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1권 - 19화
“새로운 광물의 이름은.....”
당연히 템빨석.
‘....은 아닌 것 같아.’
그럼 역시 템빨라늄?
‘개뿔.’
성장은 하나로 국한될 수 없다.
A라는 면이 발전했을 때 B라는 면이 함께 발전하는 상승효과가 일어나는 것이 인간의 성장이라는 것이다.
지적능력의 향상으로 본인의 작명 감각이 저급하다는 사실을 자각한 그리드는 망설여졌다.
‘둘 다 너무 구려.’
템빨단, 템빨국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마다 라우엘이 질색했던 이유를 이제는 이해한다.
적응이 돼서 망정이지, 현재 상태로 템빨단, 템빨국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면 나 또한 자지러졌을 게 분명하다.
물론 ‘그리드’라는 주체를 제3자의 시각으로 지켜보는 입장이었다면 느낌이 조금 달랐을 수도 있지만.
뺨을 긁적인 그리드가 턱에 손을 괴었다.
내가 템빨왕이라고 해서 창조하는 아이템마다 템빨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너무 단조롭고 재미없지 않은가.
백호검의 이름을 돌검이라고 지으려고 했던. 아니, 돌검의 이름을 백호검으로 지으려다가 말았던....?
아무튼 그때부터 작명에 꽤 큰 신경을 써왔던 그리드는 심각하게 고심했다.
‘그라비아늄도 안 돼.’
그리드는 브라함과 약속한 바 있다.
당신과 함께 창조할 새로운 광물의 이름은 그라비아늄이라고 짓겠다고.
그래, 어디까지나 브라함과 ‘함께’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이 따끈따끈한 흑금색 광물의 모태가 파브라늄이며, <지공>의 지식이 창조에 일조했을지언정 브라함의 이름을 따온다면 브라함이 불쾌해할 것이다.
창조의 현장에 브라함은 없었으니까.
존재는커녕 의지조차도.
“좋아, 그라비아늄도 패스. 걱정 말고 푹 주무시고.”
습관이 된 혼잣말.
브라함을 향한 그것을 중얼거린 그리드가 인벤토리를 정리했다.
신을 겨누는 칼날의 제련 과정에서 분해된 백광의 미스릴, 아스타로트의 뿔, 강화된 청룡의 숨결, 곱등이의 등껍질을 회수하는 것이다.
백광의 미스릴은 내구력이 꽤 크게 손상됐지만 나머지 재료들은 상태가 거의 온전했다.
‘....좋아, 정했다.’
인벤토리와 함께 머릿속도 정리한 그리드가 시야에 여전히 떠올라 있는 알림창을 대면했다.
[새로운 광물의 이름을 결정해 주십시오.]
대답은.
“탐욕.”
새로운 광물은 무한한 욕망을 지녔다.
결코 소모되지 않고 끊임없이 증식할 것이다.
기껏 오른 정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멀리 더 큰 산을 바라보는 창조자 greed를 쏙 빼닮았으니 이름도 따옴이 옳다.
“탐욕으로 정한다.”
이는 경각심을 품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지나친 탐욕은 독이 된다는 사실, 그리드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탐욕> 역시 앞으로 증식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을 겪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브라함 뿐이다.
‘만족’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와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지식을 지닌 존재.
브라함이 돌아오는 그날, <그리드>는 완전해지리라.
꽈악.
믿어 의심치 않은 그리드가 작은 멜론 크기의 흑금색 광물을 손아귀에 쥐었다.
어서 빨리 광물의 상세 정보를 확인하고 싶은 그였다.
[작명을 완료하셨습니다.]
[새로운 광물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띠링~
<탐욕>
내구력:무한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와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의 합작품 <파브라늄>을 ‘그리드’가 자신의 기술과 서사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종전과 비교해 많은 특성이 추가되었습니다.
*레베카 여신의 축복을 받아 힐링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주인의 생명력 회복 속도를 300퍼센트 상승시켜 줍니다.
*도미니언 신의 축복을 받아 공격력 버프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주인의 공격력을 15퍼센트 상승시켜 줍니다.
*쥬다르 신의 축복을 받아 방어력 버프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주인의 방어력을 15퍼센트 상승시켜 줍니다.
*야탄 신의 축복을 받아 마력 버프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주인의 마력을 15퍼센트 상승시켜 줍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주인의 명령을 최우선 순위로 수행합니다. 모든 움직임에는 동력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경도와 강도, 취성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단, 한계치가 존재합니다.
*모든 속성을 완전히 흡수합니다. 단, 서로 상충하는 속성을 함께 부여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열흘에 한 번씩 2배의 부피와 무게로 증식합니다. 단, ‘순수한 형태’일 때만 적용되는 효과입니다.
*타격 시 높은 확률로 <분쇄> 효과를, 피격 시 높은 확률로 <재구성> 효과를 일으킵니다.
★패시브 스킬 <언제나 함께였다> 적용.
★<언제나 함께였다>의 효과로 당신이 보유 중인 칭호 <협곡의 전설>과 <두 시대의 주역>이 <탐욕>에게도 공유됩니다.
“미쳤....”
궁극의 광물 파브라늄의 고유 특성.
빛과 함께 신성력을 잃은 아다만티움의 고유 특성.
황제 바사라가 지원해준 블랙 미스릴의 고유 특성.
마기가 삭제된. 또한 그리드가 궁극 연성으로 강화시킨 베리드의 발굽의 고유 특성.
서사시로 획득한 칭호 효과.
그 모든 것이 <탐욕>에 담겼다.
그리드의 기대는 물론이고 예상, 상상마저도 초월하는 결과였다.
설마 서사시가 새로운 광물 창조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증식>의 효과가 너무 이상적이다.
정말 제대로 보정 받았다.
보정이란, Satisfy의 모든 플레이어가 늘 누리는 혜택이다.
그리드로 예를 들자면 아이템을 제작할 때나 설계도를 창조할 때마다 시스템의 보정을 받아왔다. 시스템 보정이 있었기 때문에 관련 지식이 전무했던 그리드가 완벽한 설계도를 그릴 수 있던 것이고 온갖 야장일을 수행할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
플레이어의 지식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스킬’이라는 개연성을 토대로 구현해주는 것이 바로 시스템 보정이다.
그것이 이번 광물 창조에서도 제대로 한건 해줬다.
사실 그리드는 걱정했었다.
광룡철의 증식 효과는 하나를 둘로 늘려주는 게 아니라 하나의 부피를 키우는 것.
예를 들어 탐욕으로 만든 ‘검’이 증식 효과 탓에 열흘마다 크고 무거워진다면 얼마나 골치 아프겠는가.
감당 못하는 수준까지 커지면 결국 다시 녹이고 새로운 검을 만들 거나 애초에 검을 만들 때 광룡망치를 이용해 특성을 삭제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창조 광물의 총량이 늘어나게 되므로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문제점이긴 했지만 뭐, 어쨌든.
이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탐욕은 ‘순수한 형태’일 때만 증식한다고 하니까.
‘일단 충분히 증식시킨 후 일부를 떼어서 아이템을 만들면.’
그 아이템은 평생 온전한 형태를 유지할 것이다....
생각하는 그리드의 심장이 흥분으로 두근거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희열이 그를 엄습했다.
“좋아.... 너는 당분간 이 상태로 다니자.”
신비로운 흑금색의 동그란 광물.
빛의 정령과 함께 자신의 어깨 위에 떠올라있는 그것을 한 번 쓰다듬어준 그리드가 다시 대장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101개나 남은 블랙 미스릴을 이용해서 몇 가지 실험을 해볼 계획이었다.
영웅왕의 자원 <투기>를 부여했을 때 발생하는 효과는 총 몇 개인지, 마법과의 상성은 어떤지, 다른 광물이나 아이템의 특성도 부여할 수 있는지, 펫과 소환수들의 힘도 전이가 가능한지 등등.
그리드의 탐구심이 들끓었다.
‘최소’ 에픽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게 해주는 <眞-(신과 대적하는)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과 대장장이 기술을 증폭시켜주는 <신과 대적하는 대장장이 망치>가 함께하는 이상 실험은 수월하게 진행될 거라고 그리드는 자부했다.
따앙-! 따앙! 따앙!!
한동안 들을 수 없던 청명한 금속음이 대장간 지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명의 대장장이가 드디어 귀환한 그리드의 작업을 지켜보고자 몰려왔으니 템빨국은 다시 활기로 넘쳤다.
앞으로 최소 한 달.
탐욕이 최소 3번의 증식을 맞이할 때까지 그리드는 실험에만 전념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증식한 탐욕으로 2개의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한다.’
대장일을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충만감.
그리드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사라질 생각을 않았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다음 국대전이 화두에 오르기 시작할 시기가 되었다.
세계 모든 언론이 다음 국대전의 <마왕>으로 누가 선택 됐을지 분석하는데 혈안이다.
하지만 대부분 랭커들의 관심은 국대전보다 템빨국에 집중돼 있었다.
“요즘 템빨국 경제 성장 속도가 미쳤다는데?”
“제국하고 완전한 동맹을 구축했으니 무서울 것 없이 세력을 키워나가는 거지.”
“돌아가는 사태를 보니까 동맹 수준이 아니라 제국이 템빨국의 뒷배를 자처하는 수준이던데....”
“소문에 의하면 여황제가 그리드한테 완전히 빠져있다고 하더라.”
“미친. 이젠 하다하다 황제도 꼬시네....”
“애초에 바사라를 황제로 만든 사람이 그리드니까 그렇지.”
“그건 너무 나갔고. 아무리 그리드라도 어떻게 자기가 황제를 만드냐?”
“서사시 내용을 분석해 보면 낭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여러모로 아귀가 맞은 거겠지. 우연이야, 우연.”
“그럼 결국 운이라고? 지랄하네. 운도 계속 되면 운이 아니라 실력이지. 그리드가 의도해서 바사라를 황제로 만든 게 맞다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고?”
“템빨국으로 이주하겠다고.”
“뭐? 너도?”
“응, 지금 상태론 이 나라에 있어봤자 딱히 미래가 안 보여. 나중에 템빨국이 본격적으로 야욕을 드러냈을 때 가장 먼저 멸망할 나라일 거야. 그 전에 미리 템빨국으로 가서 나도 숟가락 걸치는 게 맞지.”
“흠....”
이제 세력은 양분되고 있었다.
안전하고 확실한 제국이냐, 미래가 기대되는 템빨국이냐.
새황제 바사라가 화합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후 제국은 착실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영토가 확장 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고, 반면 템빨국은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어 주변 왕국들을 집어삼킬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두 개 국가를 제외한 다른 왕국들은 거의 가망이 안 보였으므로 플레이어들에게도 결단이 필요했다.
미리 배를 갈아탄다는 것이다.
굳이 그러는 이유를 뽑자면 3개가 있었다.
첫째, 템빨국의 세력 확장 가능성.
둘째, 대악마 베리드 사건으로 드러난 국력의 중요성.
셋째, 동대륙이라는 변수.
특히 동대륙과 관련한 정보가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전파됨에 따라서 사람들은 환국과 양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동대륙을 지배하는 악독한 세력....
과거의 사하란 제국보다 더한 선민의식을 품고 있는 초월자들이 자칫 서대륙으로 진출하기라도 했다간 약소국들은 하루아침에 멸망당할 것이고 멸망한 국가의 플레이어들은 너무나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국가는 제국과 템빨국 정도이리라....
그렇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템빨국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는 많은 변화를 동반하고 있었다.
“쿠륵. 쿠르륵.”
오크족.
“.....”
엘프.
“크하하핫!!”
반용족 등등.
제국의 폭정을 피해 대륙 곳곳에 숨어있던 이종족들이 각지에서 출몰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