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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086화 (1,076/1,794)

템빨 56권 - 14화

브라함이 사건 내내 잠자코 있었던 이유는 칠천 일당의 수준을 경계해서였다.

객잔으로 안내받기까지, 브라함은 그들이 정말로 민간인인 줄 알았다.

그만큼 칠천 일당의 기도는 평범했다.

뻐꾸기 고기를 주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음식 주문과 동시에 진짜 기도를 드러낸 칠천 일당의 실력은 브라함에게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특히 백면서생이 펼친 마력의 그물이 일대의 마나를 난도질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대기 중에 흐르던 마나가 모조리 흐트러지며 마법의 발현을 봉했으니 만약 브라함이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낭패를 겪었을 것이다.

‘벌레가 없군.’

전설의 대마법사를 상대로 실력을 숨겼다는 점부터가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할 일이다.

칠천 일당의 실력을 신중하게 관찰하고 판단한 브라함이 슬그머니 손짓하자 대기 중에 흐트러져 있던 마나가 일시에 그의 손끝으로 집결했다.

“....!”

백면서생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그때였다.

쩌적-!

쩌저저저저적!!

뒤늦게 방에 난입한 복면인들과 칠천 일당, 그리고 심지어 십이지들까지 모조리 돌로 변해버렸다.

‘뭣이?’

브라함이 당황했다.

발끝부터 올라오는 석화의 기운을 억누르고자 마력을 운용하는데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지신.

백호의 가호를 등에 업은 그리드가 이 순간 사용하는 힘은 이치에 어긋난 권능이었다.

스파앗!

브라함이 다급히 심상세계를 열었다. 마찬가지로 이치를 거스름으로써 백호의 권능에 저항했다.

저벅.

그리드와 브라함을 제외한 장내의 모두가 석상이 되었을 때, 그리드는 걸음을 옮겨 칠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천천히 검을 뽑아 칠천의 목에 겨누었다.

“같은 편입니다!”

잠시 후 석화에서 풀린 칠천이 두 손 들며 외쳤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발악이 아니었다.

그리드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싸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앞서 소개드렸듯이 제 이름은 칠천! 활빈당 소속인 와룡표국의 장남입니다! 주작 신을 부활시킨 귀인을 만나 뵙게 되어 가문대대로의 영광입니다!”

칠천은 그리드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주작을 부활시켰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믿는 게 당연했다.

조금 전 그리드가 보여준 백호의 힘은 양반들이 사용하는 사신의 힘과 궤를 달리했으니까.

그리드가 백호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활빈당이 뭐지?”

검을 거둔 그리드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사실 그리드는 반쯤 흥분 상태였다.

칠천 일당은 브라함마저 감탄시킬 정도의 실력자들.

그리드라고 해서 칠천 일당의 실력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다.

그리드는 정말로 운 좋게 발동한 지신 효과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안도하고 있었다.

‘발동 조건이 너무 마음에 들어.’

지신 발동의 전제조건은 ‘지면을 밟고 있을 것’이다.

그냥 평범하게 서있거나 앉아있으면 확률적으로 지신 스킬이 활성화됐다.

비행 상태에서 확률적으로 발동하는 뇌신과 비교하면 훨씬 더 자주 발동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견갑과 각반의 옵션이 중첩된 덕도 컸지만.

복면인들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한 칠천이 설명했다.

“활빈당은 황길동 님께서 세우신 의적단입니다. 탐관오리들의 재산을 빼앗아 민간을 이롭게 만드는 한편 가짜 신화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양반들을 징벌해 세상을 바로잡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은 집단이죠.”

“....그래.”

그리드가 예상한 그대로의 답변이었다.

황길동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그리드는 한국인답게 황길동의 모티브가 홍길동이란 사실도 눈치 채고 있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들에게 틀니를 선물해준 사람도 황길동이라고 했지. 의인인 건 확실하다.’

황길동이 양반을 적대하고 있단 건 엄청난 희소식이다.

필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당신들은 양반들과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 거지?”

칠천 일당은 분명히 강했다. 특히 백면서생은 전설에 근접한 실력자로 보였으니 활빈당의 전반적인 수준은 어마어마하게 높을 거라는 게 그리드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양반이 워낙 강했으니까.

황길동 본인은 전설이고 활빈당의 간부급 인사들이 준전설이라고 해도 양반들과 무력으로 맞붙기엔 한없이 부족한 전력이었다.

“민간에 양반의 실체를 알리고 있습니다.”

‘현명한데?’

황길동과 활빈당은 요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양반이 신앙의 대상이 됨으로써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억제하고자 암암리에 노력 중이었다.

‘이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가람과 양반들은 훨씬 더 강했겠군.’

양반들과의 격전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알게 된 그리드는 활빈당에게 큰 호감을 품었다. 이제 처음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전우애마저 느꼈다.

“근데 이 땅의 신화가 가짜라는 건 어떻게 눈치 챈 거지?”

“황길동 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전설이나 초월자쯤 되면 신들의 속임수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거군.’

도사 사백 또한 이 땅의 신화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환국과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

다만 사백의 방식은 잘못됐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황길동은 다를 거라는 게 그리드의 믿음이었다.

황길동의 모티브가 된 홍길동이 워낙 정의로운 존재였으니 황길동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황길동을 만나볼 수 없을까?”

그리드가 질문할 때 마침 점소이가 음식을 내왔다.

다행히 뻐꾸기 요리는 아니고 오리구이와 채소 요리가 나왔는데 맛이 훌륭했다. 바삭바삭한 오리 껍질에 채소와 소스를 얹어 싸먹으니 술 생각이 간절해질 지경이었다.

“저희가 비록 황길동 님을 섬기고는 있지만 황길동 님의 동향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워낙 신출귀몰하신 분인지라....”

“그럼 평소에 교류는 어떻게 하는데?”

“황길동 님께서 서신을 통해서 명령을 주시면 저희는 그 내용대로 활동하는 방식이죠. 대륙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모든 지부가 저희와 동일하게 운영됩니다.”

“당신들이 먼저 황길동에게 연락을 취하는 방법은 없고?”

“없습니다.”

“그런가....”

자칫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러워 보이지만 그게 당연했다.

활빈당의 적은 너무나도 강대했으니 절대로 꼬리를 밟혀선 안 됐고 은밀해야했다.

십이지들과 함께 남은 요리를 전부 먹어치운 그리드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현무보옥의 정확한 행방을 알고 싶다.”

현무보옥의 위치는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다.

차오신 요새라는 곳에 현무보옥이 보관 중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가 차오신 요새가 아닌 이곳 영저우에 찾아온 이유는 십이지들의 조언 때문이었다.

‘방울이는 차오신 요새의 위치가 동쪽이라고 했어.’

현무는 북방의 신.

현무보옥은 씽에서도 가장 북쪽에서 보관하고 있어야 이치에 맞았다.

주작궁이 초국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판게아에 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듣기론 포관, 화우, 차오즈 세 지역 중 한 곳에서 현무보옥을 보관하고 있을 거라고 하던데. 셋 중 어디지?”

“....?”

칠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의아하다는 눈치였다.

반면 백면서생 ‘화경’의 눈에는 이채가 떠올랐다.

“과연 귀인은 다르시군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차오신 요새의 현무보옥은 가짜입니다. 진짜 현무보옥은 귀인께서 말씀하신 세 장소 중 한 곳에 있음이 분명하죠.”

“그러니까 어디?”

“그저 제가 유추하기론 차오즈일 확률이 높습니다.”

“왜지?”

“초국이 주작궁을 소실한 직후 차오즈의 병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죠.”

“아...!”

“주작궁을 잃어버린 사건이 환국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을 겁니다. 씽을 비롯한 각국에 사신기의 보안을 철저히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겠지요.”

“그리고 딱 그 시기에 차오즈의 병력이 늘어났으니 차오즈에 현무보옥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군!”

“네, 물론 양동작전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해서야 한도 끝도 없겠죠....”

브라함이 끼어들었다.

“포관, 하우, 차오즈 중 양반이 머물고 있는 지역에 현무보옥이 있을 확률이 높다.”

주작의 부활 이후 환국의 경각심은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양반이 직접 사신기를 지킬 가능성이 높았다.

브라함의 추론에 공감한다는 듯이 화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지금 당장 세 지역 근처에 있는 동료들에게 전서구를 보내 양반의 행방을 파악해보라고 하겠습니다.”

“고마워.”

한참 대화가 이어질 때였다.

“근데 현무보옥은 왜 찾으시는 거죠?”

마치 학생처럼 손을 든 칠천이 질문했다.

그리드는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식으로 대답했다.

“뺏어서 현무를 부활시켜야지.”

“....!”

과거, 알 수 없는 누군가-청호-가 주작궁을 탈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안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환국은 자신들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고 주작 신의 부활까지 허락한 상태였다.

양반들이 두 눈 똑바로 뜬 채 지키고 있을 현무보옥을 탈취하는 게 가능할까?

칠천은 의문을 느꼈지만 동시에 기대감도 품었다.

눈앞의 사내라면 왠지 가능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시기가 나쁜데.”

“국가대항전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S.A그룹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운영자’가 움직이려하는 정황이 포착된 까닭이다.

코드네임 S-001.

이름은 한울.

다수의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를 부여할 수 있는 최상위 격의 NPC다.

주작의 부활이라는 동대륙 최대의 사건이 그를 다시금 움직이게 만들었다.

“운영자가 조력자를 구하려고 한다고?”

서둘러 회의실에 입장한 임철호 회장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화면 속.

신들이 해마다 겪는 ‘레벨 업 주기’를 겪고 성장한 한울이 지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붉게 물든 남방의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영 탐탁찮았다.

“네, 모르페우스가 책정한 밸런스로 인해 오존이 나설 수 없게 되자 플레이어를 끌어들일 속셈입니다.”

“낭패군.... 주작의 부활 시기가 너무 빨랐어.”

그리드를 누구보다 높이 평가해온 임철호 회장에게도 이번 사건은 의외였다.

그리드가 설마 그토록 수월하게 주작을 부활시킬 줄은 그조차도 예상치 못했었다.

‘그 의외성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던 건데 이번만큼은 즐길 수가 없군.’

지그시 눈을 감은 한울이 두 팔을 천천히 휘젓고 있었다.

마치 웅장한 음악을 배경삼은 지휘자 같았다.

동시에.

<하늘의 부름>

★히든 퀘스트★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당신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씽의 ‘차오즈’로 이동하십시오. 알 수 없는 악인에게 보물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당신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일주일 내에 차오즈에 도착.

퀘스트 클리어 보상:

1.연계 히든 퀘스트 생성.

2.레벨 2 상승.

퀘스트 실패 시:페널티 없음.

통합랭킹 1,000위권의 플레이어 전원에게 똑같은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무려 레벨 2의 보상.

하이랭커 입장에선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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