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8권 - 18화
찌릿! 찌리릿!
한동안 잠잠했던 초월자의 감각이 그리드에게 경고를 보낸다.
꿀꺽, 그리드가 마른 침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번쩍!!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창이 나타났다.
디스인티그레이트.
헬레나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진 그 창의 정체는, 전설에서조차 거의 등장한적 없는 최고위의 대마법이었다.
웬일인지 조용했던 브라함의 은밀한 한 수인 것이다.
‘역시 브라함!’
치사하게 아니, 절묘하게 암습이라니, 효율의 극치를 추구하는 전설의 대마법사답다.
꽈꽈광!!
“....!”
브라함의 암습에 감탄하며 헬레나의 죽음을 예상했던 그리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헬레나의 주위로 펼쳐진 단단한 마력의 실드가 빛의 창을 막아낸 까닭이었다.
브라함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놈, 드래곤의 가호를 받고 있다. 가호를 없애기 전까진 마법이 통하지 않겠어.”
“네...? 또요!?”
왜 매번 중요한 순간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단 것인가....
그리드는 아군이 된 이후부터 활약이 줄어든 브라함의 무력함에 울분이 터질 지경이었다.
한쪽 팔까지 희생하며 양반들을 도륙했던 브라함의 활약을 몰랐기에 느끼는 울분이었다.
황당해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콧방귀 뀌었다.
“내가 활약하길 바란다면 녀석의 가호부터 부수던가.”
지금 브라함은 엄살을 피우는 게 아니다.
본래 드래곤이라는 종 자체가 마법사에겐 최악의 상성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헬레나는 드래곤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다.
“크음....”
염룡 트라우카로부터 단지 ‘살아남았을 뿐인’ 일화가 브라함을 구성하는 전설 중 하나임을 상기한 그리드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지금은 브라함이 아닌 자신이 활약할 때다....
각오를 다지며, 그는 테루찬과의 일전을 떠올렸다.
종(種)의 정점은 우선 엄청난 레벨 혜택을 받는다.
어스름족 오크보다 반용족의 출현 시기가 훨씬 늦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눈앞 헬레나의 레벨은 500 중반을 가뿐히 넘어설 게 분명했다.
‘빡셀 거다.’
그리드 일행 중에서 500레벨을 달성한 사람은 브라함이 유일하다. 하지만 브라함은 헬레나를 상대로 무력하다. 싸울 수 있는 인원들은 레벨 차이를 감수해야한다. 각성 차이로 인한 격차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더군다나 헬레나는 브레스를 쏠 때마다 아군 1명을 무력화시켰으니 예상보다 힘든 싸움이 될 공산이 컸다.
꽈앙-!
역시나.
헬레나가 결코 만만찮은 상대임을 증명하듯이, 메르세데스가 맥없이 하늘을 부유하고 있었다.
브라함의 마법 발동 타이밍을 정확히 노리고 협공에 나섰다가, 브라함의 마법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그녀 혼자 낭패를 겪은 것이다.
약간의 생명력을 소모한 상태로 지면에 착지하는 그녀의 방패가 찌그러진 것을 확인한 그리드가 냉큼 받아 망치로 몇 번 두드렸다.
내구력이 대폭 감소한 장비를 수리한 대가로 그리드는 0.002퍼센트의 경험치를 얻었고 메르세데스의 방패는 새것처럼 변했다.
입가의 피를 닦아낸 메르세데스가 특유의 무감정한 눈빛으로 헬레나를 바라봤다.
도리어 헬레나가 동요하는 기색이었다.
“그걸 반응했어?”
번, 혹은 헬의 이름을 이은 반용족.
그중에서도 로드의 자격을 지닌 이들은 2개씩의 권능을 갖는다.
바로 <번헬리어의 저주>와 <번헬리어의 가호>다.
번의 이름을 잇는 자에겐 발톱에 저주가 깃들어 대상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한편 조건부 혼란을 유발했고, 가호는 날개에 깃들어 질풍과도 같은 속도를 상시 유지했다.
반면 헬의 이름을 잇는 자에겐 브레스에 저주가 깃들어 대상을 무력화시켰고, 가호는 마력에 깃들어 대상의 마법공격을 무시했다.
누가 더 강한가에 대해선 논하기 힘들다.
각자 명확한 상성이 있었다.
번과 헬 가문이 오랜 세월 협력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실 번과 헬 가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두 가문이 서로 협력해야만 반용족은 비로소 최강의 종족으로 거듭났으니까.
만약 번과 헬이 함께했다면, 반용족은 저주 받았기에 저주에 대한 내성을 지닌 ‘산주’들을 손쉽게 해치웠을 것이다. 그리드 일행과 제대로 맞상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헬레나는 혼자였다.
헬레나는 초조함을 느꼈다.
‘암습’ 특성을 지닌 자신의 꼬리 공격을 읽고 막아낸 메르세데스와 자신의 저주 중 일부를 저항한 그리드와 피아로.
세 사람을 번갈아 살피는 그녀의 긴장감이 역대 최고조에 이르렀다.
‘전설이 셋이라. 이대로는 당할 수도 있겠는걸.’
두근, 두근, 두근....
패배와 죽음이라는 개념은 헬레나에게 친숙한 개념이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어쩌면 최후가 될지 모를 전투.
반용족인 그녀에겐 축복과도 같은 상황이다.
“....좋아, 원 없이 놀아 볼까.”
죽음이란 숙명이다.
어차피 일생에 한 번 겪어야할 일이라면, 무의미한 평온 속에서 무료하게 맞이하느니 화려하게 싸우면서 맞이하는 편이 옳다.
촤르르르르륵!!
각오를 다진 헬레나의 전신을 묵색의 비늘이 뒤덮었다. 길게 뻗어 나온 날개가 만든 거대한 그림자가 설원을 검게 물들이자 세상에 마치 암흑이 도래한 듯했다.
“오오, 헬레나 님....!”
십공신과 싸우고 있던 4인의 상급 전사가 헬레나의 모습을 보고 감격했다.
헬레나의 변신은 그들조차도 거의 수십 년 만에 목격한 것이었다.
그랜드 마스터와 조우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상급 전사들에게 전율을 안겼다.
“무슨....”
십공신 중 유라를 제외한 전원이 몸을 덜덜 떨었다. 거대한 공포가 그들을 지배했다. 헬레나의 변신이 일으킨 위압 효과 때문이다.
“하하핫!”
바퀴벌레처럼 버티던 인간들이 하나둘씩 주저앉기 시작하자 상급 전사들의 기세가 올랐다. 대소를 터뜨린 그들이 일제히 변신을 개시했다.
전장의 판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자신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은 상급 전사들이 개선장군마냥 위풍당당한 기세로 십공신에게 다가갔다. 공포에 빠진 그들을 살육할 채비를 갖췄다.
바로 그때였다.
“지옥 소환.”
유라가 공간을 반전시켰다.
자신을 포함한 십공신과 상급 전사들을 모조리 지하의 깊은 곳으로 끌어내렸다.
[악룡의 사악한 사념이 사라집니다.]
헬레나와 떨어지게 된 십공신이 공포로부터 해방됐지만,
[지옥에선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새로운 페널티가 발생해 그들의 몸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효과는 반용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여긴...!?”
수백, 수천 개의 눈이 달린 붉은 달과 용암처럼 흐르는 강물, 삼킬 때마다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픈 칼날 같은 공기와 뜨거운 대지.
도무지 생명이 살아갈 수 없을 듯한, 카오스 산맥이 차라리 천국처럼 느껴질 정도의 최악의 환경이 상급 전사들을 당황시켰다.
지옥의 열기에 뜨겁게 달궈진 그들의 비늘을 유라의 저격총이 조준하고 있었다.
타앙-!
에메랄드빛의 궤적을 남긴 마력의 탄환.
온전한 상태에서도 읽기 힘들었을 속력이 담긴 그것에, 반용족은 반응하지 못했다.
“...컥!”
사무친 고통이 담긴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마력의 탄환에 가슴을 저격당하고 비늘이 깨어진 상급 전사의 흔들리는 시야에,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적발 인간의 조소가 스쳐지나갔다.
“어서 와, 지옥은 처음이지?”
과묵한 유라를 대신해 적들을 조롱해준 지슈카의 화살이 회전하며 쏘아졌고, 그것은 정확히 상급 전사의 가슴에 꽂혔다. 이미 유라의 저격에 당해 비늘을 잃고 있던 상급 전사는 피부와 살, 그리고 심장이 꿰뚫리는 끔찍한 고통을 차례대로 느껴야만 했다.
그리드가 없는 곳에서, 그의 동료들은 활약하고 있었다.
***
반용족의 기세가 오르고 전황이 바뀐 순간.
“....?”
상급 전사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헬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잠시뿐인 의문이었고, 크게 괘념치는 않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상급 전사들이 남아있어 봤자 브라함의 희생양밖에 안 됐을 거라는 사실을.
‘차라리 잘 됐어.’
사라진 건 상급 전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좌시할 수만은 없던 10명의 인간도 함께 사라졌으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촤르륵!
기다란 꼬리를 펼친 헬레나의 시선이 밀짚모자를 쓴 인간에게 고정됐다.
아까부터 쪼그려 앉아 설원을 호미로 파헤치고 있는 그놈을 헬레나는 가장 경계했다.
전투종족의 본능이 놈을 가장 경계해야한다고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그녀는 피아로의 알 수 없는 행동에서 비롯될 변수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가 경계해야하는 건 ‘혜안’을 지닌 메르세데스였다.
쩌엉!
“....!”
헬레나가 두 눈을 부릅떴다.
밀짚모자 놈을 노리고 날린 암습이 다시 한 번 은발의 암컷에게 가로막힌 까닭이었다.
벌써 두 번째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네가 문제였구나.”
드디어 눈치 챈 헬레나가 가슴의 비늘을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곤두세웠다.
다른 반용족과 달리 몇 겹으로 겹쳐진 그녀의 비늘은 탄알처럼 사출되어 대상을 공격하기도 했다.
투콰콰콰콰쾅!!
비늘의 연사가 메르세데스를 압박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쏘아지는 그것을 메르세데스는 단지 방어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패 뒤에 웅크리고 서서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헬레나는 그녀에게 어떤 기회를 주지 않았다.
콰앙!!
비늘의 폭격에 섞여서 쏘아진 브레스가 메르세데스를 무력화시켰다.
5초 동안의 이동 불가.
저항할 수 없는 저주 탓에 발이 묶인 메르세데스의 시선이 헬레나의 동선을 쫓았고, 헬레나는 여전히 호미질 중인 피아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번뜩이는 발톱이 피아로의 몸을 여섯 갈래로 찢어놓을 기세였다.
물론 피아로는 쉽게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가 괜히 밭을 갈고 있던 게 아니다.
“급성장!”
촤르르르르륵!!
카오스 산맥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푸른 새싹들이 일제히 피어올랐다. 피아로가 밟고 선 대지는 이제 설원이 아닌 논밭이었다.
“밤고구마 난타!!”
피아로가 뿌리째 뽑은 식물을 크게 휘둘러 헬레나에게 반격했다.
동시에.
“절구질!!”
콰르르르릉!!
찢어진 하늘에서 거대한 강기의 집약체가 떨어져 내렸다.
비기와 극의를 동시에 쓰는 경지.
무쌍심법을 토대로 농법을 발전시킨 피아로가 새롭게 도달한 경지다.
“....!!”
날아오는 고구마들을 뿌리치느라 잠시 발이 묶였던 헬레나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인간들이 곡식을 빻을 때나 쓸법한 도구가 신의 철퇴를 재현하듯 떨어지는 광경이 그녀는 낯설고 황당함과 동시에 짜릿했다.
왠지, 저것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워 이기는 순간 자신은 한 발 더 도약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믿음이 그녀를 지배했고 그녀를 행동케 만들었다.
“드래곤 블레이드!”
“....!”
“....!”
“....!”
그리드, 피아로, 메르세데스 세 사람이 크게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헬레나의 발톱 끝에 칼날처럼 서린 새카만 기운에 깃든 파괴력을 엿본 까닭이다.
서걱━━!
소름끼치는 절삭음과 함께 절구에 금이 새겨졌다.
본래 헬레나를 짓뭉개고 산을 무너뜨려야했을 피아로의 절구가 그대로 반으로 쪼개져 빛의 조각으로 흩어져버렸다.
“....”
“....”
분명, 절구질은 무적이 아니다.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공격력을 지닌 스킬로 맞대응하면 상쇄, 파쇄 시키는 일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피아로는 템빨국의 자존심이었다.
절구질은 그의 성명절기였다.
절구질의 몰락은 그리드와 메르세데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헬레나는 웃고 있었다.
“하핫....! 하하핫!! 강해졌어....! 나는 더 강해졌다고!!”
모든 전투종족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싸울수록 강해진다는 것.
특히 험난한 시련을 극복할 때마다 그들은 급격히 발전했고 쾌감을 느꼈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얼굴과 머리카락이 무색하게도 상쾌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기세를 잃은 밤고구마들을 브레스로 날려버린 후 지상을 굽어보았다.
그녀는 밀짚모자 놈의 절망에 찬 얼굴을 기대했다.
하지만 의외로 놈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웃어?’
당황하는 헬레나.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놈, 나와 같은 부류다. 여기서 없애지 못하면 필시 큰 후환으로 남을 것이다....
“후우....”
헬레나의 숨결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번져나갔다. 전투 중에 레벨이 오른 그녀는 브레스를 보다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브레스를 단순한 공격 용도로 쓰지 않고 일대에 깔아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끔 조성해나갔다.
필드 마법의 개화였다.
안 그래도 레벨 차이로 인한 능력치 차이로 피아로와 메르세데스에게 우세를 점했던 그녀는 이제 압도적인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리드는 긴장하다가 문득 의문을 느꼈다.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레벨 차이라면.... 그건 아무런 문젯거리도 아니지 않은가?
이유야 간단하다.
레벨 차이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스탯의 차이.
하지만 내겐 레벨 차이를 넘어서는 스탯이 있다.
“화신의 폭풍.”
콰르르르르르륵!!
헬레나의 검은 마력에 잠식당해가던 일대에 불꽃이 덧씌워진다.
불꽃 속에 무한한 은빛의 검기가 펼쳐졌다.
투기에 휩싸인 그리드와, 검은 마력을 펼친 헬레나가 불꽃 속에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애송이는 꺼져라. 네 차례는 가장 마지막이다.”
피식 웃은 헬레나가 브레스를 쏘았고, 그리드는 회(回)로 대응하는 것을 포기했다.
회로 맞부딪치는 순간 경직에 걸릴 테니 포기하는 게 맞았다.
쩌엉!!
“....!”
자신이 쏜 브레스가 스스로 움직이는 흑금색 손에 의해 봉쇄되는 광경을 목격한 헬레나가 다급히 발톱 위로 드래곤 블레이드를 덧씌웠다.
이름 그대로 용의 기운을 형상화한 검이다.
절구질마저 베어냈던 그녀의 궁극기가 쇄도해오는 그리드에게 꽂혀 들어갔다.
그리드는 정면에서 맞섰다.
“초연살파극(超聯殺派極).”
잠재력 개방에 이은 5융합 검무.
콰르르르릉!!
용의 기운을 형상화한 한 자루의 검과 여러 마리의 용이 충돌하며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화신의 폭풍 속에 존재하는 은빛의 검기들이 사그라질 것처럼 요란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리드의 기세는 죽지 않고 도리어 올랐다.
[<신장(神將)>의 효과로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초연살파극!”
“....!”
쩌정-! 쩌저저저저정!!
몇 겹으로 덧씌운 헬레나의 비늘이 하나, 둘 깨어져 나간다.
하얗게 눈을 까뒤집은 그녀는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필시 큰 검기를 소모한 그리드가 후폭풍을 감당하는 동안 태세를 정비하기 위해 이를 악 물고 고통을 견뎠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리드의 검기는 무한했다. 그에겐 감당해야할 후유증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4융합 검무와 3융합 검무, 그리고 2융합 검무와 단일 검무들을 연속해서 출수하는 그의 공세를 헬레나는 결코 감당할 수 없었다. 브레스를 쏘아 시간을 벌려고 시도해봤지만 갓 핸드의 개입 탓에 번번히 실패하고 끝내 드래곤 블레이드 한 자루에만 의지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녀가 계속해서 재현하는 용의 기운이 무한의 검기에 각인되고 있었다.
[새로운 검무, 용(龍)의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알림창과 함께,
“큭...! 크아아악!!”
터무니없는 방어력과 생명력으로 그리드의 공세를 견디는가 싶던 헬레나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그녀가 잿빛으로 산화하였고 화신의 폭풍이 서서히 거두어졌다.
“....후우.”
흩어지는 불꽃의 잔재 속에서 나타난 그리드는 지친 기색이 거의 없었다.
‘검기를 소모하지 않는’ 화신의 폭풍의 위력이었다.
그를 빤히 쳐다보던 브라함이 의문을 꺼냈다.
“어차피 혼자서 쓰러뜨릴 거면 왜 진작 나서지 않고 뜸을 들인 거지?”
“....혼자서 이길 줄은 몰랐죠.”
“주제파악 못하는 놈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