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0권 - 6화
[‘그리드’가 레이드 1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레이첼’과 ‘키리누스’가 레이드 2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피아로’가 레이드 3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크라우젤’과 ‘유라’가 레이드 4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바사라’가 레이드 5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렌할’이 레이드 6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모르이즈’가 레이드 7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지발’이 레이드 8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페이커’가 레이드 9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크리스’와 ‘지슈카’가 레이드 10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성녀 ‘루비’가 대악마의 영혼을 소멸시킨 대가로 특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그 외 인원에게 레이드 참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월드 메시지를 확인한 시청자들이 술렁였다.
베리드의 생명력을 가장 많이 깎은 사람은 단연코 레이첼과 키리누스였지만, 그들이 상대한 베리드는 1페이즈에 불과했으니 그리드보다 공헌도가 밀렸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다.
베리드가 어떤 페이즈에 돌입할지라도 꾸준한 활약을 펼친 피아로의 공헌도가 3등인 것도 납득할만했다.
한데 유라가 4등이라는 점은 솔직히 의아했다.
물론, 유라의 합류는 다른 템빨단원보다 빨랐다.
대악마가 소환한 지옥 또한 지옥.
그 사실을 간파하고 <지옥 도약>을 활용한 그녀는 예정보다 앞서 협곡에 도착했고 레이드에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검성의 오러> 버프로 전투 내내 파티원들을 강화시키고 그리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베리드의 생명력을 깎은 크라우젤과 동급의 공헌도라는 건 좀,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시청자들이 수군거렸지만 정작 크라우젤과 템빨단원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애초에 그들은 ‘유라 없이는 대악마 토벌이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으니까.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그리드는 자신의 개인 알림창을 열람했다.
[칭호 <세상의 구원자> 효과가 강화되어 모든 능력치 상승률이 200에서 300으로 상승합니다!]
[레이드 1등 공적 보상으로 <베리드의 인피면구>를 얻었습니다!]
[레이드 1등 공적 보상으로 <베리드의 발굽>을 얻었습니다!]
[레이드 1등 공적 보상으로 <베리드의 피> 2개를 얻었습니다!]
[레이드 1등 공적 보상으로 <베리드의 갈기> 5개를 얻었습니다!]
[레이드 1등 공적 보상으로 <축복받은 무기 강화석> 30개를 얻었습니다!]
[레이드 1등 공적 보상으로 <축복받은 방어구 강화석> 60개를 얻었습니다!]
[<암흑의 룬>에 <베리드의 힘>이 각인됩니다!]
[....!!!]
[<암흑의 룬>에 3개체 이상의 대악마가 봉인되었습니다! 이는 당신이 3개체 이상의 대악마를 토벌했다는 기록이며, 당신의 업적이 뮐러와 파그마의 대악마 토벌 업적을 뒤쫓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언젠가 당신이 그들과 동률의 업적을 세우게 된다면, 당신의 격은 크게 상승할 것입니다!]
여기까진 좋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온통 희소식뿐이었다.
그리드는 무려 7명의 길드원들이 10위권 보상을 획득했다는 점, 칠공작들과의 관계가 더욱 견고해졌다는 점, 마장기 레이더스의 이해도가 대폭 상승한 점, 거기에 더해서 베리드가 준 모든 보상들이 흡족하고 마음에 들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메르세데스의 부재 하나 뿐.
메르세데스의 격을 올릴 기회를 놓쳤으니 아쉬웠다.
하지만 그녀가 자리에 없는 이유를 상기해 보면 크게 아쉬워할 문제도 아니다.
그녀는 아스모펠의 도움 요청을 받고 출장에 나선 상태니까.
아스모펠이 전대 적기사단원들의 행방을 탐색하고 회유하는 임무를 수행 중인 점을 감안해 봤을 때, 메르세데스의 출장은 새로운 아군의 섭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이템들이 특이한데....’
발굽은 그렇다 쳐도, 피와 갈기까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리드가 드롭한 아이템들을 확인하는 그리드.
한창 열중하고 있는 그에게 갑자기 괴상한 일이 발생했다.
[....!!!]
[<암흑의 룬>에 귀속 된 대악마의 힘이 너무 많습니다! 룬의 용량을 초과하여 룬에 귀속 된 힘들이 폭주를 일으킵니다!]
‘뭐? 야, 이!’
쿠오오오오오-!
인벤토리에 귀속된 아이템, 암흑의 룬이 요동치면서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를 받으며,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던 그리드의 등골이 대번에 사늘하게 식었다.
곧바로.
콰아아아아아앙-!
암흑의 룬이 폭발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란 그리드가 신음을 토하며 주저앉았다.
“오빠!!”
“그리드!!”
루비와 섹시여고생, 그리고 지슈카와 유라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그리드에게 달려갔다.
얼굴을 찌푸린 그리드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헐떡이고 있었다.
인벤토리 속.
산산조각 난 룬의 파편들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었다.
“뭐, 뭐야! 왜 그래! 장난치지 마! 무섭단 말이야!”
“정신 차려요, 영우 씨!”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나, 둘.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드의 곁으로 달려왔다.
피아로와 크라우젤, 그리고 템빨단원들.
저마다 표현의 강도는 달랐지만, 모두가 똑같이 그리드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편 그리드는 큰 혼란을 겪는 중이었다.
쿵쾅쿵쾅....!
심장의 고동이 너무 커서 뇌가 울린다.
비 오듯 흐르는 식은땀이 시야를 뿌옇게 잠식한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스멀스멀!
산산이 조각난 암흑의 룬.
급기야 완전히 녹아 형체를 잃은 그것은 검은 마기로 변해 그리드의 육체에 스며들고 있었다.
피부로, 혈액으로, 뼈로, 그리고 심장으로.
그 기이한 감각이 그리드는 좀처럼 낯설고 두려웠다.
이내.
....두근. 두근. 두근.
터질 것처럼 뛰던 심장이 평온을 되찾았다.
“허억.... 허억....”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그리드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떨리는 동공에 새로운 알림창이 갱신됐다.
[당신의 높은 악마력이 <암흑의 룬>을 당신에게 인도했습니다.]
[초과된 용량을 감당 못하고 소멸할 위기에 처했던 <암흑의 룬>이 당신과 일체화함으로서 소멸을 모면했습니다.]
[앞으로 <암흑의 룬>은 당신의 일부가 됩니다.]
[<암흑의 룬> 개방 시 상승하던 악마력 수치가 200으로 대폭 상승합니다.]
[현재 당신의 악마력 수치는 3만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악마력.
헬가오를 레이드한 그리드가 노에를 얻고 ‘지옥과 연이 닿은 자’ 칭호가 발생하자 개화한 스탯이다.
여태까지 악마력은 그리드에게 이롭게 작용해왔다.
그리드가 노에를 펫으로 길들일 수 있었던 것도, 흑화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흑화의 기능이 상향 된 것까지 모두 악마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의 입장에서 악마력은 불안요소다.
완전히 신뢰하기보다는 늘 경계해야하는 힘이었다.
악마력의 본질은, 이름 그대로 인간을 ‘악마화’시키는 것이었으니까.
악마력이 높아지면 지옥의 출입이 자유로워진다는 것도 악마화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리드의 추측이었다.
‘너무 높아져서 좋을 건 없는데.’
뭐든지 적당한 게 좋은 법이다.
내 종족이 인간에서 악마로 강제 변이될 가능성과, 변이 시 발생할 여파를 함부로 추측할 수 없다면.... 그냥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여, 그리드는 최대한 살생을 억제해왔다.
에트날 전쟁, 적기사단과의 충돌, 상왕 키르 토벌전 등등.
부득이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대량의 학살을 자행했지만, 평소에는 같은 인간을 죽이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악마력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암흑의 룬 개방 시 200의 악마력 상승.
이건 좀 심하다.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그리드가 이내 마음을 다스렸다.
‘괜찮아. 자주 쓰는 스킬도 아니고.’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나 적을 대면했을 때.
암흑의 룬은 딱 그때만 사용하면 된다.
여태까지도 그래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뭐, 이대로 악마력이 오르면 흑화의 위력도 오를 테니 나쁘지 않아.’
격의 상승으로 인해서, 그리드는 최고 공속 제한으로부터 해방됐다. 보다 정밀한 실험이 필요하긴 했지만 베리드와 싸우며 체감하기로는 초당 10회의 평타를 날리는 게 가능해보였다.
유지 시간 동안 공, 마, 민을 50퍼센트 상승시켜주는 흑화의 가치가 더욱 상승한 셈.
악마력을 그저 최악으로 받아들일 입장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암흑의 룬이 그대로 소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하는 입장이기도 했고.
“아. 난 괜찮아.”
그리드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하나 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동료들이 자신을 둘러싼 채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루비와 지슈카는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였기 때문에 퍽 귀여웠다.
유라는 침착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대견했고.
“저은하아아!!”
“.....”
대성통곡 중인 피아로는 좀 깼다.
험험,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진정시킨 그리드가 동료들이 얻은 보상 목록을 확인했다.
참가 보상은 축복받은 무기 강화석과 방어구 강화석 소량이 전부였지만 공헌도 보상을 얻은 동료들은 최소 1개 이상의 갈기를 확보하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담비 모피마냥 길게 늘어진 베리드의 갈기는, 겉으로 봤을 때는 이름 그대로 털 같았지만 직접 만져보면 털 하나하나가 단단하고 날카로워 금속으로 구분함이 옳아보였다.
‘갑옷의 목 부위에 두르는 형태로 응용하면 멋과 방어력을 동시에 챙길 수 있겠군.’
어쩌면 반사 데미지 옵션까지 얻을지 모른다.
그럼 진짜 최고일 것이다.
대악마의 부산물로 만든 반사 아이템 세트가 발휘할 위력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으니까.
“저희는 이만 돌아갈까 합니다.”
동료들과 둘러앉아 아이템 목록을 확인 중인 그리드의 곁으로 칠공작들이 다가왔다.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피아로의 모습과 열정적인 그리드의 모습을 번갈아 본 그들은 하나 같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이첼만 빼고.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피아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렌할이 공작들을 대표해서 정중히 고개 숙였다.
“템빨왕 전하, 전하께는 유적지에서부터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전하와 함께했던 여정을 저희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유적지까지 데려다줄 수 있소만....? 최대한 빨리 유적지로 되돌아가야하는 거 아니었소?”
“대악마 토벌에 대해서 폐하께 보고를 올리는 일이 우선일 듯합니다. 템빨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중히 논의해봐야 할 테고요.”
“그렇군. 앞으로 바뀌게 될 템빨국과 제국의 관계를 기대해보도록 하겠소.”
“네,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옵니다.”
다시 한 번 정중히 인사한 그렌할이 공작들과 함께 등을 돌리자.
“잠깐.”
다소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이첼이 그리드에게 다가왔다.
붉은 예복과 화려한 조화를 이루는 금발이 태양 아래 반짝인다.
그녀의 미모는 레베카의 딸 이상이었다.
타고난 기품만 놓고 봤을 때는 뱀파이어 공작 마리로즈와도 비견되는, 그런 아우라가 있었다.
여태껏 그리드를 본체만체 했던 그녀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리갈의 죽음은 전쟁 중에 벌어진 일. 내가 당신을 대함에 있어서 사적인 감정을 내세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니 안심해도 좋아.”
“....알겠소.”
리갈과 레이첼이 둘도 없는 벗이었다는 사실, 그리드 또한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솔직히 그녀의 원한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대사하란 제국의 공작.
그중에서도 수위를 꼽는 권력자이자 실력자답게 감정을 제어할 줄 알았다.
자신의 그릇 된 판단이 커다란 파장을 불러올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더욱 더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했다.
‘....근데 리갈은 피아로가 죽였는데.’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리드는 레이첼의 마음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제자에게 말씀 많이 들었소. 과연 훌륭한 잠재력을 지닌 인물이구려.”
레이첼이 등을 돌리자, 이번에는 키리누스가 그리드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그의 깊은 눈동자가 그리드를 부드럽게 관찰했다.
“당신과는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드오. 후후, 그럼 이만 가보겠소.”
“잘 지내라, 그리드.”
“용의 날개는.... 다음에 더 멋진 장면에서 보여줄 것이라 믿지.”
키리누스와 크라우젤, 그리고 하오 남매와 러시아 랭커들 또한 나란히 자리를 떠났다.
“우리의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세.”
“뭐래. 내가 이겼는데.”
어째선지 키리누스와 레이첼이 투닥거렸지만, 그리드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키리누스와 크라우젤 일행, 그리고 칠공작들은 그렇게 점점 그리드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고 있는 그리드 앞에 다가온 사람은 지발과 박스였다.
“솔직히 내 마장기 덕분에 레이드 성공한 거잖아. 그치? 너도 인정하지? 그러니까 난 딱히 안 감사하다.”
뾰로퉁한 표정으로 말한 지발이 툭 던지더니 사라졌고.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언젠가 반드시 내 잘못을 청산하겠다.”
박스는 어울리지 않게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스네이크 길드원들을 이끌고 떠났다.
이제 현장에는 템빨단원들만 남았다.
잠시간의 정적 끝에.
“우리도 집으로 돌아가죠.”
라우엘이 웃으며 말했다.
같은 시각, 협곡의 끝자락.
“불온한 반란의 정황을 포착해버렸군.”
순백의 레이더스와는 전혀 다른, 지극히 불길하고 사악하게 느껴지는 흑적색의 마장기 위에 올라 선 4황자 에단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적국의 왕을 처단하기는커녕 고개 숙여 인사를 나눈 칠공작들의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다.
또한, 살아있는 피아로의 모습까지 확인했다.
저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갔을지 그는 뻔히 예상할 수 있었다.
피아로를 반역자로 내몬 주동자 중 하나가 바로 에단 본인이었으니까.
“저들이 어머니를 치기 전에 내가 먼저 저들을 쳐야겠다.”
피식 웃으며 말한 에단이 등 뒤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황제가 되려면 어머니께서 건재하셔야 하잖아. 안 그래?”
에단이 자랑하는 마장기 군단의 라이더들이 굳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