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945화 (935/1,794)

템빨 50권 - 18화

[수수께끼의 마족 ‘비프론즈’의 포박에 성공하였습니다.]

[비프론즈가 자신의 생존에 안도합니다.]

[이제부터 비프론즈는 당신과의 대화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임할 것입니다.]

[<마력이 깃든 열쇠 꾸러미>를 얻었습니다.]

[열쇠 꾸러미의 무게가 대단히 무겁습니다!]

[당신의 소지 한도 무게가 150퍼센트를 초과하여 모든 속도와 능력치가 크게 감소합니다.]

[열쇠의 족쇄로부터 해방 된 비프론즈의 능력치가 정상수치로 회복됩니다.]

‘뭐야 이거?’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온갖 칭호와 아이템 옵션까지 합한 그리드의 근력 수치는 플레이어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특히 베리드 레이드에 성공한 이후 업그레이드 된 <세상의 구원자> 칭호 덕분에 그리드의 현재 근력은 4천에 근접하는 상태였다.

아이템 소지 한도 무게?

과장 좀 보태자면, 일주일 내내 사냥만하며 잡템이 가득 쌓여도 굳이 마을을 다녀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넉넉했다.

수십 개의 보조 장비와 물약 수백 개를 상비하고 다님에도 말이다.

한데 고작 열쇠 꾸러미 하나 때문에 소지 한도 무게가 초과됐다고?

심각하게 수상하다.

열쇠 꾸러미를 쥐자 축 늘어지는 팔에 힘을 준 그리드가 열쇠의 상세 정보를 불러왔다.

<마력이 깃든 열쇠 꾸러미>

무저갱에서 쓰이는 열쇠 521개가 엮여있습니다.

그랜드마스터 지크프렉터가 ‘무게 증식 마법’을 걸어놓은 상태입니다.

무게:소지 한도 무게의 120퍼센트

‘열쇠의 족쇄라....’

확실하다.

열쇠 꾸러미에 이런 마법을 걸어놓은 의도는 비프론즈를 억압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랜드마스터는 비프론즈를 신뢰하지 못했던 거군.’

비프론즈 또한 그랜드마스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눈치였으니, 적어도 두 사람이 한패일 리는 없다는 확신이 생긴다.

‘이건 거세안으로도 못 푸는데.’

거세안은 ‘이로운 효과’를 삭제시키는 마안이다.

하지만 무게 증식은 해로운 효과로 분류됐다.

물론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이롭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열쇠 꾸러미에 귀속 된 무게 증식 마법은 소지자를 해롭게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리드는 거세안을 써봤다.

“짐은 너의 안락을 허락하지 않는다.”

“.....”

비프론즈가 미친놈처럼 쳐다봐서 민망하다. 역시나 거세안의 효과도 적용되지 않았으니 민망함의 강도가 커진다.

헛기침한 그리드가 화제를 돌렸다.

“재밌네. 그랜드마스터는 너를 의심하면서도 이곳의 관리자로 써먹었던 거야? 애초에 믿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열쇠를 맡긴 거지?”

“내게 열쇠를 맡긴 인간은 그랜드마스터가 아니라 백 년 전의 황제야. 그가 내게 열쇠를 맡길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았기 때문이고, 나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쇠를 충실히 지킬 수밖에 없었어.”

비프론즈가 이곳에서 태어나 머문 지 최소 백 년이 지났다는 뜻.

이런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죄수들과 함께 백 년 이상을 살아왔다니, 녀석의 삶도 참 기구하다 싶다.

“왜 이곳을 못 벗어나는 거지? 조금 더 지하로 내려가 보거나 인계로 올라가 보거나 할 수도 있었잖아?”

“인간들은 너무 강해서 두렵고 이 아래층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으니 두려웠다.”

“괴물?”

“히드라.”

“....!”

그리드는 히드라를 알고 있다.

검귀 이야루그트의 외침이 여전히 그의 뇌리에 남아있었다.

“겁 없는 놈...! 네놈은 목숨이 10개라도 되는 것이냐! 히드라조차도 내게는 함부로 덤비지 못했었다!”

눈 뒤집고 덤비는 쥬드를 향한 일갈이었다.

당시 이야루그트는 정말로 쥬드를 죽이려고 했었다.

멍청한 쥬드가 이야루그트를 적으로 착각해서 다짜고짜 때렸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것이다.

어쨌든, 지옥 제일의 검사였던 이야루그트의 무용담이 ‘히드라조차도 내게는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일 정도다.

이야루그트의 전성기가 대악마와 비견 된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히드라 또한 대악마급의 마물로 추측할 수 있었다.

“히드라는 당연히 지옥에 사는 놈인 줄 알았는데 왜 여기에 있어?”

“나도 몰라.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놈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거다. 머리가 9개나 달렸는데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재생돼서 죽지를 않고 놈이 뱉는 독액은 내 살과 뼈를 손쉽게 녹일 정도로 강력했어.”

“흠....”

그리드는 골치가 아팠다.

히든 퀘스트 ★해답에 도달하는 장소(1)★을 완전히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무저갱의 심처까지 이동해야하는데 과연 히드라를 퇴치할 수 있을까?

심지어 코크와 단 둘이서?

‘절대 불가능하지.’

최하급 대악마를 마지노선으로 잡아야하는 수준의 몬스터다.

풀 컨디션으로 싸워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강적인데 현재는 베리드의 힘과 흑화까지 소모한 상태다.

그나마 신격의 1회 사용 횟수와 벨리알의 힘은 남겨놓았다지만 이걸로는 부족할 것이 뻔했다.

‘전격 마기의 폭풍을 사용할 환경도 아니고.’

전격 마기의 폭풍은 비구름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스킬.

무저갱 내부에서는 발동이 어렵다.

애초에 쓸 수 있어봤자 초네임드급 보스 몬스터 상대로는 효용성이 거의 없고.

“근데.”

잠시 고민해보던 그리드가 자신의 등에 매미처럼 매달려있는 노에의 푸짐한 뒷목을 움켜쥐었다.

“너는 대체 왜 그렇게 겁을 먹은 거야?”

노에는 지옥 제일 마수다.

노에 스스로 근거 없이 자처하는 게 아니라 멤피스라는 종족 자체가 진짜로 지옥 최강의 마수였다.

지금의 노에는 살찐 고양이에 불과했으나, 언젠가 성체가 되면 히드라 이상의 존재감을 뽐내게 될 예정이었다.

녀석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끽해야 드래곤과 대악마밖에 없었다.

한데 일개 마족인 비프론즈에게 겁을 먹다니 도무지 납득이 안 됐다.

바둥바둥!

그리드에게 목덜미를 붙잡혀 축 늘어진 노에가 기겁하며 허우적거렸다.

바둑알처럼 검고 큰 녀석의 눈동자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모, 모른다옹. 그냥 무섭다옹.”

“음.... 얼굴이 엄청 흉측하게 생긴 건가?”

비프론즈는 미형의 사내였다.

새하얀 피부에는 잡티 하나 없었고 이목구비가 수려했으며 너울거리는 흑발에는 윤기가 철철 넘쳤다. 두 눈이 흰자위 없이 검게 물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잘 생겼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다.

마족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무서울 정도로 혐오스러운 외모일 수도 있었다.

그리드는 비프론즈로부터 과거의 자신을 엿봤다.

“힘내라....”

“....응, 고마워.”

힘없이 대답하는 비프론즈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이런 작은 짐승이 무서워할 정도로 내 얼굴이 흉측했었다니?

여태껏 다른 마족을 만나본 경험이 없기에, 비프론즈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못생겼는지를 알게 됐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오순도순하게 대화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코크는 곁에서 멍하니 지켜봤다.

‘방금 전까지 목숨 걸고 싸웠던 마족이랑 왜 갑자기 친구가 되신 거지?’

바로 곁에서 보고 있어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흐름이다.

‘이게 바로 그리드 님의 친화력....’

제국 공작들의 마음마저도 사로잡은 마성의 남자답게 마족마저 꼬시기 시작하는구나....

코크가 진심으로 감탄할 때였다.

“이, 이보게, 비프 간수장! 정신 차리시게!! 사악한 용족의 꼬임에 넘어가선 안 돼!! 수다 그만 떨고 당장 때려잡으라고!!”

저 멀리, 쇠창살 너머에 갇혀있는 드워프가 고래고래 소리쳐왔다.

케를 옹이었다.

그리드와 시선을 마주친 그가 히끅 놀라더니 또 다시 소리쳤다.

“이, 이보시오, 용족 양반! 당신의 검을 좀 구경시켜주시오!! 내 그 검을 살펴볼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음이외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습니다. 드워프는 다 저런 걸까요?”

코크의 감상이었다.

그리드가 질색했다.

“큰일 날 소리. 드워프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저 양반 만 저런 거겠지. 이런 곳에 수십 년을 갇혀있었으니 정신이 온전할 수 있었겠어?”

드워프라는 종족 자체의 성격이 저런 거라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내 목표는 드워프에게 대장기술을 배우고, 종극에는 그들을 포섭하여 템빨국을 강성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니까.

드워프는 부디 정상적인 종족이어야만 한다....

생각하며, 케를이 갇혀있는 감옥 앞으로 날아간 그리드가 <용의 날개>를 거뒀다.

“용족이랑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나봅니다?”

“사, 사악한 용족이랑 좋은 기억이 있을 리가 없잖소.... 응?”

침을 튀기며 소리치던 케를이 움찔, 말문을 닫더니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리드를 삿대질했다.

“다, 당신 지금 내게 존댓말 한 게요?”

“그렇습니다만.”

“히, 히익! 이런 미친 용족을 보았나!! 용족이 나 따위 미물에게 존댓말을 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용족이었어!!”

“.....”

“허억...! 쳐다보지 마시오! 무서워! 미친 용은 더 무섭다고!! 저리 가!!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

일단 좀 진정을 시켜주는 게 낫겠다.

한숨 쉰 그리드가 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케를이 갇혀있는 감옥 문을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열쇠가 무려 521개나 있었으니 이중 어떤 열쇠가 감옥 열쇠인지 찾기 힘든 것이다.

차례대로 자물쇠에 열쇠를 넣어보던 그리드가 결국 참지 못하고 만능열쇠를 꺼냈다.

딸칵!

만능열쇠가 낡은 자물쇠와 맞물리며 케를이 갇혀있는 감옥 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벌벌 떨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를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그, 그것은 파그마가 만들었던 전설의 만능열쇠?! 그건 또 어디서 난 게요!! 구경 좀 시켜주시오!!”

“.....”

아니, 조금 전까진 무섭다고 저리 가라며....

바로 옆에 찰싹 붙어선 만능열쇠를 요리조리 살펴보는 케를의 태도가 그리드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잠시 게슴츠레한 눈으로 케를을 바라보던 그리드가 열쇠 꾸러미를 코크에게 건네주었다.

“무거워서 갖고 있기 힘드네. 혹시 몰라 버릴 수도 없고, 네가 좀 갖고 있어줘.”

“넵!”

코크 덕분에 몸이 한결 가벼워진 그리드가 케를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케를 옹, 저는 템빨국 왕 그리드라고 합니다. 용족이 아닌 인간이며 파그마의 후예죠. 일단 오해를 풀고 대화를 나눕시다.”

“템빨국...? 왕? 인간? 파그마의 후예?”

케를의 표정이 멍해졌다.

한참을 뚫어져라 그리드를 바라보던 그가 슬금슬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감옥 안으로 다시 들어간 그가 스스로 감옥 문을 닫아버렸다.

“제발 날 두고 그냥 가시오.... 당신처럼 미친 종자와는 내 상종할 자신이 없소.....”

케를이 무저갱에 갇히기 전까진 템빨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무저갱은 사하란 제국의 고관대작만이 출입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리드가 스스로 주장하는 것과 같이 타국의 왕이라면 결코 이곳에 출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애초에 인간이 용의 날개를 가졌다는 것도 말이 안 됐고 파그마의 후예는 개뿔.... 개나 소나....

케를이 감옥 구석에 조용히 쭈그려 앉는 순간이었다.

“찾았습니다!!”

저 멀리서 레쉬의 외침이 들려왔다.

“공작들을 찾았습니다, 그리드 님!!”

“....!!”

두 눈을 부릅뜬 그리드가 황급히 몸을 날렸다.

어찌나 마음이 급한지 이동 속도 상승 버프 물약까지 복용한 그가 순식간에 레쉬의 곁으로 도달했다.

그리고 보았다.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세 명의 공작을.

그들 모두 다행히 살아있었다.

다만, 문제는....

“어째서.... 어쩌다가 이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그리드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두 눈을 잃은 그렌할과 사지의 힘줄이 잘려나간 채 목줄이 채워진 모르이즈,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는 바사라.

세 사람의 처참한 모습이 그리드의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어떤 개새끼가 당신들을....!”

눈앞이 핑핑 돌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이성의 총량을 아득히 초월하는 분노에 현기증마저 느낀 그리드가 잠시 휘청거렸다.

그에게 만능열쇠를 건네받은 코크가 감옥 문을 열었고, 뒤늦게 그리드의 기척을 읽은 그렌할은 쇠 긁는 것처럼 쉰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도망.... 도망치십시오....”

“늦었어.”

이어지는 음성은 비프론즈의 것.

도끼눈 뜬 그리드가 비프론즈를 노려보자, 어느새 상당히 회복한 비프론즈가 자신을 포박하고 있던 은사를 풀어헤치며 말했다.

“검공이 온다.”

“....!”

[당신의 직감이 위험을 감지합니다.]

[시대의 강자를 발견하였습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그리드의 머리 위로 검이 떨어졌다.

그것은 실체하는 검이 아니었다.

피아로의 절구질를 연상하게 만드는 강기의 집약체였다.

“쿨럭....!”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처하지 못한 그리드가 피를 쏟았고, 쇠창살에 부딪쳤다가 튕겨져 나오는 그의 전면으로 세 자루의 이기어검이 쏟아졌다.

“그리드 님!”

공작들을 부축하던 코크가 뒤늦게 방패를 꺼내 그리드에게 달려갔지만 늦었다. 열쇠 꾸러미 탓에 그는 거북이처럼 느렸다.

세 자루의 검 모두 그리드의 가슴을 관통하기 직전이었고 그리드는 이어질 고통에 미리 대비해야만 했다.

이를 악 무는 그의 앞으로 날아오른 노에가 <무엄할지다>를 전개하기 직전.

까아아아앙-!

미리 움직였던 비프론즈가 다가와 그리드를 지켜줬다. 그의 발톱이 세 자루 검의 궤도를 비껴가게 만들었다.

“은혜는 갚는 편이야.”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군.”

피식 웃은 그리드가 신을 겨누는 검을 조립했다.

뒷짐 진 중년인이 강림하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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