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015화 (1,005/1,794)

템빨 53권 - 18화

‘템플러!’

그리드에게 토벌 당하고 그리드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야탄의 네 번째 종, 니베리우스.

5초 동안 연주해야한다는 점과 운빨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그리드가 외면해온 <니베리우스의 피리>의 원래 주인이기도 했던 그가 죽기 전 남긴 질문이 있다.

“레베카 교단에는 레베카의 딸과 어쌔신 템플러 등을 육성하는 비밀 신전이 존재한다고 들었네. 바로 자네가 그곳에서 키워진 템플러인가?”

이후에도 템플러는 종종 언급되어왔다.

특히 야탄교측 인사들이 템플러를 굉장히 경계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템플러를 만나보지 못했다. 데미안이 교황이 되고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템플러를 소개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청나게 중요한 비밀 조직인가 싶었는데.’

딱히 경계하진 않았다.

당연하다.

레베카교쯤 되는 집단이 비밀 조직을 거느렸다고 해서 이상할 일도 아니었고, 레베카교는 템빨국의 가장 큰 동맹 중 하나였으므로 그리드는 굳이 템플러를 경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근데 이제 보니 낌새가 수상했다.

세간에 알려진 브라함은 전설의 대마법사.

그의 정체가 마족, 심지어 진혈족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물론 레베카교의 수뇌부쯤 되면 브라함의 정체를 알고 있을지 몰라도, 레베카교의 수뇌부가 굳이 브라함의 시신을 찾아 훼손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은 낮았다.

교황 데미안이 그리드와 끈끈한 관계였으니까.

데미안은 브라함의 시신을 지켰으면 지켰지 해악을 끼칠 인물이 아니었다.

말인 즉, 이곳까지 찾아와 브라함의 시신을 훼손하려했다는 템플러의 행동은 레베카교의 의지와 상반되는 독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데미안이 통제할 수 없는 조직인 건가? 아니면 교단에 내분이 발생했다거나?’

머릿속을 정리해본 그리드가 차근차근 질문해나갔다.

“레베카교는 브라함의 정체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고 있습니까?”

아마 모를 겁니다. 제가 브라함의 실체를 일부러 은폐했었거든요.

“왜죠?”

마법의 지식을 널리 전파하며 민간을 이롭게 했던 그를 굳이 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기엔 손실이 크고 무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마법 지식을 널리 전파한 사람은 브라함이 아닌 그의 제자 무무드였지만 뭐, 그런 속사정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다.

그리드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템플러는 독자적으로 브라함의 실체를 파악한 듯합니다. 물론 브라함은 이미 죽었으니 뒤늦게 알아봤자 무의미한 일이었지만 최근엔 사정이 바뀌었죠. 어떤 인물 탓에 템플러는 다시금 브라함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인물? 그게 누굽니까?”

그자가 이번 사건의 원흉이라고 확신한 그리드가 의욕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곁에서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템빨단원들이 그리드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드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저를 말하는 겁니까?”

하하, 네.

“.....”

당신이 브라함의 영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템플러측에서 이미 오래 전에 파악한 눈치더군요. 그리고 당신과 브라함의 관계를 조사하는 과정에 브라함의 시신이 온전히 존재하며 이곳에 보관 중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내 이곳을 침입한 거고요. 브라함의 부활을 저지할 의도겠지요.

“하지만 교황님의 정체를 알고 순순히 물러났나 보군요.”

현재 프렌스는 공격력 8,000짜리 검일뿐이다.

레베카의 딸과 필적한다는 템플러들을 그 혼자서 저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프렌스의 정체를 알아 본 템플러들이 스스로 물러났다고 해석하는 편이 옳았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예에? 그럴 리가요. 저보고 뱀파이어의 시체나 지키는 타락한 마검이라며 욕설과 비난을 일삼더니 죽이려고 들더군요. 덕분에 죽을 뻔했습니다. 하하하.

“.....”

템빨단원들의 분위기가 사늘하게 식었다.

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웃으며 해맑게 떠드는 프렌스를 보자 그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크레이슐러를 보면 기절들을 하겠군.’

영원토록 마리로즈를 품겠노라며 관짝이 된 2대 교황 크레이슐러.

그자와 비교하면 프렌스는 지극히 정상인이다.

“그 위기를 어떻게 넘기셨습니까?”

프렌스는 무슨 수로 템플러들로부터 살아남았고 브라함의 시신마저 수호하기에 이르렀는가....

큰 의문을 품은 그리드의 질문에 프렌스가 응답했다.

하하, 그들에게 협력하는 조건으로 목숨을 연명했습니다.

“그렇군요.... 네?”

템플러들이 이곳에 색적 마법을 설치할 수 있게끔 협조했죠. 잠시 후면 템플러들이 몰려올 겁니다.

“이런 미친!!”

정상인은 개뿔, 또라이 아니야?

치를 떤 그리드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언덕을 오르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숫자는 스무 명 정도로, 이곳에 모인 템빨단원보다 숫자가 배는 적었으나 가파른 경사를 평지 걷듯 뛰어오르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각자 무기를 꺼내 쥔 템빨단원들이 그리드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리드 네가 진행하는 에피소드나 퀘스트는 죄다 이 꼴이더라.”

“내가 그리드였으면 아슈르한테 속아서 파그마의 기서 찾아다녔을 때 이미 게임 접었을 듯.”

“.....”

부정할 수가 없어서 슬프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휩쓸린 그리드가 프렌스를 노려보자, 프렌스는 찔리지도 않는지 여전히 해맑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역대 교황 모두가 템플러를 독립적인 조직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왔습니다. 덕분에 템플러는 교황의 권력에 구애 받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수 있었죠.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템플러의 수장이 많이 특별한데, 인간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잣대로 교황의 자격을 시험하곤 하죠. 그 탓에 대다수의 교황들이 템플러와 대립각을 세워오곤 했습니다.

“특별하다?”

인간이 아닌 것으로 추측됩니다. 상식 바깥의 능력을 발휘하거든요. 일각에서는 천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천사? 제가 아는 그 천사요?”

아마도요. 그리고 그의 현재 목표는 당신이 품고 있는 브라함의 영혼을 멸하는 것이죠.

“죽엇!!”

사람을 팔아먹고도 끝까지 태평하게 지껄이는 프렌스의 태도가 급기야 그리드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다짜고짜 검을 뽑아 휘두르는 그리드의 공격을 검면으로 막아낸 프렌스가 무척 당황했다.

왜 저를 공격하시는 겁니까?

“배신자 주제에 혀가 길군!”

배신자라뇨? 저는 브라함의 시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제가 끝까지 저항하다가 죽었으면 브라함의 시신이 무사했을 것 같습니까?

“....”

괜히 저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하세요. 저들을 쓰러뜨리면 브라함은 안전할 것입니다. 반대로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당신이 품고 있는 브라함의 영혼마저 파괴당하고 브라함은 영원히 소멸하겠죠.

“....제길!”

맞는 말이다.

프렌스가 템플러들에게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은 그리드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대기해! 내가 먼저 적들의 수준을 가늠하겠다!”

타탓!

그리드가 두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이때 어깨가 크게 펄럭였으니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초연화!”

“....!?”

템빨단원들이 경악했다.

고작 두 걸음만으로 3융합 검무를 펼칠 수 있게 된 그리드의 발전에 놀란 것이다.

쿠쾅-!

쿠콰콰콰콰콰콰쾅!!

브라함의 마법이 깃든 검기와 꽃잎의 세례가 템플러들을 덮쳤다.

동시에.

지잉-!

지이이이잉-!

템플러들의 사방으로 푸른색의 투명한 원반이 생성되더니 검기와 꽃잎의 폭격을 모조리 무효화시켰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브라함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천사가 맞는 듯하군.

“....!”

-천사와 천사가 이끄는 군단에는 원거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저열한 악의에는 용기가 없어 신의 가호를 해할 수 없다’던가? 별 개소리를 주장하며 오직 근접 공격에만 영향을 받지.

‘그거 완전히 마법사 카운터 아닙니까?’

-맞다. 천사랑 싸우는 마법사는 미친놈이지.

‘하지만 저는.’

-그래, 너는 마법사가 아니다.

타앙-!

그리드가 신형을 날렸다.

메르세데스가 그를 뒤쫓았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 저마다 흰 가면과 갑옷을 무장하고 있는 템플러들이 묵묵히 검을 휘둘러왔다.

변화가 매우 많은 검술이었다.

베기는 부채처럼 펼쳐졌고 찌르기가 곡선을 그렸다.

검 끝에 일렁이는 푸른 불꽃은 치유 효과를 방해하고 디버프를 유발하는 기능을 담고 있어서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와 메르세데스는 훌륭한 합격으로 이를 감당했다.

콰르르르릉-!

메르세데스의 백호 검이 템플러들의 검과 맞부딪칠 때마다 지진이 발생하며 돌기둥이 솟구쳐 올랐고, 이에 템플러들의 신형이 무너지자 그리드가 빈틈을 찔렀다.

순식간에 세 명의 템플러가 상처를 입고 후위로 물러났다.

한데 그리드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피가 안 달아?’

그리드의 공격력은 초월적이다.

초네임드 NPC인 검공 리미트조차 그리드의 공격을 허용할 때마다 벅차했었고 대악마 베리드도 끝내 그리드의 손에 쓰러졌었다.

하지만 템플러들은 그리드의 공격을 허용해도 1만 이내의 데미지만 입었다.

심지어 어찌 된 회복력인지 계속 만피를 유지했다.

그리드에게 꽂히는 기습을 방패로 막아낸 메르세데스가 템플러들의 가장 후위에 있는 인물을 지목했다.

“저자가 이들을 치유하고 있어요.”

“....!”

진짜였다.

백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끊임없이 녹색의 빛을 발산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템플러 전원의 몸을 감싸며 상처와 체력을 실시간으로 회복시키고 있었다.

성녀 루비의 광역 힐이 지속되는 수준으로 보였다.

-저놈이 천사다.

‘젠장!’

그리드가 얼굴을 구겼다.

브라함의 부활을 목전에 둔 상황에 생뚱맞은 존재가 나타나 훼방을 놓자 치가 떨렸다.

“오빠!”

“우리도 돕는다!”

루비와 템빨단원들이 합류했다.

루비의 버프 스킬이 그리드와 메르세데스에게 집중됐고 다른 템빨단원들은 그리드와 메르세데스가 스킬을 전개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는 식으로 협력했다.

덕분에 여유를 되찾은 그리드가 메르세데스와 함께 적진을 돌파했다. 템플러들을 죽이진 못해도 멀찍이 물러나게 만들며 천사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신격!’

그리드가 자신이라는 존재를 신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대장장이 관련 스킬의 캐스팅 시간과 재사용 대기 시간을 모조리 삭제시킨 뒤 <아이템 합체> 스킬을 연계, 열망의 무아검과 그리드의 대검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자.

“놀랍군요.”

천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감탄했다.

펄럭-!

로브를 벗어던지고 날개를 펼친 그가 하늘 위로 떠올랐다.

“아....”

템빨단원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순백의 날개와 성스러운 후광....

근엄한 표정으로 지상을 굽어보는 그 신성한 존재는 템빨단원들이 상상해온 천사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왠지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반면 그리드는 심드렁했다.

신을 직접 만나 승부까지 펼쳐본 마당에 고작 신의 사도 따위에게 감흥을 느낀다는 건 무리였다.

‘생각해 보니까 끽해야 대악마급 존재잖아?’

메르세데스와 동료들, 그리고 브라함이 함께있다.

기사들은 언제라도 내 부름에 응해줄 것이다....

그리드가 투지를 끌어올리자 이를 빤히 지켜보던 천사가 템플러들을 뒤로 물렸다.

“과연 소문대로 탁월한 실력과 용맹이군요. 당신께서 죄의 길에 현혹되어 브라함을 부활시키려는 건가 의심했었는데 괜한 기우였어요. 브라함의 영혼 또한 우려할 만큼 강력하진 않으니 당신이 알아서 통제할 수 있겠지요.”

-저놈, 내가 무무드와 싸웠을 때 영혼의 일부가 영구적으로 파괴됐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빛의 여신께 축복 받은 자여. 그대의 앞길에 행운이 따르기를 기도하며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조만간 재회하도록 하죠.”

[대천사 사리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복이 유지되는 동안 몬스터 사냥 시, 1회에 한해서 아이템 드롭률이 500퍼센트 상승합니다.]

“....!”

갑자기 최악의 전개가 진행되는 줄 알았더니 전개가 또 바뀌었다.

떠나가는 사리엘과 템플러들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그리드의 귓가에 프렌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호, 이게 이렇게 되네.

“브라함의 시신도 지켰겠다, 이제 그만 승천하시죠.”

....!

이날.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이 부활했습니다!!]

믿기지 않는 월드 메시지가 떠올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모든 언론사가 이라는 헤드라인을 내걸고 속보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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