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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016화 (1,006/1,794)

템빨 53권 - 19화

쿠와아아아아━!

세월마저 얼렸던 천년빙석이 녹아내리자 강이 되었다.

빙하 던전이 순식간에 범람하였고 그리드는 황급히 탈출했다.

그가 물에 홀딱 젖은 몰골로 나타나자 템빨단원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왜 그래? 뭐가 잘못 되기라도 했어?”

“아니.”

슬며시 미소 지은 그리드가 고개를 돌렸다.

검의 무덤과 빙하 던전을 잇는 계단.

그 깊은 곳으로부터 차박, 차박,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물에 젖은 발로 계단을 오르는 소리였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리드가 답하는 순간.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이 부활하였습니다!!]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고,

“아.....”

곳곳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계단을 오른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무송(霧淞)처럼 빛나는 긴 은색의 속눈썹. 천만 명의 예술가가 합작해도 깎아내지 못할 콧대와 턱선. 태초의 불꽃을 가둬놓은 듯한 눈동자.

브라함의 진짜 모습은 템빨단원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의 모습이 미(美)의 어원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을 품게 될 지경이었다.

“후우.....”

침묵에 잠긴 검의 무덤에 브라함의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가 호흡할 때마다 깊은 쇄골에 고인 물이 찰랑거렸다. 투명한 물방울이 그의 넓은 가슴과 매끄러운 허리를 타고 흐르며 그의 나신을 탐닉해나갔다.

“....꿀꺽.”

연신 마른 침을 삼키던 섹시여고생이 급기야 코피를 쏟았다.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힌 루비는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끝까지 브라함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른 템빨단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가 브라함의 색기에 홀려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거라도 입어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그리드가 망토를 벗어서 브라함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어깨에 대충 걸친 브라함이 조용히 손을 뻗었다. 그의 길고 흰 손가락이 그리드의 뺨에 닿았다.

“....이것이 너의 감촉인가.”

당연한 것의 가치는 한 번 잃어봐야 깨닫는 법이다.

수백 년 만에 부활한 브라함은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저 존재함에.

그저 이 순간에.

***

이름:브라함 에슈발트

종족:영생을 잃은 진혈족 뱀파이어

직업:전설의 대마법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습득할 수 있으며 모든 종류의 마도구를 제약 없이 착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과 기능이 대폭 상승합니다.

*새로운 마법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창조 횟수는 <브라함식 강화 마법>의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추가됩니다.

칭호:지공(智公)

....

칭호:전설이 된 자

....

칭호:마나의 주인

*마나의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고 통제합니다.

*지력에 따른 마나 상승률이 보통보다 20배 높습니다.

*대상을 공격 시 일정 확률로 마나를 빼앗습니다.

*마나 최대치를 초과하는 마나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최대 마나 수치의 3배까지 가능. 재사용 대기 시간 24시간.

*마나를 최대치 이상 축적한 상태에서 공격마법 사용 시 캐스팅 시간이 삭제됩니다. 마법의 위력이 2배 상승합니다. 총 3회 적용.

*마나를 최대치 이상 축적한 상태에서 ‘자신’을 대상으로 방어마법 사용 시 ‘무적’ 상태가 됩니다. 총 2회 적용.

칭호:부활자

*부활의 주술을 완성하여 죽음의 개념을 초월하였습니다.

*근력, 체력에 따른 생명력 상승률이 보통보다 10배 높습니다.

*사망 시 100퍼센트 확률로 부활합니다. 단, 최초 1회에만 적용되는 효과입니다. 부활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부활 확률이 대폭 하락합니다. 부활의 실패는 영원한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레벨:400(▼)

근력:108 체력:1,690

민첩:507 지력:7,880

위엄:2,511 통찰력:4,943

의지:5,800

*수백 년 만에 되찾은 육신이지만 브라함은 빠르게 적응해나갈 것입니다. 600레벨 달성까지 경험치 획득량 2,000퍼센트 상승.

스킬:[혈마법(S+)], [흡혈(SS)], [마법 부여(SS)], [지식 탐구(SS)], [마법 관조(SSS)], [폭주(SSS)], [일계(一界):지식의 방(SSS)], [이계(二界):탐구의 방(???)], [삼계(三界):실험의 방(???)], [브라함식 강화 마법(???)]

혈족을 해친 죄로 영생을 잃은 진혈족 뱀파이어이자 전설의 대마법사입니다. 파그마와 마리로즈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으며, 언데드가 된 제자 무무드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플레이어 <그리드>와 그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존재를 하찮게 여깁니다. <그리드> 외의 플레이어는 호감도를 쌓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밸런스가 조절된 게 이 정도라고?’

그 어떤 강적도 아군이 되는 순간 약해진다.

이는 언젠가부터 당연시 적용되어온 Satisfy의 규칙이었고 실제로 브라함은 약화 된 상태였다.

무려 수백 년 동안 떠돌다가 온갖 풍파를 겪고 갈려나간 그의 영혼은 예전처럼 강하지 못했다. 수백 년 만에 되찾은 육체에 적응할 시간이 그에겐 필요했다.

그 반동으로 인해서 브라함의 레벨은 400까지 떨어졌고 이는 그리드의 레벨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약해보이지 않는다.

일단 지력 수치가 600레벨 인물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높았으며, 칭호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들이 그리드가 보유하고 있는 칭호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거나 뛰어났다.

평범한(?) 마나 드레인 마법이 <마나의 주인>과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발생했던 상승효과의 위대함을 그리드는 이미 오래 전 적해에서 목격한 바 있다.

‘거기에 더해서 SSS 이상급의 스킬이 6개....’

브라함의 레벨이 조금만 더 오르면.

아니, 어쩌면 지금 당장도 피아로나 메르세데스보다 훨씬 더 강하지 않을까?

그리드는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떠올렸다.

아직 성장 중인 당대 전설들과 달리 완숙했던 전대 전설의 힘은 밸런스 조정 시스템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절대적인 경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의 마법을 실험삼아 펼쳐본 브라함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나마 가능하겠군.”

“뭐가요?”

“펜릴 사냥.”

“....!”

“마리로즈의 한쪽 팔을 미리 잘라놔야겠다.”

“자, 잠깐만요.”

펜릴은 후작.

마리로즈 다음가는 존재로 베리아체의 힘을 무려 2개나 계승한 진혈족의 2인자다. 백작급 뱀파이어보다 몇 배는 강하다는 것이 놀의 평가였으니 그리드는 섣불리 도전할 마음이 없었다. 모든 기사들을 이끌고 도전해도 반드시 희생이 뒤따를 거라는 판단이었다.

“우선 당신의 힘을 복구한 뒤에 도전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브라함이 그리드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 때문이다.”

“네?”

“네 녀석을 위해서 일정을 앞당기는 편이 좋단 말이다. 사리엘의 축복을 받은 걸 그새 잊었느냐?”

“아...!”

축복이 유지되는 동안 몬스터 사냥 시 1회에 한해서 아이템 획득률 상승.

이 축복이 있는 한 그리드는 평범한 사냥을 피해야한다.

축복이 끝나기 전에 무조건 강한 네임드 보스를 사냥하는 편이 옳았다.

펜릴이야말로 현재 상황에서 노리기 딱 좋은 사냥감이라는 뜻이다.

“내가 알기로 천사란 감정이 거의 배제 된 존재다. 레베카 여신을 위해서만 생각하고 활동하는 꼭두각시로, 일종의 고렘 같은 놈들이지.”

“....”

“천사의 축복을 얻는 요행을 또 바라긴 힘들다. 두 번 다신 없을 기회이니 최대한 유용하게 써먹어야한다.”

“제 생각도 같아요.”

제드노스가 끼어들었다.

“펜릴한테 도착하기까지 잡몹은 우리한테 맡기고 도전해 보세요.”

제드노스는 펜릴과 직접 만나봤다. 시선만 마주쳤는데도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였다. 솔직히 말해서 두 번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품게 됐을 정도로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그리드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고 그건 다른 템빨단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고맙다.”

그리드는 사양하지 않았다.

우선 펜릴을 레이드해서 사리엘의 축복을 소모한 후 브라함의 사냥 환경을 조성해줘야겠다고 계획했다.

‘하지만 그 전에 아이템부터 만들어줘야겠지.’

무기는 벨리알의 지팡이가 있다.

지력과 마법 캐스팅 속도 30퍼센트 상승, 3가지 종류의 마법 동시에 캐스팅 가능, 화염 마법과 암흑 마법 동시 캐스팅 성공 시 각 마법의 위력이 200퍼센트 증가, 마법을 캐스팅할 때마다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실드 생성, 마법 치명타 확률과 치명타 데미지 상승, 마나 재생력 200퍼센트 상승.

벨리알의 지팡이에 귀속 된 옵션들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인물은 브라함이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브라함 본인 또한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찜해놨던 거고.

“우선 라인하르트로 돌아갑시다.”

앞으로의 계획을 짠 그리드가 라우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스틱세이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브라함이 콧방귀 뀌었다.

“메스 텔레포트.”

스팟-!

라우엘의 답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그리드와 템빨단원 전원 라인하르트로 전송됐다.

브라함의 메스 텔레포트는 스틱세이의 메스 텔레포트보다 전개 속도가 월등히 빨랐고 안정성이 높아 멀미 등의 후유증도 적었다.

“헐....”

눈 깜짝하는 사이에 바뀐 풍경에 놀란 그리드와 템빨단원들이 혀를 내두르는 그때였다.

여긴 어디죠?

프렌스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브라함이 부활함으로써 사명을 달성한 그는 이제 잠시 후면 성불할 예정이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를 해쳐서 성불시킨다는 건 불가능했고, 검의 무덤에 있는 파그마의 안배가 발동해야 성불할 수 있었다.

한데 정신 차리고 보니 검의 무덤이 아닌 것이다.

황당해하는 프렌스를 허리에 걸친 브라함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리로즈를 죽이기 위해선 높은 신성력이 필요하다.”

그렇죠.

“몇 년 후에 너를 이용해서 마리로즈를 죽이겠다.”

과연 지공! 철저하시군요!

“.....”

거기선 감탄할 게 아니라 태클을 걸어야하는 거 아닌가?

예고도 없이 납치당한 주제에 해맑은 프렌스의 모습에 템빨단원들은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

“이렇게 마주보는 건 처음이군요.”

“....!”

데미안이 교황으로 취임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레베카교의 독립조직 템플러가 처음으로 교황청을 방문했다.

“여신의 대행자로 선택 받고도 타인에게 의지해서야 교황이 된 당신의 자격을 의심해왔었습니다만,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당신의 안목을 믿어보도록 하죠.”

펄럭-

로브를 벗은 대천사 사리엘이 날개를 펼쳤다.

그가 교내에서 공식적으로 정체를 밝힌 것은 최초의 교황 시대 이후 처음이었다.

“제가 당신을 교황으로 인정하겠습니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잊혀져갔던 성력들을 당신에게 전파하고 성검에 걸린 제약 또한 풀어드리죠.”

“.....”

“강해지세요. 최후의 뱀파이어들이 충돌하는 날, 당신은 약해진 그들을 모조리 멸하고 세상을 빛으로 물들이셔야할 겁니다.”

“싫은데요?”

“....?”

보통 사람은 결코 뿌리칠 수 없을 거대한 유혹.

그것을 데미안은 단번에 뿌리쳤다.

데미안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여태껏 힘들 때마다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다짜고짜 나타나서 생색은 무슨. 되게 염치없는 사람이네. 사람이 아니라 천사라서 그런가? 그치? 이사벨 쨩.”

“그러게요.”

레베카교는 셀 수 없이 많은 위기를 겪어왔다.

타락한 교황 드레비고에 의해서 율법이 붕괴되고, 제국과 손잡았던 파스칼 탓에 외세에 점거당하기 직전까지 갔으며, 야탄교의 대규모 습격을 받는 등....

그때마다 데미안과 레베카의 딸들은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좌절하며 절망하는 그들을 도운 사람은 그리드였지 템플러가 아니었다.

외인(外人) 주제에 이제와 생색내며 안방을 차지하려드는 템플러의 태도가 데미안은 달갑지 않았다.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큰 힘을 얻을 기회입니다.”

사리엘이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힘?”

이사벨과 마주본 채 활짝 웃던 데미안의 시선이 거짓말처럼 차갑게 식는다.

“당신에게 구걸해야할 정도로 우리는 나약하지 않습니다.”

허세가 아니었다.

마리로즈 봉인에 실패한 이후, 데미안과 레베카의 딸들은 장로들의 인가를 받아 교황청의 비밀 신전 중 하나를 개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끊임없이 수련하며 스스로 힘을 쌓는 중이었다.

데미안은 강해지고 있었다.

“당신의 도움은 필요 없어요. 그래도 정 우리를 돕고 싶다면 앞으로 본교를 위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우리의 신뢰를 얻어 보시던가.”

“....알았습니다.”

사리엘의 예상, 그리고 제작진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형태였지만 템플러는 교황청에 합류하게 되었다.

천사의 등장이 교내를 발칵 뒤집었다.

하지만 의외로 장로들은 심드렁했다.

이미 로드의 잠재력을 엿본 그들의 입장에선 천사도 별로 대단해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위대하신 신의 사도치고 별 거 없군....”

“그러게 말이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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