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934화 (924/1,794)

“....사실은 200권을 주문했는데 물량이 이미 다 빠졌다고 하더라고. 증판 예정이라기에 이미 예약까지 해놨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어머,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역시 당신은 대담하네요. 영우와 세희의 아버지다워요.”

“후후훗, 당신도 훌륭한 두 아이의 어머니답게 현명해. 당신과 결혼하기를 정말로 잘했지 뭐야.”

“당신....”

“여보....”

“.....”

저러다가 동생 만들어주시겠다.

기뻐서 흥분을 주체 못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세희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들이 방황하던 시기에 끝까지 믿어주지 못했던 본인들을 자책하며, 이제 와서 아들에게 신세질 수 없다며 더욱 더 충실히 본업에 종사해 오신 두 분의 피부가 검다. 매일 땡볕에서 밭일을 하시니 부쩍 늙어 보였다.

하지만 세희는 알고 있다.

두 분이 또래의 누구보다 건강하시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운 아들을 둔 그들은 하루하루 행복에 겨워 살았고, 그 긍정적인 마음은 본래 노동이었어야 할 본업을 운동으로 승화시켜주는 마법을 발휘했다.

몸도, 마음도.

두 분은 평생 어느 때보다 더 건강하시다.

너무 바빠 주변을 돌볼 수 없는 아들을 대신해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을 다녀오시는 날이면 더욱 더 행복해보였고 건강해보였다.

그래, 두 분이 지금처럼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오빠 덕분이다.

정말이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오빠다.

요즘 부쩍, 오빠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위인전이라.’

예체능계 인물의 위인전은 이미 여러 번 출간됐다.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본받을만한 인성까지 갖췄을 경우 위인전의 주인공이 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어떤 개그맨의 위인전이 출간됐었을 정도다.

하지만 역시, 흔한 일은 아니다.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대사건이다.

특히 게이머의 위인전은 역사상 최초였다.

Satisfy가 출시되고 불과 5년 만에,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변했다는 반증이다.

‘게임.... 부.... 명예.... 부모님.... 게임....’

세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실, 세희 세대까지만 해도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학벌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입을 받고 자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사업 전반을 Satisfy가 장악한 지금, 과연 아직도 학업만이 해답일까?

결단코 아니다.

다름 아닌 내 오빠가 산 증인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삶.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풍족한 가계를 꾸려 부모님과 오빠를 부양하는 삶.’은, 이제 Satisfy로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세희는 앞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보았고 의외로 빠른 결론을 내렸다.

톡톡. 톡.

스마트 워치를 켠 세희가 허공에 떠오른 홀로그램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수신인은 절친 예림이.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휴학하고 렙업하실?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기다려왔다는 듯한 즉답이었다.

-ㅇㅅㅇ/ 콜.

“.....”

시대에 뒤쳐진 건 나뿐이었구나.

내가 고지식한 면이 있었나....?

그래서 너무 개방적인 지슈카 언니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내가 애늙은이였어...?’

충격 받는 세희의 스마트워치에 새로운 문자가 도착했다.

-싱싱한 우리가 오빠한테서 아줌마들을 떨어뜨려 놓자굿! >_

아줌마들.

유라와 지슈카를 뜻하는 것이다.

영우에게 공개 고백한 유라와, 바로 옆집으로 이사와 영우에게 매일 육탄 공세를 퍼붓는 지슈카를, 예림은 무척 경계하며 반감을 품고 있었다.

문자를 읽은 세희가 한숨 쉬었다.

예림이에겐 정말로 미안한 말이지만, 세 사람 중에서 내 새언니가 됐으면 하는 사람은 그나마 유라였으니까.

예림이는 친구로선 정말정말 좋은 아이지만, 내 오빠의 아내로서는 글쎄.... 오빠가 너무 힘들 것 같다.

-아, 근데 나 오늘은 접속 좀 늦을 거야. 새로 생긴 남친이랑 데이트 있거든. 데헷★

이것 봐.

얘는 안 돼.

연애야 자유라지만, 남자가 한 달에 3번씩은 바뀐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

오빠가 감당할만한 재목이 아니다.

‘예림이.... 탈락....’

세희가 마음속에 새로운 메모를 작성했다.

***

템빨국 왕도 라인하르트.

오래간만에 성으로 돌아온 그리드는 아이린, 로드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나보다 연상이 된.

그러나 여전히 아름답고, 앞으로도 평생토록 아름다울 아이린과 함께 정원을 산책하고,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그리드는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일상을 반갑게 만끽했다.

‘이때가 제일 좋단 말이지....’

모든 책무를 벗어던지고 단지 아이린과 함께하는 시간.

그리드는 언젠가 은퇴해서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뻐하는 아이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그녀와 늘 함께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꼈다.

아픈 표정을 짓는 그리드의 뺨을 아이린의 희고 가는 손가락이 콕, 하고 찔렀다.

“그런 생각 마세요. 전하께서 어디에 계시든 저는 항상 전하를 느끼고 있답니다. 저는, 외롭지 않아요.”

“아이린....”

내 표정만 보고 마음을 읽어주는 여자다.

자신보다는 나를 먼저 살펴주는 여자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내게 큰 축복이다.

새삼 감사를 느낀 그리드가 아이린을 꼭 끌어안는 순간이었다.

“자고로 남편이라는 사람은 집에 잘 안 들어오고 돈만 잘 벌어주는 게 최고라고....”

아이린이 어울리지 않게 호호 웃으며 말했다.

“....응?”

귀를 의심한 그리드가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그대에게 그런 말을 한 거요?”

아이린이 싱글벙글, 순수한 미소를 잔뜩 머금고 답했다.

“섹시여고생 경이요.”

“.....”

“섹시여고생 경의 말을 듣고 주변 부인들을 관찰해 보니까 남편이랑 매일 붙어있는 부인들이 유난히 남편과 자주 싸우더군요. 그것 참 슬픈 일이죠? 부부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편이 좋은 것 같아요.”

“.....”

예림이 그 녀석이 우리 순수한 아이린을.....

그리드는 순간 울컥했지만, 이내 희미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또한 아이린이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조만간 제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정세가 안정 되면 여행이나 다녀옵시다. 그대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해안가에서 유유자적 며칠이고 쉬다옵시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걸요.”

아이린이 그리드의 뺨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존경했다.

평민 출신으로 일국의 대귀족이 되고, 급기야 새로운 나라를 세우더니 제국과의 화친을 노리는 성군으로 성장한 남편.

나는 대체 무슨 복으로 이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있었던가....

그리드와 처음 만났던 그날을 회상하며, 아이린은 신께 깊은 감사를 올렸다.

한편.

“헤헷.”

못 본 새 부쩍 자란 로드는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멀리서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었다.

금술 좋은 부부를 보고 자란 덕분에, 사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감이라는 사실을 깨우친 템빨국의 왕자는.....

쪽.

오늘도 역시나, 늘 대동하고 다니는 레베카의 딸 후보 출신 미소녀들과 차례대로 입맞춤을 나눈다.

로드의 기사 코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매일 저러는데도 입술이 멀쩡한 것도 용해.’

솔직히, 어린 왕자의 하렘이 코크는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었다.

그리드의 손주가 수십, 수백 명이나 탄생한다고 생각해 보자 템빨국의 미래가 아주 든든했기 때문이다.

‘그리드 3세가 100명, 200명....’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엄청날 것 같다.

***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밤.

곤히 잠든 아이린의 모습을 확인한 그리드가 테라스로 나왔다.

그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했다.

“뭐래?”

그러자 놀랍게도 대답이 들려왔다.

“언제까지 일방적인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 템빨국과 제국이 완벽한 우호를 다지게 되면 그때 가서 호의를 받겠다고 하더군.”

“거참 꽉 막힌 아저씨일세.”

템빨국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도중, 그리드는 문득 떠올렸다.

그렌할의 상처들을 치료시켜주겠다던 약속을 잊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레이드가 무사히 끝나자 들떠서 간과한 사실이었다.

뒤늦게 아차 싶었던 그리드는 페이커에게 그렌할을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렇다.

그렌할은 보다 더 나은 미래에 치료를 받겠노라 답했다.

융통성 없는 남자다.

하지만 그만큼 신뢰가 간다.

‘정말 운이 좋았어.’

그렌할, 모르이즈, 바사라.

세 사람과 인연을 쌓은 일은 정말로 큰 행운이다.

라우엘의 말을 듣고 무신의 유적지를 최우선 루트로 삼았던 것이 주요했다.

역시, 라우엘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흐뭇한 미소를 흘린 그리드가 침실로 돌아갔다.

같은 시각, 제국 황도 타이탄.

‘폐하께서 친히 시찰을 나가셨다고? 이거 참 드문 경우로군....’

베리드를 레이드한 후.

황도로 귀환해 황제에게 알현을 요청한 그렌할 공작은 열흘 동안 대기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황제가 갑자기 잡힌 시찰 일정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꽤 특이한 일이었기 때문에 다소 의아함을 느낀 그렌할 공작이었지만 그뿐.

황제께서 친히 국정을 살피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도리어 기쁨을 느끼며, 그는 타이탄 내에 있는 자신의 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치고 말았다.

자신의 별장을 장악하고 있는 마장기들과.

“그렌할 공, 반역의 정황을 포착하여 그대를 구속하겠소.”

4황자 에단을.

“반역의 정황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시겠소?”

“감옥에서 말해주도록 하겠소.”

“....황자께는 나를 구속할 권한이 없소만?”

“물론 권한은 없지. 하지만 힘은 있소.”

“.....”

마음 단단히 먹었군.

위험하다고 판단한 그렌할이 슬그머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협곡에서 봤던 마장기의 위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기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하지만 에단은 좀처럼 틈을 주지 않았다.

“정중히 모셔라.”

에단이 라이더들에게 명령하자.

피이잉-!

라이더들이 탑승하고 있던 마장기들이 형형색색의 안광을 일제히 번뜩였다.

이를 간 그렌할이 광전사의 힘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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