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7권 - 06화
<현무의 수호자>
★히든 퀘스트★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현무의 자아가 둘로 나뉜 시점에서 부활의 의식을 완성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현무는 죽음의 현무와 물의 현무로 나뉘게 되었고 온전한 신의 권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현무를 호위하여 물의 현무와 재회하게끔 도와주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죽음의 현무와 물의 현무의 재회.
퀘스트 클리어 보상:현무의 등껍질. 현무와의 호감도 최대치.
퀘스트 클리어 실패 시:현무의 신격 약화. 사방신의 균형 붕괴. 새로운 에피소드 <소별왕 강림> 개시.
★소별왕 강림 에피소드 발생 시 동대륙의 신화가 다시 거짓으로 덧칠됩니다.
‘소별왕은 또 뭐야.’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내용을 토대로 오존 중 하나일까 추측하는 게 고작일 따름.
반면 부활의 의식을 완성시켰다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정체는 뻔했다.
현무보옥을 훔쳐간 장본인, 황길동이다.
쏴아아아아아━
맑고 투명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북방의 만물에 <현무의 가호>가 깃듭니다.]
[북방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레벨과 능력치가 소폭 오릅니다.]
[약해진 신수 중 일부가 힘을 조금 회복하였습니다.]
[산재해 있던 ‘거짓 신화’의 흔적들이 일부 불타 사라집니다.]
[북방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존재 중 소수가 환국에 적개심을 품습니다.]
[환국의 방해로 파국과 가야 두 국가에는 이 소식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초국의 신민들이 현무의 부활을 느끼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전혀 기뻐할 소식이 아니다.
주작이 부활했을 당시에는 남방의 모든 존재의 레벨과 능력치가 ‘크게’ 오르고 회복력까지 상승했었다.
약해진 신수 중 일부가 힘을 ‘완전히’ 회복했었다.
산재해 있던 거짓 신화가 ‘전부’ 불타 사라졌고 남방에 소속돼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환국을 ‘적대’했었다.
주작이 부활하며 발생시켰던 이로운 효과들과 비교해서 현무가 부활하며 발생시킨 이로운 효과들은 모두 반쪽짜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실화냐?’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눈살을 찌푸리는 그리드였지만 황길동을 원망하진 못했다.
황길동의 강도짓이 없었다면 그리드와 랭커들은 이미 진즉에 전멸했을 테고 현무의 부활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래, 엄밀히 따져서 황길동은 은인이다. 그는 충분히 잘 해줬다.
다만 현무의 부활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는 게 아쉬울 따름... 아니, 과연 잘못 잡은 게 맞을까?
‘....의도적으로 노린 거 같은데?’
그리드는 칠천 일행과의 만남을 떠올려보았다.
활빈당 소속인 그들은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었을 뿐더러 주작이 부활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심지어 현무보옥의 위치까지 파악했다.
활빈당의 정보력은 그리드 이상이라는 뜻이다.
‘활빈당의 수장인 황길동이 현무의 상황을 몰랐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애초에 황길동은 전투 현장에 난입했었다.
전장에서 그리드와 함께 있던 죽음의 현무를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현무의 자아가 둘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부활의 의식을 강행했다는 건데....’
이건 낭패다.
모든 사방신을 완전히 부활시키려는 나의 목적과 황길동의 목적이 다를 수도 있다....
골치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한껏 일그러진 미간을 쥐는 그리드에게 부바트가 다가와 물었다.
“그리드, 너는 퀘스트에 실패하기라도 한 거냐? 왜 혼자서만 표정이 안 좋아?”
확실히, 부바트의 말을 듣고 살펴보니 다른 하이랭커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밝았다.
현무가 불완전한 상태로 부활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고, 진행 중이던 모종의 퀘스트를 무사히 클리어해서 보상을 획득해 기쁜 듯했다.
괜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그리드가 웃으며 반문했다.
“당신들 퀘스트는 뭐였어?”
“본래 사신기를 보호하는 거였는데 저 거북이.... 아니, 현무 신이 나타나서 깽판 친 뒤로 내용이 바뀌었다. 우리를 속이고 버린 양반들에게 복수하는 게 목적이었지. 이후엔 네 덕분에 목적을 달성했고.”
부바트가 보란 듯이 랭킹 창을 열었다.
그의 순위가 무려 31단계나 상승해 있었다.
“고맙다.”
부바트와 하이랭커들이 그리드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상위 0.00005프로에 들어가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자존심 강할 천재들이 모조리 그리드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나도 고맙다.”
어색해 뺨을 긁적인 그리드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서 화답했다.
진심어린 인사였다.
이들이 없었다면 그리드 역시 승리하지 못했을 테니까.
부바트와 달리 눈치가 빠른 봉드레가 그리드를 재촉했다.
“어이 그리드. 괜히 말 돌리지 말고 상황이나 설명해라. 뭐가 잘못 됐길래 혼자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던 거지?”
현무는 발성하지 않고 그리드의 뇌리에 직접 사념을 전달하는 식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 탓에 하이랭커들은 황길동이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몰랐다.
현무 신이 부활하여 북방의 모든 존재가 축복을 받았다는데 기뻐하기는커녕 혼자 심각한 그리드의 속사정을 궁금해 했다.
“사실은....”
한숨 쉰 그리드가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끝까지 집중해서 듣던 하이랭커들 모두 낭패어린 표정을 지었다.
“황길동 그 인간, 쉽게 만날 수 있는 위인이 아닐 텐데.”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길동은 신출귀몰했다.
환국을 적대하는 활빈당의 수장이기도 했으니 결코 쉽게 모습을 노출하지 않았다. 얼핏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철저히 자신만의 계획에 따라서 행동하는 인물로서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드 네 추측대로 황길동이 이번 사태를 의도적으로 일으킨 거라면 골치가 좀 아프겠는데? 만약 황길동이 마음먹고 물의 현무를 숨기면 현무들의 재회가 사실상 힘들 거 아니야?”
“내 생각은 달라. 그리드가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현무가 하나로 합치지 않으면 세계에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는데 황길동도 그리드에게 협조하겠지.”
“일단 대화가 가능해야 설득을 하지.... 황길동이 끝까지 그리드를 피해 다니면 아무 의미 없잖....”
자신의 일처럼 진지하게 토론하던 하이랭커들의 시선이 일제히 노검마에게 향했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황길동의 동료였던 노검마라면 충분히 황길동과 만나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아닌가.”
노검마에게 기대어린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숨 쉬며 고개를 저었다.
노검마를 버리고 혼자 도망쳤던 황길동의 태도를 보아 둘 사이가 가까울 것 같진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드 역시 노검마에게 큰 기대를 걸지 못했다.
노검마가 민망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대들의 생각이 맞소. 나라고 해서 황길동을 쉽게 만날 순 없지. 워낙 의심이 많은 인물이라 설득할 자신도 없어. 하지만 말이오. 내가 황길동과 함께 일한 횟수만 10회가 넘소. 황길동의 성격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지.”
“....?”
“지존이여. 황길동 그자 말인데, 아마도 백미산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게요.”
“....!”
그리드의 행동은 빨랐다.
즉시 템빨콘을 소환하더니 그 위에 올라탔다.
“오오...!”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보기 드문 유니콘의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다만.
“템빨콘, 충분히 쉬었지?”
“....”
템빨콘의 이름을 듣더니 다들 깬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드의 옛 작명센스는 고귀한 유니콘의 가치마저 떨어뜨리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드, 혹시 모르니까 나도 함께 가겠다.”
“나도!”
“나도 데려가.”
하이랭커들이 그리드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하나 같이 그리드를 돕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특히 부바트의 의욕이 커보였다.
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괜히 우르르 몰려갔다가 황길동의 경계를 사느니 혼자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미 이 지역의 양반들은 모두 처리했다. 그리고 황길동은 적이 아니다.
위험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바트와 봉드레를 비롯한 하이랭커들과 일일이 시선을 마주친 그리드가 히죽 웃었다.
“마음만큼은 고마워.”
“그리드....”
“간다. 당신들도 어서 가. 다들 바쁘잖아.”
죽음의 현무를 앞에 태운 그리드가 템빨콘에게 출발하라고 명령하는 순간이었다.
“그리드! 혹시라도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연락해! 템빨단하고 비교하면 별 거 아닐지 몰라도, 우리도 나름 잘나가는 길드를 운영하고 있다고! 작게나마 반드시 도움이 될 거야!!”
하이랭커들이 소리쳤고 템빨콘은 달리기 시작했다.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그들을 돌아본 그리드가 중얼거렸다.
“엄청 든든하네....”
“실력, 잠재력,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인 하이랭커들의 응원을 받으면 나라도 든든할 것 같소.”
“....!?”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리드가 기함했다.
곁을 보자 노검마가 쫓아오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성큼성큼 걷듯이 뛰는데 속도가 템빨콘과 비교해도 전혀 느리지 않았다.
‘언제부터 따라왔던 거지?’
전혀 몰랐다.
아무래도 또 기척을 지웠던 듯하다.
양반 마루를 속였을 때처럼 말이다.
“혹시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세요?”
새로운 레전드리 클래스의 등장은 월드 메시지를 통해서 알려진다.
하지만 마냥 월드 메시지를 맹신해선 안 됐다.
그리드의 경우만 해도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월드 메시지로 존재로 알렸었다.
“아직은 아니요.”
아직은 아니다.
이 대답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성장형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
과연, 이제야 납득이 간다.
최고의 하이랭커 중 한 명이었던 그가 왜 몇 년 동안이나 잠적했었는지.
마루와 10분이나 격전을 펼쳤던 저력은 어디서부터 비롯했는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잊힌 그는 머잖아 화려하게 복귀할 것이다.
레전드리 클래스의 출현을 알리는 월드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좋은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허허, 고맙소. 지존께서 응원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말씀 편히 하세요. 연배도 한참 위신데...”
차마 할아버지 또래라는 표현은 삼가는 그리드에게 노검마가 빙그레 웃어보였다.
“게임에서 나이가 중요하오? 레벨이 높은 쪽이 형이지.”
“....귀하께 형 소리 듣기 싫은데요.”
“흐흐, 그건 그렇고 대단하시더군. 몇 년 전 내가 막 동대륙에 도착했을 때 크라우젤의 활약을 지켜보고 전율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이상의 전율을 오늘 지존으로부터 느꼈소. 과연 새로운 지존이 되실 만 하오.”
“언제 다시 뺏겨도 이상하지 않을 자리입니다. 크라우젤은 정말로 대단한 친구니까요.”
“호오....”
노검마가 이채를 띠었다.
크라우젤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눈을 빛내며 말하는 그리드로부터 결코 꺼지지 않을 열정을 엿본 것이다.
‘크라우젤이라는 존재가 이자의 가치를 높이고 있구나.’
호적수는 신이 내리는 축복이라더니 그 말인 딱인 듯하다.
생각하며 싱글벙글 웃는 노검마는 여전히 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어느덧 수십 분을 달려 백미강에 도착했음에도 호흡 하나 거칠어지지 않고 템빨콘과 똑같은 달리기 속도를 유지했다.
‘어쌔신이 아닌가?’
대개 어쌔신은 민첩성과 근력에 찍는 스탯만으로도 포인트에 허덕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노검마는 마루와 싸웠을 때도 그렇고 엄청난 체력을 자랑했다. 그렇다고 민첩성이나 근력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클래스 고유 효과일 텐데.... 아니면 엘릭서를 엄청나게 먹은 건가?’
동대륙은 황금 호두의 고장이다.
오랜 세월 동대륙을 주무대로 활동한 노검마라면 황금 호두를 꾸준히 복용해왔을 수도 있다.
“고생했어.”
강을 지나 백미산 앞에 도착한 그리드가 템빨콘을 펫 인벤토리로 돌려 넣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템빨콘의 체력을 안배하는 것이었다.
그리드 곁으로 다가와 선 노검마가 백미산의 정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장담컨대 황길동이 지존을 시험하려할 거요.”
“황길동의 정보력이라면 이미 제 성향과 무위를 알고 있을 텐데요?”
“정보의 재확인은 황길동의 습관이거든. 긴장하시는 편이 좋소.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자라 잠깐이라도 방심했다간 페이스에 넘어갈 게요. 잘하면 칼을 섞게 될 수도.”
“음....”
백면서생 화경은 브라함과 황길동이 동급이라고 평한 바 있다.
물론 너프 먹은 브라함을 기준으로 삼은 평가였지만, 그래도 충분히 그리드보단 우위에 있는 존재다.
‘긴장되네.’
죽음의 현무를 품에 안은 그리드가 산의 정상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굳이 날 필요도 없었다.
산을 타는 일쯤이야 장작 패러 다니던 시절부터 익숙했다.
“노검마 님? 그쪽은 절벽인데요?”
“험험.”
노검마가 도중에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는 바람에 약간 지체되긴 했지만 그리드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고....
“반갑소, 템빨왕 그리드. 아니, 템빨신 그리드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의식의 흔적이 남은 제단이 놓인 산의 정상.
그곳에서 패랭이를 쓴 젊은 사내 ‘수백 명’이 그리드를 맞이해주었다.
‘뭐?’
예상치 못한 인원에 놀란 그리드가 사내들의 면면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들 모두 자세와 표정은 달랐지만 똑같은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모두 황길동으로 같았다.
‘분신술!’
대악마조차 수백 개의 분신은 만들지 못했었다.
더욱 긴장하며 경계하는 그리드의 품에 안긴 죽음의 현무를 발견한 황길동들이 동시에 말했다.
“역시 전 현무도 데려왔군. 아주 잘했소.”
“전 현무?”
“이제 곧 사라질 현무이니 전 현무요.”
사라져?
뭔가 잘못 됐다....
깨닫고 등골이 오싹해진 그리드가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 죽금의 현....!”
젠장, 급하다 보니 말이 꼬인다.
그리드가 편의상 현무의 호칭을 바꿨다.
“전 현무는 물 현무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하오! 안 그러면 사방신의 균형이 무너지고 세상이 위기에 빠진단 말이오!”
“전 현무가 사라지면 전 현무에게 축적되었던 신앙이 물 현무에게 집중되어 균형이 무너질 리 없는데?”
“전 현무의 능력 자체가 균형의 유지에 필요한 거겠지!”
“흐음... 설령 그대의 주장이 맞다 해도 상관없소. 어차피 이제는 우리들 인간이 나서야할 차례였으니까. 사방신은 이미 한 번 실패한 존재들. 인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의지해선 안 되오.”
“아니 그럼 현무는 왜 부활시킨 건데!”
“그야 당연히 양반들을 약화시키기 위함이지.”
스파앗!
일제히 몸을 날린 수백 명의 황길동이 그리드를 덮쳤다.
손에 쥔 몽둥이가 하나 같이 크고 우람한 것이 위협적이다.
“전 현무를 내놓으시오. 문명을 파괴하는 전 현무는 인류 최대의 난적. 반드시 사라져야할 흉신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