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0권 - 10화
<연금술 연구소>
시설 레벨:고급 2
*생산 가능 상품 목록*
극상~중급 생명력 회복 물약. 극상~중급 마나 회복 물약. 최상급~하급 버프 물약 일체. 무기, 방어구 강화석. 하급 선글라스. 중급~하급 오브 일체. 화상통신용 수정구. 마력 감지탑. 마법 함정 7종. 원거리 통신 이어폰 등.
*연성 가능 금속 목록*
강철. 은. 흑철. 오리하르콘. ★금속 성능 강화★
*아이템 귀속 가능 옵션 목록*
근력 상승(小). 민첩성 상승(小). 체력 상승(小). 지력 상승(小). 이동 속도 상승(小). 자원 소모 감소(極小). 스킬 이펙트 강화(小). 멋짐. ★스킬 추가★ ★속성 추가★
레이단 연금술 시설의 현재 상태다.
나열 된 기능만 봐도 굉장히 훌륭한 시설임을 알 수 있다.
극상급 회복 물약과 최상급 버프 물약은 보스 몬스터도 쉽게 드롭하지 않는 진귀품으로서 ‘재벌 전용 소모 아이템’이라고 불릴 만큼 시세가 비쌌고 그만큼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그리드와 템빨단원들의 베리드 레이드 활약 원천은 연금술 시설에서 제작한 물약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오리하르콘 역시 고가품에 속하는 금속이었고 아이템에 귀속할 수 있는 옵션도 다양하다는 점이 주목해야할 부분이었다.
레이단의 연금술 시설이 언론에 공개 될 경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고가품을 독점 생산하고 아이템에 옵션까지 귀속할 수 있는 템빨국의 저력에 감탄하며 거래를 요청해올 것이었다.
‘속 빈 강정인 줄도 모르고 말이지.’
모든 시설에는 <유지비>라는 항목이 존재한다.
유지비를 제때제때 지급하지 않을 경우 시설의 레벨이 하락하고 급기야 작동을 멈추게 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은 ‘군사 시설의 유지비가 가장 비싸다.’였지만, 실상 독보적인 유지비를 자랑하는 시설은 바로 이 연금술 연구소였다.
천 명의 병사를 육성하고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고급 병영> 30채를 유지하는 비용보다 <고급 연금술 연구소> 1채의 유지비용이 더 클 정도.
물론 유지비는 어디까지나 최소비용이다.
투자비용은 훨씬 더 컸다.
지난 수 년 동안 템빨국이 벌어들인 수익 중 절반 이상이 단 1채의 연금술 시설에 투자됐을 정도였고 그런 투자가 있었기에 연금술 시설의 레벨이 고급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데 가장 큰 문제는.
-생명력 회복 물약 생산에 필요한 재료 목록-
라귀 3개. 롱티 허브 2개. 붉은 연꽃 2개. 정화수 0.5리터. 유리병 1개.
물약 생산 실패 확률 40퍼센트.
중급 생명력 회복 물약 생산 확률 40퍼센트.
고급 생명력 회복 물약 생산 확률 15퍼센트.
최고급 생명력 회복 물약 생산 확률 4퍼센트.
극상의 생명력 회복 물약 생산 확률 1퍼센트.
연금술의 모든 컨텐츠가 ‘확률성’이라는 부분에 있다.
연금술 시설에서 아이템을 생산하거나 금속을 연성할 때, 그리고 아이템에 옵션을 귀속할 때마다 재료를 요구하기 때문에 꾸준히 돈을 처먹었는데 정작 결과물에는 확신이 없었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으려면 돈을 소비하는 동시에 운까지 필요하다는 뜻.
심지어 옵션 귀속 컨텐츠는 재사용 대기 시간마저 존재한다.
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왕국들이 연금술을 등한시하는 이유이며, 그리드가 틈만 나면 연금술 시설을 욕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돈 먹는 하마 같으니.’
다른 건축물과 비교해서 유난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연금술 연구소.
돈을 덕지덕지 바른 티가 나는 연구소 입구에 도착한 그리드는 일단 욕부터 하고 봤다.
그건 거의 반사적인 태도였다.
그리드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야루그트에 귀속 된 <멋짐> 옵션을....
‘가성비 진짜 더럽게 나빠.’
마음 같아서야, 연금술 시설을 몇 번이나 폐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마법공학>에 대한 가능성 때문.
마법공학 분야는 대장장이 개인이 이룰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에 반드시 연금술의 도움이 필요했다.
“전하의 방문을 가슴 깊이 환영하는 바입니다!”
연금술 소장과 연금술사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그리드에게 부복했다.
다른 왕국들은 모두 등한시하는 연금술.
어딜 가나 홀대 받는 연금술사의 입장에서 템빨국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대 중 하나’였다.
무대를 잃고 싶지 않았던 그들은 그리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를 썼다.
“얼마 전에 오리하르콘 연성에 성공하였습니다! 고작 100개의 강철로 1개의 오리하르콘을 얻었지요!”
“오리하르콘 1개로는 표창도 못 만들어. 보고서 보니까 한 달 동안 총 13,000개의 강철을 투자했는데 그중 딱 하나만 오리하르콘으로 연성됐다면서?”
레이단의 영주 크리스가 그리드를 대신해서 대꾸했다.
그의 심드렁하고 부정적인 반응은 그리드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한편 그리드의 면을 살려주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일국의 왕이 아랫사람들의 면전에 대고 일일이 추궁해서야 위엄만 잃지 않겠는가.
대형 길드를 운영했던 크리스답게 이런 부분에선 능숙했다.
“....며,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시설의 레벨이 고급 3을 달성하게 되면 반드시 달라질 것입니다.”
연구소 소장이 진땀을 흘려가며 고개를 조아리자 크리스가 언성을 높였다.
“다음에는 다를 거다, 다음에는 달라질 거다. 매번 하는 말이 똑같군. 돈을 대체 얼마나 더 투자해야 소장이 말하는 다음이 오는 거지?”
“그만.”
잠자코 있던 그리드가 크리스를 제지했다.
‘돈은 내가 투자하는데 왜 얘가 목소릴 높여?’
라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영리해진 그리드였지만 대인관계에서의 눈치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그리드가 소장에게 질문했다.
“고급 3레벨을 달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소?”
“....여태까지 생산, 연성, 옵션 부분에서 성과를 거둘 때마다 시설물의 경험치가 누적되고 레벨을 올릴 수 있었지요. 그래서 시설의 레벨이 오르는 시간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었는데 이번은 다릅니다. 섣불리 추측할 수가 없습니다.”
“왜지? 경험치 누적에 별도의 조건이 추가된 건가?”
“그게.....”
얼굴에 뻘뻘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는 소장.
그는 그리드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당당하지 못한 태도가 그리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빨리 말하시오.”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리자 히익! 질색한 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연구소 레벨이 고급 2가되고부터는 생산, 연성, 옵션 부분에서 궁극의 성과를 거둘 때만 경험치가 누적되게끔 바뀌었습니다.....”
“....엉?”
“뭐?”
그리드가 넋 나간 표정을 지었고, 크리스는 두 눈에 핏대를 세웠다.
크리스가 멍하니 있는 그리드를 대신해서 나섰다.
“그러니까 뭐야. 기존에는 하급 물약만 만들어도 시설물의 경험치가 올랐는데 앞으로는 궁극의 물약만 만들어야 시설물의 경험치가 오른다, 이 말이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
“....맞습니다.”
“이런 미친!”
생명력 회복 물약 하나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최상급 생명력 회복 물약의 거래 시세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극히 비효율적이라는 뜻.
연금술 시설에서 물약을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차라리 물약을 사서 먹는 게 훨씬 나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템빨국이 자국 내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약을 연금술 시설에서 충당했던 이유는, 극상의 물약 확보를 노리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연금술 시설의 레벨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일단 연금술 시설을 가동시켜야 경험치가 눈곱만큼이나마 누적되고 레벨이 올랐으니 계속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제는 투자 자체가 무의미할 가능성이 생겨버렸다.
오직 궁극의 결과물을 내놔야만 경험치가 누적 된다고?
이제부터가 진짜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시작이었다.
“....미친놈들인가.”
그리드가 급기야 체통을 잃고 말았다.
연금술사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입 밖에 꺼내버렸다.
연금술사들은 하늘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전하! 저희는 미치지 않았사옵니다!”
“맞습니다! 저희의 정신은 온전합니다! 저희는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렸을 뿐이옵니다!”
“아니, 당신들 말고.”
S.A그룹 말이야.
연금술사 중 태반은 NPC였기 때문에 뒷말을 삼키는 그리드였다.
그의 속이 타들어갔다.
연금술! 아, 연금술이여!
내 주머니를 텅텅 비게 만드는 원흉이며, 매번 내 뒤통수를 후려쳐 눈앞에 별이 보이게끔 만드는 네가 기필코 큰 사고를 치고 말았구나...!
‘XX.... 사성 그룹 회장이 와도 운 없으면 고급3 레벨 못 찍겠다.’
그리드는 확신했다.
연금술.
효율은 극악이나 잠재력만큼은 독보적일 것으로 추정되는 학문.
그것은 플레이어를 위해서 존재하는 컨텐츠가 아니다.
그저 막연한 기대감을 담당하는, 일종의 환상에 불과했다.
크리스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이건 조급하게 군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레벨을 빨리 올리겠답시고 비용을 투자했다가는 재정이 파탄날 거야. 서두르지 말고 현재의 운영 방침을 유지하면서 시설을 활용하도록 하자. 그러다보면 레벨도 천천히 오르겠지.”
“한 20년, 30년 후쯤에는 고급 마스터 레벨 찍으려나?”
“.....”
20년, 30년 후에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연금술 시설은 우리들의 자식 세대에 이르러서야 고급 레벨 마스터를 달성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크리스의 마음이 참담해지는 순간이었다.
“환상의 컨텐츠라.... 뭐, 좋아. 마음에 들어. 그쯤 돼야 가치가 있지.”
혼잣말하는 그리드의 만면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무척 즐거워하는 눈치였기 때문에 크리스는 황당했다.
저벅저벅.
그리드는 앞장 서 걷고 있었다.
급기야 연구소의 중심에 있는 마력핵 앞에 선 그가 암흑의 룬을 개방했다.
쿠오오오오...
그리드의 몸 위로 검고 불길한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암흑의 룬을 개방하여 200의 악마력이 상승합니다!]
떠오르는 알림창을 무시한 그리드가 창백하게 질린 손을 마력핵 위에 얹었다.
두근! 두근!
레이단 연금술의 정수가 담긴 마력핵.
살아있는 동물의 심장처럼 숨 쉬는 그 거대한 자수정이 그리드의 내면에 담긴 힘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리드의 입가에 번진 짙은 미소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드....?”
“크리스, 내가 베리드의 힘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지 아직 설명 안 해줬지?”
파직-!
파지지지지지직!!
22위 대악마 베리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뜻대로 연성할 수 있는 그의 권능이 그리드의 손끝으로부터 태동한다.
그리드의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베리드의 발굽>이 허공을 부유하며 마력핵의 주변을 맴돌았다.
<연성> 시스템의 활성화였다.
“잠깐! 그리드!!”
크리스가 기겁했다.
연성은 특정 금속을 재료로 사용해 고유 성능을 강화시키거나 강철, 은, 흑철, 오리하르콘으로 변화시키는 시스템이다.
즉, 사용 재료의 가치가 오리하르콘을 초월할 경우 손해를 볼 우려가 큰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베리드의 발굽의 자체 성능을 강화하는데 실패할 경우.
베리드의 발굽은 강철이나 은, 흑철, 오리하르콘 중 하나로 변경될 테니까.
“야! 멈춰!!”
너무 큰 도박이다.
이대로는 힘들게 토벌한 베리드가 드롭한 최고의 금속을 잃게 될 거다.
격정에 휩싸인 크리스가 그리드를 말리려고 손을 뻗었지만.
“연성.”
한 발 늦었다.
그리드는 이미 베리드의 발굽을 재료로 삼아 연성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동시에.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찬란한 황금빛이 연구소 전체를 잠식하더니 이어서 연구소 내 모든 창문을 타고 바깥까지 뻗어나갔다.
100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살아가는 대도시 레이단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어버렸다.
“아....”
빛이 걷힌 후.
크리스와 연금술사들이 일제히 탄성을 토했다.
그들은 보았다.
멀쩡히 존재하는 베리드의 발굽을.
그것이 내뿜는 신비로운 휘광을.
“이게 바로 베리드의 힘이야.”
발굽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은 그리드가 암흑의 룬의 정보 중 일부를 크리스에게 공유해주었다.
★Special★
*22위 대악마 베리드의 힘
궁극의 거짓이 현실을 왜곡한다.
궁극의 연금술이 만물을 조작한다.
-궁극의 연금술 활성화 시-
<자동 연성> 스킬과 <궁극 연성> 스킬 활성화.
<자동 연성>
패시브 스킬
투사체의 표적이 될 경우, 이를 방어하는 금속의 방어막이 실시간으로 자동 생성.
방어막 당 데미지 흡수량 1만.
*지속 시간 1분.
<궁극 연성>
액티브 스킬
연금술 사용 시 ‘최선의 결과’를 도출.
*사용 후 열흘간의 충전시간이 필요.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
궁극 연성에 붙은 전제 조건 때문이다.
‘연금술을 사용한다.’는 전제 조건을 대장장이인 그리드가 무슨 수로 달성한단 말인가?
“처음에는 자동 연성 패시브 스킬이랑 연계해서 쓰는 스킬쯤으로 인식했어. 일시적으로나마 절대 방어가 가능해지는 건가, 싶었었지.”
하지만 그리드는 이내 눈치 챘다.
자신 또한 연금술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연금술 시설을 이용하면 간단히 해결 될 문제였다.
“하지만 보다시피 활용법은 따로 있었지.”
환상?
베리드의 힘 앞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환상조차도 현실로 만드는 힘이 바로 베리드의 연금술이었으니까.
[궁극의 연성을 성공한 보상으로 연금술 시설의 경험치가 1퍼센트 올랐습니다!]
“....!”
눈앞에 떠오르는 영주 전용 알림창을 확인한 크리스가 두 주먹을 불끈 말아쥐었고,
“우와아아아아!!”
서로를 얼싸안은 연금술사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그리드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