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농법 제8장 도정.”
“....!?”
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협곡 전체를 뒤흔드는 대폭발이 발생했다.
피아로가 추수한 수천 개의 볍씨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디워스를 집어삼켰다.
“크아아아아아악!!”
비명이 메아리친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미처 반응 못한 디워스가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취기가 날아간 그의 몸이 둔해졌다.
피아로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행동에 나섰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낫을 꺼내 디워스의 심장을 찍었다.
그에게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하란 제국의 공작 ‘취공 디워스’를 해치웠습니다.]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위대한 업적입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오릅니다. 2천의 명성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티폰 공작가문의 보구 <마법 호리병>을 얻었습니다.]
[티폰 공작가문의 보구 <백룡주>를 얻었습니다.]
[당신의 기사 ‘피아로’가 <칠공작 압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의 기사 ‘피아로’의 격이 진일보하는 중입니다!!]
쏴아아아....
제국의 공작이 이토록 허망한 최후를 맞이한 전례가 있던가.
잿빛으로 산화하는 디워스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그렌할과 모르이즈, 그리고 바사라의 심경이 복잡해진다.
그들을.
“아무도 돕지 않는가.”
피아로가 비난했다.
“그대들은 여전하군.”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피아로는 처음부터 세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당장 그리드를 위협하고 있던 상대가 디워스인지라 그를 먼저 처단했을 뿐이다.
공작들이 디워스를 도울 리 없다는 계산까지 그의 행동 저변에 깔려있었다.
공작들은.
이미 과거에도 나와 내 가족들을 돕지 않고 외면한 전력이 있었으니까.
꾸욱....
피아로가 이를 악 물었다.
나 혼자서만 전우이자 친구라고 믿었던 이들.
그나마 바사라는 접점이 적어 원망할 대상조차 안 되지만, 그렌할과 모르이즈는 다르다.
적기사단 단장이던 시절, 피아로는 그렌할과 모르이즈라는 전사들과 깊이 교감했었다.
같은 황실을 섬기고 같은 백성을 위해 싸웠던 그들을 존중하고 신뢰했었다.
일방적인 신뢰였다.
나와 달리 저들은 나를 쉽게 외면했으니까.
“피아로 공....”
자신들을 향한 피아로의 분노와 슬픔을 느낀 그렌할과 모르이즈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피아로를 마주볼 용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지난 세월 동안 피아로의 가족을 위해 싸우고 피아로의 무사안위를 빌었던 그들이지만.
그들은 결국 피아로의 가족을 돕지 못했고 피아로와의 재회를 예상못했기에.
이 갑작스러운 사태 앞에서.
그리고 피아로가 어떤 고통과 슬픔을 느꼈을지 뻔히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들은 감히 어떠한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저 죄인의 심정으로 고개 숙일 뿐이다.
피아로는 애써 울분을 다스리고 있었다.
“....이제와 새삼스레 원망하지는 않겠다.”
내 어린 동생을 목말 태웠던 그렌할의 넓은 어깨를 외면하며.
“나와 내 가족의 파멸은 나의 부덕이 발생시킨 결과. 내게는 그대들을 원망할 자격이 없으니.”
평소에는 망나니처럼 행동하는 주제에 내 부모님 앞에서만큼은 깍듯했던 모르이즈를 외면하며.
“지금의 나는 그저 나의 왕을 지키고자 싸울 뿐.”
뿌옇게 차오르는 눈을 닦아낸 피아로는, 농기구를 고쳐 쥐었다.
그는 그렌할과 모르이즈, 그리고 바사라가 당연히 디워스와 한패라고 생각했다. 그리드를 위협하는 존재로 해석했다.
당연하다.
사하란 제국은 템빨국의 적이니까.
‘싸움을 길게 끌어선 안 된다.’
아직 피아로의 자연경은 완전하지 않다.
무한한 동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디워스와의 전투에 전력을 다한 피아로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피아로는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저들로부터 그리드를 지키기 위해서는 속전속결을 노려야한다고.
처음부터 모든 비기를 사용하고 진원진기까지 끌어내야할 것이라고.
‘반드시 지킨다.’
내 목숨은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그리드에게 구원 받은 목숨, 그리드를 위해 쓰리라.
피아로가 다짐할 때 반전이 발생했다.
그리드가 갑자기 황당한 선포를 내렸다.
“피아로, 호미를 거둬라.”
“....?”
“저들은 내 친구다.”
“....전하?”
귀를 의심하는 피아로에게.
“그리고 이 두 분은 귀공의 가족들을 지키고자 고군분투 했었어요. 결국 아무도 지키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지난 20년 가까이 고통 속에 지내오셨죠.”
지혜롭고 공명정대하기로 유명했던 바사라가 첨언해주었다.
“면목이 없소....”
“제길, 미안하다고. 정말.... 정말로 미안하다고....”
석상처럼 굳어 선 피아로에게 그렌할과 모르이즈가 사죄한다.
털썩.
피아로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온 몸에서 진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귓가에 벌떼가 붕붕 날아다니는 환청을 들으면서 정신이 아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