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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055화 (1,045/1,794)

템빨 55권 - 6화

[당신의 신위가 10을 달성하여 특수한 일이 발생합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던가.

아직 템빨국이 탄생하기 전, 레베카의 딸 이사벨 덕분에 개방됐던 신위 스탯이 드디어 목표치를 달성하자 그리드는 전율에 휩싸였다. 커다란 흥분과 기대감이 격랑처럼 밀려와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우선 반신이 되는 건가?’

그리드는 이미 한 번 반신이 될 기회가 있었다.

교황청 습격 사건 당시 발생했던 퀘스트 <선악의 기로>가 그에게 반신이 될 기회를 안겨줬었다. 그리고 반신으로 진화할 경우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알려준 바 있다.

하지만 그리드는 반신이 되길 거부했었다.

당시 그리드가 반신의 자격을 얻었던 이유는 <최초의 성검>과 <제4악 타렌>이라는 매개 때문이었지 그리드 본인이 직접 쌓아올린 신위 덕분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그리드가 반신을 선택했다면 <성검을 손에 넣은 4악>이 되어서 서대륙의 모든 신들을 적대하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그리드는 수많은 존재들에게 신격화 된 끝에 스스로 신이 될 자격을 얻어가는 중이었다.

만약 이번 업적 보상으로 반신이 되더라도 서대륙의 신들이 그리드를 적대할 명분이 없었다.

‘제발....! 제발, 반신!!’

한결은 가람과 달리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하나 신의 피를 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양반의 죽음은 역사에 큰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고 서사시의 일부가 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한데 왜 서사시가 뜨지 않은 걸까?

또한, 현재 쓰고 있는 인피면구 탓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환국과 적대하게 된 듯한 노기사 단테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피어오르는 의문들이 많았지만 그리드는 일단 눈앞의 사태에 집중하기로 했다.

반신의 자격이 찾아오기를 열망하며 기다렸다.

화르륵!

그리드의 기대에 호응하듯이 그를 감싼 빛이 강해졌다.

빛의 여신 레베카가 축복을 내려줬을 때 발생했던 빛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한없이 따스했던 레베카의 빛과 달리 뜨겁고 강렬한 빛이었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같다고 할까.

대장장이의 신 핵세타이아의 젖꼭지에 맺힌 불꽃들이 거대해지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잠깐?’

자신은 파그마의 후예다.

만약 반신이 된다면 직업 효과 때문에라도 대장장이 반신이 될 것이다.

만약 그럴 경우 핵세타이아와의 관계가 꺼림칙해지지 않을까?

신들 중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상대인데, 그가 나를 경쟁자로 여겨 반감을 품기라도 하면 많이 서운하고 난처할 듯하다.

그리드가 불안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당신은 총 10,759개의 무구를 제작했습니다.]

[당신이 만든 무구들은 세계의 일부가 된 채 사람들에 의해서 쓰이고, 회자되는 중입니다.]

[당신을 향한 신앙의 상당수가 당신이 만든 무구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역시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는구나.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는 그리드의 시야에 새로운 알림창이 갱신된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대장장이의 신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의 대장장이 기술은 타인으로부터 계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대장장이로써 쌓아올린 업적 중 일부가 ‘파그마’의 공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는 신앙의 분산을 유발합니다.]

[당신이 만들어온 무구는 당신의 신격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

아니, 잠깐.

대장장이의 신이 되는 게 아쉽다고 했지, 아예 싫다고는 안 했다.

완전히 자격을 박탈당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드의 불안이 고조되는 그때였다.

[당신을 오롯이 증명하는 수단은 당신이 써내려온 서사시에 있습니다.]

[당신의 신화는, 붉은 피로 염색한 협곡에서부터 비롯됩니다.]

“....!”

[협곡에서의 당신은 이전까지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인명을 구원했습니다.]

순간.

지난 십수 년 간의 풍상이 그리드의 눈앞에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주마등 속에서 그리드는 야탄교에 납치당한 백작가의 영애 아이린을 구출했고, 골렘 대군과 맞서 싸워 에트날 백성들을 구원했으며, 제국에게 멸망당하기 직전이었던 울족과 소수민족들을 구출해 품어주었고, 번헨 열도에서 고통 받고 있던 전대 전설들에게 자비를 내렸다.

전쟁에서 템빨국의 병사들을 지켰던 사람도, 인계를 지옥으로 만들려했던 대악마들을 물리친 사람도, 양반을 원망하고 두려워했던 판게아 주민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도 모두 그리드였다.

하지만 그리드가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으니.

그는 크라우젤과 함께 제국의 멸망을 막은 주역이다.

[당신에게 구원 받은 NPC는 총 183,791,595명입니다.]

[당신에게는 영웅왕이라는 칭호도 부족합니다.]

[사람들의 당신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신격을 구성합니다.]

[신위 달성 보상으로 당신의 칭호, <판덕공>이 <덕공>으로 진화합니다.]

“XX.”

잘 나가다가 왜 이래?

바로 욕이 튀어나온다.

시스템이 서술할수록 불안을 지우고 기대감에 충만해갔던 그리드의 기분이 거짓말처럼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희망을 버려선 안 됐다.

[인명을 구하고 지켜온 당신의 뜨거운 마음이 신위 달성 보상으로 구체화 됩니다. 새로운 칭호, <화공>을 얻었습니다.]

“....!”

파그마가 화공이었던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파그마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인명을 구했던 영웅.

사람들을 지키려했던 그의 뜨거운 마음이 불꽃으로 구체화된 끝에 그 또한 화공이 됐던 게 아닐까 싶다.

다만 그리드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대의를 위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는 점.

아마도 그러한 성향 탓에 <덕공>은 얻지 못했으리라.

‘공(公)의 칭호를 2개 얻은 사람은 내가 최초인가?’

브라함은 말했었다.

자신이 지공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것처럼 다른 전설들 또한 하나 같이 공의 칭호를 지니고 있었다고.

검성 뮐러는 압공(壓公), 대장장이 파그마는 화공 등.

공의 칭호는 전설 개개인의 대표적인 능력이나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전설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의 칭호를 2개 이상 가진 전설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내가 최초가 맞아.’

그리드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자신이 적어도 한 가지 면모만큼은 전대 전설들을 뛰어넘었으니 감회가 깊었고 해일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뭔가, 정말로 엄청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희소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진짜가 남아있었다.

[신위 달성의 메인 보상으로 <신격>이 강화됩니다.]

“아.”

그리드가 탄식했다.

신격은 분명히 좋은 스킬이었다.

아니, 그냥 좋은 스킬을 넘어서 위대하다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었다.

스킬의 캐스팅 시간과 재사용 대기 시간을 최대 2회까지 삭제시켜주는 스킬....

Satisfy에서 가장 좋은 스킬이라고 손꼽아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그의 신격 스킬은 3개의 신화급 아이템을 제작함으로써 파생한 것.

그의 야장 실력이 신에 맞먹는다고 해서 생겨난 스킬이다.

신격은 그리드를 ‘신과 동등한 수준의 대장장이’로 만드는 스킬이었으며 당연히 ‘대장장이 관련 스킬’에만 적용됐다.

신격이 강화되어 아이템 합체나 변신을 한 번이라도 더 쓸 수 있게 되면 분명히 좋은 일이었지만, 그것보단 모든 스탯이 상승할 ‘여지’라도 있는 반신으로 진화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실망하는 그리드.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현재 시스템은 그를 ‘파그마의 후예’가 아니라 ‘서사시의 마검사’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드는 잊어선 안 된다.

처음 신격을 얻게 된 계기는 파그마의 후예여서일지 몰라도 이제 자신은 오롯이 ‘그리드’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파그마의 후예 또한 이젠 그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스킬이 <신격>에 적용됩니다.]

[이제부터 <신격>의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앞으로 신위 스탯이 10개가 될 때마다 발생하는 특수한 일 중 하나는 신격의 레벨 상승으로 직결됩니다. 신격의 최대 레벨은 10이며,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신격의 연속 사용 가능 횟수가 1회씩 늘어납니다.]

[신격의 레벨이 5가 될 시 당신의 종족이 인간에서 반신으로 진화합니다.]

“.....”

그리드가 할 말을 잃었다.

신격은 오직 대장장이 관련 스킬에만 적용되며 사용 횟수가 2회밖에 안 됨에도 불구하고 위대하다 평가할 수 있는 힘이었다.

한데 이젠 모든 스킬에 적용되고 연속 사용 횟수도 최대 12회까지 늘어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만렙이 되면 4융합 검무나 무패왕의 검술을 12회 연속으로 전개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

미쳤다.

돌았다!

사기다!!

모든 스탯이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반신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보상을 얻고 말았다.

그리드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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