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975화 (965/1,794)

템빨 52권 - 2화

<오크가 된 것에 만족하십니까?>

종족을 바꾼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가 진행됐다.

응답률은 68퍼센트로 매우 양호.

그중 긍정적인 답변의 비율이 무려 80퍼센트다.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오크로 종족을 바꾼 플레이어 대부분이 근접 딜러였으니까.

애초에 그들은 오크의 육체 능력이 탐나서 오크라는 종족을 선택한 것이다.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 높은 생명력, 파괴적인 힘, 넓은 시야각 등.

오크의 뛰어난 육체 능력은 그들을 크게 만족시켰다.

-전투에 최적화된 종족이야. 생존력이 보장되면서 폭딜까지 가능하고 사각이 적어. 동레벨 플레이어랑 싸우면 질 수가 없어.

-마나통이 배로 줄어서 스킬을 몇 번 못 쓰는 게 문제지만 말이지.

-공감합니다. 마나 자체가 부족한 데다 마나 회복 속도까지 너무 느려서 장기전에 매우 취약해요. 지력 관련해선 반드시 버프가 필요합니다.

-지력 계수는 진짜 버프해 줘야 됨. 난 마법사 만날 때마다 이기질 못하겠어. 마법이 유발하는 상태 이상엔 저항도 잘 못하고, 공격 마법 한 대만 맞아도 피가 쭉쭉 떨어지는데 진짜 손쓸 도리가 없더라.

-님들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님? 나도 버프를 바라는 입장이긴 한데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 지력까지 버프받으면 개사기일 듯.

-그건 맞음ㅋㅋ 지금만 해도 단점보다 장점이 월등히 뛰어난데 여기에 버프까지 받으면 누가 인간 하겠음? 죄다 오크 하지ㅋㅋ

각종 커뮤니티에서 목격되는 오크 간의 대화나 후기가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했다.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들조차 이끌릴 정도로 오크가 지닌 강점은 뚜렷한 것이었다.

물론 단점도 많았다.

지력 관련 문제뿐만 아니라 꼽추, 주걱턱, 불규칙한 치아, 뒤룩뒤룩 굴러가는 눈알 등.

일단 외모가 통상적인 미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또한 오크족 NPC들의 지적 수준이 인간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퀘스트 내용들이 대체적으로 단순하거나 무식했고, 그로 인해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막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곤 하는 것이다.

오크는 퀘스트 없는 셈 치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겼을 정도였다.

어찌 됐든.

‘나도 오크로 종족 바꿔야겠다.’

‘나도!’

많은 사람들이 오크의 단점보다는 장점 쪽에 손을 들었다.

특히 스킬 의존도가 낮은 직업군 플레이어들이 대거 오크로 종족 변경을 시도했다.

그 와중에 중국 언론들의 태도가 눈에 띄었다.

『중국 무술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종류가 많고 유명하지요. 그 탓에 대개의 중국인은 ‘무술’에 흥미와 긍지를 품고 있으며, Satisfy 클래스도 무도가 계열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많은 중국인 무도가가 오크로 종족을 바꿔서 본인의 강점을 극대화시킨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떨 것 같습니까? 네, 여러분의 상상이 그대로 실현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중화민족이 각종 PvP 대회를 석권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위 랭킹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겠죠.』

『중국인 플레이어들은 순수합니다. 그리드가 템빨로 치장하고, 크라우젤이 스킬빨을 위시할 때도 꿋꿋이 컨트롤 솜씨만 단련했던 하오가 중국인 플레이어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죠. 외부적인 요소에 의존하기보다 본인 스스로를 단련하는 데 집중하는 중국인들의 태도……. 그것을 옳다, 그르다 논한다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겠으나 그런 태도가 중국인 플레이어들을 도태시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이 게임 강대국이라는 위명을 되찾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들의 태도가 바뀔 필요가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등장한 오크가 중국인 플레이어들의 성향으로부터 비롯된 약점을 극복시켜 줄 수단이 되어 줄 테니 향후 중국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볼 수 있겠죠.』

『중국의 상위 랭커들이 오크로 종족을 변경하고 잘 적응할 경우 올해 국가대항전에서 중국의 종합 순위는 최소 2위로 마무리될 겁니다. 그리고 향후 1~2년 내에 미국과 한국을 완전히 뛰어넘게 되겠죠.』

광적인 예찬.

중국의 각종 언론 매체가 오크 예찬을 주도하는 배경에는 공산당의 야욕이 숨어 있었다.

자국 플레이어들을 대거 오크로 만들고 국대전 성적을 높여 국격을 상승시키려는 의도였다. 거의 세뇌 수준의 언론플레이인 셈이었다.

언론은 공산당이 원하는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하오라는 패까지 꺼내 들었다.

『하오 씨, 요즘 세상이 오크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반용족에게 별도의 스탯 혜택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오 씨가 화두에 오르고 있어요. 하오 씨께서 오크로 종족을 바꿔 육체 능력을 강화시키면 지존이 될 거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하오 씨의 생각은 어떤가요?』

『일단 반용족의 스탯 계수가 인간과 같은 것은 사실입니다. 오크의 경우처럼 플레이어들이 반용족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와야 스탯 계수가 조정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죠.』

『저런, 아쉽군요. 그럼 당장은 오크로 종족을 바꾸는 것도 고려하고 계시겠군요?』

『아니요. 종족 변경의 기회는 계정당 2회뿐이고, 한 번 종족을 바꾸면 최소 2년 동안 다시 바꾸지 못하니 신중해야죠. 더군다나 반용족은 스킬 면에서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굳이 못생긴 오크로 종족을 바꿔 가면서까지 기존의 혜택을 포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 그렇군요.』

중국 언론은 장기간 하오를 비난하며 고립시켜 왔다.

하지만 다시 하오를 언급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인터뷰까지 요청한 이유는 하오의 인지도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하오가 중국 최고의 랭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하오에게 바라는 것은 오크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언론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었다.

한데 하오는 재를 뿌려 버렸다.

『시청자 여러분도 오크를 너무 맹신하지 마십시오. 근력, 체력의 계수가 인간과 비교해서 1.8배 높은 것은 분명 대단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스탯보다 스킬의 중요도가 올라갑니다. 지력 계수의 2배 하락이 언젠간 당신들의 발목을 붙잡을 거예요. 또한 힘을 숭배하는 오크들의 사상이 조만간 큰 화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아, 네. 여기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또다시.

하오는 언론의 표적이 되었다.

그가 중국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은 배경에는 필시 그리드의 사주가 있었을 거라고 음모론을 제기하며 하오를 공격했다.

손쉽게 여론을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람 한 명 병신으로 만드는 일은 간단했고, 하오의 주장들은 비난 속에 묵살되었다.

“…매번 피곤하군.”

하오는 점차 지쳐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몇 년 전 방문했던 한국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드와 템빨단원들의 집과 건물이 나란히 늘어선 거리.

그곳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하오는 문득 그리워졌다.

그러다가도.

“…….”

대대로 인민들에게 존경받았던 조상들의 면면을 떠올린 하오는 상념을 털어 내야만 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억압하는 마음의 족쇄를 풀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조국에 반드시 명예를 안겨야 한다는 사실을.

조국에 명예를 안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건 바로 그리드를 꺾는 것이다.

‘한 번.’

정말로 단 한 번.

천운에 천운이 따라 줘서 단 한 번이라도 그리드를 꺾을 수 있다면.

나를 그리드의 하수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동시에 그리드를 악당 취급하는 중국인들의 풍조가 고쳐질 것이다.

‘반드시 한 번은 이긴다.’

자신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도, 그리드의 명예를 위해서도 하오는 승리를 갈망했다.

***

“오크 전사들이여! 나! 테루찬을 경배하라! 쿠룩! 쿠루룩! 너희들에게 나와 함께 전쟁에 나설 영광을 주겠다! 우리는! 인간들의 영토를 빼앗고! 쿠륵! 크르륵! 우리의 제국을 세울 것이다!!”

“이런 미친!”

오크로 종족을 바꾼 수많은 사람들이 치를 떨었다.

오크의 힘으로 성장해서 랭커가 되거나 국대전 등의 무대에서 활약하는 게 그들의 목표였건만 다짜고짜 전쟁의 장기 말이 되게 생겼으니 낭패였다.

솔직히 말해서 오크의 나라가 어찌 되든 플레이어들은 상관없었다. 신경조차 안 썼다. 오크가 된 지 채 몇 달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소속감을 느낄 리 만무했다.

구미가 당길 만한 퀘스트라도 발생했다면 또 모를까…….

기존의 로드를 힘으로 꺾고 왕좌를 탈환한 새로운 로드는 엄청 무식해서 사람을 다루는 방법도 몰랐다. 뇌까지 근육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당근을 줄 생각은 아예 못하고 그저 자신을 따르는 행위 자체가 영광이라는 점만 강조했다.

플레이어들에겐 씨알도 안 먹힐 미친놈의 헛소리였다.

“난 전쟁에서 빠질 거야!”

플레이어들이 이탈을 시도했다.

애초에 플레이어는 게임을 즐기는 입장.

그들에게는 자유라는 권리가 있었고, 오크 로드의 명령에 굳이 굴복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믿었다.

한데 웬걸.

[지금 대열에서 이탈하면 탈영병으로 간주됩니다! 온갖 처벌과 제약이 뒤따를 것입니다!]

“XX!”

“아니, 이게 무슨 억지야!?”

오크는 힘을 숭배하는 전투 민족.

백성 모두가 군인 취급을 받았고 플레이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크 로드가 일방적으로 만든 군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물론 사람들은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탈영병이고 나발이고 간에 무시하고 대열에서 이탈하는 플레이어들이 속출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원.

서걱-!

바로 옆에 있던, 혹은 등 뒤나 눈앞에 있던 다른 오크들에게 댕겅 목이 잘려 버렸다.

죽었다가 다시 부활해도, 한참을 로그아웃했다가 로그인해도 그들은 이미 행군을 개시한 오크의 군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인간과 달리 ‘본능’을 중시하는 오크 사회에서 오크 로드의 의지는 절대적인 구속력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하위 오크는 고위 오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뜻.

플레이어가 어스름족 오크로 종족 변경 시 ‘일부 오크를 통솔할 권한이 생긴다.’는 효과가 발생했던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위대한 군주 테루찬이 전쟁을 선포한 상태입니다!]

[당신은 테루찬의 의지에 따라 그의 군대에 합류하게 됩니다!]

“뭐 이딴 X망겜이 다 있어!!”

Satisfy와 기존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유도에 있었다.

어떤 범죄를 저지르거나 특정 퀘스트에 구속되지 않는 이상, 플레이어는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Satisfy를 플레이할 수 있었다.

한데 이 순간 상식이 깨진 것이다.

무식한 윗대가리를 만나게 된 오크 플레이어들은 강제 병영 체험을 하게 생겼다.

‘누가 저 새끼를 좀 말려 줘!’

정복 전쟁을 개시한 어스름족 오크.

인류는 물론이고 오크 플레이어들조차도 그들의 행군이 멈추길 바랐다.

하지만 ‘마법 못 쓰는 대악마’라고 취급해도 좋을 만큼 강력한 테루찬과 그를 광신하는 정예 오크들을 막아 낼 수 있는 세력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다.

만인이 고통에 떨었다.

***

“전개가 왜 예상하고 다르냐?”

라인하르트 대장간.

작업 중에 라우엘의 보고를 받은 그리드가 혀를 내둘렀다.

여러 정황상 오크의 영토 확장 가능성은 낮다, 라고 분석했던 라우엘을 바라보는 그의 눈초리가 영 곱지 못했다.

라우엘은 당당했다.

“어스름족 오크 로드는 모든 오크를 관장하는 제왕. 응당 뛰어난 지성을 갖췄을 것으로 추측했고, 실제로 전대 오크 로드는 신중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제국에게 억압받았던 본인들의 무력함을 잊지 않고 제국을 자극하지 않게끔 인류와 굳이 척을 지는 일을 피했죠. 그러니까 제 분석은 틀리지 않았던 겁니다.”

“어쨌든 지금 사태는 예상 못했잖아. 다른 놈이 기존의 오크 로드를 죽이고 새로운 오크 로드가 돼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는 한마디도 안 했었잖아?”

“너무 뻔해서 굳이 말씀은 안 드렸지만 예상은 했었습니다. 오크는 힘을 숭배하는 종족이니만큼 왕위를 계승하는 방식도 힘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분석했고, 언제라도 오크 로드가 바뀔 수도 있음을 계산했죠.”

“……?”

라우엘의 최대 약점은 멘탈이 약하다는 점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직면할 때마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100번 중 99번은 변수마저 차단하는 지혜를 발휘했다지만 말이다.

“예상 범위 내라는 건 대비책도 마련해 두었다는 건가?”

“아뇨?”

“……?”

얘, 멘탈 나간 거 맞구나.

근심 어린 눈초리를 보내는 그리드에게 라우엘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오크의 진군은 제국에 명분을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화합을 이루고자 자유를 줬건만 도리어 계속 전쟁을 일으키는 오크들을 제국은 좌시할 수 없게 됐죠. 제국은 다시금 화합을 위해서 오크를 토벌할 겁니다.”

“아…….”

주인 잘못 만난 오크가 제 무덤 판 셈이다.

“그렇군. 우리가 나설 문제가 아니네. 아니, 신경 쓸 문제 자체가 아니군.”

이해한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오크 대군이 폴드 왕국을 침략했다는 소식입니다! 오크 로드 테루찬이 직접 통솔하는 본대입니다!”

“뭐?”

그리드의 표정이 굳었다.

그동안 폴드 왕국이 보여 준 충의와 샤이닝 왕자의 얼굴을 떠올린 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간다. 아무래도 서열 정리를 해 놔야겠어.”

파지직! 파직!!

청룡의 부츠에서 뇌전이 튀었다.

그리고 4개의 검은 손이 허공에 떠올랐다.

부활한 갓 핸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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