단하긴 하지만 횟수가 2회로 한정된다. 기본 옵션 또한 매우 부족해서 주력으로 사용하기엔 한계가 있는, 스왑용 예비 목걸이에 불과했다.

‘횟수 제한 없이 확률적으로 마법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는 성스러운 빛의 갑옷 세트가 차라리 더 효용성이 높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번헬리어의 가호가 깃든 심장의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전설의 대마법조차 막아내는 목걸이니만큼 목숨을 추가해주는 귀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었다.

다만 그리드는, 반용족의 정점이 드롭한 아이템치고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아이린에게 주고 싶군....’

아이린이 이 목걸이를 걸고 있으면 안심이 될 것 같다. 내가 그녀의 곁을 비운 동안 어떤 위험이 그녀를 덮칠지언정 그녀를 지켜줄 테니까.

‘하지만 다른 동료들도 충분히 탐낼만한 목걸이니....’

너무 욕심내는 건 좋지 않다.

마음을 다스린 그리드가 스킬 목록을 열었다.

<그리드의 검무> 카테고리에 단일 검무 <용(龍)>이 추가돼 있었다.

<용(龍)>

용의 기세를 재현하는 검무입니다.

효과:???

★아직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비활성화 상태입니다.

“....”

초창기 파그마의 검무는 파(波), 제(制), 연(聯), 살(殺), 초(超) 총 5종류가 끝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의 레벨이 오르고 경험이 쌓이는 과정에서 융합 검무라는 개념과 회, 화, 락 등의 새로운 검무들이 추가된 것이다.

그리드가 새롭게 탄생시킨 개념은 아니었다.

파그마의 검무가 본래 지니고 있던 잠재력을 뒤늦게 끌어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탄생한 <용(龍)>은 개념이 달랐다.

헬레나의 드래곤 블레이드에 영감을 얻어 탄생한 듯한 검무.

다른 검무들과 달리 파그마의 검무로부터 파생한 것이 아니라, 그리드의 검무의 최초 오리지널리티일 수도 있다.

분명 특별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만족하지 못했다. 자꾸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헬레나가 반용족의 정점이 맞았다면....’

그녀와 싸우는 과정에서 용의 검무가 완성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헬레나는 용의 편린만을 보여줬다.

또한, 그녀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용족과의 관계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는 게 꺼림칙했다.

테루찬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반용족이 그리드를 적대하거나 새로운 로드를 선출하게 됐다는 월드 메시지가 떠올라야 정상이었다.

‘분명해. 반용족 로드는 따로 존재한다.’

애초에 당연한 일이다.

반용족의 숫자는 수백이라고 들었는데 이곳에 있는 반용족은 총 31명에 불과했다.

헬레나는 별동대의 대장 정도였다고 판단하면 좋을 듯했다.

‘그런데도 267퍼센트에 가까운 경험치를 줬다, 이 말이지....’

깨달음 시스템의 힘이다. 헬레나와 싸우는 도중 실시간으로 상승했던 경험치량은 그리드를 소름 돋게 만들었을 정도다.

반용족이라는 종족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화신의 폭풍과 무한의 검기, 그리고 갓 핸드의 조합으로 헬레나를 압살해버린 그리드의 강함이 훨씬 더 대단했지만.

‘아, 그러고 보니....’

새로운 검무의 탄생은 무한의 검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헬레나와 싸우는 내내 물결쳤던 은빛의 검기들을 떠올려 본 그리드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앞으로 강력한 검술을 사용하는 적들과 싸울 때마다 새로운 검무를 익히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그를 고취시켰다.

스파아앗!!

지옥으로 사라졌던 십공신이 다시 현장에 나타났다.

그 짧은 시간 동안 4명의 상급 전사를 모조리 해치운 건지, 십공신 중 상당수가 레벨이 오른 상태였다.

“도마뱀 대장은 어디냐앗!!”

흥분한 반트너가 기세 좋게 외치며 방패를 세웠다. 다른 십공신 역시 한껏 격양 된 표정으로 사위를 살폈다.

그러다가 문득, 한쪽에 모여 선 그리드와 그의 기사들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헬레나는? 설마 벌써 레이드한 거야?”

“응, 솔킬.”

그리드가 손가락으로 V를 그리자 십공신 모두 잠시 멍해졌다.

***

하급~중급 전사들이 드롭한 전리품은 십공신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

무기로 분류되는 발톱과 방어구로 분류되는 비늘 모두 십공신이 쓰기엔 성능이 다소 아쉬운 까닭이었다.

그나마 상급 전사들이 드롭한 <찢어진 용의 날개>는 ‘저공, 저속 비행’과 ‘추락사 방지’ 등의 옵션이 있어 몇 명이 탐을 냈지만 적극적으로 입찰하려는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무게가 워낙 무거워서 착용하는 순간 속도가 저하됐고 여기저기 찢겨져나가 외관이 별로였다.

결국 그리드와 십공신은 이번에 얻은 전리품 중 상당수를 판매해서 분배금을 나눠 갖자는데 합의했다.

끝으로.

“이 목걸이는 아이린이나 로드에게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같아.”

<번헬리어의 가호가 깃든 심장>의 소유권은 만장일치로 그리드에게 넘어갔다.

그리드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십공신 전원이 아이린과 로드를 언급했다.

덕분에 그리드의 고민도 짧게 끝났다.

“아이린에게 주도록 할게.”

로드에겐 스스로를 지킬 정도의 실력이 있는 반면 아이린은 일반인이다. 심지어 그녀의 목숨은 하나밖에 없었다.

목걸이를 소중하게 품에 챙긴 그리드가 동료들을 재촉했다.

“자, 대충 정리됐으면 어서 일곱 번째 능선으로 가자.”

그리드가 십공신과 기사들을 전부 소환한 이유는 반용족 토벌이 아닌 사냥을 위해서였다.

곧장 최후의 능선으로 이동한 그리드 일행은 끊임없이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빠르게 경험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브라함과 유페미나의 조합이 기가 막혔다.

브라함의 강화 마법과 유페미나의 무무드식 마법이 힘을 합치자 무려 500레벨이 넘는 몬스터들이 초 단위로 죽어나갔다.

범위 마법엔 쉽게 죽지 않는 정예 몬스터들을 골라 베어 넘긴 크리스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400레벨이 머지않았음을 엿본 것이다.

***

Satisfy 관련 커뮤니티들이 오래간만에 들썩였다.

처음 계기는 프론티어의 반용족 출몰 사건에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촬영해 올린 영상 속 반용족은 과연 소문대로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했다. 전투종족이라는 위명에 결코 과장이 없어, 어지간한 랭커도 반용족의 상대가 못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템빨국 소속의 젊은 기사가 반용족과 1대1로 싸워서 이겨버렸다.

네임드 NPC가 초네임드 NPC로 진화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플레이어들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플레이어도 반용족과 싸워 이기면 어떤 큰 대가를 얻을 것이다, 라덴이라는 NPC의 잠재력이 원래부터 뛰어났을 뿐이다, 등등 많은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그렇다.

라덴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 그를 구한 그리드의 모습은 솔직히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드가 강한 걸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으니까.

앞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리드가 대악마와 ‘1대1’로 싸워서 이기지 않는 이상 그리드의 활약을 보고도 딱히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근데 템빨국 랭커들 갑자기 왜 이럼?

-뭐가?

-랭킹창 보세요. 십공신 랭킹 전부 다 급등 중.

-라우엘 랭킹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는데?

-라우엘은 십공신에서 나왔다고 자기가 못 박았음. 자긴 이제 내정에만 집중할 거라고.

-재상 꿀보직ㅇㅈ 돈 겁나게 벌 듯 ㅋㅋ

-아니, 헛소리들 그만하고 랭킹창 보라고. 지금 장난 아니다.

-....?

그리드와 십공신이 카오스 산맥에 자리 잡고 나흘이 지난 날.

<템빨단 주요 구성원 레벨 급격히 상승>

<반용족 토벌에 나섰던 멤버들이 그대로 카오스 산맥에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

<(칼럼)카오스 산맥은 낭설. 그곳은 도전 불가능의 영역이다>

온갖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십공신의 랭킹이 단 나흘 만에 평균 2위 이상 치솟았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러다가 언젠간 그리드와 십공신이 랭킹 1위~11위를 독점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발생할 정도였다.

물론 그만큼 그리드와 십공신의 노력이 컸다.

“피로가 계속 쌓이네.”

로그아웃한 신영우가 시간을 확인하자 새벽 3시 45분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침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온 그의 입장에선 급격히 망가진 생활 패턴이 곤욕으로 다가왔다.

“죄다 국적이 다르니, 이거야 원....”

카오스 산맥 최후의 능선은 그리드 혼자서도 솔로 플레이가 힘들었다. 그래서 십공신 전원과 함께 시간을 맞춰서 사냥하고, 휴식하며 단체 활동 중이었는데 나라별로 시차가 발생하다보니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캐릭 레벨과 내 건강을 맞바꾸는 기분이군.’

요즘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해 찌뿌둥한 몸을 푼 영우가 씻고 나와 라면을 먹으려다가 관뒀다. 피곤해도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체력을 유지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냉장고 문을 열어보려는 순간이었다.

띵동.

“....실화냐?”

새벽 3시 58분.

이 시간에 초인종이 울리다니?

긴장할 법도 했지만 신영우는 대수롭지 않게 인터폰 앞으로 다가섰다.

어차피 영우의 건물엔 툰이라는 든든한 친구가 경비로 있었다. 아무나 이곳까지 올라와 벨을 누르는 게 불가능했다.

역시나.

인터폰 화면에 보이는 사람은 낯선 방문자가 아닌, 유라였다.

“무슨 일이야?”

당황해서 문을 여는 영우에게 싱긋 미소지은 유라가 꽤 큰 찬합을 내밀었다.

“식사를 만들어봤어요. 체력 보충 좀 하시라구요.”

“아....”

유라의 변치 않는 관심과 애정을 느낀 영우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활짝 웃은 그가 유라를 집 안으로 인도했다.

“들어와.”

찰칵.

문이 닫힌다.

닫힌 문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열리지 않았다.

늦은 새벽의 고요한 집에서 두 남녀는 함께 식사한 후, 충분히 휴식한 뒤....

“헉헉....”

“하아, 하아....”

건강관리를 위해서 런닝머신을 달렸다.

온갖 취미를 공유하는 두 사람은 착실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

Satisfy에는 균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대천사가 이끄는 템플러가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해 야탄교를 수세에 몰아넣은 것은 평화를 암시하는 게 아닌, 새로운 위기를 암시하는 신호였다.

“오오, 드디어....”

분쟁의 대악마이자 야탄의 첫 번째 종인 아모락트.

그로부터 <계시>를 받은 야탄교는 염룡 트라우카의 시선을 피해 무사히 탈리마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목적은 이곳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이계의 틈.

지옥과 인계를 잇는 ‘문’을 찾아 활짝 여는 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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