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1권 - 20화
“무조건 2배 증식? 너무 사기인데?”
“모르페우스가 저런 비정상적인 결과물을 허용하다니, 바이러스라도 걸린 거 아닙니까?”
“이건 명백한 밸런스 붕괴입니다! 당장 손을 써야 해요!”
S.A그룹 본사.
그리드가 창조한 새로운 광물을 목격한 이사진 전원이 반발을 일으켰다.
친그리드계 인사로 유명한 윤상민 이사조차도 임철호 회장을 설득할 정도였다.
“패치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열흘에 한 번씩 2배의 질량 증가.
그리드가 창조한 <탐욕>의 옵션 중 <증식>은 무척 위험했다.
이론적으로 몇 년 내에 탐욕을 지구 크기만큼 키울 수 있었고 그것은 Satisfy 세계관의 크기와 맞먹는 것이었다.
한데 그것이 그리드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그리드가 마음만 먹으면 Satisfy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영원토록 인류와 함께할 Satisfy의 운명을 단 한 명의 플레이어가 좌지우지 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탐욕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주가가 곤두박질칠 거예요. 당장 손을 써야합니다.”
“모르페우스의 상태가 이상한 것 같은데요. 모르페우스의 상태도 점검할 겸 잠시 서버를 닫고 패치에 들어갑시다.”
이사진이 임철호 회장을 설득했다.
그들이 그리드에게 품고 있는 개인적인 호감은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게 아니었다.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일이니만큼 객관적으로 접근할 사안이었고 핵심은 증식 효과의 수정이었다.
반드시 제약을 걸어야한다.
“흐음....”
임철호 회장이 침음했다.
Satisfy는 플레이어들이 만들어가는 세계.
그들이 Satisfy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든 우리는 그저 지켜볼 뿐, 개입하지 않는다. 우리의 개입이 그들의 몰입감과 의욕을 꺾을 것이며 이는 악순환의 계기가 될 것이니.
이와 같은 입장을 고수해온 임철호 회장조차도 이번에는 솔직히 불안했다. 모르페우스와 수많은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Satisfy를 창조한 이후 최초로 그의 기조가 흔들렸다.
그리드를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리드는 Satisfy를 통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킨 대표적인 인물.
그가 굳이 Satisfy를 멸망시킬 리 없다.
다만 여러 가지 변수가 문제였다.
막말로 그리드가 부득이한 사정이 생기거나 사고를 겪어서 오랫동안 탐욕을 방치할 경우. 혹은 계산을 잘못해서 그리드의 아이템 제작 속도가 탐욕의 증식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우려하는 사태들이 야기되고 말 것이다.
그래, 오직 증식 옵션이 문제다.
탐욕이 그 외에도 많은 사기적인 효과를 지녔다고 하지만 오직 그리드만 다룰 수 있는 전용 아이템이라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크게 문제될 여지는 없었다.
단지 그리드 혼자서만 엄청 세질 뿐인데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그리드가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고 해서 세계관이 뒤틀릴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니, 도리어 더 강해지는 게 옳았다.
이종족, 그랜드마스터, 양반, 신선, 악마, 천사, 그리고 신....
Satisfy에는 아직 수많은 강자가 존재했으며 바알의 계약자와 검성 등 그리드 이상의 포텐셜을 지닌 플레이어도 다수 존재했으니까.
“회장님!”
이사진이 임철호 회장을 재촉했다. 증식 효과를 어서 빨리 해결해야한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그들의 태도는 누가 봐도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임철호 회장은 끝까지 망설였다.
땅콩 껍질을 까며 고심하고 또 고심하던 회장이 문득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증식 효과는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이오. 제인 이사의 브리핑대로 광룡철로부터 계승한 것이며 그리드는 이미 수 년 전에 광룡철을 확보했지. 하지만 여태까지 광룡철이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있었소?”
“.....”
개발진, 운영진이라고 해서 Satisfy의 모든 설정을 꿰뚫을 수는 없다.
지구만큼 방대한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설정들은 어찌 일일이 알고, 기억하겠는가?
슈퍼컴퓨터 모르페우스와 플레이어들이 새롭게 만들거나 변화시킨 설정들 중에서도 극히 중요한 일부만 기억하고 탐구할 뿐이다.
증식이 정말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설정이었다면 모르페우스가 필히 경고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페우스는 경고한 바 없다.
“증식이라는 설정에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오.”
임철호 회장이 확신하자 제인 이사가 부정했다.
“회장님, 광룡철과 탐욕은 경우가 많이 다릅니다. 광룡철은 일정 수준 이상의 대장장이들이 모두 다룰 수 있으며 광룡석이라는 아이템을 이용해서 질량 조절이 가능했지만 탐욕은 오직 그리드만 다룰 수 있는 물질입니다. 그리드가 기껏 만든 탐욕에 굳이 광룡석을 쓸 가능성도 희박하니 그리드 혼자서 언제까지고 질량을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만에 하나 그리드에게 변고가 생겨서 오랫동안 Satisfy에 접속하지 못하기라도 했다간....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요.”
“질량 조절이 가능하므로 탈이 없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미 광룡철로 만든 아이템 중 일부가 템빨국 외부로 노출된 경우가 있는데 그중 특별한 문제를 야기한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회장님의 말씀대로 증식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어요.”
“증식에 한도라도 존재하는 거려나?”
“듣고 보니 그렇군. 그리고 켄타로 이사, 당신은 공부 좀 하시오. 탐욕은 그리드 전용 아이템이므로 그리드가 로그아웃 상태일 시 아공간으로 이동해 활동을 멈추게 되어 있소. 그리드가 없다고 혼자서 증식할 리 없다는 뜻이오. 당신은 그리드가 로그아웃 했을 때 파브라늄 혼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본적 있소?”
굳이 논쟁은 필요 없다.
모르페우스에게 확인하면 될 일이다.
이사들이 갑론을박을 펼치기 시작하자 손을 들어 제지한 임철호 회장이 모르페우스를 호출했다.
“모르페우스, 그리드가 새롭게 창조한 광물이 세계관에 위험을 끼칠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되지?”
Satisfy를 관장하는 존재.
슈퍼컴퓨터 모르페우스의 답변은 바로 들려왔다.
[제로입니다.]
“....!”
“....!”
이사진은 물론이고 임철호 회장까지 두 눈을 부릅떴다.
0퍼센트는 모르페우스가 좀처럼 언급하는 수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가능성의 배제.
그 근거는 무엇일까?
“역시 증식에는 한도가 있는 건가?”
[없습니다. 다만 일정 크기 이상으로 증식할 경우 코드네임 Z-003의 기운이 강해지므로 Z-003을 제외한 모든 Z 개체가 출몰, 그것을 억압하거나 파괴한다는 설정이 존재합니다. Z 개체가 멸종하지 않는 이상 증식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물론 Z 개체가 멸종할 확률 또한 마찬가지로 제로입니다.]
“코드네임 Z....? 드래곤?”
이사진이 술렁였다. 몇 명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인 반면 임철호 회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사들은 단번에 이해했다.
“그렇군. 증식은 광룡 네바르탄의 마력으로부터 비롯된 성질이기 때문에 네바르탄을 적대하거나 경계하는 다른 드래곤들의 적의를 살 거라는 건가.”
“탐욕이 일정 크기 이상으로 커질 때마다 드래곤들이 나타나서 그리드를 덮치고 탐욕의 크기를 조절할 거라는 이야기군요.”
“그런 ‘설정’이라면 내구도 개념도 부질없으니 충분히 가능하겠군.”
“잠깐.... 뭡니까? 지난 수 년 동안 광룡철로 만들어서 전파 된 아이템들은 이미 드래곤들에게 파괴당했거나 곧 파괴당할 거라는 뜻입니까? 드래곤들이 대거 출몰하면 그 자체로 재앙 아닙니까?”
[드래곤이 출몰하기 전에 지혜의 탑이 먼저 움직이며, 지혜의 탑이 움직이기 전에 아이템 소유자에게 경고창이 뜨게끔 설계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광룡석의 <억압> 성질 없이 유출 된 광룡철은 소유주가 없었으므로 이미 모두 지혜의 탑에서 회수, 폐기한 상태입니다.]
억압 성질 없이 유출 된 광룡철은 대부분 제국에 있었다.
그리드가 황비 마리에게 보낸 샹들리에와 타이탄 성벽에 박아뒀던 말뚝들이 바로 그것이다. 당연히 소유주가 없었다.
“결국 조절 가능한 성질이다 이거군.”
이사진이 안도했다.
자칫 망조가 드는 줄 알았더니 아니라니 다행이다.
다만, 그리드 입장에서는 불행이 아닐까.
탐욕을 최대한 증식시켜서 활용하고 싶었을 텐데 불가능하게 됐으니 말이다.
복잡한 심경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이사진은 자신들이 그리드를 얼마나 과소평가 했는지를 곧 깨닫게 됐다.
모두의 우려와 달리 그리드는 탐욕이 한 번 증식할 때마다 분리, 별개의 아이템으로 제작해 벌써부터 과도한 증식을 방지하고 있었다.
임철호 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보다 더 그리드가 잘 알고 있었구려.”
증식이 얼마나 위험한 특성인지.
자칫 Satisfy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으므로 자신이 늘 경각심을 품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드는 알고 있었다.
***
“쿠룩. 쿠루룩. 고맙다. 인간. 쿠룩! 너는 우리 부족의 은인이다! 우리 부족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다! 쿠룩!!”
[히든 퀘스트 ★어스름족 오크 지원★을 클리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어스름족과의 호감도가 20 상승합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인간에서 어스름족 오크로 종족 변경이 가능해졌습니다.]
[어스름족 오크로 종족을 변경 시, 모든 오크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며 일부 오크를 통솔할 권한이 생깁니다.]
[근력과 체력 스탯으로 상승하는 공격력과 생명력 수치가 1.8배 상승하고 지력 스탯으로 상승하는 마법공격력과 마나 수치가 2배 감소합니다. 단, 지력 수치에 따라 ‘샤먼’ 특성이 부여됩니다.]
[직업을 새로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한 번 변경한 종족은 두 번 다시 변경할 수 없습니다.]
[종족을 변경하시겠습니까?]
오크는 서대륙 전역에 서식하는 가장 흔한 몬스터 중 하나다.
워낙 많은 부족이 존재했고 그중에는 레벨이 낮은 부족도 많아 ‘하급 몬스터’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과연 실제로도 그럴까?
언어능력, 뛰어난 육체능력, 조악하게나마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 강령술 등등.
사실 오크는 어지간한 몬스터보다 지적능력이 높고 재주가 많은 종족이었다.
특히 상위 부족 오크일수록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강함을 선보였다.
오죽하면 바알의 계약자 아그너스가 ‘오크 전사 출신’의 데스나이트를 거느리고 다니겠는가.
“공격력, 생명력 1.8배?”
어스름족은 셀 수 없이 많은 오크 부족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명예로운 부족이었다.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따로 대장장이를 뒀을 정도로 지적능력과 기술력이 높을뿐더러 육체능력은 인간이라는 종을 완전히 상회했다.
다만 단점은 마력이 약하다는 점.
마법공격력과 마나 수치의 2배 하락은 스킬이나 마법에 의존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하지만 Satisfy에는 정말 많은 유형의 플레이어가 존재했다.
스킬보다 평타를 더 애용하는 직업군의 사람도 많았고 샤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많았으며 오크의 흉악한 외모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단지 평범함을 거부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나, 오크가 될래.”
“저도 오크가 되고 싶습니다!”
“쿠룩. 쿠루룩. 훌륭한 선택이다.”
어스름족 오크.
흉포한 이종족이 대륙에 진출할 수 없게끔 방벽을 세우고 견제했던 사하란 제국의 국력을 약화시켰던 원흉 중 하나.
제국의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을 저승길 동료로 삼았던 그 포악한 일족이 바사라가 제위에 오르자 무너진 방벽을 넘어 대륙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을 흡수하며 빠르게 세력을 확대한 그들의 소망은 하나.
국가의 건설이다.
당연히 희생양이 필요했다.
“쿠룩! 쿠루룩! 진격! 진격한다!! 비옥한 영토와 뜨거운 태양은 인간만의 것이 아님을! 쿠룩! 우리는! 인간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쿠루룩!!”
바이올렛 왕국의 영토가 녹색 괴물들에게 점령당하기 시작했다.
***
“화해? 큭큭, 왜?”
“.....”
제국 적기사단의 솔로 넘버 나이트들이 황도를 떠나있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는 반용족과의 대치 때문이었다.
흔치않은 수렵민족.
움막조차 없이 산맥을 떠돌며 생활하는 반용족의 호전성은 굉장해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재미로 몬스터와 짐승을 사냥했고 인간을 덮쳤다.
숫자는 고작 수백에 불과했으나 지난 수백 년 동안 제국이 그들을 막기 위해 투자한 전력은 상당했다. 100개도 넘었던 소수민족과 싸우며 소비한 전력보다 반용족 하나와 싸우며 소비한 전력이 배 이상 클 정도였다.
바사라도 그들을 크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황위에 오르자마자 그녀가 한 일 중 하나가 반용족에게 사신을 보낸 것이다.
무려 후작급 인사를 보내서 화해를 제안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반용족에게 찬란한 미래를 제시했다.
이에 대한 반용족의 반응은 조소였다.
“우리가 너희랑 싸워온 이유는 재밌어서인데 왜 굳이 화해를 하겠어? 바보도 아니고 오락거리를 스스로 놓칠 리가 있나.”
“이 무례한...!”
보렐 후작.
그는 대륙에 열 명밖에 없는 대마법사 중 하나이자 검호급 기사를 다섯 명이나 거느리고 있는 제국의 대표적인 강자다.
대제국의 후작이며 대마법사로서 높은 자부심을 지닌 그는 반용족의 태도에 커다란 분노를 느꼈다. 당장 불꽃을 소환해 이죽거리는 눈앞 어린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참았다.
새로운 황제의 뜻을 알기에, 그는 인내하고 들끓는 마력을 억눌렀다.
그것이 문제였다.
푸화하학-!
“각하!!”
폭주하는 마력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바.
그가 찰나 드러낸 빈틈을 놓치지 않은 반용족이 그의 목을 날려버렸다.
“이 미개한 놈이!!”
“감히 후작님을!!”
기사들이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검을 뽑아 쥐었다.
하지만 휘두르지는 못했다.
어느새 수십 명의 반용족들에게 둘러싸여있음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이대로는 개죽음이다.
금방 전의를 상실해버린 기사들에게 날아든 것은 보렐 후작의 머리였다.
“너희들의 대빵에게 가서 전해. 우리랑은 앞으로도 계속 놀아줘야할 거라고. 큭큭! 크하하하핫!!”
“......”
모두와의 화합을 원했던 새로운 제국의 바람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온갖 문제가 제국을 덮쳐왔다.
패도의 업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