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889화 (884/1,794)

템빨 48권 - 14화

<맨들맨들 문어머리>

등급:유니크

내구력:120/120 방어력:250

*환한 곳에서 빛이 납니다. 적의 시야를 방해합니다.

*표면이 미끄러워 모든 물리 공격의 피해를 19퍼센트 경감시킵니다. 찌르기 공격과 베기 공격에 한해서 20퍼센트 추가 경감.

*물에 닿을 시 부풀어 오르고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물을 많이 먹을수록 효과가 커집니다. 최대 35퍼센트 상승.

적해에 서식하는 빛 문어의 머리 윗동입니다.

민머리인 사람이 착용 시 무척 편안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용 조건:모발이 없을 것.

무게:80

“이건 반트너 꺼고.”

“닥쳐.”

“싫음 말고.”

“아, 아니. 싫은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욱했네. 미, 미안.”

그리드와 카츠가 뒤늦게 소란을 듣고 달려왔을 때.

문어의 피막은 이미 완전히 벗겨진 상태였다.

휴렌트의 오러 블레이드가 녀석의 강점을 무위로 만든 것이었다.

녀석을, 카츠는 동료들에게 부탁하여 독식했다.

새롭게 얻은 무기의 경험치를 쌓기 위해서였다.

아직 노말 등급에 불과한 <갈망하는 백호의 검>의 공격력은 무척 낮았고 문어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카츠는 좋았다.

블러드 워리어 특유의 지속력을 이용해서 그는 문어와 최대한 오랜 시간 사투를 벌였고 백호검의 경험치를 크게 상승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얻은 전리품이 바로 <맨들맨들 문어머리>와 <먹음직한 문어다리 조각>이었다.

<먹음직한 문어다리 조각>

쫄깃한 식감이 일품인 빛 문어 다리의 일부입니다.

조리하지 않고 복용 시 낮은 확률로 식중독에 걸리고 보통 확률로 스탯 하나가 0.5 상승합니다.

단, 특수 스탯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카츠와 휴렌트가 확보한 문어다리 조각 총 2개.

하나당 12인분이었기 때문에 그리드와 십공신들, 그리고 휴렌트는 공평하게 나눠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총 1씩의 스탯 포인트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식중독에 걸렸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그리드만 제외하고.

“아니 씹...”

행운 스탯은 뭐하는 거지?

파업이라도 했나?

“.....”

적해를 항해하는 함선 위.

동료들의 동정어린 시선을 애써 외면한 그리드가 구석에 쭈그려 앉을 때였다.

쿠콰콰콰쾅!!

해수면을 꿰뚫고, 이번에는 초대형 복어가 튀어나왔다.

백호검의 경험치를 쌓을 기회를 얻은 카츠가 눈을 빛내며 나서려 했으나.

“초연화! 연살화극! 십만대군 학살검!!”

카츠가 나서기도 전에 복어는 잿빛으로 산화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그리드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었다.

휴렌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 문어 한 마리 잡는데도 그렇게 오래 걸렸는데...’

역시 난 허접하다.

고개를 푹 숙인 휴렌트도 구석에 쭈그려 앉았다.

이제 곧 무신의 유적지다.

***

흐으으으-

우워어어어-

저들은 어떤 업보로 영혼을 저당 잡힌 것일까.

의식의 완료와 함께 나타난 ‘문’의 테두리는 수많은 인면(人面)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백, 수천 개의 얼굴은 성별도, 나이도, 인종도 달랐으나 공통점이 있었으니.

흐흑흑흑!!

으아아아아!!

고통에 몸부림치며 통곡한다는 점이었다.

“우읍....!”

기괴하고 소름 돋는 광경에 사람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린다. 누군가는 주저앉아 토악질을 시작했다.

대악마 강림을 한낱 이벤트로 치부했던, 천하의 아레스 군단원들이 초장부터 기세를 잃은 것이다.

“테, 템빨단이 레이드한 대악마는 32위였습니다. 22위 대악마는 그보다 배 이상 강할 텐데 저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오아시스가 뻘뻘 식은땀을 흘리며 묻는다.

그의 떨리는 시선에 통곡의 문을 비집고 나오는 무엇인가가 포착됐다.

오랜 세월을 증명하는, 곳곳이 부식 된 금관을 머리에 얹은 존재.

병든 말 위에 앉아 동공 없는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녀석의 피부는 푸줏간에 걸린 고기처럼 선홍색을 띄었다가 썩은 폐 같은 색을 하더니, 이내 다시 창백한 푸른색으로 교차하기를 반복했다.

체구는 비쩍 마르고 왜소한데 허리만 비죽 길어 족히 50개는 될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다.

대악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없었더라도, 귀신같은 눈깔과 기이한 생김새에 공포심을 느꼈으리라.

“너는 물러나라. 레이드가 시작되기 전에 떠나도록 해.”

“네...?”

반론은 허락하지 않았다.

덜덜 떠는 오아시스의 등을 아레스의 우악스런 손이 밀쳐버렸다.

그러자 오아시스를 건네받은 사마휘가 주술을 써서 자리를 떠났다.

쓰게 웃은 아레스가 사마휘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사기가 높은 것과 자기 스스로를 모르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의 이야기입니다. 전하께서 일구신 군대는 가히 막강한 것이 사실이나, 아직 제국은커녕 템빨국보다 못합니다. 한데 병사들은 겁이 없고 장수들은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으니 위험합니다. 한 번의 뼈저린 패배가 필요합니다.”

“패배가 필요하다고?”

“백전백승의 토대는 나를 아는 것. 멀리 봤을 때 패배는 꼭 필요한 경험이지요. 대악마 의식을 언제까지고 막을 수 없으니 대악마는 필시 강림하고 말 터. 전하께서는 군대를 물리지 마시고 대악마 토벌을 진두지휘 해주십시오. 그리고 군대에게 패배를 교육시키십시오.”

“....지금 나보고 내 가신들을 희생시키라는 말이요? 아무리 군사의 말씀이라도 이번만큼은 용납할 수 없소. 발할라는 대악마 토벌에 나서지 않을 것이오.”

“아니요. 토벌에 나서서야 합니다. 가신들에게 부족함을 통찰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는 발할라가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이자 발할라의 이름을 세상 전체에 널리 알릴 기회이기도 합니다. 대악마에 대항함으로서 레베카 교단의 호의를 얻을 수 있으며, 대륙을 위해 희생함으로서 온 대륙 백성들의 민심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가신들을 배신하는 행위외다.”

“배신이 아니라 가르침이며, 정의란 때때로 약이나 독이오니. 부디 이번만큼은 저를 믿고 냉정하게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소. 하지만 내 말하노니, 나의 군대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오. 군사께서는 우리 발할라가 템빨국보다 못하며 대악마에 쉽게 패배할 거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내 생각은 다르오. 기왕지사 싸우는 김에 반드시 대악마를 멸하고 승리를 쟁취하겠소.”

설득 당했다.

한 마디로 ‘주제 파악’을 시켜야한다는 말에는 공감하지 못했으나, 대악마 레이드에 나섬으로써 레베카 교단의 호감과 발할라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부분만큼은 간과할 수 없던 것이다.

저벅.

아레스가 앞으로 나섰다.

가신들의 사기를 유지시키고자.

“이벤트는 즐겨야지.”

대악마를 경시하였고.

“가자.”

가신들을 신뢰하며.

“우리도 템빨단처럼 할 수 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자.”

대악마 레이드에 도전한다.

쏴아아아아아--

군신 아레스의 버프가 비처럼 내렸다.

모든 아군의 사기와 능력치가 상승하며 베리드의 능력치 하락 디버프를 상쇄시킨다.

거기에 추가로.

“일단 협력하겠습니다만.... 어떻게 되도 전 모릅니다.”

교황 데미안의 버프가 덧씌워지자 아레스 군단원들과 레베카교 사제들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했다.

수백 대의 카메라가 지켜보는 현장.

결연한 표정의 아레스 군단원들과 사제들이 전투태세를 취한다.

총공세(總攻勢).

베리드 레이드의 주역이 된 그들은 버프가 유지되는 동안 전력을 다할 각오였다.

쿠오오오오오-!

수백 개의 궁극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장전되며 재사용 대기 시간이 적용됐다.

제아무리 대악마라 할지라도, 버프 상태에 돌입한 수백 명 실력자들의 궁극기를 일시에 폭격당할 경우 무사치 못하리라는 게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시청자들은 대악마 레이드를 독식하게 된 아레스 군단원들과 사제들을 부러워하며 심드렁하게 팝콘이나 먹었다.

한데 그때.

““여러분. 저는 인류의 적이 아닌 동반자입니다.””

아레스 군단원들과 사제들에게 시선을 돌린 베리드가 눈을 갑자기 반달로 그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악마 베리드는 우군입니다!]

흑금색이었던 베리드의 이름이 초록색으로 바뀌더니 ‘적’으로 인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부 퀘스트에 종종 적용되는 아군 보호 시스템이었다.

“어....?”

베리드를 대상으로 장전됐던 아레스 군단원들과 레베카 사제들의 궁극기 중 태반이 취소됐다. 온갖 강맹한 기운들이 발동조차 못한 채 피시식 소멸해버렸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일부 스킬만 간신히 유지되고 있을 뿐.

“인류의 동반자라고요?”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을 대표해서 데미안이 묻자.

““네.””

여전히 피부색이 교차 중인 베리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한다.

처음 등장할 때와 달리 사람 좋은 표정을 지은 채, 그는 너무나도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라고 해서 모두 인류와 대적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또한 지성을 지닌 존재. 인간과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

심히 엉뚱한 말이다.

베리드가 등장하자 전율하며 부복했던 야탄교 신도들이 혼란에 빠졌다.

모든 대악마를 인계에 현신시키고 인류를 정복하여 신계와 대적할 수 있게끔 발판을 만들 것.

이와 같은 숙명을 부여 받았던 야탄교 신도들 입장에서는 베리드의 선언이 가히 큰 충격이었고 혼돈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대악마가 적이 아닐 수도 있나?”

아레스 군단원들과 사제들은 사태 파악이 어려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시스템’이 베리드를 우군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니 베리드의 말을 마냥 거짓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마침 썩은 폐 같은 색깔이 된 베리드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믿기 어려우시겠지요. 아무래도 오랜 역사 동안 ‘우리’는 인류의 위협이 되어왔으니. 저의 태도가 낯설고 믿기지 않으실 겁니다. 당신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 또한 ‘우리’가 감당해야할 업보이겠지요. 우리가 저지른 옛 죄를 깊이 사죄드립니다.””

“....!”

모두가 경악했다.

베리드가 고개를 숙였기에.

현장에 모인 이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 깜짝 놀랐다.

인류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하며, 인간들에게 사죄를 올리는 대악마라니.

상상조차 못했던 존재다.

전혀 새로운 변종이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

고개 숙인 베리드의 입으로부터 기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공포의 근원을 자극하는 소음.

그것은 분명히 언어였으며, 베리드는 웃고 있었다.

동시에.

““역시 인간은 어리석군요.””

초록색이었던 베리드의 이름이 다시 흑금색으로 되돌아왔고.

[베리드는 우군이 아닙니다!]

베리드는 다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적’으로 인식되었다.

“뭐...!”

대경실색한 아레스와 데미안,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이 방어 스킬을 전개했다.

베리드를 태운 병든 말은 앞발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콰앙-!

지면을 세게 내리 찍는다.

파장은 컸다.

대지가 박살나며 돌과 먼지가 마구잡이로 비산했다.

그것들은 이내.

쩌저적-!

쩌저저저저적-!

베리드의 마력에 반응하여 금과 은으로 변한 후.

투콰콰콰콰콰콰쾅!!

아레스 군단원들과 레베카 사제들을 덮쳤다.

처음 사용했던 버프 중 태반의 지속 시간이 끝난 상태였던지라, 아레스 군단원들과 레베카 교단원들은 금은보화의 태풍을 쉬이 감당하지 못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 번에 너무 큰 피해를 입어 상태 이상 ‘혼란’에 빠집니다.]

[상처 부위가 금속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피부가, 살이, 근육과 뼈와 피가 굳어갑니다.]

“으, 으아아아악!!”

누군가는 팔이, 또 누군가는 다리가, 그리고 어떤 이는 얼굴이나 몸통이 금속으로 변해갔다.

금속이 된 부위는 납덩이처럼 무거워졌고 제어가 불가능했다.

눈이 금속으로 변한 사람은 장님이 되었고 코와 입이 금속으로 변한 사람은 숨을 쉬지 못하였으며 심장이 금속으로 변한 사람은 즉사 판정을 받았다.

고통보다 공포가 크다.

사람들의 아비규환을 바라보며.

““벌레 같은 모습이 잘 어울리네요.””

대악마 베리드가 빙그레 웃었다.

시스템조차 기만하는 거짓.

32위 대악마 벨리알과는 차원이 다른 베리드의 존재감이 인류를 압도한다.

단 한 사람.

“베리드여!”

브누아 황자를 제외하고.

“소환의 맹약에 따라서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겠다!”

공포와 고통에 질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인류의 미래에 절망이 끼얹어졌음을 알지라도.

브누아 황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나의 진실만이 궁금했다.

“나의 모친을 살해한 범인은 황비 마리가 맞는가!”

““네, 맞습니다. 독살이죠.””

순순히 대답해준 베리드가 자갈 하나를 주워 종이로 바꾸었다.

이미 앞서 보여준 바 있는 궁극의 연금술이다.

““그녀가 사용한 독이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의 협력을 받아 황비에게 독을 복용시켰는지. 모든 경위가 이 안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휘릭.

종이가 브누아 황자의 손아귀로 날아간다.

안에 담긴 내용을 확인한 브누아 황자가 깊은 살심을 품었다.

황실을 피로 물들 복수극의 서막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22위 대악마 베리드가 아레스 군단을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처참한 광경에 온 정신을 사로잡혔다.

단 한 마디의 거짓으로 적의 궁극기와 버프를 무력화시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금술로 폭격을 가하는 베리드의 살육극.

그것은 이벤트나 축제 따위가 아니었다.

무너지는 대륙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통째로 사라진 듯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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