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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953화 (943/1,794)

템빨 51권 - 4화

“4황자 에단이 그렌할, 모르이즈, 바사라 공작을 무저갱에 가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공작의 사병들이 경고를 무시하고 황도로 진격한 바 있습니다만, 도착 후 즉시 사라졌습니다. 영원의 탑에서 보고하기를 대규모 매스 텔레포트의 수식이 포착됐다고 합니다.”

황도 타이탄.

돌아온 황제 쥬앙데르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황당무계한 소식이었다.

상황을 짐작한 황제가 즉시 명했다.

“당장 공작들을 석방하고 반역자 에단을 구속하라.”

긴말은 필요 없었다.

반역자로 선포된 시점에서 에단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다.

타이탄의 모든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천의 군사가 에단의 궁전을 장악한 후 그의 사유재산을 모조리 압수했다.

재산에는 당연히 군대도 포함돼 있었고 마장기 군단을 비롯한 에단의 모든 병력이 황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단, 실질적으로 운용 가능한 마장기 4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말이다.

“무엄한 놈들! 비키지 못하겠느냐! 내가 제국의 비다! 훗날 황제가 되실 분의 어미다! 제국의 병사인 네놈들이 감히 내 앞길을 막아서는 게 가당키나 하더냐!!”

황비 마리의 궁전 또한 수천의 병사들에게 포위당했다.

아들이 반역자로 선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눈이 뒤집힌 황비가 당장 황제를 알현하겠다고 뛰쳐나갔지만 기사들이 그를 제지했다.

“반역자가 황제가 될 거라고 말하시는 겁니까? 그 또한 반역이요, 대역죄입니다. 언행에 주의하십시오.”

“뭐, 뭐라……! 일개 근위 기사 따위가 감히……!!”

“비께서 많이 흥분하신 듯하니 어서 안으로 모셔라.”

“예!”

“놔라! 이것 놔!!”

황비가 아무리 언성을 높여 봤자 기사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녀가 황후 아리아떼를 시해한 진범임을 알고 있어서?

아니, 모른다.

황제는 아직 진실을 공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의 태도가 냉담한 것은 결국 그들이 황실의 기사이기 때문이다.

황실의 기사란 즉 황제의 기사였으니까.

그들이 황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상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황제의 뜻대로 다룰 뿐이다.

“아일렌 후작은?”

“에단이 반역자로 공표된 즉시 황도를 떠났다는 소식입니다. 이미 5천의 추격대를 보냈습니다.”

“5천으론 어림없다. 당장 1만의 병력을 추가로 파견하고, 각 군의 장군들에게 연락하여 아일렌 후작령으로의 진군을 명하라.”

“예!”

마갑 첸슬러.

다섯 기둥 중 유일하게 황제의 기사 출신인 그는 적극적으로 반역자 척결에 나섰다. 황제에게 위임받은 군권을 철저하게 휘둘러 에단의 외가부터 압박했다.

에단을 도울 여지가 있는 세력은 미리 철저히 짓밟는 편이 낫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적기사단에 대한 취급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검공 리미트가 황비파의 거두가 된 것은 이제 쉬쉬할 일도 아니었기에.

“검공과 적기사단은?”

“검공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다만 나머지 기사들은 병영에 모여 있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네오 적기사단에게 그들을 토벌하라는 공문을 보냈으니 곧 소식이 올 것입니다.”

“음.”

당연한 말이지만, 적기사들 또한 제국과 황실에 충성해 온 자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적기사단 단장 리미트가 변절자라는 점이었다.

리미트가 적기사들의 사상을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변수가 되지 않게끔 모조리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

적기사들의 실력이 출중하다고 하나 그랜드마스터가 육성에 개입한 네오 적기사단과 비할 바는 아닐 터였고.

“검공은 에단과 함께 탈출한 것인가…….”

황비의 외가도, 적기사들도 사실 다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가장 큰 죄인은 황비 마리와 에단, 그리고 검공이었으며, 무조건 얻어야 할 것은 마장기였다.

결단코 그들을 놓쳐선 안 되는 것이다.

“서둘러라.”

첸슬러가 병사들을 재촉했다.

***

“재미있군.”

베인.

황제의 그림자이자 다섯 기둥의 하나인 그가 무저갱을 찾아왔다.

공작들을 석방시키라는 황명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무저갱에 공작들은 없었다.

짙은 어둠에 별처럼 떠다니는 것은 강렬한 검기의 잔재뿐.

검공 리미트의 검기였다.

“리미트가 죽은 건가?”

“그래, 침입자가 공작들을 빼돌리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달려왔다가 죽었다.”

간수장 비프론즈의 대답이었다.

베인으로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마족.

그의 정체는 오직 황제와 그랜드마스터만이 알고 있다.

비프론즈 본인조차도 스스로를 몰랐고, 베인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침입자가 누구지?”

무저갱을 돌파하고 리미트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제국에서도 우리 다섯 기둥밖에 없다.

하지만 다섯 기둥 중 누군가가 그런 짓을 벌였을 리는 만무했다.

우선 카일과 첸슬러는 황제의 명령만 좇아 움직이는 강아지와 개다. 황제가 아직 몰랐던 문제를 그들이 먼저 인지하고 해결했을 리 없다.

하물며 마법왕 골드히트는 영원의 탑에 칩거하고 있는 상태였고, 그랜드마스터 지크프렉터는 이런 하찮은 일에 관여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외부인이군.”

베인은 쉽게 유추했다.

“대륙 제일 창, 무패왕의 후예, 그레니어의 은둔자, 무후총의 망령, 메르세데스.”

베인은 제국 바깥의 강자들을 하나씩 언급해 보았다.

13명 정도 되었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템빨왕.”

그리드도 포함됐다.

이제 Satisfy 세계관에서 그리드는 ‘대륙급 강자’로 인식되는 것이다.

비프론즈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이름을 말해 봤자 나야 모르지. 침입자하고 사이좋게 자기소개를 나눈 것도 아닌데 내가 놈의 정체를 어떻게 알겠어? 애초에 나는 열쇠를 지키려고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져서 쓰러졌다고. 정신을 차려 보니까 리미트는 죽어 있었고 말이야.”

“혀가 긴 걸 보니 거짓말이군. 뭐, 네가 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미 누군가가 알고 있으니.”

베인이 온통 어둠으로 잠식돼 있는 무저갱의 곳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정확히 열네 곳을 보았다.

그랜드마스터가 은밀하게 설치해 놓은 감시 마법들이 있는 위치였다.

베인이 콧방귀 뀌었다.

‘냄새나는 놈.’

처음 본 그날부터 지독한 악취가 진동하던 놈이었다.

뭐, 놈이 어떤 꿍꿍이속을 지녔든 내 알 바는 아니다.

나는 단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황제의 등을 지키면 될 뿐.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황제를 지킬 것이다.

갑자기 본색을 드러낸 그랜드마스터가 황제를 위협할지라도.

스팟-!

섬전과도 같은 도약.

비프론즈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베인이 무저갱을 떠났다.

덩그러니 남겨진 비프론즈가 혀를 내둘렀다.

“보이지도 않네. 역시 인간은 무서워…….”

그리고.

“공작들의 종적을 찾아라.”

무저갱을 빠져나온 베인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명령했다.

그러자 <이클립스>가 움직였다.

***

베인이 무저갱에서 겪은 일을 황제에게 보고할 때였다.

“무사해서 다행이오.”

행방불명됐던 공작 중 두 명이 돌아왔다.

멀쩡한 모습의 그렌할과 모르이즈였다.

옥좌를 박차고 일어나 그들을 맞이해 준 황제가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그렌할의 몸 곳곳에서 엿볼 수 있던 상처들이 사라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그렌할로 변장한 것일까?

아니, 그렌할이 맞다.

적기를 운용한 황제는 통찰할 수 있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군.”

그렌할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은 단순한 흉터가 아니었다. 제국과 황실을 향한 충성의 증표요, 훈장이었다.

그것을 지운 방법은 중요한 게 아니다.

지웠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의 황실을 향한 충성이 희석됐음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니까.

“공들을 도운 이가 누구요?”

“템빨왕입니다.”

“……?”

“템빨왕과의 인연을 설명드리기에 앞서 전해 드릴 진실이 있나이다.”

“마리에 관한 일인가. 그녀가 야탄교와 협력하여 황후를 시해했다는 사실은 이제 나도 알게 되었소.”

“……!”

“얼마 전 브누아가 알려 주었소.”

“그렇습니까…….”

“내 면목이 없소. 황비의 실체도 모른 채 그녀의 치마폭에 숨어 나라를 병들게 만들었고, 종국에는 귀공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으니.”

황제는 공작들의 사병이 황도까지 진격했던 일을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당연하다.

황제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공작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황실이 큰 혼란을 겪게 된 지금, 방황하는 귀족들을 규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작들의 힘이 필요했다.

그렌할과 모르이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새 백발이 되셨군…….’

오래간만에 만난 황제의 머리카락은 완전히 하얗게 세어 있었다.

건국 황제 사하란의 피를 짙게 이은.

어쩌면 유일할 ‘타고난 초월자’가 평범한 인간처럼 세월 앞에 무력해지고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된 그가 겪은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엿본 그렌할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폐하를 지탱해야 한다. 나의 선조께서 세우셨고 나의 아버지와 조상들이 지켜 온 이 나라를 무너지게 할 순 없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렌할은 많은 고민을 하였다.

어쩌면 제국을 떠나는 게 옳지 않을까 고민했을 정도다.

그리드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파였다.

하지만 이 순간.

정작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자 그렌할의 흔들리던 마음은 도리어 중심을 잡았다.

현현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던 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폐하, 감히 진언컨대 마리의 죄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마리와 에단 모두에게 가장 큰 형벌을 내리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황실의 기강이 바로 서고 귀족들이 안심할 것입니다.”

가장 큰 형벌이란, 죽이는 게 아니다.

죄인을 무저갱에 가두고 영겁의 시간과 절망 속에 죽어 가게끔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하란 제국 최대의 형벌이었다.

그리고 당대 황제 쥬앙데르크가 무저갱에 가둔 죄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피아로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오해하고 그의 가족들을 모조리 처형했을 때도 무저갱은 떠올리지 않았을 정도다.

그만큼 무저갱은 쉽게 접근하는 곳이 아니었다.

에단이 즉시 반역자로 공표된 이유다.

귀족을 대표하는 공작들을 무저갱에 가둔 에단의 행동은 그 어떤 귀족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었고, 그 사실을 알기에 황제는 친아들인 에단을 일고의 고민 없이 버린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 줬다간 귀족들의 불신과 반발을 샀을 게 뻔하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용단을 보여 줄 때이다.

깊이 사랑했던 여인을, 내 아이의 어머니를, 그리고 내 아이를.

“공의 말씀이 맞소. 나는 두 사람의 죄를 낱낱이 밝힌 후 둘 모두 무저갱에 가둘 것이오.”

쥬앙데르크는 아버지이기에 앞서 황제이기에 ‘인계의 지옥’으로 보내리라 선포했다.

이로써 공작을 포함한 귀족들은 황제에게 지지를 보낼 것이고 황실의 무너진 기강은 다시 서리라.

황제가 씁쓸한 마음을 다스리는 순간이었다.

“폐하! 아일렌 후직령으로 진군 중인 군대들이 각지에서 격파당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재상 버몬트가 달려와 보고했다.

“……!”

“……!”

자리의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현재 황실은 무척 빠른 속도로 군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황제가 귀환한 즉시 이미 전국 각지의 군대가 아일렌 후작령으로 진군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일렌 후작 장본인조차도 아직 후작령에 도착하지 못한 채 쫓기고 있는 신세인데, 당최 그 누가 이처럼 민첩하게 우리의 움직임을 읽고 군대를 격파 중이란 말인가?

쉽게 추측하지 못하는 황제와 공작들에게 버몬트 재상은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발할라 왕국의 소행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뭣이?”

그렇다.

그랜드마스터조차 흥미를 보였던 동쪽의 지보(至寶) 사마천에게 있어서 제국의 혼란은 크나큰 기회였다. 그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제국을 갈기갈기 찢어지게 만들고 그중 일부를 발할라가 취할 수 있게끔 계획하고 있었다.

제국과 발할라 간의 휴전 협정?

발할라의 협정 대상은 황실이 아니라 그랜드마스터였다.

그리고 과거.

천상궁에서 아레스, 사마천과 대면했던 그랜드마스터는 그들에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좋은 협력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

[대상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악신의 기운을 감지하였습니다!]

[당신의 권능이 신을 부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대상의 정신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대제국의 정당한 혈통을 치료하셨습니다. 치유 대상 ‘바사라’가 앞으로 큰 업적을 세울 때마다 당신의 명성이 크게 오를 것입니다.]

[당신과 사하란 제국 황족 간에 긴밀한 유대가 생깁니다. 일부 황족이 당신에게 큰 호감을 품는 반면 누군가는 당신을 증오할 수도 있습니다.]

[사하란 제국의 공작 ‘바사라’와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템빨국 왕도 라인하르트.

바사라 공작이 눈을 떴다.

성녀 루비가 꼬박 하루를 곁에서 치료해 준 덕분이다.

“개보다 못한 놈.”

야탄의 기운이 바사라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루비에게 확인받은 그리드가 욕설을 뱉었다.

이미 황비는 아스모펠을 야탄의 정수로 중독시켜 피아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린 바 있다.

에단은 그 사실을 뻔히 알고도 같은 짓을 되풀이하려 했으니 도무지 인간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일단 시작해야겠어.’

공작들이 걱정돼서 매사에 집중하지 못했던 그리드.

마지막 남은 바사라까지 치료된 지금, 드디어 안심할 수 있게 된 그가 그동안 미뤄 뒀던 일을 실행하고자 마음먹었다.

‘새로운 광물을 창조한다.’

파브라늄.

<파그마의 후예>의 직업 전용 아이템이었던 그것은 어디까지나 파그마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드의 상징이 필요할 때이다.

“후우.”

심호흡하고 집중력을 끌어 올린 그리드가 인벤토리 속 모든 재료 아이템과 모든 장비 아이템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파브라늄과 조합시킬 4개의 광물로 어떤 것이 가장 좋을까.

최선의 결과물을 위해서 그리드는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우선 광룡철은 무조건이야.’

광룡 네바르탄의 둥지에 자생하는 광물.

그것은 열흘에 한 번씩 증식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 파브라늄의 총량은 한 자루 검을 만드는 게 고작이었으나, 그리드가 새롭게 창조할 광물의 총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광대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히든 직업이 하나의 전용 아이템을 가질 뿐인 반면, 그리드는 이론적으로 수십, 수백 개의 전용 아이템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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