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888화 (883/1,794)

템빨 48권 - 13화

키리누스와 레이첼.

대륙제일창의 칭호를 놓고 시작 된 그들의 대결은 예상대로 치열했다. 하지만 절대자의 기품이나 위엄은 엿볼 수 없는 결투였다.

2개의 산을 넘나들며 나흘 밤낮을 싸워댔으니 종국에는 개싸움처럼 변질된 것이다. 서로 멱살을 붙잡고 땅을 뒹굴 때도 있었다.

‘오늘로서 한 달 째.’

양쪽 다 녹초가 될 때까지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자 휴식 후 다시 대결.

키리누스와 레이첼은 그 짓을 벌써 7회째 반복했다. 두 사람의 대결은 벌써 한 달째 진행 중이었다.

‘결판이 날 수가 없는 구도다.’

두 사람 모두 란, 나, 찰의 극의를 깨우친 창술의 대가.

공격과 방어가 합일의 경지를 이루었으니 쉽게 결판을 낼 수 없다. 하나의 동작으로 공격과 방어가 연계되므로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어렵다.

─라고, 크라우젤은 통찰할 수 있었으나 그다지 의미 없는 해석이다.

게임 시스템이 키리누스와 레이첼을 동급의 최강자로 인식하고 있었고, ‘절대자는 쉽게 죽어선 안 된다.’는 도출을 토대로 막대한 생명력과 방어력을 부여한 상태.

플레이어는 일격, 이격에 없앨 두 사람의 공격력이 서로에게는 고만고만한 공격력에 불과했고 아등바등 해봤자 서로의 절기만을 노출할 뿐, 결판을 내는 건 불가능했다.

이곳이 판타지, 무협 등의 소설 속 세계였다면 두 사람의 경지를 표현할 온갖 묘사가 서술됐을 테지만 공교롭게도 현실이다.

그것도 ‘게임’이라는 틀에 얽매인 현실이었기에 시스템의 절대값을 벗어날 순 없었다.

허나.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당사자들에게는 지루하고 짜증났을 한 달이, 적어도 크라우젤에게만큼은 천금과도 맞바꿀 수 없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두 사람의 절기를 엿본 크라우젤의 견식은 한 달 전과 비할 바 없이 넓어져 있었기에.

집중한 채 결투를 지켜보는 크라우젤의 등 뒤로.

“.....”

레이첼의 기사들이 무릎을 꿇은 채 공손히 앉아있다.

하나하나가 20번대 적기사의 실력을 지닌 그들 서른 명이 크라우젤 한 명에게 완전히 제압당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첫날, 서른 명의 기사들은 크라우젤을 압도했고 그의 목숨을 빼앗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크라우젤이 어떤 결계를 펼치자 푸른 구름이 쏟아져 나왔다. 시계가 가려진 기사들은 크라우젤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실패했다.

기사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에 회복하고 돌아온 크라우젤이 다시 기사들과 혈투를 벌였고.

똑같은 짓을 보름 이상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기사들은 크라우젤을 압도하지 못하게 되었다.

급기야 일주일 전부터는 서른 명 전원 크라우젤에게 패배하고 백기를 들었다.

크라우젤이 그들의 목숨을 빼앗지 않은-혹은 못한- 이유는 두 가지.

전원 창을 쥔 기사들의 협격이 서로를 보호하는데 특화됐기 때문이며, 레이단을 침략했던 제국군이 이미 며칠 전에 퇴각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전쟁 소식에 크라우젤은 감탄하고 전율했다.

과연 그리드는 대단했다.

천하의 제국을 패퇴시키다니 말이다.

‘유적지의 발견은 제국에게 좋은 기회였겠지.’

템빨국에게 무참히 짓밟히게 될 상황에서 마침 퇴각할 명분이 생겼으니까.

‘아쉽게 됐다. 유적지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템빨국이 제국과 끝까지 싸워 이겼을 텐데.’

크라우젤은 템빨국 전쟁 영상을 모조리 빠짐없이 시청했다.

카츠, 크리스, 페이커 등의 십공신이 활약하는 모습과 놀, 피아로, 메르세데스의 초월적인 능력. 마안족과 수인족, 울족이라는 변수. 그리고 템빨포.

하나하나가 실로 굉장했다.

당장은 제국이 병력으로 압도하는 형국을 취하고 있었으나, 크라우젤이 봤을 때 대륙 곳곳에서 전쟁을 진행 중인 제국의 지구력은 체격에 비해 형편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템빨국이 유리해지고 급기야 그리드의 활약으로 템빨국이 제국을 집어삼키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유적지 발견이 예정 된 수순을 망치고 말았다.

‘그리드, 너무 낙심하지 마라. 아직 너에게는 유적지가 남았다.’

레이첼과 그녀의 기사들이 유적지에 가지 못하게끔 내가 발을 묶겠다.

최소한 그 정도의 도움은 줄 터이니 너는 그 틈에 새로운 보물을 얻어라. 황제를 향한 꿈에 보다 가까워져라.

....라며, 크라우젤은 마음 속 깊이 그리드를 응원했다.

자신에게 연속적인 패배를 안긴 지상최강의 라이벌을 높이 평가했기에 가능한 응원이었다.

같은 시각, 코크로 섬.

“....누가 내 얘기하나?”

헬가오를 쓰러뜨리고 노에와 만난 장소.

전 템빨국령이었던 그 특별한 섬의 해안가에 멍하니 서있던 그리드가 귀를 후빈다.

마침 다가온 카츠가 말했다.

“함선을 구했다. 출발하자.”

“와.....”

재력의 위대함을, 그리드는 오늘 새삼 실감했다.

템빨국의 조선 기술로는 아직 건조할 수 없는 초대형 군함.

천문학적인 시세를 자랑하며, 일반인은 구경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 그것을 설마 돈으로 사버릴 줄이야.

혀를 내두르는 그리드에게 카츠는 무심히 말했다.

“이까짓 건 아무 것도 아니다. 네가 만드는 아이템들이야말로 돈을 주고도 못 사는 보물 아니냐.”

“흐음.... 그건 그렇고 선장은 뭐래?”

“항로를 읽더니 유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최소 열흘은 걸릴 거라더군.”

“이런 배로도? 이거 엄청 빠르다며?”

“적해가 워낙 위험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게 선장의 의견이다. 도중에 바다 괴물들과 조우할 경우에는 기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고, 혹은 실패할 수도 있다고 한다.”

갈레스트에서 출항했다면 시간이 크게 단축됐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갈레스트는 제국에서도 중요한 요지다. 이곳처럼 쉽게 신분을 감출 수가 없다.

“어쨌든 시간은 남아돈다 이거지?”

십공신들과 함께 군함에 오른 그리드.

랜디와 노에, 티라멧과 템빨골들을 소환해서 갑판 곳곳에 배치, 경계를 서게끔 명령한 그리드가 카츠에게 어떤 광물을 건넸다.

“이게 뭐냐?”

<초월자의 힘이 깃든 철광석>

죽음에 예속되지 않는 존재의 힘이 깃든 철광석입니다.

철광석에 깃든 사기(邪氣)를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사기의 뒤에 숨겨진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템 제작 재료로 사용 시 스탯 추가 옵션 발생.

단, 사기로 인해 온갖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큼.

무게:5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츠에게 그리드가 설명했다.

“보다시피 아주 좋은 제작 재료야. 다만 저주 받았기 때문에 아무나 못 다루지.”

“....”

카츠는 그리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 챘다.

블러드 워리어.

피를 갈망하는 전사.

Satisfy 설정 상, 존재 자체가 ‘저주’인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카츠는 온갖 저주를 면역했고 도리어 이로운 효과로 변환시키는 특성을 개화시켰다.

저주를 이로운 효과로 변환시키는 특성.

그리드조차 갖지 못한 힘이다.

그가 지닌 <최초의 왕>칭호는 조건 충족 시 디버프를 ‘반사’하는 효과를 발휘했지 그것을 역으로 이롭게 전환시키진 못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고심한 끝에, 그리드는 카츠야말로 초월 철광석의 주인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걸로 네 검을 만들어줄게.”

“.....”

“금메달 보상 중에 아직 남아있는 거 있지? 네가 얻은 보상이 백호의 숨결이었나?”

“....너 말이다.”

“어?”

“아깝지 않냐....”

“이거? 너한테 쓰는데 왜 아까워. 그리고 나중에 또 얻을 수도 있는 물건이야.”

“.....”

카츠는 지극히 오만한 인물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돈과 권력, 명예, 심지어 외모까지 타고난 그는 세계 자체가 자신의 발아래 있다고 믿어왔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기고만장하게 살았었다.

하지만 Satisfy를 통해서 혼자만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템빨단에 가입한 이후에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그리드다.

남들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카츠는 그리드를 보고 겸손을 배워왔다.

일종의 스승인 셈.

그가 자신에게 큰 선물을 내려준다 하니 감격할 수밖에 없다.

어울리지 않게 안절부절 하며, 고개를 숙였다가 얼굴을 붉혔다가 혼자 몸을 비비 꼬는 카츠의 모습에.

“뭐하냐.”

그리드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서 빨리 백호의 숨결이나 줘봐.”

그리드에게는 휴대용 용광로와 모루, 망치가 있다. 훌륭한 땔감 백린목도 있다. 이제 몇 개 남지 않기는 했지만.

어쨌든, 배 위에서도 대장일이 가능했다.

‘조만간 동대륙에 다시 가봐야 하는데.’

피아로는 백린목과 황금 호두의 재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가치가 높은 아이템이니만큼 양산은 힘들 것으로 추정됐다.

백린목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결국 동대륙으로 떠나야한다는 뜻이다.

‘....무섭구만.’

양반 가람을 떠올리고 몸서리친 그리드가 아이템 제작을 개시했다.

백호의 숨결을 제련하고 단련해서 강화시킨 뒤 초월 철광석을 제련했다. 혹시 사신수의 숨결처럼 강화시키는 게 가능할까 싶어 제련과 단련을 몇 번이고 반복해봤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초월 철광석의 강화는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했다.

‘역시 사신수의 숨결이 특별한 거였어.’

따앙-! 따앙!!

그리드는 수백 개의 아이템 제작법을 보유 중이다.

그중에서도 크라우젤과 함께 창조한 <묵사발(백호검)>의 제작법은 수위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제작법이었다.

‘백호검에 쓰이는 금속을 초월 철광석으로 대체하면....’

어떻게 될까.

따앙! 따앙!

망치질에 열중하는 그리드의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아이템의 주인이 될 카츠의 기대감보다 그리드의 기대감이 더 클 정도였다.

재료의 가치를 정확히 알기에 품을 수 있는 기대감이다.

‘그건 그렇고, 카츠도 참 똑똑하네.’

카츠가 굳이 백호의 숨결을 금메달 보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백호의 숨결의 특성, <회복력>과 <방어력>이 자신에게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급 뱀파이어 이상의 흡혈 능력을 발휘하는 카츠는 딜러가 아닌 딜탱을 추구하는 것이 옳았고 그런 의미에서 백호의 숨결은 무척 현명한 선택이었다.

따앙-! 따앙-!

아이템 제작에 돌입하고 3일이 지난 날.

[아이템 제작을 완료하였습니다.]

<갈망하는 백호의 검>

등급:노멀(성장형)

내구력:390/390 공격력:307 방어력:65

*공격 속도 10% 하락.

*물리 공격력 3% 상승

*물리 방어력 3% 상승

*마법 저항력 3% 상승

*최대 생명력 6% 상승

*땅 속성 공격력 8% 추가

*공격 시 매우 낮은 확률로 검의 무게 급증. 이때 대상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물리 데미지가 33% 추가. 단, 검을 회수하는 속도가 1초 느려집니다.

*착용자의 스탯 중 가장 높은 스탯 3개가 각각 +30.

*사기(邪氣)로 인한 ‘부식’ 효과 발생.

타격 대상이 ‘아이템’, 혹은 ‘건축물’이나 ‘병기’로 분류될 경우 내구력을 대폭 하락 시키고 일시적으로 위력을 저하시킴.

*사기(邪氣)로 인한 ‘저주’ 효과 발생.

착용자와 타격 대상의 능력치 하락 유발.

*스킬 ‘울부짖어라!’가 아직 비활성 상태.

전설을 넘어서 신화가 될 검입니다.

...중략....

“.....”

완성품을 확인한 그리드와 카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츠는 아무리 성장형이라고 해도 아직 노말에 불과한 아이템에 온갖 옵션이 귀속 됐다는 점에 놀랐고, 그리드는 <아직은 웅크린 백호의 검>과 비교하며 감탄했다.

‘크라우젤에게 만들어줬던 백호 검과 비교해서 공격력은 낮지만 방어력이 높고 옵션이 3개나 더 많다. 게다가 새로운 스킬까지.’

초월 철광석이 대단한 효력을 발휘했다는 뜻이며, 그리드의 대장 기술이 발전했기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했다.

크라우젤의 검을 만들었을 당시의 그리드는 헥세타이아 신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대장 기술의 발전에 따른 아이템의 가치 상승이 그리드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역시, 스킬 레벨 업 포인트 2개는 좀 더 놔두는 편이 좋겠어.’

파그마의 검무가 진정한 검호의 파그마의 검무로 승급했을 때.

그리드는 자신에게 있는 스킬 레벨 업 포인트를 파그마의 검무에 사용하려다가 말았다.

대장장이 기술 또한 어떤 계기를 통해서 승급하고 레벨이 1로 초기화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싸울 때마다 경험치가 쌓이는 전투 스킬과 비교해서 ‘제작’이라는 과정을 진행해야만 경험치가 쌓이는 제작 스킬의 레벨을 올리기가 더 힘든 바.

그리드의 판단은 합당했다고 볼 수 있다.

스킬 포인트에 대해 생각하며, 그리드는 카츠에게 새로운 백호 검을 건네주었고.

“....갖고 싶은 거 없냐?”

멍한 얼굴로 백호 검을 건네받은 카츠는 그렇게 질문했다.

“갖고 싶은 거? 전용기?”

“알았다.”

“....?”

잠시 딴 생각하다가 얼떨결에 대답한 그리드.

그는 카츠가 설마 진짜로 전용기를 선물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편, 갑판 위에서는....

“키야옹!!”

딱! 딱딱!

딱딱딱딱딱!!

동~그란 눈으로 대해를 구경하고 있던 노에와 템빨골들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어댔다. 노에는 꼬리와 털을 세웠고 템빨골들은 탭댄스를 춰댔다.

“저게 바다 괴물인가....!”

소란을 듣고 달려온 십공신들이 항로를 가로막으며 나타난 몬스터를 보고 넋을 잃었다.

30층 빌딩보다 큰 몸집을 자랑하는 문어였다. 너무나도 거대한 탓에 머리끝을 볼 수 없어 이름조차 확인이 안 된다. 위압감이 실로 대단했다.

콰르릉! 쾅쾅!!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폭풍우가 바다를 덮쳤다.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전함이 흔들릴 정도로 거센 폭풍우였다.

“....꿀꺽.”

긴장한 반트너가 방어태세를 갖췄다. 문어의 공격이 배를 훼손시키지 못하게끔 철저히 대비하며 문어를 예의주시했다.

타앙-!

슈슉!!

지슈카와 유라는 주작궁과 저격총을 쏘고 있었다.

거센 폭풍우를 꿰뚫고 날아간 불의 화살과 옥빛의 총탄이 문어의 피막을 꿰뚫....

티잉-!

“엥?”

....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문어의 피막은 매우 두껍고 끈적거리는 점성을 지녀서 어지간한 물리 공격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피막부터 벤다.”

페이커와 크리스가 허공을 답보했고 극검은 발검의 자세를 취했다.

세 사람의 예리한 검이 문어를 회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어의 방어력이 원체 대단했고 8개의 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해일을 일으키니 피해를 누적시키기 힘들었다.

폭풍우의 방해도 무척 까다롭다.

“흠....”

문어 요격에 실패한 십공신들이 일단 갑판 위로 물러났다.

“공격 패턴이 단순해서 난이도는 높지 않은데.”

“방어력이 너무 사기적이군.”

십공신들과 문어의 시선이 허공에 얽힌다.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때였다.

“여기도 있었네?”

“....?”

휴렌트가 웬 문어 다리 하나를 어깨에 짊어진 채 나타났다.

그가 가만히 서있는 십공신들과 문어를 번갈아 보더니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하긴.... 잡몹 따위는 내 선에서 정리하는 게 맞겠지....”

“....?”

“오러 페스티벌.”

템빨단에 가입한 기념으로 그리드에게 선물 받은 스킬의 전개.

지잉-!

지이이이이이이잉-!

수십 개의 오러가 허공에 광범위하게 펼쳐지더니.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퍼펑!!

이내 문어의 주변으로 날아가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캬아오오오오!

고통에 몸부림치는 문어.

녀석의 피막이 맥없이 벗겨진다.

대상의 방어력과 저항력을 무시하고 고정 된 데미지를 입히는 오러 앞에서는 방어력이 무의미한 것이었다.

***

수십 일 간 계속 된 광란의 의식.

“더 이상.... 더 이상은 못 막아요.”

삼신기의 신성력을 이용해서 의식을 방해하던 레베카의 딸들이 하나, 둘씩 지쳐 쓰러져갔다. 끝까지 버티던 이사벨조차도 끝내 무릎을 꿇었다.

데미안의 시야에 아찔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대악마 소환 의식이 다시 정상 궤도에 돌입합니다.]

“아, 안 돼....!”

대중들은 <벨리알 강림 사건>을 작은 이벤트 따위로 치부했었다.

그것도 극소수의 하이랭커들만을 위한 이벤트.

벨리알을 레이드를 독점하고 보상을 독식한 템빨단과 크라우젤, 데미안을 시기하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

당연하다.

그들은 벨리알의 힘을 맛보지 못했으니까.

벨리알에게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으니 배부른 소리를 지껄일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벨리알 레이드에 참가했던 데미안은 알고 있다.

대악마의 강림은 이벤트 따위가 아니라 재앙이다.

심지어 그리드와 크라우젤, 그리고 템빨단과 피아로가 없는 이곳에서 대악마가 소환됐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사색이 된 데미안의 귓가로, 누군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군신 아레스였다.

“드디어 본격적인 이벤트가 시작되는 건가?”

“아....”

데미안의 불안감이 커졌다.

과거의 템빨단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현재의 아레스 군단.

그들 역시 일반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대악마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지옥의 문이 열립니다.]

세계가.

[22위 대악마 베리드가 출현합니다.]

지옥으로 변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식이 당신을 하찮다고 정의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32퍼센트 하락합니다.]

[모든 스킬과 마법의 위력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모든 마법의 캐스팅 속도가 50퍼센트 느려집니다.]

템빨단과 제국이 대륙을 비운 동안.

[만 번의 거짓 속에 한 번의 진실을 섞는 교활한 혀가 당신을 농락할 것입니다.]

[상태이상 ‘혼란’의 저항률이 0퍼센트로 고정됩니다.]

[환술계열, 은신계열, 분신계열 등 대상을 조금이라도 기만하거나 현혹할 여지가 있는 모든 스킬과 마법의 사용이 차단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악몽을 체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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