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9권 - 15화
긴 세월이 지나서야 이뤄진 재회.
해묵은 오해와 원한을 풀고 회포를 나눈 공작들은 이제 다시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가장 먼저 디워스 공작을 애도했다.
애도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짧다고 해서 무성의한 것은 아니다.
그간 나눈 정이 적다해도.
서로 다른 사상과 정치적 입장 탓에 다툰 적이 많았다고 해도, 결국 같은 황실을 섬겨온 동료다.
그의 죽음에 숙연해지는 건 당연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의리로부터 기인한 태도였다.
공작들은 슬픔이나 아쉬움까지 느끼진 못했다.
별다른 친분 없는 대상의 죽음에서 슬픔을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게 아닐까.
공작들은 서로 유난히 사이가 좋지 않은 이상 각자의 영토에서 서로 떨어져 활동하는 만큼 대면하는 일 자체가 적다.
또한 디워스는 중년 이후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고 주사가 난폭했다는 소문이다. 군율이라는 미명 하에 아군 병사들을 학대하거나 목숨을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들었다.
디워스의 죽음은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아쉬워할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그의 아들이 이끌게 될 티폰 공작가문의 미래에 기대를 품으면 또 모를까.
‘자격을 잃은 자는 떠나는 게 옳지.’
문득, 내가 죽을 때 세간의 평가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그리 생각하자 두렵다.
씁쓸한 표정을 짓는 그렌할 공작에게 모르이즈가 말해왔다.
“적어도 저만큼은 울어드리지요.”
“하핫, 그것 참 고마운 말이로군.”
애도의 시간이 끝났다.
그렌할 공작이 그리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송구하오나, 저희는 본국으로 귀환하는 즉시 디워스 공작의 장래부터 성대히 치를 것입니다.”
디워스가 당신의 목숨을 위협했었다고는 하나, 이 부분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디워스의 죽음은 제국의 공작답게 영웅적으로 포장될 것이다.
하니 이해해 달라.
그렌할 공작의 말에는 그런 의도가 담겨있었고 그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 일은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지. 내게 일일이 고하실 필요 없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대강 상황정리가 끝났다.
앞으로는 남은 유적지 탐사에 대해서 논의할 차례다.
사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공작들은 탐사를 중단하자고 제안하려고 했었다.
6개의 비급을 익힌 추종자들이 워낙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출몰하였으니, 이쪽의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되기 전에 차라리 퇴각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바뀌었다.
저 멀리.
“그렌할 전하!!”
풀바즈 공작이 이끌고 달려오는 1만의 원군이 보였고,
“흠.... 이곳의 토양에는 영양분이 과도하게 많아서 농작물이 빠르게 시드는군....”
바로 곁에는 피아로가 있었으니까.
그렇다.
공작들은 피아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이건, 어찌 보면 학습에 의한 습관이다.
피아로가 제국의 기둥이었던 시절.
대륙 도처에는 제국을 위협하는 강자들이 산재해 있었고 제국은 몇 번의 커다란 전란을 겪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서서 제국을 구원한 영웅이 바로 피아로다.
그의 존재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무사안위를 누릴 수 있었던 제국 신민들 중에는 당연히 공작들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그렌할 공작은 피아로를 정신적 지주로 여길 정도로 큰 도움을 받았었다.
공작들에게 피아로는 여전히 댐과 같은 존재였다.
앞으로 유적지에서 겪게 될 모든 역경을 피아로가 막아줄 거라는 믿음이 공작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한데 의외의 인물이 그들의 태도를 꾸짖듯 말했다.
“우리 템빨국은 탐사를 잠시 중단하도록 하겠소.”
그리드였다.
“예?”
공작들은 그리드의 탐욕을 진즉부터 엿봤었다.
새로운 무력과 보물에의 열망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바로 그리드임을, 그들은 비급함을 눈앞에 뒀던 그리드의 눈빛에 깃든 탐욕을 목도한 순간 깨달았었다.
한데 이제와 욕심을 버리고 탐사를 중단하겠다니?
제국의 정예 원군이 도착하고 심지어 피아로까지 부른 마당에.
전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탐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된 지금 하필 탐사를 중단하겠다는 건 쉬이 납득이 안 된다.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공작들에게 그리드가 말했다.
“대륙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대악마가 아무래도 신경 쓰이오.”
조금 전, 피아로에게 괜한 죄책감을 짊어지게 만들었다며 자책하던 그리드.
그는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동료들의 귓속말에 이질감을 느꼈었다.
본래 이곳은 모든 통신과 전이 마법이 불가하다는 규칙을 지닌 장소가 아니었던가?
무신의 유적지에 도착한 후로 귓속말 시스템은 차단되어 있었다.
한데, 무신의 허락으로 피아로가 소환 된 후로 규칙이 무너진 것이다.
무신의 실수인지,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귓속말 시스템이 개방됐다.
눈치 빠른 라우엘은 즉시 현지의 템빨단원에게 귓속말을 보내보았고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켄 왕국의 수도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테일렌 요새에 지금 막 베리드가 진입하였고, 녀석을 지발의 마장기가 막아섰다는 소식이었다.
심지어 크라우젤과 하오, 알렉산더 세 사람.
그리고 대륙제일창 키리누스와 창성 레이첼이 요새에 집결 중이라고 템빨단원은 보고해왔다.
라우엘에게 이 소식을 전달 받은 그리드는 초조해졌다.
마장기 레이더스에 탑승한 지발과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모를 크라우젤.
자신과 계약함으로서 진일보했을 하오와 비록 싸가지는 없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하는 알렉산더.
거기에 ‘최소’ 그렌할 이상의 실력자일 레이첼과 키리누스까지 합류한다면....
‘우리가 없는 사이에 베리드가 레이드당할 수도 있다.’
안 될 일이다.
템빨단이 베리드 레이드를 외면해온 이유는 베리드가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기 전까지 최대한 전력을 비축하기 위함이었지 타인에게 양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설령 크라우젤이라고 해도 그리드는 베리드를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동료들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나눠 먹으면 또 모를까!’
그리드가 동료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그들 모두 적해를 건너고 유적지를 탐사하는 동안 적게는 2개에서 많게는 6개의 레벨을 올렸다.
특히 무신의 비급을 익힌 페이커의 발전이 눈부셨다.
무신에게 지목 받았던 유라는 어떤 깨달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눈치였고.
유페미나는 무신의 추종자들이 사용하는 무공 중에서도 사기급이라 할 수 있는 무공들만을 복제해놓은 상태였다.
지난 한 달 이상의 여정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뜻.
‘지금이라면 충분해.’
그리드와 라우엘은 베리드 레이드를 대규모로 계획해왔다.
템빨단의 수백 명 전투원들과 피아로, 메르세데스, 쥬드, 스틱세이, 놀, 카심, 맥스옹에 이르기까지 템빨국의 핵심 전력을 총동원할 예정이었다.
그들 모두의 힘에 의지하며, 그들 모두에게 경험과 격을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한 의도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을 지켜줘야 할 핵심 멤버들까지 적절한 성장을 완료한 단계다.
‘나도 첫 번째 목표를 이뤘다.’
399레벨의 달성.
이십만대적검의 습득.
이제 잠시 시선을 돌려야할 때다.
유적지와 베리드의 우선순위를 잠시 바꿔야한다.
물론, 이대로 우리만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리가 없는 동안 칠공작들이 유적지의 비급을 하나라도 얻어간다면 그건 참 배 아픈 일일 테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칠공작들이 죽기라도 했다간....’
슬퍼질 것이다.
앞으로 템빨국과 제국의 교량이 되어줄 그들의 죽음은 있어선 안 된다.
그들의 죽음을 바라지도 않는다.
하여, 그리드는 공작들에게 제안했다.
“귀공들께서도 잠시 탐사를 중단하고 우리와 함께 베리드를 토벌하러 갑시다.”
“....?”
공작들은 쉬이 납득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려 신의 비급을 얻을 수 있는 유적지.
반면 중위 대악마에 불과한 베리드.
어느 쪽의 우선순위가 더 높을지 구태여 설명이 필요할까?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바.
베리드를 토벌하겠답시고 다시 적해를 건너 대륙으로 돌아가는 것보단 이곳에 그대로 남아 유적지를 탐사하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애초에 베리드 토벌 보상보다 유적지에서 얻을 비급의 가치가 월등히 높을 테고.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꺼려지지만.... 제국 입장에서는 베리드가 더욱 더 활개 치도록 놔두는 편이 더 좋습니다. 다른 왕국들이 베리드에게 큰 피해를 입을수록 제국을 의존하게 될 테니까요.”
그렌할 공작이 자신의 입장을 솔직히 밝혔다.
그리드는 더 이상 그를 설득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때 라우엘이 나섰다.
“대륙의 위기감은 이미 충분히 고조되었습니다. 이때 우리 템빨국만이 나서서 베리드를 토벌한다면 대륙의 모든 왕국들이 템빨국의 위상과 공덕을 높이 칭송할 테고 제국의 입지는 도리어 약화될 텐데요?”
“.....”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그리드 전하께서 귀공들께 베리드 토벌을 제안하신 이유는 앞으로 우리의 든든한 우방이 될 제국의 위상을 지켜주기 위함입니다. 귀공들께서는 전하의 호의를 걷어 차버릴 생각이신지요?”
라우엘은 일부러 세게 나갔다.
다소 억지를 부렸다.
그리드와 피아로를 향한 공작들의 높은 호감도를 계산했기에 가능한 태도였다.
역시나, 먹혀들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렌할과 모르이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면 바사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녀는 라우엘의 발언에 가득한 가식을 엿본 것이다.
하지만 굳이 나서서 초를 치진 않았다.
템빨국과 완전한 우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번 일에 협조하는 편이 좋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뭣보다 손해 볼 일도 없었고, 템빨국 없이는 이 이상 유적지를 탐사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높았으니.
분위기가 의도한대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그리드가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우리는 적해를 건너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소. 대현자 스틱세이가 잠시 후 이곳에 도착해 우리 전부를 데리고 매스텔레포트를 사용할 거요.”
“대현자의 명성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으나, 이곳은 원칙적으로 전이 마법이 차단 된 공간입니다. 제아무리 대현자라도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아니, 더 이상 그렇지 않소. 환경이 바뀌었소. 확인할 겸 통신 마법을 사용해보시오.”
이야기는 척척 진행됐다.
각자의 가문으로 통신 마법을 사용해본 공작들은 교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일행은 베리드를 토벌하자고 뭉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풀바즈 후작과 그가 이끌어온 원군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공작님들께서 왜 적국의 왕과 저렇게 서슴없이 지내시는 거지?’
‘도리어 공작님들께서 템빨왕에게 너무 깍듯하신 듯한데....’
‘도대체 뭔 상황.... 헉?’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풀바즈 후작과 1만의 원군이 일제히 경악했다.
그리드와 공작들이 진중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저~쪽 구석에 쭈그려 앉아 흙장난(?)을 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사내가 뒤늦게 그리드의 곁으로 다가왔다.
한데 그의 정체가.
“피, 피아로....!”
반역자 피아로였다.
1만 병력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피아로가 반역했을 리 없다고 믿어왔던 누군가는 옛 영웅의 생환에 전율과 기쁨을 느끼는 반면, 알려진 그대로 피아로를 반역자로 여겨온 누군가는 경계하며 질색했다.
당연히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았다.
황실은 이미 오래 전에 피아로를 반역자로 선포했고, 반역의 죄를 물어 피아로의 가족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이미 그런 결과가 있으니 피아로가 사실은 누명을 쓴 거라고 믿어온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풀바즈 후작이 그 지극히 드문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또한 대귀족.
일찍이 피아로와 칭분을 쌓았던 경험이 있다.
잠시 석상처럼 굳었던 그의 눈시울이 이내 붉어졌다.
공작들과 나란히 서있는 피아로의 모습을 보고 진실을 눈치 챈 것이다.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여전하신가?”
“예, 이제 이가 다 빠져 미음밖에 드시지 못하시나, 그래도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십니다.”
“내 그 분들은 필시 오래 사실 거라 믿었지. 재난이 있을 때마다 곳간을 열어 백성들을 보살피지 않으셨나. 정작 본인들은 굶주려 비쩍 마르셨지만... 백성들이 두 분을 신처럼 칭송하였으니 축복 받아 오래오래 건강하시리라 믿었네.”
“하지만 정작 저는 뱃살이 한줌이나 잡힙니다. 두 분과 달리 욕심이 많아 스스로를 희생하기는커녕 딸까지 팔아먹은 놈입니다.”
“곳간을 여는 이가 있다면 채우는 이도 있어야겠지. 내 자네의 성품을 모르는가? 자네도 힘들었겠어.”
“....피아로 공.”
이분은 여전하시다.
짧은 대화만으로도 나를 정화시켜주신다.
영웅은 괜히 영웅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황제폐하를 의심해선 안 되는 신하의 입장이었다.
하여 당신의 반역을 의심하기보다 원망해왔다.
“죄송.... 죄송합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풀바츠 후작이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다.
최근 누군가의 계속 된 이간계 탓에 그와 거리가 멀어졌던 귀족들도 함께 숨죽여 울었다.
벌어졌던 균열이 다시 붙기 시작한다.
바게트 백작으로 변장하고 있는 후로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피아로 저 양반이 트롤링을....’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해왔는데?
후로이가 답답한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 순간이었다.
-보고 싶구나.
무신 제라툴의 음성이 그리드의 귓전에 울렸다.
-네가 과연 이곳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갑자기 무슨 말이지?’
당황한 그리드가 주변을 둘러봤다.
저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백색의 갑주를 무장한 1백의 기사들이었는데 표표한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그들을 알아 본 그렌할 공작이 침음했다.
“카일....! 총 4개의 군단이 원군으로 도착할 거라더니 그중 하나가 바로 카일의 군대였는가....!”
‘카일?’
그리드가 똥 씹은 얼굴을 했다.
제국의 다섯 기둥 중 하나.
과거, 그리드는 카일과 대면해 싸운 경험이 있다.
당시 강제 된 퀘스트 때문에 브라함과 무무드의 힘이 개방되지 않았다면....
그리드와 아그너스는 카일의 압도적인 무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다섯 기둥 중에서는 비록 최약체라 하나, 카일은 아직까지도 충분히 위협적인 강적이었다.
심지어 그는 칠공작들과 성격이 다르다.
피아로와 과거를 공유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철저히 적대적일 터였다.
긴장하는 그리드에게 무신이 더 큰 위협을 주었다.
-녀석은 너와 달리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가 제시한 무의 길에 올라섰다.
“....!?”
-네가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의 새로운 추종자를 꺾어야 할지다.
[새로운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무신의 추종자, 카일>
난이도:SSS
다섯 기둥 중 하나인 카일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유적지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무신을 만났습니다.
무신이 제시한 새로운 무도의 길을 축복이라 믿으며 무신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무신의 명을 받고 당신을 처단하고자 달려온 그와 싸워 승리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카일의 사망, 혹은 패주.
퀘스트 클리어 보상:무신의 유적지 자유 출입 자격 획득.
퀘스트 실패 시:레벨 마이너스 5. 무신의 변덕으로 인해 발생한 효과(유적지에서 통신, 전이 마법 사용 가능) 삭제. 무신의 관심도 상승.
“씹....!”
지난 몇 달 동안 힘들게 올린 레벨이다.
드디어 399레벨을 달성했고 이십만대적검을 눈앞에 두었다.
이 퀘스트를 실패할 경우, 돈으로도 맞바꿀 수 없는 긴 시간과 노력을 한 번에 잃게 될 것이다.
기겁한 그리드가 피아로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놈을 막아야 돼!”
그리고.
“그대인가!!”
파직-!
파지직!!
전격이 나부꼈다.
순식간에 그리드 앞까지 도달한 백발의 외팔 사내, 카일은 과거에 보았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전류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자연 재해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바로 그대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무신의 호의를 외면한....! 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고함치던 카일이 화들짝 놀랐다.
그리드의 얼굴을 보자 옛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밀짚모자 아래로 엿보았던 무패왕의 후예의 얼굴.
압도적인 힘으로 내 오른 팔을 잘라갔던 그 절대자의 얼굴을 잊을 리 만무하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군.”
사색이 된 카일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
그리드 일행의 어안이 벙벙해졌고.
“그럼 이만.”
카일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퀘스트 <무신의 추종자, 카일>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앞으로 당신은 무신의 유적지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그리드도, 무신 제라툴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한동안 조용히 있었다.
한참의 정적 사이에.
번쩍!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대현자 스틱세이가 출현했다.
이때다 싶었던 그리드가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무신에게 정중히 말했다.
“그, 그럼 좀 다녀오겠습니다.”
-.....
“어, 어서 출발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