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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86화 (881/1,794)

템빨 48권 - 11화

황제는 템빨국과의 전쟁에 부정적이었다.

피아로가 전화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니다.

황제는 그런 사적인 감정으로 국가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전쟁에 부정적인 이유에는 몇 가지 합당한 요인이 존재했다.

첫째, 파그마의 후예인 한편 영웅왕의 칭호를 이은 템빨왕 그리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

황제는 동대륙 진출이라는 선조들의 염원을 자신의 대에 반드시 이루겠노라 다짐했던 걸물이다.

그리드가 피아로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리드의 능력을 여러모로 인정한 황제는 그와 적이 되기보다 넓은 아량으로 품고 싶었다.

둘째, 3황자 브누아의 외도가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컸기 때문.

아들의 안위를 걱정해서 칠공작에게는 알리지 못한 사실이지만, 현재 브누아 황자는 온 대륙을 떠돌며 수상한 의식을 벌이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의식인지 몰랐다.

하지만 벨리알 소환과 브누아 황자에게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

그 후레자식은 왜 대악마 소환에 집착하는가?

대륙 전체에 큰 위협이다.

일전에 소환 된 벨리알은 비교적 등수가 낮아 템빨국이 쉽게 저지했다지만, 만약 브누아가 고위 대악마라도 소환했다가는 대륙 일부가 초토화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 위협으로부터 제국도 온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전력 소모를 지양하고 싶었다.

메르세데스가 버티고 있는 템빨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에.

‘첸슬러가 어서 빨리 브누아를 끌고 와야 할 텐데.’

셋째, 4황자 에단의 마장기 군단에게 활약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서.

외가의 물심양면 덕분에 마장기 채굴에 성공한 에단의 무력은 황제도 좌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하고 있었다.

에단이 마장기 군단과 함께 전쟁에 참전할 경우 큰 공을 세울 것은 자명한 사실.

서출이라는 태생에 트라우마를 지닌 에단의 입지가 커지면 최악이다.

황자의 난이 시작 될 여지가 있었다.

넷째, 재정의 문제.

제국은 대륙 곳곳에 영토를 가진 만큼 국경도 많았다. 지킬 게 많은 큼직한 국가들은 겉으로나마 제국에 충성하고 있었으나 잃을 게 없는 소수민족들은 지금도 대륙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중이다.

그 옛날 네로족이 제국의 전력을 크게 훼손시킨 것처럼, 제국의 이민족 토벌 정책이 시작되고 수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은 소수민족들은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처럼 강인하게 성장한 바.

그들을 무시하고 템빨국의 전쟁에 집중하기에는 너무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특히 거인족이 문제였다.

“...골치가 아프구나.”

코앞까지 다가왔던 대륙일통의 꿈이 언제부터 멀어진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템빨국이 건국하게 되면서?

기존의 세력 구도에 안주하고 있던 제국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아니다.

허면, 무관심한 그랜드마스터 때문에?

아직은 어설픈 다섯 기둥 때문에?

칠공작들의 권태로움 때문에?

이 또한 아니다.

다른 누군가를 원망할 일이 아니다.

‘모두 짐의 소치다.’

피아로의 배신과 황후 아리아떼의 죽음에 연달아 큰 충격을 받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황비 마리의 치마폭에 숨어 아픈 현실을 외면하기만 했다.

황제의 책무는 일절 등진 채.

그렇게, 제국은 십 수 년의 세월을 잃었다.

“자격이 없던 게지.”

황제의 재목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를 믿고 후사를 맡기신 선황께 죄스러울 따름.

선황께서 작금의 제국을 보신다면 얼마나 한탄하실까.

본래는 하나의 색으로 칠해졌어야할 서대륙의 지도를 펼쳐놓은 채, 스스로를 책망한 황제가 시름하는 그때.

“그렌할 공으로부터 전서구가 도착했나이다.”

“전서구....?”

마법으로 통신이 가능한 시대이다.

한대 전서구라니?

전쟁터에 마력이 차단되는 구역이라도 있단 말인가?

템빨국의 마법기술력과 철저한 준비성에 감탄한 황제가 전서구의 내용을 확인했다.

적해에서 무신의 유적을 발견했다는 짧은 내용.

유적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탐사에 집중해야 옳다는 주장이 덧붙어 있다.

“허... 허허.”

황제는 환희했다.

템빨국과의 무의미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신께서 내려주셨다고 믿었다.

한데 좀 황당하다.

전쟁터에 있어야할 그렌할 공작이 왜 적해에 있는 건지...?

‘.....그렌할 공마저.’

그렌할 공작은 황비 마리의 세력이 과하게 확대된 것을 고발하고 축소시키는데 일조한 인물.

그만한 인물조차도 템빨국의 저력을 모르고 농땡이나 부리고 있었을 줄이야.

“에잉.”

신뢰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짜증스레 편지를 구겨버린 황제가 베인에게 명했다.

“템빨국에 진군한 병력을 회군시키고 무신의 유적지 탐사 준비를 명하라.”

고사로부터 신의 유적지에는 막대한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또한 그 이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유적 탐사에 집중하기 위해서 전쟁을 멈추겠다는 황제에게 반론을 제기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

한 마디로 함축할 수 있는 항해였다.

‘운이 좋았다.’

제국이 내게 큰 관심을 지녔음은 익히 알았으나, 설마 공작들이 친히 항해에 동참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군다나 최고의 함선까지 선뜻 내어주다니.

‘진리의 나침판’의 도움으로 항로를 읽고, 금관 바사라의 지략으로 수인족의 훼방을 수포로 돌리고, 맹수왕 모르이즈의 도움으로 바다의 괴수들을 어르고 달랜 끝에.

[<무신의 유적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입니다!]

[업적 보상으로....]

스컹크는 또 다시 새로운 위업을 달생했다.

서대륙을 완전히 공략하고 얼마지 않아 이룬 쾌거.

스컹크는 가슴이 벅찼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동료들과 자신에게 호의적인 칠공작들.

함께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니 아버지의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리드가 늘 느끼고 있는 기분이 이러할까 싶다.

“일단.”

무신의 유적지 탐사 보상을 확인한 스컹크가 묘목부터 심었다.

1년 후 나무로 성장해서 자신의 눈이 되어줄 묘목이다.

그는 신중했다.

“유적지에는 온갖 위험한 함정과 수호자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음은 어떨지요.”

백색모래가 아름답게 빛나는 해안가.

스컹크의 동료들은 이미 막사를 칠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들에게는 제국과 협력해서 유적지를 탐사한다는 전제가 기본으로 깔려있었다.

스컹크 탐사대의 무력만으로는 유적지를 탐사할 수 없었을 뿐더러, 이미 월드 메시지가 떴기 때문에 온갖 플레이어 세력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불청객들이 끼어들기 전에 제국군과 협력해서 유적지를 탐사하고 최대한 많은 보상을 확보하는 게 이상적이었다.

작은 금관을 머리에 얹은 여성.

항상 눈을 감고 있는 신비로운 미녀 바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컹크 경의 말이 옳아요. 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수호자들의 시선을 피하며 대기하도록 하죠.”

합당한 의견.

하지만 맹수왕 모르이즈가 초를 친다.

“나, 너, 그렌할 공. 우리 셋이 함께인데 수호자 따위가 대수겠어? 차라리 우리끼리 유적을 탐사하고 보물을 독식하자고.”

불사왕 그렌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이즈 공의 말이 맞소. 신의 유적지에 위험이 산재한다고는 하나 우리가 힘을 합치면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게요.”

그렌할과 모르이즈가 조급함을 보이는 이유는 이곳이 보통 신도 아닌 무신(武神)의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무신 제라툴.

빛의 여신 레베카의 검이자 방패.

그는 절대적인 힘을 지닌 악신 야탄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손꼽힌다.

자신을 추종하는 이에게 ‘비급’을 내린다는 그의 초월적인 힘이 칠악성 전쟁사에 간접적으로 서술된 바 있다.

[칠악성 토벌에서 가장 크게 활약한 이들은 바로 무신의 추종자들이었다. 천지개벽을 일으키는 그들의 무예는 칠악성 또한 좌시하지 못했다.]

무신이 직접 나선 것도 아니고, 고작 그의 추종자들이 칠악성들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물론 신화라는 건 과장이 많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굉장한 일.

그렌할과 모르이즈는 이곳 유적지에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무신의 비급들이 탐났다. 결코 타인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렌할의 열망이 컸다.

‘내가 비급을 얻으면 그랜드마스터를 견제할 수 있다.’

칠공작조차도 정체파악에 실패한 노괴.

수백 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역대 황제들의 곁을 지켜온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존재만으로 위협이다.

그가 여러 활약을 펼쳐왔기에 지금의 제국이 존재하는 것일 테지만, 적어도 최근의 그의 행적은 황실에 대한 충성과 거리가 멀다.

‘다른 꿍꿍이를 품은 괴물이 우리 칠공작보다 더 큰 권한을 지니고 있으니 문제다.’

그랜드마스터의 존재는 일부 공작들이 권태에 빠진 계기 중 하나였다.

자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봤자 황제의 곁을 지키는 것은 정체도 알 수 없는 괴물 아닌가.

국운을 쥐고 있는 것 또한 그 괴물이니 날고 뛰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막연한 위험요소의 존재 탓에 늘 불안을 느끼고 전전긍긍해온 공작들이 선택한 것은 결국 외면, 그리고 안주였다.

하지만 이제 바뀌리라.

‘내가 강해져서 그랜드마스터를 몰아내고 공작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겠다. 그리고 황실을 온전히 지켜보이겠다.’

꾸욱.

결연하게 다짐하는 그렌할 공작.

템빨국이라는 소국을 상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바사라가 한숨 쉬었다.

그렌할을 말릴 도리가 없음을 눈치 챘기에.

“좋아요. 일단 우리끼리 탐사하도록 해요. 다만 천천히 외곽부터 돌아보죠.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난이도가 상승할 테니.”

“옳은 생각이오. 알겠소.”

“....”

자기들 멋대로 상의하고 결정하는 칠공작 때문에 스컹크 탐사대만 난처해졌다.

감히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손가락만 깨무는 스컹크에게 도그우먼이 속삭여왔다.

“괜찮지 않아? 천하의 칠공작들이라고. 저들과 함께하면 물리치지 못할 적이 없고 이 작은 섬 따위 금방 샅샅이 뒤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곳이 다른 누구도 아닌 무신의 유적지라는 게 걸리는 거야.”

갈구나스의 사원에서 보았던 <2개의 비급을 습득한 무신의 추종자>를 떠올린 스컹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만약 3개, 4개.... 어쩌면 그 이상의 비급을 습득한 추종자라도 등장했다가는 칠공작도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그때는 뭐 도리가 없는 거지. 칠공작 셋도 감당 못하는 적을 원군이 온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겠어?”

“....하긴, 그도 그렇군.”

어차피 우리끼리 떠들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칠공작들은 밀림 속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나마 기사들과 병사들을 스컹크의 호위로 붙인 것을 보면 스컹크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사실인 듯하다.

콰아아앙!

밀림 속에 발을 들이고 몇 걸음이나 떼었을까.

갑자기 날아드는 주먹의 표적이 된 그렌할이 방패를 세워 방어했다.

쩌저저정-!

단 한 번 쏘아진 주먹이 4차례의 타격을 입힌다.

타격이 중첩될 때마다 위력이 2배씩 상승했다.

결국, 그렌할을 태우고 있는 쌍두하마가 뒤로 한 걸음 밀려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허.”

그렌할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몸무게가 2.5톤에 육박하고 힘은 오우거 3마리보다 센 쌍두하마를 뒷걸음치게 만드는 괴력은 생전 처음 보았기에.

서걱-!

그렌할 검광을 흩뿌렸다.

신속한 반격이었다.

하지만 반격의 대상이 된 수호자는 가뿐히 피해 나무 위로 올라 팔짱을 꼈다.

녀석의 머리 위에 떠오른 이름은 <5개의 비급을 습득한 무신의 추종자>.

“미쳤군....”

스컹크가 침음했다.

2개의 비급을 익힌 추종자조차도 하이랭커보다 강했으니 5개의 비급을 익힌 추종자는 얼마나 강할지 감도 안 잡혔다.

그런 무지막지한 괴물이 초입부터 등장하다니?

‘심지어 이름도 흰색이야.’

이곳에서는 일반 몬스터로 분류된다는 뜻.

유적지의 전반적인 난이도가 얼마나 높을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원숭이 같은 놈이로군!”

맹수왕 모르이즈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가 늘 데리고 다니는 샤벨 타이거가 껑충 도약하더니 팔짱끼고 있는 추종자에게 앞발을 휘둘렀다.

한데.

휘리릭!!

샤벨 타이거의 거대한 몸체가 어떤 나뭇가지에 스치는 순간 그물이 펼쳐지면서 샤벨 타이거의 몸을 꽁꽁 묶어버렸다.

금관 바사라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곳곳에 함정이네요.”

울창한 밀림.

셀 수 없이 많은 나무.

거미줄처럼 교차되어 있는 나뭇잎과 나뭇가지들.

그중 태반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음을 바사라의 기감이 감지한다.

함정 탓에 아비규환에 빠진 병사들을 통솔하면서, 바사라는 그렌할과 모르이즈에게 딱 잘라 말했다.

“퇴각해야 합니다.”

“그게 좋겠군.”

일단 함정이 문제다.

그렌할은 바사라의 판단에 순순히 따랐으나.

“이놈만 혼내주고!”

모르이즈는 아니다.

잘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무신의 추종자에게 약이 바짝 오른 모르이즈.

곡도를 꺼내 망에 걸린 샤벨 타이거를 구출한 그가 회전하더니 발차기를 날렸다.

퍼엉-!

바람을 터뜨리는 폭음.

섬전 같은 발차기였지만 무신의 추종자는 무릎을 세워서 방어에 성공했다.

막아선 안 됐다.

발을 갈고리처럼 이용한 모르이즈가 추종자의 무릎을 그대로 낚아챘기 때문.

높은 나무 위에 올라있던 추종자가 모르이즈에게 강제로 끌어당겨지며 지상에 추락했다.

콰아아앙-!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움찔거리는 추종자.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스컹크 일행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칠공작의 무위가 이정도로 대단할 줄은 예상 못한 것이다.

‘리갈이 그리드에게 당했다기에 이들의 실력이 다소 과장되었던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리드가 너무 강했을 뿐.

그리드가 너무 대단해서 실소마저 터뜨린 스컹크가 바사라 공작에게 말했다.

“몇 개의 나무에 열쇠구멍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밀림을 함정화시키는 장치 같은데.... 저것에 맞는 열쇠들을 구하는 일이 최우선일 것 같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주변을 철저히 관찰한 스컹크이다.

전설이 되어가는 탐험가답게 온갖 관찰 스킬을 지닌 그는 밀림의 함정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빠르게 파악했다.

역시 문제는 열쇠를 어떻게 구하느냐였다.

‘단서를 찾으려면 골치가 아프겠군.’

세상에 <만능열쇠>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결코 쉽지 않을 일이 될 것 같았다. 시일이 무척 오래 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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