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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071화 (1,061/1,794)

템빨 55권 - 21화

[대상을 지정할 수 없습니다. 스킬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대상을 지정할 수 없습니다. 스킬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야, 야, 야! 이거 맞아? 괜찮은 거야?”

“입 다물고 집중해!”

“으앗!!”

콰작-!

[23,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수호기사의 근성> 효과로 11,450의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현무의 기운이 당신의 갑옷을 부식시킵니다.]

[<펠리스만의 지혜 갑옷>의 내구력이 219 감소합니다.]

쿠당탕탕탕!!

“아구구....”

타겟팅 스킬의 장점은 뛰어난 적중률에 있다.

동급 논타겟 스킬과 비교해서 위력이 떨어지거나 쿨타임이 길다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안정적인 딜링을 보장하는 것이다.

대상이 방어, 회피, 반격 등을 위해서 스킬이나 동작을 소모하게 만드는 시점부터 이미 손해는 아니었다.

그래, 소모전을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타겟팅 스킬의 활용이다.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 혼자인 쪽이 불리한 절대적인 이유 중 하나가 다수 쪽의 타겟팅 스킬 공세에 있었다.

다수인 쪽의 스팩이 크게 불리할지언정 논타겟 스킬 보유량에 따라서 혼자인 쪽을 압살하는 게 가능할 정도다.

그리드처럼 ‘공격당해도 꼼짝 않는’ 예외의 경우도 존재하긴 했지만....

[대상을 지정할 수 없습니다. 스킬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여기, 또 다른 형태의 예외의 존재가 나타났다.

양반 하랑.

지슈카의 주작궁에 <주작의 축복>이 깃든 후로 <순보>를 남발하기 시작한 그녀가 십공신들의 모든 타겟팅 스킬을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스팟-!

타겟팅 스킬의 발동 과정은 간단하다.

스킬이 요구하는 범위 안에 대상을 넣고 표적으로 삼은 뒤 스킬을 활성화시키면 된다.

그럼 알아서 캐릭터가 스킬의 동작을 취하고 대상을 가격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콰아아앙!!

“컥!”

대상을 표적으로 삼지 못할 경우엔 스킬 발동 자체가 안 됐다.

지금이 딱 그런 경우였다.

순보로 십공신들의 사이를 넘나드는 하랑은 단지 회피력이 높은 수준을 넘어서 ‘공격할 수 없는’ 대상이 되어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타겟팅 스킬을 사용할 때의 이야기다.

“....!”

방패를 짧게 끊어 쳐 대상을 가격, 0.5초의 경직과 1초의 슬로우를 유발하는 스킬 <실드 스매시>의 발동에 실패하고 역공 당해 성벽에 처박힌 반트너.

그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재차 순보를 사용했던 하랑이 황급히 양팔을 교차시켰다.

쩌엉-!!

강철 토시와 대검이 충돌한다.

대검에 깃든 천 톤의 무게가 대단해서 하랑의 몸을 수백 미터 바깥까지 날려버릴 정도였다.

“집중하라니까.”

명실상부 최강의 대검술사 크리스.

피를 토하는 반트너에게 손을 내미는 그의 곁으로,

스팟-!

멀찍이 날아갔던 하랑이 다시 나타나 발차기를 휘둘렀다.

그녀의 발끝이 크리스의 관자놀이에 도달하자 그제야 발생한 풍압이 크리스의 머리카락을 휩쓴다.

콰앙!!

폭음이 발생했다.

비유가 아닌 진짜 폭음.

크리스의 머리통이 폭발한 건 아니다.

지슈카가 미리 쐈던 화살이 하랑의 옆구리에 닿으며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하.... 황당하네.”

크리스에게 발차기를 적중시키기 직전에 화살을 맞고 날아가 뒹군 하랑.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등 뒤로 붉은 안광의 귀신이 떨어져 내렸다.

마기와 전광에 휩싸인 아수라, 레가스였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퍼펑!!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자신보다 약한 몬스터를 꾸준히 사냥함으로써 레벨을 올린다.

적당한 경험치를 주는 몬스터를 보다 빠르게, 많이 사냥해야 레벨도 빨리 올랐으니까.

반면 레가스의 성장 방법은 매우 특수했다.

Satisfy가 오픈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위대한 도전을 즐겨온 그는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를 잡아본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늘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상대와 싸워 패배하고, 패배하고, 또 패배하다가 끝내 쓰러뜨려 급격한 발전을 이루는 식으로 성장해왔다.

어쩌면 그리드보다 더 강자와의 싸움에 익숙한 사람이 레가스였다.

“큭?”

인간의 나약한 육신으로 내게 육탄전을 시도하다니?

콧방귀 뀌며 레가스의 공격을 회피, 반격하려던 하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레가스의 단단한 허벅지 사이에 절묘하게 끼어 포박당해 있었다.

“하압!”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연마해온 기술.

기합을 내지른 레가스가 허리를 크게 꺾자 하랑의 어깨가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렸고,

퍼엉-!

빛살처럼 날아온 폰의 붉은 창이 하랑의 가슴을 관통했다.

“윽....!”

휘청.

머잖아 신이 될 자의 육신이 무너지려한다.

폰의 창에 깃든 염룡 트라우카의 저주를 신도 아닌 반신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쿨럭, 쿨럭!!”

공격당한 하람보다 도리어 더 큰 피를 게워낸 폰이 끝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런 멍청이가!”

다급히 몸을 날린 반트너가 반사적으로 세운 방패 위로 하랑의 무릎이 꽂혔다.

저 멀리 쓰러져있던 그녀가 어느새 다가와 폰의 머리를 날려버리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사이좋게 죽어.”

반트너의 방패를 거력으로 밀쳐내며 떠오른 하랑의 정강이가 반트너와 폰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

콰르르르륵!!

폰의 피가 만든 웅덩이로부터 날카로운 가시가 솟구쳐 하랑의 정강이를 찔렀다.

“....!?”

놀란 하랑이 다리를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가 소름 돋는 이질감에 휩싸였다.

조금 전 창에 찔렸던 가슴의 상처로부터 흐르고 있는 피가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늦은 자각이었다.

스칵-!

“....!”

꿈틀거리던 하랑의 피가 칼날로 변해 하랑의 가슴부터 복부까지를 베어버렸다.

자신이 흘린 피에 공격당하는 날이 올 줄이야?

상례를 벗어난 현상이 하랑을 긴장시켰다.

그녀는 더 이상 함부로 순보를 남발하지 못했다.

순보를 발동하는 순간 발생할 후폭풍으로 인해 앞서 입은 상처들이 벌어질 테고, 벌어진 상처로부터 흘러나올 피가 또 자신을 공격할 테니 경계하는 것이었다.

이쯤 되자 회복력을 앗아간 주작의 저주가 지독히 원망스러웠다.

‘주작.... 오늘 반드시 너를 봉인할 거야.’

두 번 다시는 눈 뜰 수 없게끔 전보다 더 깊은 심연에 담가주마.

다짐하며, 하랑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들의 면면을 시선으로 훑었다.

저들 중 과연 누가 피를 다루는 술사인지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의외로 싱겁게 술사의 정체를 파악했다.

“젠장....”

털썩.

블러드 컨트롤.

대상의 피를 통제해 역류시키거나 무기로 변환시켜 상처를 입히는 블러드 워리어의 궁극기.

대상의 레벨이 시전자의 레벨보다 낮을 경우엔 100퍼센트 성공률과 안정성을 자랑하는 사기급 스킬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성공률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성공해도 큰 부작용이 발생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주르륵!

자신보다 레벨과 격이 훨씬 더 높은 하랑의 피를 통제한 대가로 정신력에 한계를 맞이하고 주저앉은 카츠의 칠공에서 피가 흐른다.

그가 피를 부리는 술사임을 직감한 하랑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봉했던 순보를 전개, 카츠의 곁으로 도달한다.

“어딜!”

여태까지처럼 하랑의 행동을 예측한 지슈카와 크리스가 그녀를 공격해 카츠를 보호하려 했지만 하랑에겐 청룡의 숨결이 있었다.

가속도를 더해 지슈카와 크리스의 연계 공격을 회피한 그녀가 카츠의 후위를 완전히 장악한 뒤 칼을 내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카츠를 베지 못했다.

쩌정-!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정!!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신속.

카츠의 그림자로부터 등장한 페이커가 섬화처럼 뿌리는 단도 세례에 황망함을 금치 못한 하랑이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에 집중했다.

한데 그럼에도.

서걱-!

하랑의 옷섶이 베여 풀어졌다.

신속의 주인이며 란스티어의 기술을 계승한 페이커의 속도는 청룡의 숨결을 운용하는 양반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해있던 것이다.

‘얘들...?’

왜 이렇게 강한 거지?

언젠간 등선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인재들이다.

한데 그만한 인재들이 오직 한 명의 사내를 따르고 있다.

언젠간 환국에서도 좌시하지 못할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루, 나은. 걔를 꼭 죽여야 해.’

저 멀리 궁궐 안에서 그루와 나은의 협공을 당하기 시작한 흑발 사내를 잠시 힐끔 쳐다본 하랑이 페이커와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물러섰다.

그리고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암기를 던져 유페미나의 마법사용을 차단했다.

그 탓에 다른 동료들과 달리 활약 한 번 못하게 된 유페미나의 뺨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이봐요 당신! 저한테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러는 건가요? 어째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한테만 암습을 가하는 거죠?”

끝내 참지 못하고 따지는 유페미나에게 하랑이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었다.

“네 주술은 위험해 보이니까.”

“앗... 헤헤.”

“....”

그걸 또 좋다고 웃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반트너가 카츠를 부축해 일으켰고 페이커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폰과 레가스, 크리스는 언제라도 다른 동료들의 곁으로 이동할 수 있게끔 산개한 채 경계태세를 취했다.

하랑 입장에선 다소 골치 아픈 위치 선정이었다.

순보의 강점을 무력화시키는 진영이랄까.

‘얘들 실력이 좋아서 내 경로를 예측하는 게 까다롭네.’

하랑이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모든 면에서 내가 월등히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경험의 차이가 커.’

하랑의 실전 경험은 전무한 수준이다.

양반인 그녀에게 감히 덤빌 사람이 없었고, 그녀의 성격부터가 가람과 달라 굳이 적을 만드는 경우도 없었으니 분쟁을 겪어본 일이 적었다.

그녀가 체험한 전투는 여태껏 7번 참여했던 치우의 시련이 전부다.

‘경험.... 경험이라.’

하랑은 문득 실소가 터졌다.

신이란 전능한 존재일 터.

신을 노리는 자신이 고작 경험이라는 개념에 발목을 붙잡혀서 인간들에게 낭패를 겪고 있으니 우스웠다.

‘역시 아니야.’

하랑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막 그루가 죽었다는 사실을 감지한 그녀는 확신했다.

‘우리는 신이 될 수 없어.’

언젠가부터 느꼈던 사실이다.

인간에게 신앙을 강구하면서도 인간을 멸시하는 양반의 구조가 원천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감히 그 의문을 수면 위로 꺼낼 수 없었던 이유는 한울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설계된 것은 모두 한울의 뜻일 테니까.

‘....깊은 뜻이 있어 그러신 거겠지만, 우리를 믿지 못하고 경계하신 대가를 머잖아 치르게 되실 것 같네요.’

생각하는 하랑이 등지고 선 하늘이 2개로 나뉘고 있었다.

한쪽은 주작의 불꽃에 물들어 노을빛이었고, 다른 한쪽은 지옥의 출현으로 인해 어둠으로 잠식당했다.

어느 한쪽도 양반을 환영하지 않았다.

‘없어도 될 존재.’

그것이 우리들 양반이다.

생각하는 하랑의 발치로,

쿵!

상처투성이가 된 나은이 떨어졌다.

“하, 하랑.... 사, 살려줘....”

“하하....”

스스로 신이 될 거라던 자가 그토록 하찮게 여기던 인간들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가.

정녕 덧없는 존재다.

다시 한 번 실소를 터뜨린 하랑이 등 뒤로 시선을 돌렸다.

진정한 신앙을 짊어지고 선 사내가 보였다.

그는 나은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불안도, 두려움도 엿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게 될지 분명히 알고 있는 눈치였다.

“신(神).”

하랑이 그리드를 규정한다.

“초연살파극(超聯殺派極).”

그리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펼치는 신살의 의식이 공간을 지배하며 하랑에게 파멸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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