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농법 제2장! 급성장!”
콰드득! 콰드드드드드득!!
그리드에게 쏟아지던 수백 개의 씨앗들 중 일부가 허공에서 일제히 싹을 틔우고 비대해졌다.
성인 남성의 몸보다 거대한 밤고구마 수십 개가 줄기줄기 얽히며 그리드의 주변 공간을 장악해 버렸다.
수십 개의 줄기를 하나로 엮어 손에 쥔 피아로가 그것을 힘껏 휘두르기 시작했다.
“밤고구마 난타!!”
무상농법의 오의 중 하나인 밤고구마 난타는 본래 씨 뿌리기와 급성장, 그리고 추수를 연계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일단 땅에 씨를 뿌리고 고구마를 재배한 다음 추수해 휘두르는 개념이었으니 당연히 단계를 밟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피아로는 씨 뿌리기만으로도 고구마를 재배할 수 있었다. 굳이 여러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즉시 밤고구마 난타를 전개하는 게 가능했다.
콰쾅!!
쿠콰콰콰콰콰콰콰쾅!!
피아로가 휘두르는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린 밤고구마 수십 개가 대지를 초토화시켰다.
그리드의 뼈를 모조리 박살 낼 각오인지 그는 정말로 전력을 다해서 고구마 줄기를 휘둘러 댔다.
힘을 안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으, 으아아악!!”
연병장에 모여 전투를 관람하던 병사들이 우왕좌왕했다.
콰쾅!
출렁.
쿠콰쾅!
추울렁.
밤고구마가 땅 위에 떨어질 때마다 연병장 전체가 들썩였으니 병사들은 현기증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아무리 대련이라지만 주군을 상대로 너무 무자비하구만…….”
싱클레드가 진저리쳤다. 연병장을 아주 박살 낼 기세인 피아로의 모습을 보자 그는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평소에는 서글서글하다가도 검을 쥐는 순간 귀신이 됐던 피아로에게 있어서 대련이란 늘 전력을 다하는 실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검성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서 강자와의 대결을 갈망했던 그와 대련했다가 죽을 뻔한 경험까지 있었던 싱클레드는 피아로의 여전한 성격이 다소 마음에 안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주군을 상대로 진짜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기사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뼛속 깊이 농부가 되어 기사도를 잃은 게요?’
쯧, 급기야 혀를 차는 싱클레드에게 휴렌트가 영문 모를 헛소리를 지껄였다.
“고구마가 익고 있다.”
“…배고프냐?”
아니, 진지한 대결 중에 갑자기 왜 익은 고구마 타령을…….
황당해하던 싱클레드가 이내 깜짝 놀라더니 코를 벌름거렸다.
진짜로 냄새가 났다.
맛 좋은 고구마가 익는 냄새가.
‘뭐지?’
싱클레드가 곧 끝날 줄 알았던 대결에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다.
대지를 박살 내며 휘몰아치는 밤고구마들이 흙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을 포착했다.
그리고 보았다.
피아로의 밤고구마가 모조리 노릇노릇하게 익어 있음을.
익은 고구마가 땅을 후려쳐 봤자 자기가 뭉개질 뿐이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흙먼지가 서서히 약해졌다.
그러자.
콰르르르륵!!
가려져 있던 불꽃의 윤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저럴 수가!”
피아로 저 양반, 도대체 얼마나 세게 고구마를 휘둘러 댔으면 저만한 불꽃의 폭풍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켰단 말인가?
기겁하는 싱클레드의 눈동자가 주홍빛으로 일렁였다.
그가 보는 풍경에 휘몰아치는 불꽃의 폭풍이 존재하고 있었다.
중심에 선 그리드는 상처 하나 없는 반면 피아로는 몸 곳곳에 크고 작은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피아로가 주도하고 있는 줄 알았던 대결이 사실은 그리드의 손아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반신을 쓰러뜨리셨다고 들었나이다.”
촤하하하하하…….
잘 익은 밤고구마 다발을 내려놓은 피아로가 앞서 뿌려 놓았던 씨들을 급성장시켜서 수박을 재배했다. 그러자 땅의 수분을 듬뿍 머금은 수백 개의 수박들이 화신의 폭풍의 열기를 잠재워 나갔다.
“반신은 결국 신이 아니야. 그들 대부분이 피아로 너보다 약했다.”
감탄한 그리드가 진심을 담아 말했고,
“하지만 필시 저보다 뛰어난 자들도 있었겠지요.”
하늘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강기의 집약체가 만든 그림자였다.
“신의 미천한 실력으로는 필사의 각오를 다져야만 전하를 감당할 수 있을 듯합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격동하는 하늘에서부터 절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감히 그리드에게 맞서는 적들을 겨냥해 왔던 무상농법의 극의가 그리드를 조준했다.
“…기대했던 바다.”
오싹한 긴장감을 느낀 그리드가 잠재력을 개방했다.
절구질은 3단 히트라는 변수를 지닌 바.
반격하기엔 용이하지 않았으므로 힘 대 힘으로 맞서 볼 각오였다.
“초연살파극.”
그리드가 공간을 지배한다.
“절구질.”
그리드의 지배에 놓인 공간을 피아로가 빻았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앙!!
“……!”
“……!”
단테와 싱클레드가 기함했다.
메르세데스는 두 손을 힘껏 말아 쥐었고, 휴렌트는 내려놓았던 쌀 포대를 다시 어깨에 짊어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정적 속에 그리드는 누워 있었다.
청명한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본 채 중얼거렸다.
“뭐야, 내가 쓸 때보다 훨씬 더 세네.”
지난 한 달 동안 피아로가 너무 성장해 버렸다.
자연의 기운이 담긴 피아로의 절구질은 그리드가 재현했던 절구질의 위력을 가뿐히 상회하고 있었다.
이것 참…….
‘…기분 좋네.’
피식 웃는 그리드의 머리 위로 피아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의 역량을 몰라봤던 과거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말하는 피아로 역시 땅에 大 자로 누운 채 그리드와 정수리를 맞대고 있었다.
무승부였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생명력이 최소치가 되는 순간 둘 모두 불사 상태에 돌입했을 테고 이후 어떤 변수가 발생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적어도 대련에서만큼은 동률이었다.
밝은 미소를 그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누군가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피아로 고옹! 앞으로 일곱 달 동안 봉급 없으실 줄 아시오!!”
“……!!”
행정관 라빗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는 듯이 동요하는 피아로의 모습을 통해서 그리드는 가장의 무게를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