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6권 - 12화
<주작의 가호가 깃든 백호의 견갑>
등급:신화
세트 아이템(백호 세트/주작 세트)
내구력:무한 방어력:902
*땅 속성 내성 +80%
*화염 속성 내성 +40%
*암흑 속성 내성 +40%
*어깨 부상 확률 70% 저하.
*상반신 피격 시 방어력 +15%
*상반신 피격 시 낮은 확률로 피해 무시.
“....!”
견갑은 결국 ‘어깨’ 보호구다. 보호 범위 자체가 한정적인 탓에 성능에 한계가 있었다.
여태껏 수많은 견갑을 만들고 목격해온 그리드조차 방어력이 300을 넘는 견갑을 본 기억이 드물 정도다.
‘근데 902?’
견갑의 상세 정보를 확인한 그리드가 질겁했다.
주작의 숨결을 흡수한 백호의 숨결이 설마 이 정도로 대단한 결과물을 탄생시킬 줄은 그도 몰랐다.
‘갑옷으로 만들었으면 방어력 기대치가 최소 2,300이었겠는데...?’
전혀 과장이 아니다.
방어구의 방어력 순위는 갑옷, 각반, 투구, 부츠, 견갑, 장갑 순이니까.
물론 단순히 ‘갑옷이 가장 중요하다.’는 평가를 내려선 안 된다.
각 부위별 방어구마다 고유 효과라는 게 존재했고 모두 유효했다.
견갑의 고유 효과는 어깨 부상 확률 저하다.
전투 시 충격을 가장 자주 받는 신체 부위가 어깨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견갑의 기능은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 그리드가 입는 부상도 거의 어깨에 집중돼 있다. 양반들과 싸울 때는 갓 핸드로 어깨를 지탱해 간신히 버텼을 정도다.
그리드의 가슴이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삼십만대적검의 반동도 한 번 정도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
어깨 부상 확률 70퍼센트 저하.
이건 진짜 크다. 보통 견갑의 7배나 높은 수치다.
입 꼬리를 한껏 추켜세운 그리드가 이어서 다음 정보를 확인했다.
*상반신 피격 시 높은 확률로 <달아오른 가시>를 방출. 뜨겁게 달아오른 돌의 가시가 대상에게 입은 피해량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반사 데미지를 입히고 최소 1초에서 최대 3초의 치유 불가 저주를 겁니다.
*스킬 <화염에 휩싸인 백호 자세> 생성.
*스킬 <화염을 토하는 백호 울음> 생성.
*스킬 <울부짖어라!> 생성.
*패시브 스킬 <대지의 화신> 생성.
*지형이 협곡인 장소에서 방어력 10퍼센트 상승.
*지형이 협곡인 장소에서 광역 스킬의 위력이 20퍼센트 상승.
*22위 이하의 대악마와 조우 시 대상의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10퍼센트 저하.
*파괴에 이를 정도의 손상을 입을 시 5초 동안 내구력이 최소치로 고정. 이 효과가 끝난 후 내구력 10퍼센트 복구. (재사용 대기 시간 24시간)
★스킬 <바위> 생성.
★스킬 <지신> 생성.
★백호 세트 효과
3개의 세트 아이템 장착 시 방어력과 생명력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주작 세트 효과
2개의 세트 아이템 장착 시 생명력 회복속도가 20퍼센트, 4개의 세트 아이템 장착 시 생명력 회복속도가 40퍼센트 상승합니다.
착용 조건:그리드
무게:450
“....”
백호의 숨결이 주체가 된 아이템답게 <천지를 지탱하는 백호의 각반>과 겹치는 옵션이 매우 많다.
<탐욕>의 내구력이 이미 무한임에도 불구하고 <서사시>로 인해 내구력 복구 옵션이 붙은 것과 같은 이치다.
<울부짖어라!>와 <바위>는 각반에 붙어있는 스킬과 완전히 일치하므로 재사용 대기 시간을 공유했고 결국 ‘쓸모없는 옵션’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지신>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지면을 밟고 있을 시 확률적으로’ 발동하는 <지신>의 경우 각반과 견갑에 각각 붙은 확률이 중첩되면서 결과적으로 발동 확률이 올랐다.
더군다나 <화염에 휩싸인 백호 자세>와 <화염을 토하는 백호 울음>은 기존의 <백호 자세>와 <백호 울음>과 완전히 별개의 스킬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화염을 부르는 백호 자세>Lv.1
백호의 자세를 취합니다.
주작의 숨결이 피어올라 주변에 초당 6,000(플레이어에게는 절반의 피해만 적용)의 화염 피해를 입히는 불길이 생성됩니다. 이때 공격력이 80퍼센트 감소하고 이동할 수 없게 되는 대신 방어력이 198퍼센트, 생명력 회복력이 50퍼센트 상승합니다.
활성화 시 마나 소모:초당 50
재사용 대기 시간:1시간
*이 스킬은 <백호 울음>과 재사용 대기 시간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신화급 아이템에 귀속된 스킬은 레벨업이 가능합니다.
<화염을 토하는 백호 울음>Lv.1
반경 5미터에 지진을 발생시키고 전방에 화염을 방출합니다.
지진의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 상태이상 ‘균형 상실’에 걸리고 방어력과 회피율, 그리고 명중률이 15퍼센트씩 하락합니다. 마법이나 스킬을 캐스팅 중이던 대상은 캐스팅이 강제적으로 취소됩니다. 이때 화염에 적중당하는 대상은 스태미나를 잃습니다.
마나 소모:2,000
재사용 대기 시간:30분
*이 스킬은 <백호 울음>과 재사용 대기 시간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신화급 아이템에 귀속된 스킬은 레벨업이 가능합니다.
“....”
그리드는 견갑의 상세 정보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혹시 자신이 잘못 읽은 부분은 없는지, 뭔가 착각한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읽어도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잘못 읽은 부분도, 착각한 부분도 전혀 없었다.
철컥!
조용히 입을 다문 그리드가 양쪽 어깨에 견갑을 착용했다.
백호의 송곳니를 형상화한 날카로운 돌기 2개가 하늘 방향으로 솟구치며 다소 밋밋할 수 있던 견갑에 위압감을 실어주었다.
‘아.’
그리드가 감격에 휩싸였다.
몸을 단단히 감싸는 갑옷, 각반, 견갑, 부츠로부터 사신들의 가호와 칸의 마음이 느껴졌으니 모든 불안이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막연히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여!”
그리드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볼 때였다.
“그대가 우리를 만나자고 했다며?”
새로운 십이지들이 등장했다.
청호가 데려온 그들은 말, 닭, 돼지, 그리고 뱀이었다.
허리를 세워서 그리드와 눈높이를 맞추는 뱀의 키는 2미터가 훌쩍 넘어보였다.
“우리를 만나고 싶으면 그대가 제 발로 찾아와 정중히 만남을 요청해야지 오라가라 하는 건 무슨 경우지?”
팔다리도 없으면서 용케 두루마기를 걸친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아주 고약한 인간이다. 우리들 십이지가 인간을 아끼고 사랑한다고는 하나 그대처럼 몰상식한 인간에겐 매부터 드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 엉덩이를 내밀어라. 사랑의 매를 받아들여라.”
“...?”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다.
나름 반겨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적대적이다.
어리둥절하던 그리드가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뱀 뒤에 선 청호가 싱글싱글 웃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덩치에 안 맞게 장난꾸러기군.’
아니, 높은 호감도를 고려해봤을 때 의미 없는 장난일 것 같진 않다.
뭔가 뜻이 있을 것이다.
빙글빙글.
뱀의 눈동자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엉덩이 내밀라고 말했다.”
강력한 환술이 그리드를 덮쳤다.
뱀의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강력한 마력이 그리드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십이지 ‘방울이’가 당신을 현혹하여 복종시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최초의 왕> 칭호 효과로 상태 이상 효과를 반사합니다.]
[대상이 상태 이상을 저항하였습니다.]
최초의 왕의 상태 이상 반사 효과는 일정수준 이상의 명성이나 지위, 혹은 레벨이 쌓인 대상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하물며 상대는 십이지다.
그리드는 반사 실패를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방울이는 자신의 실패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설마 인간이 자신의 환술을 저항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이, 인간이 어떻게?”
“꿀! 수상하다! 꿀!”
경계심을 품은 방울이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자 분홍색 작은 돼지가 앞으로 나섰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청결함을 유지해온 건지 상쾌한 꽃향기를 풍기며 그리드에게 달려온 녀석이 박치기를 날렸다.
까앙!
[3,96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주작의 가호가 깃든 백호의 견갑>이 달아오른 가시를 방출합니다.]
[대상에게 2,376의 피해를 반사합니다. 대상이 치유 불가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치익.
돼지 굽는 냄새가 그리드의 식욕을 자극한다.
“꾸익?”
그리드의 어깨에 이마를 찧었다가 설익은 고기가 된 돼지가 어리둥절해졌다.
자신은 머리가 따끔거리는 와중에 인간은 태산처럼 꿈쩍도 안 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인간이 크게 다치지 않게끔 힘 조절을 하긴 했지만 섣불리 이해가 안 됐다.
“비켜라!”
이후론 개판이었다.
말이 달려와 뒷발로 그리드의 허벅지를 때렸다가 혼자서 주저앉았고, 부리로 그리드의 발목을 쪼았던 수탉은 부리가 찌부러져 아침을 맞이하듯 울부짖었다.
“.....”
침묵이 도래했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인간을 공격했다가 도리어 처참하게 당한 4마리 신수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은 모른다.
지금 더 놀란 사람은 그리드라는 사실을.
“너희 왜 이렇게 약해...?”
십이지가 아니라 십이지를 섬기는 영물들이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하는 그리드의 옆구리를 토순이가 손으로 콕콕 찔렀다.
“저들이 약한 게 아니라 덕신이 강해진 거야.”
“아.”
그리드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한동안 맛보지 못해서 잠시 망각하고 말았다.
그래, 이건 템빨이다.
무려 신화급 방어구 2개를 제작해서 착용했으니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게 당연했다.
“험험, 만나서 반갑다.”
약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 십이지들에게 그리드가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나는 템빨왕 그리드다.”
전설의 대장장이, 서사시의 마검사, 화공, 덕공, 덕신 등....
그리드를 표현하는 호칭은 매우 많았지만 그리드는 역시 템빨왕이라는 호칭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그리드?”
방울이의 혀가 파르르 떨렸다.
“주, 주작 신을 부활시키셨다는 귀인?”
찌릿!
그리드의 정체를 알게 된 방울이와 십이지들이 청호를 노려봤다.
십이지 중에서도 성격이 불같은 편인 그들은 청호를 아주 혼쭐을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드가 내밀고 있는 손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일단 공손히 그 손부터 붙잡았다. 손이 없는 방울이는 어쩔 수 없이 혀를 썼다.
“은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머잖아 반신이 되실 분인데. 이제부터 미리 템빨신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꿀?”
“....템빨신?”
좋은데?
덕신 노이로제가 걸리기 직전이던 그리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템빨신이라고 불러줘.”
덕신하고 비교하면 천만 배 낫다.
생각하며 흡족한 미소를 그린 그리드가 방울이에게 부탁했다.
“너희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야. 현무에 대해서 전부 다 알려줘.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아.”
사신은 모두 인간에게 이로운 수호신이다.
하지만 각자의 개성이 있었고 성격이 달랐다.
이미 한 번 주작을 부활시켜본 경험이 있기에 그리드는 더욱 더 신중하게 접근했다. 현무를 최대한 이해해야만 현무를 보다 수월하게 부활시킬 수 있을 거라는 판단으로 방울이 일행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씽은 플레이어가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에 의해서 큰 독 쥐 군락이 공략된 이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플레이어들은 보다 수월하게 판게아를 벗어날 수 있었고 이후 카라스를 경유해서 씽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노검마’다.
페이커가 아직 신성이라고 불리던 시절 어쌔신 랭킹 1위였던 1세대 하이랭커.
이미 오래 전에 랭킹계를 떠나 은거했던 그가 씽에 있었다.
‘NPC들은 남쪽의 이변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군.’
아주 거물인 지인으로부터 주작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접한 노검마가 중화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거리를 조용히 떠돌았다.
무수히 많은 인파 사이를 마치 물 흐르듯 지나쳐 그가 향한 곳은 아주 작은 객잔이었다.
“주인장, 여기 뻐꾸기 고기 있소?”
“뻐꾹뻐꾹 우는 뻐꾸기의 고기 말이오?”
“아니, 빠꾹빠꾹 우는 뻐꾸기 고기가 먹고 싶군.”
“....!”
객잔 주인의 눈빛이 변했다.
근엄한 얼굴로 선 노검마를 잠시 빤히 쳐다보며 마른 침을 삼킨 그가 이내 한숨 쉬었다.
“소고기 전문점에서 새고기를 찾는다 싶더니 미친 늙은이었군. 에잇, 개점부터 재수가 없으려니! 썩 나가쇼!”
“....?”
주인에게 떠밀려 쫓겨난 노검마가 멍해졌다.
그리고 가게 앞에 소금을 뿌리는 주인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옆집이었군.”
노검마.
사상 최고의 실력자였지만 사상 최악의 길치인 탓에 온갖 퀘스트를 실패하고 끝내 랭킹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천재.
“여, 노검마. 오늘도 어김없이 4시간이나 늦었구려. 몇 년을 보아도 변치를 않으니 오히려 신뢰가 가오.”
“미안하오, 황길동.”
실상 강제적으로 비공개 랭커로 전환한 그는 오늘도 남들보다 느리게, 하지만 꾸준히 목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가 진행 중인 퀘스트는 현무보옥의 탈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