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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137화 (1,127/1,794)

템빨 58권 - 17화

이놈들을 막을 분은 헬레나 님 뿐이다....

판단한 크베가 산주의 영역을 피하기 시작했다. 괜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그리드 일행을 반용족 거주지로 인도했다.

그러자 그리드 일행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레이드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오로지 사냥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경험치 획득량이 3배 이상 치솟은 것이다.

본래 4시간 동안 0.2퍼센트의 경험치를 올렸던 크리스가 단 2시간 만에 0.5퍼센트의 경험치를 올렸을 정도로 격차가 컸다.

“브라함 님, 감사합니다.”

397레벨인 크리스가 일주일 동안 올리는 경험치량은 평균 5~6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영주직을 내려놓고 갈구노스의 사원에 틀어박혀 사냥만 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가끔 운 좋게 히든 퀘스트를 얻을 땐 추가 경험치를 얻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 따라줬을 때의 이야기다.

크리스는 브라함에게 깊은 감사와 호감을 느꼈다. 자처해서 버스를 운행 중인 그가 없었다면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려볼까 싶었다.

감사의 뜻을 전해오는 그에게 브라함이 냉랭하게 말했다.

“적어도 그리드의 발목은 붙잡진 마라.”

브라함의 십공신을 향한 호의는 결국 그리드를 위한 행동이었다.

그리드가 십공신의 성장을 원하기 때문에 그들의 사냥을 돕는 것이지, 십공신을 위해서 호의를 베푼 게 아니었다.

정확히 선을 긋는 브라함의 태도에 크리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토록 냉담한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까지 그리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을지 새삼 궁금해졌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 영주직을 사임한 자신과 달리 주변을 돌보면서도 랭킹 1위를 유지 중인 그리드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지 새삼 다시 느꼈다.

선두의 그리드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경험치 더럽게 안 오르네.’

그리드의 경험치 획득량이 높았던 비결은 산주 레이드에 있다.

신화적 존재를 레이드하는 과정 자체가 경험이 됐기 때문에 잡다한 몬스터 수백, 수천 마리를 사냥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치를 쌓았던 것이다.

단지 몬스터를 사냥하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크리스와 비교해도 경험치가 더디게 올랐다. 열망의 무아검과 네펠리나의 축복 덕분에 항시 유지 중인 경험치 획득량 상승 패시브가 무색할 정도였다.

뭐, 레벨 차이를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레이드와 보통 사냥의 효율 차이가 몇 배나 난다는 건 납득이 안 됐....

‘....아니, 가만. 이거 오히려 엄청 좋은데?’

깨달음 시스템이 개화한 이후부터는 사냥보다 레이드의 효율이 몇 배나 앞선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리드에게 도리어 희소식이었다.

본래부터 그리드는 사냥보다 레이드 위주로 레벨을 올려왔기 때문이다.

남들과 달리 일인 레이드가 가능하기에 성립되는 방법이었는데, 어차피 레이드 위주로 레벨을 올려온 그리드는 깨달음 시스템의 혜택을 더 크게 누리게 생겼다.

‘이거 어쩌면....’

앞으로의 성장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일반 유저는 향후 최소 2년 동안 300레벨대에 발목을 붙잡힐 테지만 자신은 500레벨을 노려볼 수도 있다.

‘바로 그때 네임드 NPC들과의 레벨 격차가 크게 좁혀질 거다.’

쫓겨난 신들을 죽일 기회가 온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리드가 돌파 속도를 높였다.

2번째 능선에서 발생했던 반용족들의 습격이 또 다시 있을지 몰라 안배하고 있던 검무들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물론 쿨타임이 긴 융합 검무들의 사용은 배제했고 단일 검무 위주로 사용했다.

스카칵!

“....!”

십공신의 행동이 일제히 멈췄다.

5번째 능선의 몬스터들.

브라함의 디버프와 후로이의 욕설에 노출 된 녀석들은 매우 약화된 상태였고, 십공신이 녀석들의 숨통을 끊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초 내외였다.

무려 430레벨대의 몬스터들을 말이다.

예전과 비교해서 엄청 강해진 서로를 엿본 십공신의 자부심은 솔직히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진 상태였다.

한데.

퍼엉!

케엑!

콰작!!

쿠억!

그리드가 십공신의 자부심을 순식간에 박살냈다.

단 일격, 이격으로 몬스터들을 잿빛으로 산화시키는 그리드의 모습을 보면서 십공신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여태까지 평타만 썼던 거라고?’

조금 전까지 그리드는 평균 5초대의 속도로 몬스터들을 사냥했었다.

십공신보다 3배 이상 빠른 속도였다.

십공신 입장에서는 그리드가 당연히 스킬을 섞어 쓰는 거라고 믿었다.

한데 착각이었다.

<파그마의 검무>가 <그리드의 검무>로 진화한 이후부터 스킬명을 입 밖에 꺼내는 경우가 적어진 그리드의 태도가 일으킨 착각이기도 했다.

“....평타 이팩트 실화냐.”

모든 단일 검무가 쿨타임에 걸린 잠시간의 틈.

다시 평타만 휘두르기 시작한 그리드를 지켜보는 십공신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폭발하는 화염과 나부끼는 전격, 솟구치는 가시와 작열하는 투기.

온갖 템빨과 칭호의 효과를 두른 그리드의 가격, 피격이 발생시키는 연출 효과는 누군가의 궁극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화려했다. 저게 스킬이 아닌 평타라고 보는 게 도리어 이상할 지경이었다.

“...슬슬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군.”

콰작!

470레벨 익룡의 날개를 정확히 겨냥하고 매직 미사일을 연사, 강제로 추락시킨 뒤 살을 꽂아 넣은 그리드가 녀석의 거대한 머리통을 짓밟으며 땀을 닦아냈다.

그가 조금 전에 막 사냥한 몬스터들이 좌우에서 잿빛으로 산화하고 있었다.

앞서 해치운 몬스터들의 사망 모션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몬스터를 사냥했다는 뜻이다.

십공신이 감탄하기 바쁜 와중에 여태껏 잠자코 있던 그리드의 기사들이 앞으로 한 걸음씩 나섰다.

“전하, 여기서부턴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6번째 능선의 몬스터 레벨은 400 초반부터 시작했다. 한데 어느덧 400 후반의 몬스터가 출몰하고 있었다. 슬슬 깊은 곳에 도달했다는 증거였다.

크베의 말이 거짓이 아닌 이상 이곳 근처에 반용족의 거주지가 있을 것이다.

‘반용족들이 7번째 능선에 터를 잡았다는 건 말도 안 되고.’

그리드는 반용족의 전력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경계했던 상급 전사의 수준도 칠공작보다 아래였다. 전반적인 수준을 봤을 때 그들은 7번째 능선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리더의 수준은 당연히 높겠지만 테루찬과 비슷할 테고.... 고작 그 정도 전력으로 프론티어를 지배하려고 했다고? 괘씸한 놈들.’

주제 파악 못하는 머저리들.

그리드가 평가한 반용족이다.

굉장히 잘못 된 평가였다.

솔로 넘버 나이트급의 실력자는 홀로 작은 나라 하나를 정복할 수 있다....

본래 이것이 서대륙의 상식이었다.

솔로 넘버 나이트와 비견되는 중급 전사들과 그를 초월하는 상급 전사 다섯 명을 거느린 헬레나의 전력은 사실 프론티어가 아니라 어지간한 왕국 하나를 지배하고도 남을 전력인 것이다.

다만 템빨국이 특별할 뿐이다.

반용족이 프론티어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템빨국이 강해서였다.

“....!”

가장 선두에서 그리드와 함께 걷던 반용족 크베가 움찔 떨었다.

선두의 행렬에 참가한 농부와 꼬맹이 뱀파이어, 그리고 기사들의 실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그는 이미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쥬드인지 뭔지 하는, 딱 봐도 저능해 보이는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다 그리드와 비슷한 실력자였다.

그들이 선두에 서자 크베는 큰 걱정을 느꼈다. 천하의 헬레나라도 이들의 협공을 감당하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레나 님께서 저 허접한 녀석들부터 처리하셔야 승산이 생길 텐데.’

후위에 자리 잡는 십공신의 모습을 힐끔 훔쳐본 크베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그때였다.

“공격.”

크베의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드 일행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도저히 사람이 설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가파른 산비탈의 틈새.

그곳에서 검은 광선이 폭사하는 광경이 보였다.

“물러나!!”

반용족의 브레스.

여태껏 본 적 없는 위력을 담은 5개의 광선은 후위에 선 십공신들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그리드 일행 중에서 누가 약하고 강한지, 반용족은 정확히 파악한 상태라는 뜻이다.

콰아아아아앙!!

다급히 몸을 날린 그리드가 유라와 지슈카를 품에 안았다. 예비용으로 만들어뒀던 신성한 빛의 방패를 앞세운 그는 방패와 충돌한 브레스의 위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쾅!

방패의 각도를 비틀어, 방패와 맞물려있던 브레스의 궤도를 비틀어 날려버린 그리드가 주변을 살폈다.

메르세데스와 아스모펠, 그리고 놀이 그리드와 마찬가지로 십공신을 지켜주고 있었다. 각자의 검과 방패, 그리고 마법으로 브레스의 궤도를 비틀어 흘려보내거나 소멸시킨 상태였다.

다만 한 사람.

“크음...!”

피아로만큼은 여전히 브레스를 떨쳐내지 못하고 힘겨루기 중이었다. 그가 심은 두 그루의 콩나무가 견고하게 얽힌 채 브레스를 막아내고 있었는데 요란하게 경련하며 쩌적, 쩌저적, 균열을 발생시키는 모습을 보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피아로!”

“피아로 님!”

그리드와 메르세데스, 그리고 아스모펠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두 그루의 콩나무를 지탱하고 서있는 피아로의 흔들리는 등을 손으로 받쳐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두 눈을 부릅떴다.

브레스에 담긴 힘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피아로의 등을 손으로 받친 그리드와 메르세데스, 그리고 아스모펠 세 사람의 오장육부가 크게 흔들렸다.

“쿨럭!”

아스모펠이 가장 먼저 피를 토했다.

내상을 입은 그의 안색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피아로의 등을 지탱하고 있는 손을 끝까지 떼지 않았다.

그가 첫 번째 표적이 되었다.

“고작 숨결조차 버티지 못하는 주제에 여기까지 찾아온 건 무슨 배짱이지?”

노을에 물든 듯한 주황색의 머리카락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가장 먼저 반응한 메르세데스가 검을 휘둘렀으나, 다른 한 손으론 피아로를 받치느라 불완전한 자세였기 때문에 온전한 위력을 싣지 못했다.

혹시 그 사실을 간파한 것일까?

반용족 여인은 메르세데스의 검을 경계하지 않았다.

까앙!

반용족 여인의 어깨에 돋은 비늘이 메르세데스의 검을 흘려보냈고,

푸욱!

반용족 여인이 내지른 발톱은 손쉽게 아스모펠의 복부를 꿰뚫었다.

“아스모펠....!”

눈앞에서 동료의 위기를 목격한 그리드의 분노가 급격히 치솟았다. 하지만 그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단 일격의 브레스로 피아로를 묶어두고 그 틈에 일격으로 아스모펠의 생명력을 3분의 1이나 앗아간 적의 실력을 좌시할 수 없는 탓이었다.

그리드는 분노에 매몰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다. 피아로가 감당하고 있는 브레스의 기운이 사그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피아로의 등을 받치고 있던 손을 떼고 반용족 여인에게 쇄도했다.

0.5초.

그리드의 모습을 관찰하던 반용족 여인의 시선이 다른 이에게 향했다. 단, 그녀가 요염하게 벌린 입으로부터 쏘아진 브레스는 그리드에게 날아왔다.

‘이까짓 거!’

꽈앙!!

“....!?”

신성한 빛의 방패를 꺼내 브레스를 막아낸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충돌 후에도 소멸하지 않고 방패를 짓누르는 반용족의 브레스가 온갖 디버프를 일으킨 까닭이다.

[악룡의 사악한 사념이 깃든 숨결에 노출되었습니다. 숨결의 강력한 위력이 당신의 육신을 억누릅니다. 숨결이 사라지기까지 5초 동안 이동이 불가능해집니다.]

[저항에 실패하였습니다.]

[악룡의 사악한 사념이 당신의 육신을 내부부터 썩어가게 만듭니다. 상태이상 ‘중독’과 상태이상 ‘출혈’, 상태이상 ‘내상’이 발생합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악룡의 사악한 사념이 당신을 저주합니다. 앞으로 10초 동안 스킬과 마법의 시전 속도가 2배 느려지고 5초 동안 회피율과 명중률이 80퍼센트 감소합니다.]

[저항에 실패하였습니다.]

상태이상 저항을 무시하는 상태이상.

대개 절대적인 존재들의 전유물인 그것이 그리드를 잠시간 무력화시켰다.

그리드의 떨리는 시선이 반용족 여인의 머리 위에 고정됐다.

헬레나.

휘광으로 물든 그녀의 이름은 유난히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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