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6권 - 21화
<삼십만대군 잠행검(열화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보이지 않는 참격을 날립니다.
시야에 있는 모든 적에게 공격력의 600퍼센트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히고 대상의 약점을 노출시킵니다. 치명타 발동 시 치명타 데미지가 2,000퍼센트 상승 작용합니다.
*이 공격은 반드시 적중합니다.
스킬 자원 소모:마나 10,000. 검기 200
스킬 반동 효과:3초 동안 검기 회복 불가능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시간
잠재력 개방의 활용 시 개화되는 이십만대적검의 상승 경지.
물수제비처럼 낮게 뜨다가 기습적으로 솟구치는 이 <삼십만대군 잠행검>은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사용 후 3초 동안 검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치명타 발생 시 기대할 수 있는 높은 데미지와 연계 공격의 초석으로 삼기에 적합한 <약점 노출>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 ‘필중’이라는 점 때문에 궁극의 기술이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었다.
“신격. 잠재력 개방.”
뿌득! 뿌드득!!
잠행검으로 양반들의 급소를 치는 데 성공하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그리드의 목과 얼굴에 핏줄이 꿈틀꿈틀 솟아난다.
잠재력 개방의 연속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폭풍이다.
‘극한의 페널티 발생’이 명시돼 있는 만큼 잠재력 개방이 사용자에게 안기는 부담은 컸다.
1만의 마나와 2만의 생명력, 그리고 현재 보유 중인 스태미나의 절반을 소모하여 진을 빼는 것은 기본이고 육체에 부담을 가중시켜서 부상을 유발했다.
잠재력 개방과 5융합 검무를 처음 연계했을 당시 그리드는 격통을 감당 못하고 정신을 잃을 위기에 처했었을 정도다.
“꿀꺽!”
고통에 대비하는 그리드가 마른침을 삼켰다.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
하지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초(超)의 기파에 머리카락이 솟구치며 드러난 그의 두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강인했다.
“초연살파극.”
<초연살파극(超聯殺派極)>
5개의 검무를 하나의 경지로 승화시켰습니다.
대상에게 물리 공격력 5,000퍼센트의 피해를 입히는 살(殺)의 검기를 1초 동안 7회 날리고 대상에게 적중한 검기를 폭사시켜 반경 10미터 범위에 있는 모든 적을 덮치는 검기의 파도를 일으킵니다.
검기에 적중당하는 대상은 <무장해제>되며 ‘출혈’과 ‘절망’을 겪습니다.
모든 검기는 대상의 방어력을 70퍼센트 무시합니다.
★디텍스 포스, 윈드 커터, 실드, 웨폰 인챈트 효과 발동
스킬 사용 조건:도검류 무기 장착
스킬 검기 소모:5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2시간
푸욱-!
푹푹푹푹푹!!
잠행검에 기습당하고 휘청거리던 양반 ‘싸울’의 몸을 무자비한 검격이 난도질한다.
싸울의 정신이 아찔해졌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거지?’
예상대로 적의 침입이 발생했고 예정대로 현무의 반쪽 자아가 부활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괴물 주제에 하늘의 오존들께 울부짖기에 정신을 분산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다가 목록에 없던 인간을 발견했다.
정황상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놈의 목을 쳤다.
귀찮은 날파리를 때려죽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순보를 발동해서 놈의 목을 시야에 담고 검을 날렸다.
거기까진 기억한다.
하지만 이후 겪은 일들은 떠올리는 게 불가능했다.
“…쿨럭!”
칠공에서 피를 토하는 싸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건지 그는 전혀 이해가 불가능했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사신의 숨결을 운영할 뿐이었다.
“싸울!!”
등 뒤에서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울리지 않게 다급했다.
‘우리는… 신이 될 존재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보여야 한다.
폭우가 쏟아지고 눈보라가 휘몰아칠지언정 유유자적 걸어야 하는 것이 우리다.
그러니 그런 필사적인 외침 따위 관둬라.
싸울의 바람이 부질없게도 양반들은 다급히 달려왔고 싸울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들은 싸울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싸울을 관통했던 검기들이 일제히 폭발하더니 파도처럼 뻗어 나와 싸울과 양반들을 덮쳤기 때문이다.
좌시할 수 없는 위력의 공격이었다.
“큭!”
양반들이 검기의 파도로부터 다급히 스스로를 지키는 반면 싸울은 무방비하게 휩쓸렸다.
콰직!
콰지직!
싸울의 사지가 찢겨 나가기 시작한다.
“…아.”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싸울은 드디어 상황을 인지했다.
죽음.
아득히 멀게 느꼈던 개념이 자신을 덮쳐 오고 있음을 알게 됐다.
“싫…….”
꽈드드드득!!
죽음은 싸울에게 투정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몸서리치는 그를 일말의 자비 없이 흉포하게 물어뜯어 집어삼켰다.
“…….”
검기의 파도가 끝나고 고요가 찾아왔다.
살아남은 양반들에겐 싸울의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은 회상했다.
치우의 시련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하고 좌절하는 자신들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던 싸울의 미소를.
다음 기회엔 반드시 셋이서 치우의 시련을 통과하자고 외쳤던 싸울에게 용기를 얻고 좌절을 극복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제 드디어… 드디어 7좌에 공석이 생기고 우리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는데…….”
신의 자격을 얻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데 죽음이라는 끝을 맞이했다고?
“노옴!!”
양반들의 시선이 지쳐 헐떡이고 있는 그리드에게 꽂혔다.
탄생 이후 최초로 증오심과 살심을 품은 그들이 청룡의 숨결을 운용하였고 뇌광에 휩싸여 그리드를 덮쳤다.
그리드는 대응하지 못했다.
꼽추처럼 허리를 굽히고 선 그는 양팔을 축 늘어뜨린 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부들부들.
솔직히 말해서 검을 붙잡고 있기도 벅찼다.
잠재력 개방, 삼십만대적검, 5융합 검무…….
하나같이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기술을 연달아 사용한 여파였다.
그리드의 근육은 경기를 일으켰고 스태미나는 방전되기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죽어라!!”
파지직!
살심이 투영되었기 때문일까.
양반들의 검끝에 맺힌 뇌광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곧 그리드가 흘리게 될 피를 암시하는 듯한 색상이었다.
‘제길.’
공격을 두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반응할 수 없다니.
그리드는 분했지만 마음을 다스리고자 노력했다.
아직 끝이 아니었으니까.
‘버틸 수 있다.’
칭호와 아이템 효과들로 발생하는 회복, 보호막 스킬들이 남아 있다.
운 좋게 피해 무효화 스킬까지 터져 준다면 양반들의 공격을 앞으로 4~5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놈들의 수준은 가람이 아니라 한결 정도니까.’
푸욱-!
“…윽!”
허리와 가슴을 꿰뚫린 그리드가 왈칵 피를 토하면서도 버텼다. 이를 악물고 눈동자를 사방으로 굴렸다.
퇴로를 물색하기 위함이다.
스태미나가 조금만 더 회복해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순간 그는 곧바로 도주를 시도할 계획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양반들은 그리드의 의도를 뻔히 간파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감히 싸울을 해치고 양반의 격을 실추시킨 인간에게 활로를 열어 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네놈은 절대 살아갈 수 없다!!”
스칵-!
츠카카카칵!!
양반들의 공세가 더욱 거세졌다.
그리드의 상태가 처음과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챈 그들은 반격을 염두에 두기보다 전력으로 그리드를 몰아붙였고 초당 수십 회의 공격을 쏟아부었다.
보는 이를 질리게 만들 정도로 빠르고 집요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5초 내에 그리드의 불사를 소모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6,59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7,105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천지를 지탱하는 백호의 각반>의 옵션 효과로 피해를 무시하였습니다.]
[7,75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8,3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주작의 가호가 깃든 백호의 견갑>의 옵션 효과로 피해를 무시하였습니다.]
[<천지를 발밑에 둘 오만한 청룡의 부츠>의 옵션 효과로 피해를 무시하였습니다.]
템빨 때문이다.
양반들의 공격은 연계될수록 강해졌고 그리드의 보호막과 회복 스킬을 빠르게 소모시켰지만 그리드가 사방신의 숨결로 만든 방어구들 탓에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견갑, 각반, 부츠가 확률적으로 일으키는 피해 무효화의 권능이 그리드의 명줄을 어떻게든 붙잡고 지켜 주었다.
“이놈이?”
양반들의 머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리드는 비웃어 주지 못했다. 그리드의 얼굴에는 패색이 짙었다.
‘아직이라고?’
그리드의 육체에 가중된 부담이 워낙 컸다.
5초가 지나고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스태미나가 회복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모든 관절이 삐걱거렸고 사지의 근육이 경련했다.
‘잠재력 개방을 연속 사용하는 건 역시 미친 짓이었나…….’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되도록 자제하려고 했었다.
다만, 이번엔 힘을 안배할 정도의 여력이 없었을 뿐이다.
‘이렇게 된 이상 불사 상태에서 모든 걸 건다.’
5초.
5초 안에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이겠다.
각오를 다진 그리드가 자신의 목을 휘감아 오는 두 자루 연검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한데 그때였다.
휘릭!
그리드의 목을 휘감으며 날을 세우던 두 자루 연검이 갑자기 풀리더니 주인들이 있는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검의 주인, 즉 양반들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르고 있었다.
“……?”
“……?”
그리드와 양반들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양반들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거구의 사내와 그리드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사내의 정체는 부바트였다.
대상을 붙잡아 메치는 것이 특기인 이 시대 최강의 이니시에이터.
저항 불가의 군중제어기를 자랑하며 전성기의 그리드조차 바닥에 메쳤던 그가 이번엔 그리드를 도와서 양반들을 바닥에 꽂아 버렸다.
쿠웅!!
꿈틀, 꿈틀!
정수리부터 땅바닥에 처박힌 양반들의 다리가 하늘을 향한 채 움찔거린다.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는 그리드에게 부바트가 소리쳤다.
“젠장! 뭐 하냐! 어서 튀어!!”
“……!”
그리드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마침 손끝에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순보.”
이 순간 그리드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은 미리 물색해 뒀던 퇴로가 아니었다.
그리드는 부바트의 곁을 바라보았고, 부바트의 곁에 나타났다.
“……!”
눈앞에 있던 그리드가 갑자기 곁에 나타나자 당황한 부바트가 움찔 놀란다.
그를 바라보는 그리드의 머릿속에는 2년 전의 대화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드, 내가 네게 도전하는 일은 두 번 다신 없을 거다.”
이젠 이름조차 기억 안 나는 중국의 어느 랭커에게 패배하고 의기소침해진 부바트가 했던 말이다.
당시의 부바트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있었다.
‘일대일 대결’에서의 한계였다.
그렇다.
이니시에이터의 진가는 파티 플레이에서 나온다.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몇 배나 강력한 사람이 바로 부바트였다.
“…언젠가 우리가 전쟁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적이 아니길 바란다고 했었지.”
두 사내가 같은 날을 떠올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했던 말을 상기하며 마주 보고 미소 지었다.
덥석!
부바트의 커다란 두 손이 땅에 처박혀 있는 양반들의 발목을 움켜쥐었고,
“초연화(超聯花).”
그리드는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시도했다.
“연살화극(聯殺花極).”
어둠으로 물든 세계에서 홀로 빛나는 푸른 검기의 꽃잎들이 조명이 되어서 그리드와 부바트의 모습을 비춘다.
랭커들의 눈에는 그들이 즐거워 보였다.
정체도 모르는 퀘스트에 집착하며 아등바등하는 자신들의 신세를 초라하게 느꼈다.
예상치 못했던 현무의 출현이 여러 상황을 바꿔 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