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912화 (1,552/1,794)

“무상농법 제2장.”

호미를 꺼내 쥔 피아로가 조용히 읊었다.

“급성장.”

푸화하하하하학!!

“....!?”

디워스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거대한 혼돈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황량한 협곡.

모래와 먼지만 뒹굴고 있던 피폐한 땅으로부터 온갖 종류의 곡물과 나무들이 자라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메마른 땅이 풍요로운 논밭으로 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빡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디워스는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환술....?’

아니, 아니다.

고개 숙인 벼들이 물결치는 광경과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로부터 솟아나는 달콤한 과향은 결코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쯤 되는 고수가 환술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리 없다.

“괴상한 잡기를 익혔군!!”

피아로가 뿌렸던 강기의 조각들에는 생명이 담겨있었고, 피아로는 생명을 촉진시키는 기술을 구사함으로서 작금의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이 사실을 빠르게 파악한 디워스가 입에 술 한 모금을 머금더니 그대로 뱉어버렸다.

푸확!

입으로부터 토해지는 술줄기에 강력한 마력이 담겼다.

디워스의 일직선상에 우거진 벼들과 콩나무들이 지독한 술기운을 감당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끝에 피아로가 있었다.

시든 논밭을 가로질러 달린 디워스가 도약해 손을 뻗었다.

퍼엉-!

피아로의 호미와 디워스의 일장이 충돌하며 폭음을 발생시켰다.

휘릭-!

상대가 상대인지라, 디워스는 괜한 기술을 다투지 않았다. 반동을 타고 회전한 그가 반대쪽 손에 숨기고 있던 암기를 꺼내어 쏘았다.

흰털 대나무 거미의 독낭을 독주에 숙성하여 만든 극독.

무색무취를 자랑하는 그 무시무시한 독을 가득 묻힌 바늘이 소리도 없이 날아가 피아로의 허벅지 안쪽에 꽂혔다.

‘방심했군!’

씨익!

디워스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티폰 공작가문은 독의 명가.

극한의 경지에 오른 고수라 할지라도 디워스 공작의 독 앞에서는 취약해지게 마련이다.

디워스는 이 순간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제국의 전 기둥이었던 피아로조차 반응하지 못한 자신의 암수에 자부심을 품었다.

하지만 피아로는 멀쩡했다.

“하찮다.”

“....!?”

피아로는 디워스의 암수에 반응하지 못한 게 아니다.

전설의 격과 결합 된 자연경의 경지가 만독불침의 육신을 만들어준 바.

피아로는 알고도 당해줬다.

디워스의 유일한 자존감마저 철저히 박살내주기 위함이었다. 그에게 최악의 죽음을 선고하기 위한 밑작업이었다.

서걱-!

피아로의 호미가 디워스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술에 취한 디워스의 움직임은 예측하지 못하는 경로를 자랑했기 때문에 쉽게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흐느적 움직여 호미를 피하는 디워스의 옷섶이 풀어졌다.

“무슨!”

비장의 극독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디워스는 조금의 중독증세도 보이지 않는 피아로의 모습에 당황했다. 갑자기 펼쳐진 논밭을 보았을 때 이상으로 큰 혼란과 충격을 느꼈다.

하지만, 집중력을 잃지는 않았다.

술 한 모금을 더 마셔 취기를 끌어올린 그가 혼란과 공포를 몰아냈다.

이때.

“더 큰 격을 쌓아올리셨구려....”

먼발치에서 대결을 지켜보던 그렌할 공작은 감격하고 있었다.

목숨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고 은둔자의 삶을 살아왔을 피아로.

하루하루 고통과 불안 속에 지내왔을 그가 과연 예전과 같을까?

솔직히, 그렌할은 반신반의 했었다.

피아로가 설령 살아있다 하더라도 예전만 못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 무엇인가.

그리드의 부름을 받고 당도한 피아로는 건재한 모습을 자랑했다.

더 강해졌다, 라고 말하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으나 독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니 더 높은 격을 쌓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한데 왜 검술을 봉인하고 있는 거지?’

그렌할과 모르이즈는 의문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피아로는 검성을 노리는 대검호였다.

한데 작금의 피아로는 검이 아닌 농기구를 손에 쥔 채 기껏 모은 기로 논밭을 일구고 있었다.

기사의 정신과 갑옷을 무장하고 있을 뿐, 전투 내내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농부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숨어있기에 스스로를 제약하는가.

이대로는 승기를 잡지 못하고 디워스에게 당하는 게 아닐까.

그렌할과 모르이즈의 불안감이 강해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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