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1권 - 5화
제작 재료를 선택할 때는 신중해야한다.
광물에 귀속 된 옵션이 뛰어나다고 해서 경도, 강도, 인성, 연성, 취성 등의 기본 성질을 간과한다면 제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다이아몬드에 ‘무척 단단하다’는 설명이 붙은 걸 보고 검의 재료로 사용했다간 망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제아무리 위력이 강해봤자 한두 번 휘두르는 것으로 내구력이 박살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번엔 달라. 너무 많은 걸 고려할 필요 없이 성능 위주로 선택하면 된다.’
새롭게 진화한 광물 창조 스킬에 들어가는 필수 재료는 무려 <파브라늄>이다.
파브라늄의 내구력은 무한이었고 자아 부여와 관련 된 문제도 이미 해결돼 있다.
파브라늄과 조합할 4개의 광물 중 하나로 <광룡철>을 선택한 그리드는 나머지 3개의 광물을 큰 제약 없이 고려할 계획이었다. 다 필요 없고 무조건 좋은 걸 쓰겠다, 이 말이다.
요건만 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중상위 광물들은 후보에서 제외다.
돈과 시간, 그리고 무력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정말로 천운이 따라야지만 구할 수 있는 그런 극상급 광물들만 사용해야한다.
‘단, 광룡석과 광룡구는 예외야. 억압과 폭주의 특성은 경계해야해.’
광룡석과 광룡구 또한 광룡철과 마찬가지로 네바르탄의 광기의 영향을 받은 광물들이다.
광룡석에는 다른 광물과 혼합할 경우 그 광물 고유의 특성을 삭제하는 <억압>의 이능이, 광룡구에는 다른 광물과 혼합할 경우 그 광물 고유의 특성을 배가시키는 <폭주>의 이능이 깃들어 있다.
억압은 파브라늄의 고유 특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었고 폭주는 제어가 어렵다는 위험성이 존재했다.
‘파브라늄의 자아가 증폭됐다가 뭔 사달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거고.... 가만? 아, 이거 엿 됐네.’
장고하던 그리드의 골치가 아파졌다.
광물 선별 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임을 직감한 까닭이다.
‘억압, 폭주만 예외로 할 게 아니라 속성의 편향 자체를 지양해야 되잖아?’
새로이 창조할 광물은 파브라늄과 다르다.
파브라늄 이상의 성능을 지니되 수량이 한정적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
앞으로 그리드가 제작할 모든 아이템의 재료로 사용될 것이므로 뚜렷한 속성은 독이 될 여지가 크다.
‘아, 썩을....’
그리드가 탁자 위에 늘어놓은 광물들과 각종 무구를 시야에 담았다.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20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탁자에 올려놔도 자리가 부족했다. 몇 개의 아이템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최소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었으니 누가 보면 기절초풍할 광경이다.
‘원래는 성스러운 갑옷 세트를 분해해서 아다만티움을 얻고 그걸 광물 창조의 재료로 삼을 계획이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너무 강한 속성은 안 된다.
궁극의 신성력이 깃든 광물은 부정한 속성이 깃든 아이템의 제작재료로 활용하기 힘드니까.
설령 큰 무리 없이 제작에 성공한다 해도 옵션 각인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기본 성능은 생각대로 나와도 옵션은 쓰레기로 귀속 될 거라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악마의 부산물도 제외시켜야 돼. 가능한 무속성을 지향하자.’
간단히 말하자면.
새로운 창조 광물은 밀가루 반죽이 되어야한다.
밀가루 반죽 자체의 색은 희고 간이 약하지만 거기에 어떤 재료를 넣느냐, 어떤 조리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요리로 재탄생하지 않는가.
창조 광물은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을 제작하는 뼈대가 될 것’이다.
온갖 아이템의 재료로 활용되며,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속성을 부여하는 편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니까 창조 광물 자체는 무속성이여야 한다.
파브라늄처럼 수량이 한정적이라면야 온갖 속성을 최대한 귀속시켜 단일 위력을 극대화시켰겠지만 말이다.
“끄응....”
그리드의 미간에 주름이 떠올랐다.
고위 재료일수록 뚜렷한 속성을 지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무속성 광물 중에 최고는 푸른 오리하르콘인가.’
물론 푸른 오리하르콘에는 숲의 수호자의 마력과 달빛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가 기능은 ‘어두운 장소에서 강화’, ‘가벼움’, ‘절삭력’ 등의 특성이지 수풍지화나 신성력, 마기 등의 속성이 붙지는 않았다.
그리고 푸른 오리하르콘은 지상 최강의 광물이다.
궁극의 신성력을 품은 신계의 광물 아다만티움, 궁극의 마기를 품은 지옥의 광물 블러드 스톤보다는 다소 임팩트가 부족할지 몰라도 어쨌든 동급의 광물이라고 우겨도 설정 상 문제는 없었다.
토벌당하기 시작하는 대악마들과 타락한 신들.
이제 와서 인계가 신계, 지옥보다 못하다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었으니.
애초에 푸른 오리하르콘은 구하기도 힘들다.
무조건 숲의 수호자를 격퇴해야했고 숲의 수호자는 템빨국에서만 리젠되는 보스 몬스터이기 때문에 템빨국이 독식 중이다. 일반인에게 있어서 푸른 오리하르콘은 하늘의 별처럼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 푸른 오리하르콘의 가치나 성능 면에서는 문제가 없어. 다만....’
<푸른 오리하르콘>
오리하르콘에 숲의 수호자의 마력과 달빛이 깃들어 탄생한 광물입니다.
이미 숲의 수호자의 마력에 침식되어 새로운 마력을 부여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지상의 모든 광물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경도와 강도를 지녔습니다.
무게가 가볍고 어두운 곳에서 더욱 강해집니다.
무게:3
푸른 오리하르콘이 무속성인 이유.
다른 마력의 침식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성질 때문이다.
‘이걸 창조 광물의 재료로 써먹으면 망하지.’
속성 부여를 지양하려는 이유는 창조 광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푸른 오리하르콘을 써서 마력 부여를 어렵게 만들어버리면 본말전도였다.
‘새 광물로 만들 아이템에 마력을 부여할 일도 더러 있을 테니.’
늪에 빠져버렸다.
생각이 길어질수록 고민이 깊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지끈지끈.
두통마저 느끼기 시작한 그리드의 시야에 ‘장시간 Satisfy 이용은 건강에 무리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스쳐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아.”
그리드는 이제 완전히 무르익었을 인재 한 명을 떠올렸다.
마이너였다.
그리드가 파브라늄과 광룡철 등의 특수 광물을 찾을 수 있게끔 도움을 줬던 광물 탐지기.
그리드가 시켜서 10년째 억지로 광물에 대해서 공부해온 그의 광물 지식은 이제 거의 현자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
알현실.
“최고의 무속성 광물이 뭐냐고요?”
그리드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아니, 걸어온 마이너는 바로 해답을 내놓았다.
“그야 당연히 블랙 미스릴이죠.”
“....”
세월 참 빠르다.
처음 만났을 때는 13살 꼬마였던 녀석이 어느덧 20대 중반에 들어서 멋들어진 수염까지 기르고 있으니.
광룡철 탐사 이후 오래간만에 마이너를 만난 그리드는 깊은 감회에 젖었다.
반면 마이너는 그다지 반가운 눈치가 아니었다.
<낭중지추(SS)>
1000만 명 당 1명꼴로 가질 수 있는 재능입니다.
재능이 매우 빼어나 숨어 지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납니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세력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될 운명입니다. 유혹을 많이 받다보니 필연적으로 배신을 밥 먹듯이 합니다.
능력치 성장속도가 매우 빠르며 오만합니다.
마이너는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풍요를 스스로의 실력으로 일군 것이라 믿고 있었다. 자신을 품을 수 있는 군주는 제국 황제가 유일하다 생각했다.
그의 입장에서 그리드는 늘 부족한 왕이었다.
자신 같은 천재에게 억지로 광물을 공부시킨 것으로 모자라 <광물탐지부서>라는 해괴망측한 조직의 총책임자로 앉힌 왕이 달갑게 보일 리 만무했다.
하지만 마이너는 그리드를 배신하지 않는다.
늘 투덜거리면서도 그리드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이유는 낭중지추라는 특성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의 존경심 때문이었다.
마이너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리드를 상당히 존경하고 있었다. 자신 같은 평민 출신이 나라를 세우고 이끌었으니 존경할 수밖에.
이는 마이너가 지난 수 년 동안 쇄도해온 타국의 스카웃 제의들을 모조리 무시한 이유이기도 했다.
....다른 국가가 아닌 제국이 나를 섭외하려 했다면 고심 끝에 등을 돌렸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
“블랙 미스릴?”
오랜만에 그리드를 알현하자 잡념에 빠졌던 마이너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리드의 반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블랙 미스릴은 보통의 미스릴처럼 높은 강도를 지녔으면서 경도는 푸른 오리하르콘에 버금갈 정도로 높죠. 그리고 ‘검다’는 이명이 붙은 이유는 단지 색이 검어서라기보다 일반 미스릴과 달리 신성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블랙 미스릴에는 신성력이 깃들어 있지 않아요. 속이 텅텅 비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마이너가 입 꼬리를 히죽 추켜올렸다. 무척이나 기고만장한 미소였다.
“뭐, 전하 같은 비전문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또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죠. 제국 황실이 대대로 블랙 미스릴을 활용해왔다는 겁니다.”
“나도 알아. 블랙 미스릴은 새카만 색과 달리 백지 같은 면이 있어서 어떤 속성도 잘 흡수하고, 그래서 황실은 블랙 미스릴에 주목했던 거잖아?”
“그걸 어떻게....?”
“적기사들이 입고 다니는 갑옷의 재질이 황제의 적기가 깃든 블랙 미스릴이더라고.”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적기사를 때려 죽여서 알았지.”
“과연 전하.... 소국의 왕답게 맨날 직접 현장을 뛰시다 보니까 많은 지식을 쌓으시게 되는군요.”
“비꼬지 말고 하던 말이나 계속해봐. 혼난다.”
“....칭찬한 건데.”
귀여운 녀석.
그리드는 마이너를 만날 때마다 짓궂은 웃음이 나왔다.
대놓고 투덜거리고 대들면서도 시키는 일은 또 꼬박꼬박 잘하는 모습이 깜찍했다.
뭐, 사실은 광룡철 탐사 사건 때 녀석에게 큰 호감을 품게 된 것도 있다.
당시 광룡철을 발견하고 한계를 돌파했던 마이너의 상태창에 떠올랐던 ‘존경심’이라는 감정을 그리드는 엿봤으니까.
능력 출중한 인재가 나를 존경한다니 예뻐 보일 수밖에.
이쯤 되면 버르장머리 없는 것도 매력이다.
“블랙 미스릴이 최고의 무속성 광물인 이유는 방금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 백지 같은 성질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서 더 강하며 확률적으로 무엇이든 절삭할 수 있는 푸른 오리하르콘과 비교했을 때 타고난 위력은 적지만 조화를 어떻게 이루냐에 따라서 신계의 광물 아다만티움을 초월할 수도 있는 것이죠.”
“흠....”
신들의 실체를 엿보고 신계에 대한 환상이 깨진 그리드는 마이너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인계의 광물이라고 해서 신계의 광물보다 무조건 못한다는 건 어긋난 상식일 수도 있었다.
‘좋아. 그럼 두 번째는 블랙 미스릴이다.’
창조 광물의 컨셉이 ‘앞으로 제작할 모든 아이템의 뼈대’라는 것을 고려해 봤을 때 블랙 미스릴은 정말로 이상적인 광물이었다. 그리드의 창조 광물은 앞으로 제작할 아이템에 새로운 속성을 부여할 때마다 그 속성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맡을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블랙 미스릴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드 소유의 블랙 미스릴은 단 하나에 불과했고 그것은 메르세데스에게 하사한 <영웅왕의 갑옷>의 재료가 된지 오래였다.
아무리 광물 창조의 재료로 사용할 거라지만 신화급 아이템을 분해하는 건 영 내키지가 않았다.
‘마이너가 구할 수 있으려나?’
일단 넘긴 그리드가 자세히 질문했다.
“나는 파브라늄과 광룡철, 그리고 블랙 미스릴에다가 2개의 광물을 더 혼합해서 새로운 광물을 창조할 생각이다. 대충 어떤 성질의 광물인지 느낌이 오지? 자, 그럼 나머지 2개의 광물은 뭐를 쓰는 게 좋을까?”
“무한 증식시켜서 다양한 무구의 제작 재료로 활용할 계획이신 거군요. 그래서 굳이 무속성 광물을 찾으신 거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은 마이너가 대답했다.
“당연히 아다만티움과 블러드 스톤입니다. 각각 인계와 지옥을 대표하는 최고의 광물들이니만큼 대체품은 생각할 수도 없죠. 아다만티움은 전하께서 예전에 입고 다니던 그 번쩍번쩍한 갑옷 녹여서 얻으시면 되고 블러드 스톤은 투명하고 빨간 검 녹여서 얻으세요.”
“....광룡석으로 속성을 삭제시키란 말이군.”
“네, 워낙 대단한 광물들이니만큼 속성을 제거하더라도 푸른 오리하르콘 이상의 경도와 강도를 자랑할 겁니다. 최고의 무속성 광물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어봐주십쇼. 그럼 블랙 미스릴이 아니라 속성을 제거한 아다만티움과 블러드 스톤이라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그리드에겐 광룡석으로 만든 망치와 모루가 있다.
아다만티움과 블러드 스톤의 속성을 제거하는 일은 노가다만 하면 충분히 가능했다.
다만 여기서 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아다만티움이야 이제 잘 안 쓰는 성스러운 빛의 갑옷을 분해해 얻으면 된다지만, 블러드 스톤을 얻기 위해서는 <천하를 짓뭉갤 고귀한 백호의 검>을 분해해야한다는 점이었다.
이것도 현재 메르세데스가 사용 중이다. 심지어 신화급 아이템이므로 선뜻 분해할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그리드가 마이너에게 베리드의 부산물들을 가리켰다.
“저것들 중에서 블러드 스톤을 대체할만한 건 없을까?”
“....?”
마이너가 <베리드의 발굽>을 손에 집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블러드 스톤보다 훨씬 더 단단해 보이는데요?”
“....내 생각도 같아.”
그럼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좋아, 어서 가서 블랙 미스릴을 구해오도록.”
“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블랙 미스릴 구해오라고.”
“아니, 황실이 블랙 미스릴을 적기의 주입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는 거, 전하께서도 알고 계신다면서요? 생각해보십쇼. 블랙 미스릴을 확보하는 루트는 반드시 제국이 독점하고 있을 겁니다. 최소 공작급 이상의 인사가 관리하거나 최악의 경우 황실이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있을 텐데 제가 그걸 무슨 수로 구합니까? 나가 뒤지라고요?”
“확실히.... 너한텐 힘들 수도 있겠군. 그럼 내가 알아서 구할 테니까 놔둬.”
“지금 제 말을 귓등으로 들으셨습니까? 죽는다니까요?”
“너 안 보내고 내가 구하겠다니까?”
“그러니까 전하께서 죽는다고요!!”
“안 죽어. 제국의 공작들한테 부탁해보면 해결책이 생길 수도 있어.”
“정말 오늘 뭐 잘못 드셨습니까? 누구한테 뭘 부탁해요?”
마이너는 고위 귀족이 아니다. 그리드와의 친분이 깊고 광물과 관련해 맡은 역할이 크다곤 하나 국가적으로 봤을 때 요직에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하여 그는 많은 걸 모른다.
그리드가 무신의 유적지에서 제국 공작들과 큰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대악마를 함께 토벌한 것이며, 얼마 전 제국 공작들을 그리드가 구해다가 치료해줬다는 사실조차도 마이너는 몰랐다.
그가 가장 최근에 들은 그리드의 소식은 천공왕 리갈을 격퇴했다는 것.
마이너는 그리드가 미친 게 아닌지 의심되었다.
“젠장, 그냥 제가 제국에 잠입하겠습니다. 저쯤 되는 인재라면 제국도 쌍수 들고 환영할 테니까 가서 대충 아무 작위나 얻고 활동하면서 정보를 수집해 블랙 미스릴의 행방을 찾아내도록 하죠. 한 10년, 20년쯤 걸릴 테니까 그때까지 옥체 보존 잘 하면서 기다리고 계세요.”
“와, 이놈 보게 이거. 이참에 제국으로 망명하려고 수작부리네.”
“그렇긴 한데 어쨌든 블랙 미스릴은 꼭 구해드리겠습니다.”
“관둬. 내가 구할 테니까.”
“아니, 대체 뭔....!”
무슨 쥬드랑 대화하는 거 같다.
마이너가 환장하는 그때였다.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라우엘 재상의 음성이 들려왔다.
“바사라 공작께서 알현을 요청하셨습니다.”
“....?”
바사라?
내가 섬길만한 군주는 제국 황제뿐이다.
늘 이와 같은 말을 지껄여왔던 마이너답게 그는 제국 동향에 꽤 관심이 많았다. 광물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국을 공부하기도 했었다.
바사라라는 이름은 그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바사라 공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온 대륙을 뒤져봐도 황족 바사라밖에 없었다.
얼음장처럼 굳어선 마이너를 힐끔 보고 웃음을 터뜨린 그리드가 외쳤다.
“모셔.”
그러자.
“템빨왕 전하를 뵈옵니다.”
화려한 금관을 쓴 아름다운 여성.
소문 속 바사라 공작과 생김새가 정확히 일치하는 인물이 알현실로 들어와 그리드 앞에 정중히 예를 올렸다. 무려 고개를 숙였다. 제국 황실의 핏줄이 말이다.
“회복에 전념하느라 찾아뵙는 게 늦었습니다. 큰 신세를 졌습니다.”
“신세라니.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서로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사하란 제국의 공작이자 적법한 황위계승권을 보유한 바사라 에일라 폰 사하란이 빛의 여신께서 지켜보는 가운데 맹세하오니. 본인 바사라는 앞으로 평생 동안 템빨왕 전하께 3번의 큰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설령 황위계승권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실천 될 은혜이니 전하께서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네?”
그리드를 대신해서 마이너가 반응했다.
멍해진 표정으로 반문하는 그의 눈에 비치는 그리드는 더 이상 왕이 아니라 신이었다.
그리드는 곧바로 부탁했다.
“블랙 미스릴을 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