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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013화 (1,003/1,794)

템빨 53권 - 16화

[<용단>을 복용하였습니다.]

[대량의 마나가 몸속으로 흘러들어옵니다.]

[마나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마나를 체화하기 위해서 마나핵의 확장을 시도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용단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는 듯 보였다.

한데.

[당신의 마나핵은 전혀 단련되지 않았습니다. 마나핵의 확장이 매우 더디게 진행됩니다.]

[마나가 범람하기 시작합니다.]

[수용하지 못하는 마나를 체외로 배출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여기서부터 조금 이상하다 싶더니,

[마나의 범람으로 인해 확장 중인 마나핵에 균열이 발생합니다!]

“....!”

지옥이 시작됐다.

칼로 배를 관통 당하는 듯한 충격에 이어서 몸속 모든 혈관이 동시에 뒤틀렸다.

시스템적으로 허용하는 통각의 최대치가 그리드의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번져나갔다.

‘이게....! 무슨....!’

찰나의 간극 없이 계속되는 격통에 정신이 아찔하다.

육신과 정신이 통째로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심각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마나핵이 손상되어 마나를 체화하기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폭주하는 마나를 체외로 배출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이 재차 경고해왔다.

그리드는 자칫 수락할 뻔했다.

하지만 이내 이를 악 물고 알림창을 외면했다.

용단은 무려 신화급 소모템이다.

신조차도 탐낸다는 절세 비약이니만큼 두 번 다시 얻지 못할 공산이 컸다.

용단의 효과를 조금이라도 포기할 생각 따위, 그리드는 추호도 없었다.

“끅....!”

고통은 계속 됐다.

적응이 되기는커녕 더욱 예민해졌다.

그간 겪어온 죽음의 문턱들이 그리드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핏빛마녀 시절의 유라, 말락서스를 비롯한 야탄의 종들, 교황 드레비고와 교황 후보 파스칼, 지옥불의 주인 헬가오, 브라함의 골렘 군단, 파그마의 모습으로 숲을 지켰던 랜디, 엘핀스톤과 직계 뱀파이어들, 번헨 열도의 전설들과 분신, 크라우젤, 아그너스, 메르세데스와 적기사들, 악룡 번헬리어, 양반 가람 등....

한때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들의 일격, 일격이 번갈아가면서 내 몸을 난도질하고 있다는 착각에 휩싸일 정도로 그리드는 점차 최악의 고통에 지배당해갔다.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참는다....!’

그리드는 버틸 각오였다.

괴로울 때마다 기껏 찾아온 기회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그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하? 전하!!”

연무장 입구를 지키던 중 이변을 감지한 메르세데스가 달려왔다.

연무장 중앙에 쓰러져 있는 그리드를 발견한 그녀는 거의 사색이 되었다.

“전하!! 윽!?”

그리드를 부축하려던 메르세데스가 신음을 토했다.

불에 달군 철과 같이 붉게 물든 그리드의 피부가 용암처럼 뜨거웠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화산에도 몸을 날릴 사람이었다.

치이익!!

비명을 삼킨 메르세데스가 그리드를 부축해 등에 업었다.

뜨거운 열기에 머리카락과 망토가 타오르고 갑옷이 달아올라 등에 큰 화상이 생겼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대로 스틱세이를 찾아가려는 그녀에게 그리드가 간신히 말했다.

“괜....찮아.”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그리드는 호흡할 때마다 피를 토하면서도 간신히 쥐어짜 말을 이었다.

“놔....둬.”

“....알겠습니다.”

메르세데스가 그리드를 순순히 자리에 내려놓았다.

열기에 손상 된 머리카락을 칼로 싹둑 잘라낸 그녀가 눈조차 뜨지 못한 채 신음하는 그리드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두 번 다시는 경거망동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메르세데스의 깊은 눈동자가 그리드를 관조했다.

주인이 정확히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파악하고자 애쓰는 그녀의 혜안이 전보다 한층 더 발달하고 있었다.

***

[폭주하는 마나를 체외로 배출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똑같은 경고음이 반복되고 있다.

몇 번째인지는 모른다.

숨 돌릴 겨를조차 없는 마당에 숫자 세고 있을 여유 따위 없었다.

[폭주하는 마나를 체외로 배출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우웨엑!!”

눈 감은 채 발작하던 그리드가 급기야 검붉은 피를 토했다.

메르세데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혜안은 엿보고 있었다.

그리드의 혈맥과 기맥을 한계까지 팽창시킨 상태로 날뛰는 대량의 마나가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리드의 마나핵에 스며들고 있음을.

그리드는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댔다간 도리어 사태가 악화될 수도 있었다.

‘힘내세요, 전하.’

절실한 응원이 닿기라도 한 걸까.

[당신의 마나핵이 소량의 마나를 체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신의 마나핵에 발생했던 균열이 회복되었습니다.]

[당신의 마나핵이 1단계 확장을 이뤄냅니다.]

[마나가 영구적으로 3,000 상승합니다.]

[마나핵의 확장으로 인해서 <서사시의 마검사> 클래스가 강화됩니다. <그리드의 검무>에 귀속 된 마법 효과들이 조금 더 강해집니다.]

그리드가 처음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하지만 고통의 강도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당연했다.

용단을 통해서 섭취한 마나의 양이 워낙 많았다.

고작 한 번의 확장을 이룬 마나핵으로 감당할 양이 아니었다.

“끅....”

정신이 점점 더 아찔해진다.

포기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떠올랐다.

‘이쯤 되면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최악의 고통을 장시간 쉬지 않고 견딘다는 건 그리드의 의지력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그리드가 체감하기론 몇 분이 몇 시간, 며칠 같았다.

지금 그리드는 영겁의 지옥 속에 갇혀있는 신세나 다름이 없었다. 의지가 꺾일 만도 했다.

하지만.

‘....아니, 조금만 더.’

그리드는 꺾여가던 의지를 다시 세웠다.

놓친 기회를 평생토록 후회하는 일이야말로 지금 당장 겪는 고통보다 훨씬 더 괴로울 것임을 알기에, 그는 견뎠다.

“....!”

그리드가 한 순간 정신을 잃었다.

단 일격에 불사가 터질 때나 느낄법한 고통이 전신을 동시에 엄습한 여파였다.

이때마다 그리드는 화들짝 놀라며 발작했다.

‘조금만.... 정말로 조금만 더....’

덥썩.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허우적거리는 그리드의 손이 곁에 앉은 메르세데스의 손을 붙잡는다.

우연의 일치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굳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고, 메르세데스는 덜덜 떨리는 그의 손을 도리어 양손으로 포근히 감싸주었다.

치이익....

메르세데스의 두 손이 열기에 타들어가는 바로 그때였다.

[마나의 범람으로 인해 확장 중인 마나핵에 균열이 발생합니다!]

[폭주하는 마나를 체외로 배출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악순환이 반복됐고, 그리드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또 얼마나 긴 시간을 견뎌야 마나핵이 회복하고 확장의 발판을 다질 수 있을까....

전혀 가늠할 수 없으니 더욱 절망적이다.

“.....”

그리드가 간신히 두 눈을 떴다.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흘렀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잠시나마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실수였다.

‘10분....?’

시야 상단에 작게 표기 된 시간을 확인한 그리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용단을 복용하고 이제 고작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체감하기로는 최소 하루 이상이 지난 것 같은데?

‘이건.... 못 버틴다....’

고작 1단계 마나핵을 확장하는데 10분이 걸렸고, 그 10분이 하루처럼 길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마나핵을 확장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마나핵을 확장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미쳐버릴 것이다.

“.....”

그리드가 곁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도 중인 메르세데스의 모습이 보였다.

내 손을 감싸 쥔 그녀의 양손이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포기.... 해야....’

그리드의 망설임이 끝났다.

그는 시스템의 경고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았다.

[폭주하는 마나를 체외로 배출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

수락하겠다.

마음속으로 그 한 마디를 외치려던 그리드가 멈췄다.

-어울리지 않는 짓일랑 관둬라.

퉁명스러운 음성.

-이성적으로 생각 못하고 미련하게 버티는 것이 네놈의 주특기 아니었나? 근데 포기하겠다고? 같잖군.

더없이 오만한 말투.

그리드가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인물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

‘브라함....!’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의 영혼이 당신의 몸속에서 폭주하고 있는 마나를 조율하기 시작합니다!]

[마나핵의 균열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한도까지 팽창했던 혈맥과 기맥이 안정됩니다.]

[당신의 마나핵이 대량의 마나를 체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신의 마나핵이 2단계 확장을 이뤄냅니다.]

[마나가 영구적으로 3,000 상승합니다.]

[마나핵의 확장으로 인해서 <서사시의 마검사> 클래스가 강화됩니다. <기초 마법서>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흥.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의 영혼이 당신의 마나핵에 변형을 주었습니다. <기초 마법서>를 습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그리드의 검무>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줄어듭니다.]

[당신의 마나핵이 3단계 확장을 이뤄냅니다.]

[마나가 영구적으로 3,000 상승합니다.]

[마나핵의 확장으로 인해서 <서사시의 마검사> 클래스가 강화됩니다. <하급 마법서>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서라.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의 영혼이 당신의 마나핵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하급 마법서>를 습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그리드의 검무>의 캐스팅 시간이 줄어듭니다.]

-검무로는 결코 검술을 이길 수 없다고?

브라함의 영혼이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 뀌었다.

-비반인가 뭔가 하는 놈이 했던 말은 잊어라. 네 검무의 잠재력은 결코 하찮지 않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세 번째 서사시를 써내려갑니다.]

“....알고 있어요.”

거짓말처럼 고통이 끝났다.

자신 때문에 화상 입은 메르세데스의 두 손을 보듬어주며, 그리드는 월드 메시지가 아닌 브라함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제가 브라함 당신과 함께 만든 검무를 하찮게 여길 리 없잖습니까.”

[서사의 시작은, 오랜 친구와의 재회로부터 비롯됩니다.]

-흥.... 알면 됐다. 그건 그렇고 느껴지나?

“....네.”

-그래, 내 영혼은 완전히 회복됐다. 빌어먹을 드래곤이 도움이 되는 일도 다 있군.

[용의 심장을 집어삼킨 그는,]

“이제 부활하시는 겁니까?”

-맞다. 네게 기생충처럼 연명하는 신세도 이제 끝이다.

[재회에 뒤따르는 이별을 각오하였고,]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죠?”

-그야 당연히 육신부터 되찾고 은원을 마무리 지을 셈이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 남 이야기하듯이 말하는구나.

“....?”

-네가 날 도와라.

-지긋지긋한 은원을 어서 빨리 해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구나. 네 나라에 내가 머물 집 한 채 정도는 내어줄 수 있겠지?

[이별에는 또 다시 재회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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