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9권 - 2화
‘고통의 연속이었겠군.’
번헨 열도에서 수십 만 악마대군과 홀로 맞서 싸웠던 파그마.
헥세타이아 신의 본질을 엿본 그는 선과 악의 구분이 잘못 됐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브라함을 해친 일을 후회하며, 숨 죽여 오열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마 그 시점의 파그마는 무신에게도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될 때마다 충격과 고통을 받고 종국에는 자신의 인생 자체에 회의감을 느꼈으리라.
‘....가여운.’
브라함도, 파그마도 불쌍한 사람이다.
피아로와 아스모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드는 우정과 신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보았다.
‘나는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친구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정말로 힘들게 얻은,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들을 배반할 리 없다.
잠들어있는 브라함의 영혼에게 나의 이 마음이 닿기를.
바라면서, 그리드는 파그마의 검무 목록을 불러왔다.
모든 파그마의 검무에 새로운 옵션이 추가돼 있었다.
<파(波)>Lv.1
★파(波)를 전개 시 시전자의 몸을 <브라함식 실드>가 감쌉니다. 실드는 1만+지력수치의 피해량을 흡수하며 실드가 유지되는 동안 시전자의 방어력을 300 상승시킵니다.
마나 소모:500
<제(制)>Lv.1
★제(制)를 전개 시 <브라함식 그리스>가 발동합니다. 그리스의 발동 범위는 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와 같으며 전개 시간은 제의 지속 시간과 같습니다. 그리스의 범위가 닿는 지면의 마찰계수가 사라지므로 대상은 반드시 미끄러집니다. 단, 대상이 지면에 발을 딛고 있을 경우에 한정되는 효과입니다.
마나 소모:2,000
<연(聯)>Lv.1
★연(聯)을 전개 시 <브라함식 윈드 커터>가 생성됩니다. 연(聯)의 4회 타격마다 폭발하는 기류 사이에 윈드 커터가 하나씩 생성되며 윈드 커터의 피해량은 5천으로 고정됩니다. 윈드 커터는 피격 대상을 낮은 확률로 절단합니다. 절단 확률은 윈드 커터의 적중 부위와 대상의 방어력에 영향을 받습니다.
마나 소모:1,800
<살(殺)>Lv.1
★살(殺)을 전개 시 <브라함식 디텍트 포스>가 발동합니다. 디텍트 포스는 대상을 추격하는 성질의 마법입니다. 살의 적중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나 소모:1,000
<극(極)>Lv.1
★극(極)을 전개 시 <브라함식 웨폰 인챈트>가 발동합니다. 무기 공격력이 순간적으로 50퍼센트 상승합니다. 효과는 검무 발동 종료와 함께 사라집니다.
마나 소모:1,200
<회(回)>Lv.1
★회(回)를 전개 시 시전자의 몸을 <브라함식 실드>가 감쌉니다.
마나 소모:500
<락(落)>Lv.1
★락(落)을 전개 시 <브라함식 파이어>가 발생합니다. 락의 효과가 미치는 모든 범위에 3천의 피해와 함께 3초 동안 화상 데미지를 입히는 불꽃이 뒤덮입니다.
마나 소모:800
<화(花)>Lv.1
★화(花)를 전개 시 <브라함식 라이트닝>이 발생합니다. 화에 적중당하는 대상은 3천의 데미지와 함께 매우 낮은 확률로 감전됩니다. 감전 시 몸이 마비됩니다.
마나 소모:800
<초(超)>Lv.1
★초(超)를 전개 시 <브라함식 디텍트 포스>가 발동합니다. 초 상태의 공격은 적중률이 상승합니다.
마나 소모:1,000
<화회(花回)>
★라이트닝과 실드 효과 적용.
마나 소모:1,300
<극살(極殺)>
★웨폰 인챈트와 디텍트 포스 효과 적용.
마나 소모:2,200
<초연화(超聯花)>
★디텍트 포스와 윈드 커터, 라이트닝 효과 적용.
마나 소모:3,600
<연살화극(極殺花落)>
★윈드 커터와 디텍트 포스, 라이트닝과 인챈트 웨폰 효과 적용.
마나 소모:4,800
*마법의 술식을 단순하게 개량하는 과정에서 마법의 위력들이 크게 감소한 상태입니다.
“.....”
술식의 단순화로 인한 위력 약화.
분명히 그렇게 명시돼 있었으나, 그리드는 그저 감탄밖에 안 나왔다.
이게 어딜 봐서 약화 된 마법이란 말인가?
간단한 예로, 평범한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웨폰 인챈트의 무기 위력 향상률은 20퍼센트에 불과하다.
물론 1레벨 기준에서의 이야기지만, 레벨이 오를 때마다 상승하는 위력도 6퍼센트에 그쳤다.
무기 위력을 50퍼센트 올려주는 웨폰 인챈트는 최소 5레벨이라는 뜻이며 당연히 마나 소모값도 훨씬 컸다.
‘대신 지속 시간은 3분이 넘어가지만.’
어쨌든 그리드는 무척 만족했다.
순전히 브라함의 호의 덕분에 얻게 된 힘.
만족하지 못하면 염치없는 것이다.
‘굳이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마나 소모량....’
현재 398레벨인 그리드의 총 마나는 1만 8천이 안 된다.
그나마 이것도 <지공>이라는 세컨드 클래스 탓에 스탯 중 절반이 지력에 강제 투자돼서 얻을 수 있던 마나다.
‘....가만?’
상태창을 불러온 그리드가 자신의 세컨드 클래스를 확인했다.
전설의 대마법사의 가능성이 삭제됐다고 해서 세컨드 클래스도 변경될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세컨드 클래스는 여전히 지공으로 유지 중이었다.
‘결곡 지공도 브라함의 힘 중 하나니까. 브라함의 후예가 될 가능성이 열렸어도 지공 상태는 유지되는 거군. 응? 설마?’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새롭게 바뀐 검무의 단점은 단 하나, 마나 소모량 뿐이며 이마저도 활성화와 비활성화를 통해서 제어가 가능하다. 또한 부조리의 반지의 도움을 받으면 마나가 크게 부족할 일도 없을 것이다.
-라고, 간단하게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니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앞으로는 마법으로 광물을 단련하는 작업이 불가능해졌다는 점.
그리드는 상황에 따라서 망치 대신 매직 미사일로 광물을 단련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대장장이 기술이 약화 된 셈이다.
‘아, 이건 많이 안 좋다.’
....아니, 진짜로 안 좋은 거 맞아?
좌절하던 그리드가 히든 피스의 결과를 돌이켜보았다.
‘기존에 사용하던 마법이 삭제 됐다.’는 문구 같은 게 있던가?
‘없었어.’
안색이 급속도로 좋아진 그리드가 <사용 가능 마법 목록>을 불러왔다.
그러자.
....
<매직 미사일>
<알람>
....
그리드가 기존에 애용해왔던 마법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역시. 천재 브라함이 마법 단련을 간과했을 리 없지.’
좋다.
이번에 얻은 히든 피스에 문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차 확인한 그리드가 기쁨에 전율했다.
두 주먹을 말아 쥐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음 같아서야 만세를 외치며 방방 뛰고 싶었지만, 제국의 기사들과 칠공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꼴을 보였다간 체통을 잃고 말 것이다.
험험, 헛기침하며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하는 그리드에게.
“저, 저기. 템빨왕 전하....?”
칠공작들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생명력 회복 속도가 대체 얼마나 빠른 건지, 어느새 대부분의 상처를 수복한 그들은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한데 표정은 멀쩡하지가 않다.
다들 반쯤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힘을 숨기고 계셨던 겁니까....?”
정말로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웃어른을 대하듯이 공손한 태도로 모르이즈 공작이 물어왔다. 어느새 극존칭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공작들과 달리 예의가 부족하고 다소 양아치 같은 면이 있던 그가 이토록 예의바르게 나오자 그리드는 짐짓 당황했다.
하지만 잠시뿐.
그리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소. 귀하들이 너무 강하니 내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던 것 뿐.”
내가 설마 그렇게 세겠냐? 응~ 아냐. 브라함이 도와준 거야.
그래도 명색이 적국의 귀족들인데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도 없다.
그리드는 차라리 공작들의 오해를 이용하기로 했고 그 방법은 제대로 먹혔다.
“당대 최고의 대장장이이자 검호급 검사이면서 정령술과 사령술까지 다루시더니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대마법사급 마법 실력까지.... 가히 존경스럽습니다.”
맹수왕 모르이즈.
그는 호승심이 강하고 난폭한 성정을 지녔지만 자신이 인정하는 실력자에게는 도리어 예의를 다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호승심마저 억누르는 강자를 마음 깊숙이 인정하고 존경했기 때문이다.
웅성웅성.
제국의 기사들이 당황해서는 수군거렸다.
당연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는 제국 공작이 엄밀히 따지면 적국의 왕인 그리드에게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으니 태연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거의 반역이다.
하지만 정작 그렌할과 바사라는 모르이즈의 태도를 꾸짖지 않았다.
그리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또한 모르이즈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초롱초롱했다.
특히 바사라는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고 있었다.
“평소에는 일부러 미모를 감추고 다니시는 건가요?”
“....?”
“이해해요. 그 정도 미색을 갖추셨으니 얼마나 많은 날파리가 꼬였겠어요. 일부러 못 생긴 것처럼 변장하고 다니실 수밖에 없었겠죠.”
“.....”
나, 잘 생겼다며?
억울한 표정을 지은 그리드가 힐끔, 유라를 바라보자 그녀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리드는 분명히 남자답게 잘 생긴 편에 속했지만 절세미모의 브라함과 비교하면 당연히 오징어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교대상이 너무 나쁘다고 말 할 수 있었다.
괜히 마음이 상한 그리드가 침울한 표정을 짓자.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반쯤 제정신이 아닌 모르이즈와 바사라를 대신해서 그렌할이 깊숙이 허리를 숙여왔다.
“전하의 도움 덕분에 우리 세 사람이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3백의 기사와 5천의 병사들이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사하란 제국의 은인이십니다.”
이제야.
그리드는 자신이. 아니, 브라함이 칠공작들을 구한 일이 얼마나 큰 대사건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드는 제국을 지탱하는 칠공작 중 무려 3명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결과적으로 제국의 은인인 셈이다.
이 일을 칠공작 본인들과 제국이 그냥 넘길 리 없었다.
“심지어 전하께서는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국에게 일방적인 침략을 당하셨지요. 한데 그토록 너그러운 마음씨로 우리를 구하셨고 제국에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으니 전하의 커다란 그릇을 저 같은 소인은 감히 가늠조차 못하겠습니다.”
이쯤 되니 제국 기사들의 분위기도 숙연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르이즈의 태도에 황당해 하던 그들이 그리드 앞에 부복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전하. 저 그렌할의 이름을 걸고 맹세컨대 제국은 오늘 날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렌할의 맹세에 이어서.
“감사드립니다, 전하!!”
“감사드립니다, 전하!!”
300명의 기사들이 복창했다.
모르이즈와 바사라도 어느새 공손히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
한낱 소국의 왕이 대륙을 지배하는 대제국의 공작들과 그들의 기사들에게 칭송 받는 광경.
필시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었다.
만약 이 소식이 외부에 유출 될 경우, 전 세계가 대악마 베리드가 아닌 그리드의 뉴스로 도배될 것이며 그리드의 명성은 기존보다 몇 배나 커질 것이었다.
‘....차원이 다르다.’
라우엘과 십공신들, 그리고 휴렌트와 스컹크는 피부 위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특히 브라함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휴렌트와 스컹크의 충격이 컸다.
그들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이 그리드가 의도해서 만들어진 결과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