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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105화 (1,095/1,794)

템빨 57권 - 10화

“허허.”

병사들을 돌려보내고 감자를 캐고 있던 피아로는 주군께서 귀환하셨음을 눈치챘다.

하늘을 도발하듯이 광오하게 용솟음치는 투기…….

대자연마저 긴장시키는 그 맹렬한 기세를 피아로는 감지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막 포옹을 나눈 여인에게 결투를 신청하시다니, 메르세데스 경이 슬퍼하겠습니다.”

자연경의 묘리를 담은 보법으로 바람과 동화한 피아로는 연병장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포옹을 나누는 그리드와 메르세데스의 모습을 발견하고 흐뭇해하다가 이내 큰 아쉬움을 느꼈다.

일평생 처음으로 애정을 표현해 보았을 메르세데스의 용기에 그리드가 화답해 주기는커녕 결투를 신청했으니 산통 깨지는 느낌이었다.

그리드에게 보여 주었던 희미한 미소를 어느새 거둔 메르세데스가 감정 없는 시선으로 피아로를 마주했다.

“포옹을 나눈 적 없어요.”

“이미 다 봤다네.”

“잠시 현기증이 났을 뿐이에요. 전하께서는 저를 부축해 주신 거고요.”

“허허, 풋풋하구만.”

본인의 뺨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는 사실을 메르세데스는 모르는 눈치다.

드물게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아 싱글벙글 웃은 피아로가 그리드에게 무릎 꿇었다.

우리들 적기사에게 제2의 삶을 선사해 준 그리드에게 보내는 경의였고, 그리드의 무사 귀환에 대한 감사였다.

“신 피아로, 하늘을 위협하는 무훈을 세우시고 돌아온 전하를 열렬히 환영하는 바입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가우스 왕국을 완벽하게 점령했다지? 정말로 고생 많았어.”

“전하께서 내려 주신 목숨입니다. 전하께서 저를 거두어 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지요. 신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전하의 은덕이니 전하께서는 치하하지 않으심이 옳습니다.”

“…….”

피아로는 본래부터 푼수기가 있었다.

주변의 입장이야 어찌 됐든 그저 허허 웃으며 마이웨이 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들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늘 구깃구깃했던 피아로의 흙 묻은 천 옷이 오늘은 빳빳하게 다려져 있음을 엿본 그리드가 빙그레 웃었다.

“하늘을 날아갈 기센데? 요즘 어지간히 행복한가 봐? 부인 덕분이겠지?”

“…험험, 부정하지 않겠나이다. 전하께서 저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고 베니야루가 제게 사랑을 나눠 주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솔직하게 밝힌 피아로가 기수식을 취했다.

교차하는 호미와 낫에 메말라 붙은 진흙이 강기에 의해서 불타 사라졌다. 칼처럼 번들거리는 호미와 낫의 날이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신 피아로, 전하의 대련 신청을 받아들이겠나이다.”

“시원시원해서 좋군.”

[‘피아로’와 대련 모드를 시작합니다.]

[대련 모드 중에는 생명력이 최소치가 되어도 사망하지 않습니다.]

[한쪽의 생명력이 최소치가 되는 순간 승부가 정해집니다.]

그리드가 쉬지 않고 성장해 왔듯이 피아로 또한 성장해 왔다.

특히 브라함에게 가르침을 얻은 뒤부턴 자연경이 심화의 단계에 이르렀다.

“자연경의 가장 큰 위력은 기(氣)의 다변성에 있다.”

브라함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 피아로가 불어오는 미풍에 몸을 맡겼다.

슬며시 눈을 감고 피부 전체로 바람의 성질을 읽더니 그것을 강기로 재현했다.

쏴아아아아━

“……!”

“……!”

그리드와 메르세데스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본래 단단하고 날카로운 형상을 이뤘던 피아로의 강기가 마치 강물처럼, 바람처럼 유연하게 변하여 물결쳤으니 놀라웠다.

‘힘으로 깨뜨릴 수 없는 성질이에요.’

혜안으로 엿본 메르세데스가 그리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못 본 새 새로운 경지에 접어든 피아로.

그가 혹 그리드에게 좌절감을 심어 주는 건 아닐까 메르세데스는 근심했다.

“아……!”

메르세데스가 탄식했다.

힘과 속도를 강화시킨 그리드가 피아로에게 정면으로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대로는 바람 그 자체나 다름이 없는 피아로의 강기에 휩쓸려 패배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다른 이들이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하께서 섣불리 움직이셨다.”

백발의 노기사 단테.

그에게는 메르세데스 같은 혜안이 없지만 연륜이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쌓아 올린 경험을 토대로 피아로의 강기가 유의 극한을 담고 있음을 엿보았다.

병사들을 훈련시키던 도중 소란을 듣고 달려온 그는 곧 쓰러질 그리드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전하의 검은 피아로 공의 강기에 휩쓸려 허공에 날아오를 것이고 전하의 등은 대지와 맞닿게 될 터.’

꾸욱.

단테가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그는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구보다 더 큰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그리드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자신의 은인이자 새로운 주인께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여한이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전하께서 피아로 공하고 승부하기엔 아직 이르지 않나?”

감자를 캐다 말고 갑자기 달려가는 피아로의 뒤를 쫓아 지금 막 현장에 도착한 싱클레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드의 훌륭한 실력을 그 또한 수차례 목격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피아로와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나란히 선 휴렌트의 생각은 달랐다.

“글쎄. 귀하는 그리드를 잘 모르는군.”

“……?”

싱클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휴렌트 이 녀석, 피아로 단장을 거의 신처럼 떠받들지 않았던가?

한데 단장의 승리를 의심한다고?

쌀 포대를 내려놓고 그 위에 걸터앉은 휴렌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그대가 그리드한테 맞아 봤어야 알지.”

“……?”

마침.

꽈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이 폭발했다.

“……!”

가장 먼저 놀란 사람은 메르세데스였다.

피아로의 강기가 형성하는 기류와 그리드의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본래라면 기류에 휩쓸려 위로 솟구쳤어야 할 그리드의 몸이 예상과 달리 버티며 기류를 격렬하게 흔들어 댔다.

‘백호 자세!’

그렇다.

불시에 범처럼 웅크린 그리드는 마치 거목과 같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백호 자세의 ‘움직일 수 없다.’는 제약을 역으로 이용해서 본래라면 기류에 휩쓸렸어야 할 몸을 지탱한 것이다.

“……!”

다음으로 놀란 사람은 단테였다.

그는, 자신의 의도가 어긋났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낫을 출수하는 피아로의 모습을 빤히 응시하는 그리드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피하지 않는다고?’

공격을 미리 읽으면서도 대처하지 않는다는 것은 필시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역시나.

피아로도 그 사실을 눈치챈 듯했다.

하지만 그가 뻗은 낫은 이미 그리드의 미간에 꽂히고 있었다.

쩌어엉!!

금속이 돌과 충돌하는 듯한 소음이 발생했다.

찌르르, 피아로의 손목이 미친 듯이 경련하는 반면 정작 이마를 낫으로 찍힌 그리드는 멀쩡했다.

백호 자세에 <바위> 스킬을 연계하여 피해를 면역한 것이다.

“……!”

마지막으로 놀란 사람은 싱클레드였다.

그의 감상은 단순했다.

‘돌 머리……!’

뾰족한 낫.

심지어 피아로가 휘두르는 낫을 맞고도 멀쩡할 정도로 두개골이 단단하다니?

쩌정! 쩌저정!!

질색한 싱클레드가 혀를 내두르는 사이 피아로는 낫을 현란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드의 단단함을 부정하듯이 예리하게 급소를 노리고 찔렀다.

하지만 그리드가 꼼짝도 하지 않자 결국 포기한 그는 뒤로 잠시 물러났다.

‘도검류에 면역하시는 건가?’

찌릿한 통증이 올라오는 손목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피아로.

그가 드디어 진짜 실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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