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871화 (866/1,794)

템빨 47권 - 17화

*긴급 공지*

제국 공군이 바이란을 기습.

제국 공군의 고도가 정보보다 높음.

템빨국 전역의 대공 감시, 방위 시설 무의미.

제국 공군이 바이란을 점령.

순차적으로 나열 된 공지의 내용은, 짧지만 정수를 담고 있었다.

현재 바이란에서 벌어지고 있을 최악의 상황들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이제 약 1천 명에 육박하는 템빨단원들.

왕국 곳곳에 흩어진 채 활동 중인 그들 중 상당수가 공지를 확인하자마자 바이란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고작 반나절도 안 돼서 점령당했다고?’

본래 윈스톤령에 속했던 바이란은 이제 윈스톤보다 더 큰 규모의 도시로 발전하여 독립했다.

지리적인 이점이 많고 그리드와 초창기 템빨단원들에게 특별한 장소였기 때문에 많은 투자가 이뤄진 결과다.

한동안 피아로가 머물면서 농업을 발전시킨 그곳에는 레이단 다음가는 곡창지대가 형성되었으니, 템빨국의 가장 중요한 보급기지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다.

필연적으로, 주둔 중인 병력도 많다는 뜻이다.

북부와 가까운 그곳은 최후방으로 분류할 수 있겠으나, 보급기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라우엘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바이란에 무려 8천의 병력을 상주시켰다.

더군다나 이벨린을 필두로 삼은 템빨단의 중위~중상위 전력을 25명이나 배치했다.

한데 고작 반나절 만에 점령당했다는 것이다.

‘제국 공군의 강함이 예상을 초월했다.’

제국 최강의 군대 중 하나가 공군이라는 사실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당장 5천 마리의 그리폰과 3백 마리의 비룡이 출몰해도 끔찍한 광경인데, 그 무서운 몬스터 무리를 체계적인 군대로 운용한다니 얼마나 강력하겠는가?

라우엘은 제국의 공군을 최대의 난적 중 하나로 지목했고, 지난 수 년 동안 제국이 선전해온 천공왕 리갈의 무패 행진 활약을 몇 번이고 신중히 검토했다.

그리고 템빨단의 최정예가 아니면 공군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더니 템빨국 전역의 대공 시설을 강화했다.

긴 세월 동안 막대한 자본이 대공 감시, 방어 시설에 투자됐고 <망루>, <대공포>, <마법포탑>, <마력 감시탑>등의 각 영지 시설 레벨은 10을 찍었다.

한데 결과가 이거다.

돈을 헛되이 쓴 셈이 됐다.

‘빌어먹을, X 같네.’

<국가 행정 시스템>이 인정하는 시설물의 최대 레벨은 10이다. 제국으로 격상된다면 또 모를까, 왕국의 모든 시설은 10레벨을 초과할 수 없다.

그렇다.

템빨국의 대공방위 시설은 만렙이다.

근데 정작 제국 공군을 상대로 무용지물이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돈을 쓰지도 않았다.

‘또 이런 식으로 물을 먹여?’

제국 공군이 대륙 최강의 공군이라는 설정을 지킨답시고 플레이어를 기만하다니?

S.A그룹을 저주하던 그리드가 이내 자기 자신을 책망했다.

‘아니, 이건 결국 내 잘못이다. 라우엘이 공군의 위험성을 강조했을 때 내가 직접 대포를 만들었으면 이렇게 까지는 안 됐을 거야.’

마법포탑은 몰라도 일반적인 대공포는 그리드 또한 제작할 수 있다. 물론 그리드가 직접 제작한 대공포의 위력은 일반적인 대공포보다 강할 여지가 컸고.

하지만 그리드는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다.

제국의 공군이 ‘대륙 최강’이라는 수식을 달게 된 이유는, 기존의 대공 방어 시스템을 압도하는 전력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예상했어야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설물 만들 시간에 길드원들의 아이템을 강화시켜주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믿어 발상이 너무 편협해졌다.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강녕하시길.”

-이미 죽은 놈한테 강녕은 개뿔. 마리로즈 데려올 거 아니면 다시 오지 마라.

크레이슐러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그리드는 곧바로 귀환 주문서를 사용했다.

하지만 마리로즈의 사기 때문에 주문서가 작동하질 않았다.

결국 동굴을 빠져나온 그는 마리로즈의 사기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장소까지 또 이동해야만 했다.

마음이 급하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쥬드...!’

나의 첫 번째 기사.

그는 네임드 NPC가 아니다보니 고유 스토리가 적다.

윈스톤 출신의 무재. 강골이지만 지능이 낮다.

쥬드라는 인물의 설정은 단지 이 한 줄로 요약된다.

때문에 그리드는 피아로, 아스모펠, 메르세데스와 달리 쥬드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못했다. 쥬드의 지능이 워낙 낮은 탓에 정상적인 대화도 별로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그리고 추억을 공유해왔다.

함께한 시간에 비해서 나눈 대화는 적었으나, 도리어 그렇기에 깊은 정신적 교감을 이뤘고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잘 알게 되었다.

쥬드의 능력과 잠재력이 다른 기사들과 비교해서 많이 떨어질지라도, 그리드는 그를 다른 기사들과 똑같이 소중히 여기며 신뢰했다.

바이란이라는 중요한 도시의 치안을 그에게 일임한 것도 신뢰의 증명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믿음이, 독이 됐다.

“기사 소환!!”

쥬드가 위험하다.

어쩌면 지금 당장 죽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 생각하자 그리드는 이성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쥬드와 함께했던 모든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소환할 기사를 선택해 주십시오.]

“쥬드!!”

그리드의 커다란 외침이 숲을 울렸다.

그리드는 자신의 앞에 나타날 쥬드가 부디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확인이 불가능했다.

쥬드가, 소환에 응하질 않았다.

“....쥬드?”

더욱 더 초조해진 그리드가 빠르게 사기의 범위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귀환 주문서를 사용한 뒤 스틱세이를 찾아갔다.

***

콰작!

수십 개로 조각나 땅을 뒹구는 칸의 동상을, 천공왕 리갈은 하나하나 발로 짓밟았다.

칸의 망치와 손과 팔, 그리고 발과 다리가 무자비한 폭력 앞에 분쇄됐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그러지 마라! 그러면! 안 된다!!”

철컹! 철컹철컹!!

쥬드의 발작이 심해졌다.

리갈이 칸의 형상을 하나씩 지울 때마다 쥬드는 몸부림쳤고, 쇠사슬에 묶인 그의 몸은 거칠게 손상되며 더 많은 피를 쏟아냈다.

“안 된다? 아니, 된다. 이곳은 이미 제국의 영토다. 나는 황제폐하께 이 도시를 바치기에 앞서서 깨끗이 청소해야할 의무가 있고 패자인 너희에게는 의지를 행사할 권리가 없다.”

리갈이 이끄는 공군부대는 제국의 선봉대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투에서 본대가 나서기도 전에 적진을 점령하고 적군의 전의를 상실시켰다.

리갈은 베테랑이다.

그는 적국 백성들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변화에 순응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첫 번째 단계가 상징의 파괴다.

콰작!!

기계적으로 동상의 어깨 부분을 짓밟아 부순 리갈이 저 멀리 능선을 그리고 있는 곡창지대로 시선을 돌렸다.

바이란 백성들의 삶과 땀, 그리고 보람과 희망이 담겨있는 그곳이 리갈의 다음 표적이었다.

‘아깝지만 불태우는 편이 낫겠지.’

전쟁 중에 식량이란, 적진에서 빼앗아 보충하는 것이 이상(理想)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리갈의 공군 부대는 숫자가 적었고 포로들을 운반해야했다. 식량까지 운반할 여력이 없었다.

제국의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이곳을 100퍼센트 방위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이곳이 템빨국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됐으니까.

그러므로 파괴를 택한다.

철컹! 철컹철컹!!

손과 발에 묶인 족쇄를 끊어내기라도 할 기세로, 산발의 기사는 더욱 더 격렬히 발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꾸욱-

리갈은 동상의 마지막 남은 형체 위로 발을 올렸다.

머리였다.

칸이라는 인물의 생전 모습을 고스란히 복원해놓았을 동상의 머리.

“머잖아 너희들 왕의 머리가 이렇듯 내 발밑에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기대는 버리고 순순히 제국에 투항하라. 지금 당장 귀순하는 백성은 노예가 아닌 제국의 신민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병사들에게는 합당한 대우를 보장하겠다. 황제폐하의 자비와 비호 아래서 영화를 누릴 기회를 놓치지 마라.”

쩌적-

리갈의 발에 힘이 들어간다.

쩌저적!

칸의 얼굴에 조금씩 금이 갔다.

철컹! 철컹! 철컹!

“안 돼....! 안 돼!!”

쇠사슬을 끊어내고자 사력을 다하는 쥬드의 부릅뜬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나갔다.

윈스톤 백인장이었던 시절.

남들보다 미천하여 이보다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없었던 내게, 전하께서는 손을 내밀어주셨다.

전하께서는 나의 멍청함을 이용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염려하시며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다.

생의 은인.

그분께 보답하기는커녕 그분의 가족께서 욕보이는 모습을 이대로 잠자코 지켜봐야한다고?

“싫다아아!!”

쥬드가 피눈물을 쏟아내며 포효했다.

지능이 낮기 때문에 생각이 단순하고, 생각이 단순한 만큼 의지는 더욱 뚜렷하게 발화된다.

눈앞의 적을 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속을 풀어야한다.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궁극의 의지가 쥬드의 정신과 몸을 지배했다.

꾸득!

꽈드득!!

단단한 족쇄의 압박을 무시하고 격동하는 쥬드의 손목이 급기야 부러져나가며 기이한 방향으로 꺾였다.

꽈자자작!!

손목을 지탱하는 여덟 개의 뼈와, 다섯 개의 손 허리뼈가 족쇄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조리 분쇄된다.

덜렁, 완전히 걸레짝이 돼서 축 늘어진 쥬드의 왼손이 족쇄의 작은 틈새로 빠져나갔다.

“포크도 들지 못할 그 손으로 뭘 하겠다고?”

쥬드의 무식한 행동에 내심 놀란 리갈이 묻는 순간.

“끄응....!”

쥬드는 자신의 가슴을 옥죄고 있는 쇠사슬 틈새로 덜렁거리는 왼 손을 끼워 넣었다.

이를 악 물고, 온 몸에 핏대를 세우며,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뭐?”

뼈와 신경이 대부분 손상 된 손에 저만한 힘이 실린다고?

이건 거의 마법의 영역 아닌가?

“핫...! 크하하하핫!! 정녕 대단한 놈이로다!!”

리갈이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쥬드가 더욱 더 탐이 났다.

저만한 강골은 제국 전체를 뒤져봐도 몇 없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발. 치워라.”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난 쥬드가 리갈에게 외치자.

“치우면 나를 삼길 게냐?”

리갈이 물었다.

쥬드는 고개를 저었다.

“싫다. 너는. 나쁘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콰자작-!

리갈이 발에 힘을 실었다.

동상의 얼굴이 뭉개졌다.

쥬드가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내질렀다.

터엉-!

쥬드의 신형이 리갈에게 쇄도한다.

온 몸을 적신 채 흐르는 피와 덜렁거리는 손, 산발이 된 머리카락.

달려오는 거인(巨人)은 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분명히 그럴 진데.

“미친 놈...!”

리갈의 병사들은 순간적으로 위축되었다.

쥬드를 말릴 생각은 못하고 도리어 방패 뒤로 몸을 바짝 숨겼다.

“쥬드! 도망쳐!!”

템빨단원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쥬드는 무시하고 직진했다.

그는 오직 일념(一念)만을 품고 행하고 있었다.

그의 의지는 번복되지 않는다.

[충의의 서약을 맺은 왕께서 당신을 부릅니다.]

[서약의 기적이 공간 이동 마법으로 발현됩니다.]

“우오오오오오!!”

목욕 중이었을 때.

알몸인 상태로 왕의 부름에 응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왕께서 말씀하셨다.

다음부터는 소환에 응하기에 앞서서 자신의 상태부터 점검하라고.

그렇기에, 쥬드는 그리드의 부름에 바로 응하지 않았다.

사실 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리갈을 박살내야한다는 생각뿐이다.

쩌어어어어엉-!

쥬드의 커다란 주먹이 리갈의 얼굴에 꽂혔다.

아니, 꽂힌 것처럼 보였다.

충돌의 파장이 일으키는 공기의 분산 너머로, 쥬드의 주먹은 리갈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그리드가 1년 반가량 전에 봤을 때 이미 439레벨이었던 리갈을, 현재 고작 390레벨에 불과한 쥬드가 주먹으로 가격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통상적인 경우에는 말이다.

“이번에는 우리에 가둬야겠군.”

쥬드의 주먹을 거머쥔 채로 말하는 리갈.

그가.

퍼억-!

“....!?”

예상치 못한 타격을 입었다.

쥬드의 왼쪽 손.

뼈가 모조리 부서져 덜렁거리는 그것이 날아와 리갈의 주둥이를 날려버린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기에, 리갈은 타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데미지는 0이다.

“역시.... 짐승을 말로 길들이기란 쉽지 않군. 엄한 교육이 필요하겠어.”

쥬드를 대할 때만큼은 더없이 인자했던 리갈의 얼굴이 처음으로 험악해졌다.

대사하란 제국의 공작.

위로는 황제 한 명을, 아래로는 만인을 거느리고 있는 절대 권력자가 폭행을 당했으니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채찍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천 번의 절망을 맛보았으나 아무런 생각이 없어 좌절하지 않던 자.

가슴에 각인 된 충심으로 하나의 생각을 품게 되었으니 좌절을 알았다.

“....?”

라인하르트에 있는 그리드의 귓전에 알 수 없는 시가 스며들더니.

[당신의 기사 ‘쥬드’의 <나, 아무 생각 없다(SS-)>스킬이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운다(SS)>스킬을 파생시켰습니다!]

[당신의 기사 ‘쥬드’가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운다(SS)>스킬 효과로 강화되었습니다!]

전혀 예상 못한 알림창이 연속으로 떠올랐다.

“뭐, 뭐야?”

그리드가 당황할 때.

“쥬드. 너를. 죽인다.”

콰아앙-!

바이란에서, 쥬드는 왼손을 재차 휘두르고 있었다.

퍼어엉-!

넝마가 되었던 쥬드의 왼손은 거짓말처럼 회복돼 있었고, 이전과 비교가 안 되는 빠르기와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리갈은 그것을 손으로 낚아채지 못하고 채찍을 펼쳐 막아내야만 했다.

‘뭐지?’

리갈과 제국군, 템빨단원들과 백성들, 은밀하게 상황을 촬영 중인 각국 방송사 스탭들에 이르기까지 자리의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직 쥬드만이 아무 생각 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또 휘두를 뿐이다.

1.쥬드

2.그리드의 첫 번째 기사

3.순간 회복 능력

4.NPC가 세지는 방식

5.NPC가 갑자기 세짐

6.NPC 부하 얻는 방법

7.그리드 어디

각국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가 교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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