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7권 - 18화
천공왕 리갈의 클래스는 라이더이며 주무기는 대궁이다.
고(古)비룡 <알렌티카>에 올라 고도 800미터 상공에서 대상을 저격하는 그의 궁술은 사신의 낫과 같았다. 리갈의 표적이 되는 사람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퍼엉-! 퍼펑!!
현재 리갈은 땅을 밟고 있었다.
라이더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고, 비룡을 조련할 때나 사용하는 채찍을 손에 쥔 상태였다.
낙석처럼 떨어지는 쥬드의 주먹세례에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퍼어어어엉-!!
지상으로부터 솟구치는 천둥.
쥬드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발생하는 파공성이 창공을 격동시킨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재앙이 쥬드의 주먹에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제국군은 마른 침을 삼켰고 템빨단원들은 희망을 품었다.
한 방.
쥬드의 주먹이 단 한 번이라도 리갈의 얼굴에 적중하는 순간 전세가 역전될 것 같았기에.
“백작각하. 전하를 엄호해야하는 게 아닌지요.”
결국 불안을 감추지 못한 천인장이 물어왔다. 그는 당장이라도 전군에게 탑승 명령을 내리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리갈의 오른팔이며 공군대의 부대장인 바론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즐기시도록 놔두어라. 전하께서는 저 멧돼지 같은 녀석의 잠재력을 최대한 엿보고 싶으신 모양이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이었다.
휘리릭-!
쥬드의 왼손을 특히 경계하면서, 모든 공격을 신중히 피해나가던 리갈이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자.
철썩!!
“윽!”
단 한 차례의 채찍질이 쥬드의 왼쪽 손목을 묶어 구속함과 동시에 쥬드의 오른쪽 손등을 강타했다.
채찍 끝에 달린 작은 추는 겉보기와 달리 천근의 무게가 담겼기에, 쥬드의 손등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이 채찍은 비룡의 비늘과 가죽 너머로도 충격을 전달하는 아티팩트다. 네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참기 힘든 통증을 느꼈을 테지.”
리갈의 입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너는 견디는구나.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
“죽인다!!”
쥬드는 상처 입은 짐승 같았다.
원한조차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살의만을 품은 채, 그는 왼손에 묶인 채찍을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동시에 부풀어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하하, 어딜... 흡!?”
팽팽하게 당겨지는 채찍을 어린아이 재롱처럼 여기던 리갈이 대경실색했다.
제자리에 버티고 설 생각이었건만, 쥬드의 왼손이 발휘하는 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몸이 끌려간 까닭이었다.
쐐엑-!
리갈의 시야에 담기는 세계의 풍경이 고속으로 이동한다.
그는, 어느새 쥬드의 코앞에 있었다.
꽈아아앙-!
잔뜩 부풀어 오른 쥬드의 오른쪽 주먹이 리갈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
비현실적인 광경!
제국의 권위와 무력을 상징하는 칠공작의 일원이 무명의 기사에게 압도당하다니?
리갈의 병사들은 상상도 못해본 상황에 경악했다.
하지만 잠시일 뿐.
꽈앙! 꽝! 꽈광!!
쥬드의 주먹이 리갈의 얼굴을 때릴 때마다 쇠망치로 바위를 때리는 듯한 굉음이 발생했으나, 정작 리갈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생채기조차 입지 않았다.
리갈의 신체가 쥬드의 공격력을 가뿐히 상회할 정도로 단단하다는 뜻이 됐다.
“오오...!”
“역시 전하....!”
안도한 병사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환호 또한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쩌저정-!
어느새 채찍을 풀어낸 쥬드의 왼 손이 리갈의 복부를 강타하자.
“큭...!”
리갈이 최초로 신음을 토했다. 심지어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천공왕을 상징하는 <금룡갑>이 무색해 보일 지경이다.
“너를! 죽인다!!”
기세가 오른 쥬드의 살의가 더욱 더 증폭됐다.
일념의 의지가 수복, 강화시킨 그의 왼손이 검게 칠해지며 쇳덩이처럼 단단해지고 있었다.
뻐억-!
콰자작!! 콰쾅!!
한 방, 두 방, 세 방, 네 방!
“쿨럭!”
전신을 난타당하기 시작하는 리갈의 입에서 급기야 검붉은 피가 솟구쳤고,
“말도 안 되는!”
내내 침착함을 유지하던 바론 백작이 당황하며 전군에 탑승 명령을 내렸다.
각국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와, 지려버림... 쥬드 왼손 저거 뭐임? 왼손만 겁나 세네;;
-진짜 대단하네요. 제국 칠공작한테는 하이랭커들도 못 덤빈다고 들었는데 그리드 부하는 칠공작한테 비비네요.
-템빨이겠죠~
-혹시 저 쥬드라는 NPC가 마왕 토벌전에 나왔던 4천왕 중 하나인가요?
-그런 듯.
-뭐가 그런 듯임ㅋㅋ 겜알못이심?ㅋㅋ 쥬드는 격투가 계열인데 4천왕은 어부, 검사, 기사, 탱법사였음.
-헐, 뭐임? 그럼 쥬드는 4천왕급도 아니라고? 그런데도 칠공작하고 비벼?
-템빨의 위력ㄷㄷ 왼손에 대체 뭘 장착한 거야ㄷㄷ
-나 사실 고렙인대 지금 당장 템빨국으로 귀화해야겠다. 제국이랑 전쟁 중이라 힘들 때 귀화해서 도와주면 템빨단에 가입시켜줄 수도 있잖아? 가입해서 그리드한테 템 만들어 달라해야지.
-근데 님들아. 저도 저런 기사 갖고 싶은데 NPC 어떻게 꼬셔요? 어떻게 해야지 부하로 만듦?? 호감도 최대치로 올려도 부하로 고용 못하던데? 펫 꼬실 때처럼 먹이 줘야 됨??
-먹이 말고 선물... 근데 NPC를 부하로 만들려면 본인이 어느 정도 지위가 있어야 되고 대상 NPC 상황도 맞아 떨어져야 됨. 그냥 운빨임.
-뭔 운빨... 그 상황이 맞아 떨어지게 만드는 통찰력이 중요한 거지.
-네임드 NPC 꼬시는 법은요?
-그건 진짜 운빨일듯.
-하~ 운빨 망겜
-운빨왕 그리드....
콰아아아앙!!
12대.
전심전력을 다한 쥬드의 주먹질이 수초 동안 리갈을 가격한 횟수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운다(SS)>스킬 효과로 강화 된 쥬드의 왼손은 쥬드의 본래 능력치를 상회하고 있었고, 그 위력은 서대륙 최강의 NPC 중 하나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리갈에게도 위협이 되는 수준이었다.
“쿨럭, 쿨럭! 웨엑!”
리갈은 13왕국 위에 군림해온 칠공작의 체통을 완전히 상실했다.
피를 쏟는 것으로 부족해서 속을 게우는 그의 모습은 천공왕 리갈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았다.
“노옴!!”
5천 마리의 그리폰과 3백 마리의 비룡.
어느새 전원 그 위에 탑승한 공군 병사들이 격분하며 쥬드를 조준했다.
그들의 무기와 마법이, 비룡의 브레스가 곧 쥬드를 가루로 만들 것이었다.
하지만 쥬드는 위축되지 않았다.
쥬드의 일념은 단지 리갈을 죽이는 것.
자신의 안위 따위,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우오오오!!”
왼손의 감각이 사라진지 오래다.
내 손이 내 손이 아닌 듯해서 이상하다.
하지만 별 생각 없다.
고함을 내지른 쥬드는, 허리를 숙이고 있는 리갈에게 온힘을 쥐어짠 일권을 날렸다.
한데.
“....?”
묘한 일이 벌어져서 쥬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갈을 노리고 주먹을 휘두른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가 자신의 목덜미를 붙잡고 뒤로 끌어내어 주먹이 닿질 않은 것이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고개부터 돌려서 상황을 확인했을 터.
하지만 쥬드는 아무 생각 없이 리갈을 노려본 채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부웅!
허공만 때리는 쥬드.
그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는 존재는 한 마리의 비룡이었다.
드래곤이라고 우겨도 반쯤은 속아 넘어갈 정도로 커다란 비룡.
녀석의 이름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겔더 공작가문의 주인을 대대로 섬겨온 고비룡 <알렌티카>다.
200년 동안 훈육되어온 녀석은 보통의 비룡을 초월하는 마법 능력과 육체, 그리고 지혜를 지녔다.
“쥬드! 위험해!”
“뒤를 보라고, 멍청아!”
템빨단원들이 아무리 소리쳐봤자 소용없었다.
쥬드는 여전히 리갈을 노려본 채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아낸 리갈이 쓴웃음을 지었다.
“무식하기에 용감하다, 인가. 전장에서 내게 최초로 상처를 입힌 상대가 이런 바보라니.”
부웅! 부웅!
허공을 때리는 쥬드의 왼손을 주시한 채로, 리갈은 제안했다.
“쥬드여, 네게 마지막 기회를 주마. 나를 섬겨라. 재물이 필요 없다면 힘을 주겠다.”
“....힘!”
쥬드가 우뚝 멈췄다.
그제야 자신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는 비룡의 주둥이를 확인한 그가 말했다.
“쥬드. 힘. 필요하다. 강해. 지고 싶다.”
리갈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눈높이를 맞춘 보람이 있다고 할까.
뇌까지 근육으로 만든 듯한 이 바보 녀석을 어떻게 구슬려야하는지, 이제 슬슬 알 것 같다.
한데 이런 반응은 예상 못했다.
덥썩!
“....?”
“너를. 죽여야. 하니까.”
콰아아앙-!!
비룡 알렌티카의 거구가 땅에 처박혔다.
목덜미를 붙잡고 있는 녀석의 주둥이를 쥬드가 왼 손으로 붙잡아 휘두른 결과였다.
휘청!
인위적인 지진에 휩쓸린 사람들이 쓰러진다.
5천 3백의 공군은 여파를 피하고자 일제히 이륙했다.
하늘을 공군이 장악하고 비명과 혼돈이 난무하는 가운데.
“더 이상은 괘씸해서 못 참겠군.”
리갈은 미련을 버렸다.
“너를 포기하마.”
자비를 거뒀다.
“가질 수 없다면 죽여야지.”
철썩!
리갈이 채찍을 휘둘렀다.
“알렌티카!!”
쿠오오오오-!
리갈이 외치자, 땅에 대가리를 처박은 채 움찔거리고 있던 비룡이 포효하며 일어섰다.
녀석이 내뿜는 화염이 리갈에게 덤벼드는 쥬드를 덮쳐 쓰러뜨렸다.
불길에 휩싸인 쥬드가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섰을 때는 이미.
끼릭-!
알렌티카에 앉은 리갈이 길이가 2미터에 육박하는 대궁의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장점이라고는 무식한 힘밖에 없는 반푼이 따위가. 귀엽다고 봐주니 한도 끝도 모르고.”
퍼엉-!!
마치 발포의 기세다.
작은 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큰 화살이 휘몰아치는 기류를 헤치고 나아가 쥬드에게 도달했다.
푸욱-!
포로가 된 시점부터 모든 장비를 빼앗겼던 쥬드.
그의 맨몸이 화살에 꿰뚫린다.
노을의 역광에 검게 물든 능선을 배경으로, 가슴에 화살이 박힌 거인의 실루엣이 쓰러지는 장면이 영화의 엔딩처럼 연출됐다.
“아....”
쥬드가 고군분투하는 동안 포박된 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템빨단원들.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던 그들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직감했다.
쥬드는 죽는다.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군요.』
『바이란을 지키고 있던 템빨단원들은 아그너스가 아니니까요. 그들에게는 족쇄를 끊을 힘이 없으니 무슨 수로 나서겠습니까?』
『안타깝네요. 이로써 바이란의 마지막 불씨가 꺼지게 되었습니다.』
바이란은 이미 진즉에 점령당했던 도시다.
하지만 갑자기 쥬드가 역습을 시도했고 전쟁이 재기됐다.
1대 5,301의 전쟁.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구도였지만 전 세계의 수많은 시청자들은 반전을 기대했었다. 쥬드의 기세가 심상찮아 손에 땀을 쥐고 상황을 지켜봤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고 반전도 없었다.
쥬드는 잠시 선전하는 듯했으나 천공왕 리갈의 생명력을 10분의 1도 깎지 못했다. 반면 자신은 단 한 방의 화살에 맞은 것으로 빈사상태에 빠졌다.
쥬드가 맨몸인 것도 이유겠지만, 단지 칠공작이 강했을 뿐이다.
과연 소문대로 현존 최강의 존재 중 하나다웠다.
현재 시점의 플레이어들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할, 하늘 위의 하늘.
『보시죠. 이대로 바이란이 점령당할 경우 템빨국이 입게 될 손해를 대략적으로나마 추산한 표입니다.』
『허, 최악이군요. 레이단의 상황도 부정적이던데, 템빨국이 너무 큰 위기에 빠져버렸네요.』
『사하란 제국의 전력이 강해도 너무 강합니다. 어째서 제국이 서대륙의 주인인지, 그 이유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어요.』
『전쟁의 결과가 불 보듯 뻔합니다. 템빨국은 패배할 것이고 많은 영토를 빼앗길 것입니다.』
끼릭-!
고도를 높인 리갈이 재차 활시위를 당겼다.
그는 이번엔 정확히 쥬드의 심장을 조준했다.
“지옥에서 이곳이 불타는 모습을 감상하라.”
터엉---!
조금의 지체도 없다.
섬전처럼 쏘아진 화살이 쥬드에게 날아갔다.
푸우욱-!
화살이 박혔다.
그 위치, 리갈이 처음에 조준한 방향과 정확히 일치했다.
한데, 쥬드는 없었다.
쥬드의 심장이 있어야할 자리에 맨땅뿐이다.
“....?”
내 눈이 움직임을 놓칠 수 있다고?
그것도 이런 고도에서?
하늘 위 리갈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예상치 못한 쥬드의 괴력에 잡아당겨졌을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표정이었다.
역시나.
“....템빨왕?”
나름 거물이 나타났다.
마력의 파동을 쫓아서 시선을 돌려보자, 매스 텔레포트를 타고 등장한 템빨왕이 보였다.
쥬드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원리는 <왕의 부름> 때문일 테지.
짙은 미소를 머금은 리갈이 그리드를 향해서 활을 조준했다.
그가 올라탄 거대한 비룡과 그 뒤에 도열하고 있는 5천 3백의 공군.
실로 장관이라 할 수 있는 광경이 그리드의 시야에 담겼다.
퍼엉-!!
리갈이 활을 쏘았다.
적장의 목을 딸 기회를 놓칠 그가 아니다.
약 1킬로미터의 거리가 무색하게도, 화살은 기세를 잃지 않고 날아가 표적에 닿았다.
푸욱-!!
[10,9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전쟁 중 국왕의 죽음은 최악의 사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전쟁 중 사망 시, 국왕과 국가는 큰 페널티를 받습니다.]
[경험치 손실률 상승, 아이템 드롭률 상승, 아군 병력 사기 하락, 시설물 레벨 하락, 국가 전역 치안 하락, 명성 하락, 반란군 발생 등.]
회피에 실패한 그리드가 어깨를 관통 당하는 순간 온갖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리드는 위축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된 순간부터 그는 이미 살얼음판을 걷게 된 입장이다. 각오야 충분히 되어있었다.
제국 최상위 실력자를 상대로 쉽게 이길 생각 또한 없었다.
“대장장이의 분노. 흑화.”
그래.
“파그마의 검무.”
어쨌든 이길 생각이다.
“초연화(超聯花).”
<초연화(超聯花)>
3개의 검무를 하나의 경지로 승화시켰습니다.
대상에게 물리 공격력 200퍼센트의 위력을 발휘하는 검기 40개를 발사하고 이때 시야에 보이는 모든 적을 <표적>으로 삼아 표식을 남깁니다.
표식 당 2개의 검기가 추가로 발생하며, 추가된 검기는 각자의 표적을 목표로 날아갑니다. 검기는 물리 공격력 122퍼센트+마법 공격력 20퍼센트의 피해를 입힙니다.
추가 검기 2회에 모두 적중당하는 대상에게는 표식 1개가 추가로 발생합니다. 최대 5개의 표식을 중첩 가능.
스킬 사용 조건:도검류 무기 장착
스킬 검기 소모:3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20분
쏴아아아아아-
1만 송이의 꽃잎이 밤하늘에 나부낀다.
달빛 아래 흩날리는 푸른 꽃잎의 모습은 혼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리갈의 공군까지 잠시 넋을 잃었다.
치명적인 패착이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펑!!
비산하는 꽃잎을 꿰뚫고 날아온 40줄기의 검기가 리갈을 덮치자 신호가 되었다.
여태껏 하늘하늘 내려앉던 꽃잎들이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돌풍에 휩쓸린 것처럼 광란하더니 병사들과 닿는 족족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큭!”
“크아아아악!!”
리갈이 침음했고 병사들은 비명을 질렀다.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꽃잎의 표적이 된 그리폰과 비룡들 또한 움찔 몸을 떨었다.
스킬의 공격력 계수가 아무리 낮다고 해도, 그리드의 공격력이 원체 높으니 의미가 없다.
“십만대군.”
한편, 초연화의 발동을 위해서 적군과의 거리를 좁혔던 그리드는 다시 멀찍이 물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전부를 재차 시야에 담더니 검을 휘둘렀다.
“봉쇄검.”
그리드가 3융합 검무 초연화를 창조한 이유는 스킬 연계의 극대화를 위해서였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펑!!
십만대군 봉쇄검의 검기가 그의 시야에 보이는 모든 대상에게 작은 타격을 입히고 ‘봉쇄’ 효과를 걸었다. 공군 중 약 3분의 1이 봉쇄를 저항하지 못하고 이동과 스킬, 마법 사용이 차단됐다.
그리고 리갈을 포함한 공군 전원의 몸에 새로운 표식이 각인됐다.
터엉-!
그리드의 신형이 리갈에게 닿는다.
800미터 상공까지 오를 수 있는 리갈의 ‘비행’이라는 강점은, 브라함의 부츠덕에 플라이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그리드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놈!”
이미 4발의 화살에 꿰뚫린 그리드에게 리갈이 재차 화살을 쏘았다.
이번에 쏜 화살은 여태까지와 달랐다.
천공왕 리갈의 마력과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기술의 정수가 담긴 일격으로, 대상이 누구라도 한 방에 사살할 수 있는 <최후통첩>이었다.
하지만 닿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회(回).”
쩌어어어어어엉-!
한 바퀴 회전하는 그리드의 검극에 걸린 최후통첩이 리갈에게 되돌아갔고, 금룡갑을 손상시킬 정도의 강력한 충격을 입은 리갈의 몸에 표식이 또 늘어났다.
그리드는 여전히 리갈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살(殺).”
치명적인 피해의 연속!
이를 악 문 리갈이 폭발의 성질을 지닌 화살을 분산 발사했다.
그리드를 그대로 떨쳐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꿋꿋이 버텼다.
폭발에 휩쓸려 몸이 넝마가 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전진해서 리갈과의 거리를 끝까지 좁혔다.
“연살화극(聯殺花極).”
다섯 개의 표식이 각인 된 리갈의 몸 위로, 사형 선고가 떨어진다.
그리드는 최후통첩 같은 거 안 보냈다. 그냥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