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920화 (910/1,794)

템빨 49권 - 18화

『허업....!』

가장 화려한 스킬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그마의 검무>부터 떠올릴 것이다.

특히 ‘멋짐’ 옵션이 귀속 된 <이야루그트>를 휘두르는 그리드의 검무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으니까.

하지만 규모적인 측면까지 고려할 경우, <우주 검> 이상 화려한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다.

크라우젤의 궁극기 중 하나.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검성의 기본 특성을 극대화시킨 그 초규모 스킬은 세상 그 자체를 베어버리기에.

서걱-!

[크리티컬!!]

[대상에게 15,300,59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7,900,143의 피해를....]

[대상에게....]

....

...

[대상이 수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상의 모든 능력치가 20퍼센트 감소하고 모든 속도가 50퍼센트 저하됩니다!]

[대상이 약점을 노출하였습니다! 지금부터 30초 동안 대상을 공격 시 무조건 치명타가 적용 됩니다! 치명타 데미지가 1.5배 높게 적용 됩니다!]

[...!]

[!!!!!!!!!!!!!!]

[당신의 강력한 검기가 세계를 가릅니다!!!]

꽈르르르르르르르릉!!

협곡과 하나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성벽이 반으로 쪼개졌다.

파리 닮은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하늘도, 협곡 사이에 구불구불 이어진 대지도.

세상 모든 것이 자로 줄을 그리듯이 양단됐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펑!!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던 악마들과 하늘 위 악마들, 그리고 협곡 사이의 좁은 길을 진군 중이던 악마들 상당수가 몸의 이곳저곳이 잘려나가며 피를 쏟거나 잿빛으로 산화했다.

페가수스를 타고 천공을 활보한 지발이 1백여 마리의 악마를 해치우는 기염을 토했었다면, 크라우젤은 무려 1천여 마리의 악마를 단 일격에 반병신으로 만드는 기적을 연출한 셈이다.

우주 검은 ‘경로 상에 존재하는 모든 적을 벤다.’는 효과를 지녔기 때문에 군대의 행렬에 치명적이었다.

[대지의 신 가리온이 권능을 발휘합니다. 반으로 갈라졌던 모든 만물이 거짓말처럼 수복됩니다.]

쩌적-! 쩌저적!!

쪼개졌던 성벽과 대지가 처음 모습 그대로 다시 붙는다.

벌어진 성벽과 대지 틈새로 떨어졌던 악마들이 그대로 곤죽이 되어 사라졌다.

또한.

““.....””

푸화하하학!!

우주 검에 정확히 관통 당한 베리드의 왼팔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절단면으로부터 분수처럼 치솟는 흰 피가 세상을 경악시켰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악마들이 경직됐다.

『이, 이럴 수가....! 악마대군의 진군이 일제히 멈췄습니다....!』

『오 마이 갓! 등장과 동시에 대악마의 팔을 잘라버리다니요! 수천, 수만의 랭커들이 사투를 벌여도 거두지 못했던 성과를 단 일격에....!』

『정말로...! 정말로 놀랍습니다!! 대단합니다, 크라우젤!!』

각국 방송사의 해설진들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전 세계 모든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정작 크라우젤의 얼굴에는 감흥이 떠오르지 않았다.

크라우젤이 평가하는 우주 검은 ‘빈 수레’.

세계를 두 동강이 내는 요란한 연출과 달리, 대상을 일격에 죽이는 즉사기가 아니다.

광역 스킬 중에서 가장 높은 데미지 계수를 자랑한다 해도 광역 스킬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보통의 궁극기들과 비교했을 때 다소 약한 부분이 있었다.

지금은 전쟁이라는 특수성이 우주 검의 장점을 부각하고 있을 뿐이다. 협곡이라는 지형적 이점도 크게 작용했다. 악마들이 좁은 길목을 행군하느라 우주 검에 취약했다.

‘벨리알보다 물리방어력이 2배 높군. 생명력은 3배쯤인가.’

크라우젤은 벨리알 레이드 당시 자신의 스팩과 현재의 스팩을 대조해봤다.

그리고 베리드에게 입힌 피해량과 베리드의 생명력 게이지 상태를 확인한 후 결론을 내렸다.

역시, 현재의 전력으로는 베리드를 레이드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리드와 데미안, 그리고 루비양 없이는 안 된다.’

마왕 토벌전에 등장했던 그리드의 4천왕들.

피아로와 아스모펠, 얼마 전 레이단에서 크게 활약함으로써 그 존재를 알린 놀, 그리고 아직 정확한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여기사에 이르기까지.

크라우젤은 그 4인을 굳이 염두에 두지 않았다.

벨리알 레이드에서 피아로를 잃을 뻔했던 그리드가 이번 레이드에 NPC를 대동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천천히 시간을 벌도록 할까.’

평소 크라우젤은 우주 검을 연계기의 초석으로 사용한다.

30초간 치명타 데미지 상승효과 때문이다.

지금 베리드를 전력으로 공격하면 제법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뜻.

하지만 크라우젤은 무리하지 않았다.

템빨단이 현재 이곳으로 진격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야 당연히 하오와 알렉산더 덕분이다.

중국 최고 랭커와 러시아 최고 랭커가 크라우젤의 수족을 자처하는 바.

크라우젤의 정보력은 혼자였던 시절을 월등히 넘어선다.

뭐, 이번 경우에는 딱히 정보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금방 가니까 살살해. 우리 몫은 남겨놓으라고.

그리드가 이런 귓속말을 보내놨으니까.

피식 웃은 크라우젤이 지발에게 시선을 돌렸다.

죽기 일보직전에 구원 받은 지발은 굉장히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라우젤과 시선이 마주친 그가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주인공 티내는 건 여전하군.”

“조연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만.”

“낯짝도 두껍지.”

크라우젤과 나란히 활강하여 지상으로 내려온 지발이 전장의 풍경을 시야에 담았다.

수백 마리의 악마들이 소멸했고 또 수백 마리의 악마들이 상처 입은 채 신음했다. 멀쩡한 수천 마리의 악마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팔을 잃은 모습을 보고 석상처럼 굳었다.

단 한 명의 존재가 전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압도.

확실하다.

크라우젤은 천외천 시절보다 월등히 강해졌다.

검성으로 전직한 후 2년 동안 다소 약해진 모습을 보였던 것과 사뭇 달랐다.

검성의 힘을 드디어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조만간 다시 지존쟁탈전이 치열하겠구만.”

“아니, 아직 멀었다.”

내가 성장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그리드 또한 성장했을 테니.

이미 대륙에서 손꼽을 정도의 세력을 구축한 그리드의 성장 환경은 일개 플레이어와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갖 정보와 재물을 독점하는 것은 기본이오, 인재의 활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이다.

단적인 예로 대현자 스틱세이가 있다.

스틱세이의 매스 텔레포트 덕분에 그리드는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활동반경부터가 일개 플레이어와는 차원이 다른 셈이다.

‘정말 대단해.’

템빨국 건국 당시, 그리드가 템빨국을 여기까지 키울 수 있을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유지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뛰어난 수완으로 나라를 급격히 발전시켰다.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왕국들보다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제국과 견줄 수 있게 됐다.

정말이지 대단한 남자다.

“그건 그렇고. 대악마도 상처를 입으면 어쩔 수 없군.”

지발이 저 멀리 베리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잘려나간 팔이 썩은 고기처럼 지면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선 베리드의 잘린 어깨에서는 여전히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절단으로부터 비롯된 출혈은 천하의 대악마조차도 피할 수 없는 물리적 상태이상이었다.

조금씩 소모되고 있는 베리드의 생명력 게이지를 눈에 담은 지발이 희망을 엿봤다.

“이번만 힘을 합치자. 레이더스를 가동할 테니까 베리드가 상처 입은 틈을 노리고 협공하자.”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

“고작 황금 따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생명의 창조에 있다. ‘생명의 돌’의 존재가 바로 그 증거지.”

“뭐라는 거야?”

협력하자는데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지발에게 크라우젤이 손끝으로 가리켜보였다.

“베리드쯤 되면 육체의 수복쯤 쉬운 일이라는 거다.”

“....!?”

지발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카착. 카차차차착.

베리드의 어깨로부터 흐르는 피가 금속처럼 굳고 있었다.

그것은 이내 뼈를 이뤘고, 살과 피부가 되었다.

잘려나간 베리드의 왼팔이 순식간에 복구되는 광경을, 지발은 물론이고 전 세계 시청자들이 똑똑히 지켜보았다.

“저런 괴물 새끼....”

지발이 혀를 내둘렀다.

몸을 잘라도 무용지물이라니?

연금술이라는 학문이 이토록 대단한 것일 줄은, 그는 이제야 처음 알았다.

대륙 최고라는 사하란 제국의 연금술조차도 조금 더 뛰어난 물약이나 금속을 만드는 게 고작인 수준이건만.

위축 된 지발에게.

아니, 정확히는 지발의 곁에 선 크라우젤에게.

““당대 검성은 약하군요.””

베리드가 말해왔다.

수 킬로미터가 떨어진 지점에서 조용히 읊조리듯 말하는데도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귓전에 똑똑히 들려왔다.

““전대 검성 뮐러는 대악마 여럿을 봉인시켜버렸는데 말이죠. 당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크라우젤은 부정하지 않았다.

“맞다. 나로서는 평생가도 힘들 일이겠지.”

뮐러는 역사상 최강의 인간이었다.

네임드 NPC의 잠재력을 1부터 10까지 구분할 수 있다고 치면, 뮐러의 잠재력은 100이었을 것이다.

플레이어인 크라우젤이 뮐러처럼 강해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크라우젤은 혼자가 아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애들 불러 모으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

하오 남매와 알렉산더, 그리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랭커 수십 명이 크라우젤의 곁으로 달려왔다.

지발까지 포함해서 그 면면을 놓고 보았을 때, 역대 그 어떤 베리드 레이드 파티보다 훨씬 더 화려한 파티였다.

시청자들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하지만 베리드 입장에서는 고작 피라미 집단에 불과했다.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 뀐 베리드가 10개의 마법진을 허공에 띄웠다.

그것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의 원소를 빠르게 변형시켰다.

먼지와 흙, 돌과 바위, 수맥과 공기에 이르기까지.

강철보다 단단한 금속으로 바뀐 그것들이 크고 위협적인 10개의 창으로 형태를 구성하더니 크라우젤 일행을 조준했다.

““죽으세요.””

“꿀꺽!”

크라우젤 일행이 마른 침을 삼켰다.

기세 좋게 달려오긴 했으나, 직접 베리드와 대면하고 보니 녀석으로부터 느껴지는 힘의 파동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템빨단이 도착할 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다.

쩌정-!

쩌저저저저저저정!!

10개의 창이 전장을 가로질렀다.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장애물을 꿰뚫고 비행하여 크라우젤 일행을 덮쳤다.

쿠르르르르릉-!

차원이 다르다.

창이 스칠 때마다 협곡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침음했다.

한데 그때.

파스슥-!

섬전처럼 날아가던 10개의 창들이 갑자기 속도를 잃는다 싶더니 점차 형태를 잃고 흩어져나갔다.

『뭐죠?』

해설진과 시청자들은 갑자기 발생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오와 알렉산더, 그리고 지발도 마찬가지였다.

단 둘.

크라우젤과 베리드만이 연금술이 기세를 잃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형지기?””

형태가 없는, 의념의 힘.

그것은 단지 의지만으로 대상을 쓰러뜨릴 수 있는 절대고수들의 경지다.

강력한 두 개의 의지가 베리드의 연금술을 소멸시키고 있었다.

다소 놀란 표정을 지은 베리드의 시선이 크라우젤 일행이 등지고 선 성벽 위로 꽂히자 수백 대의 카메라가 그의 시선을 쫓아 포커스를 옮겼다.

“흉측한 마물이로다.”

“악마 주제에 말투가 건방져.”

창을 쥔 두 명의 남녀가 보였다.

다소 왜소한 체격의 중년 사내는 키리누스라는 이름이었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은 레이첼이라는 이름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 모두 황금색으로 찬란히 빛났다.

해설진과 시청자들이 두 눈을 의심했다.

『대륙제일창 키리누스....!』

『창성 레이첼....!!』

『저, 저들이 어떻게 이곳에?』

일반인은 일생에 단 한 번도 마주칠 기회가 없을 서대륙 최고의 거물들.

그들이 어째서 이곳에 나란히 등장한 것일까?

특히 칠공작 중 하나인 레이첼은 제국인이다.

제국이 하켄 왕국의 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지금, 그녀가 하켄 왕국을 방문한 이유는 누구도 쉽게 추측할 수가 없었다.

크라우젤이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오셨군요.”

“음.”

키리누스와 레이첼이 가벼운 목례로 화답했다.

누가 봐도 두 사람 모두 크라우젤과 가까운 사이 같았다.

『서, 설마....』

저 거물들을 여기까지 찾아오게 만든 장본인이 크라우젤이었다고?

융통성 없는 독불장군.

세상 사람들은 크라우젤을 이처럼 평가해왔다.

이미 한 번 몰락한 크라우젤이 그리드를 따라잡는 일은 앞으로 평생가도 없을 거라 분석하는 사람이 많았다.

크라우젤 혼자서 아무리 뛰어나봤자 뭐하는가?

그리드는 수백 명의 랭커들과 괴물 같은 4천왕을 거느리고 있는데.

결국, 그리드가 영원한 지존으로 우뚝 설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무려 칠공작과 대륙제일창.

2명의 초네임드급 NPC를 거느리고 나타난 크라우젤을 목격한 사람들은 크라우젤에게 그리드를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이 생겼다고 보았다.

대륙제일창은 몰라도, 칠공작은 사하란 제국의 지존 중 하나가 아닌가.

그리드의 4천왕조차도 칠공작 앞에서는 애송이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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