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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57화 (852/1,794)

템빨 47권 - 4화

‘얘들 뼈를 가지고 아이템 만들면 여러모로 좋겠는데.’

톡톡.

그리드가 템빨골들의 황금색 뼈를 두드려 보았다. 울림이 전혀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고 단단했다.

‘뼈는 극한의 날카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제작재료지만 내구력이 약하다. 하지만 템빨골들의 뼈는 결코 약하지 않아. 푸른 오리하르콘급 재료로 구분해도 손색이 없어.’

템빨골 자체가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고, 무려 350레벨이 넘는 언데드의 뼈를 흡수해서 골격을 강화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앞으로도 계속 강화 될 여지가 있었다.

갈구노스의 해골병사보다 더 강한 언데드의 뼈. 그것도 인간형 언데드의 뼈를 구해야한다는 전제가 깔리긴 했지만.

‘그거야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고.’

결국, 템빨골의 뼈는 시간이 지날수록 등급이 상승하는 제작재료라는 뜻이며 공급 또한 수월했다.

템빨골들이 필요할 때마다 자기 뼈를 뽑아서 아이템을 만들면 될 일이니까.

이런 황당한 발상이 가능한 이유는, 템빨골2의 수복 능력에 있었다.

그렇다.

그리드는 거저먹기. 고급 용어로 무한 동력을 꿈꾸고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발상이다.

단,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는.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횟수를 소모해야한다는 점.’

‘이 아이템은 템빨골의 뼈를 재료로 삼는다.’라는 전제가 깔린 제작법.

그것은 실존하지 않으므로 그리드가 직접 창조하는 수밖에 없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스킬은 사용 가능 횟수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사용에 신중해야했고.

‘템빨골의 뼈가 계속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투자해볼만하지만....’

워낙 중대사니만큼 더 신중하게 고민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곁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템빨골들의 동그란 두개골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일일 접속 가능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리드는 남들과 차원이 다른 속도로 레벨을 올려왔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리드의 사냥 능력이 독보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지만 그에 앞서서 노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드는 매일 하루 16시간을 게임에 집중했다. 오직 게임에 매진하기 위해서 잠자는 시간을 줄였고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 식단과 운동 일정도 철저히 관리했다.

뭐, 이제는 새삼 논할 거리도 아니다.

그리드는 지난 몇 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런 일정을 소화해왔으니까.

“으음....”

로그아웃하고 현실의 신영우로 돌아온 그리드.

캡슐에서 일어나는 그의 표정은 상당히 지쳐있었다.

그는 이대로 침대에 누워 내일 아침까지 푹 자고 싶었다.

단 하루쯤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하는 나약한 마음이 생겼다.

심리적인 요인이 컸다.

마왕 토벌전이라는 커다란 이벤트가 끝나자 묘한 탈력감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진이 빠져서 심신이 지쳤다. 보상 심리인지, 큰일을 해낸 만큼 한동안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과거를 떠올리면서 금방 마음을 바로잡았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다른 경쟁자들도 ‘당연히’ 나만큼 노력한다.

지금 당장 앞서가고 있다고 해서 방심하다가는, 그들에게 금세 또 따라잡히고 나락으로 추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짝짝!

‘정신 차리자.’

손으로 뺨을 때리고 각성한 영우가 찬물에 세수를 하고 간단한 운동을 했다. 그리고 샤워 후 외투를 걸쳤다.

오늘은 칸의 사망 1주기다.

Satisfy 안에서는 벌써 3주기를 맞이했고, 매 주기 때마다 칸의 무덤을 찾아가 하루씩 곁을 지키고 돌아왔지만 현실에서는 현실에서만의 추모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우 본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식일 수도 있다.

띵동-

엘리베이터에 올라 지하 1층 버튼을 눌렀는데, 바로 아래층에서 멈춰버린다.

영우가 엘리베이터를 작동시켰다는 신호를 받은 툰이 즉각 반응한 것이다.

“어디 가?”

“한 잔 하고 오려고.”

“그래, 가자.”

곧바로 외투를 챙기는 툰에게 영우가 손을 저었다.

“혼자 다녀올게.”

“안 돼.”

툰은 단호했다.

Satisfy에서 수많은 은원 관계를 쌓아온 영우가 혼자서 다니는 건 어불성설이다.

“혼자 마시고 싶은 거면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어느덧 꽤 능숙해진 한국어로 말하는 툰에게, 영우는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마워. 하지만 오늘은 혼자서 분위기 좀 내고 싶어. 걱정하지 마. 알잖아? 나 요즘 인기 많아.”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안전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영우는 영웅 그 자체였으니까.

‘오늘이 칸의 1주기라서 각오는 했다만....’

역시 예상대로 나온다.

한사코 고집하는 영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툰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각자 차를 타고 가자. 멀리서 따라붙을 테니까 나는 없는 셈치고 혼자 있는 기분 내도록 해.”

“....”

“이게 최대한의 양보다.”

“...그래, 알았어.”

두 손 든 영우가 툰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영우는 벌써 5년째 끌고 있는 십삼이에, 툰은 자신의 황소에 올라탔다.

보기 드문 고가차량 2대가 도로에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로제의 대응은 빨랐다.

흑마법사 랭킹 1위.

야탄교의 간부.

상당히 훌륭한 비주얼.

능력, 입지, 미모까지 갖춘 그녀는 랭커 중에서도 꽤 인기가 많은 편에 속했고 자신의 인기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템빨단이 자신에게 척살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화젯거리로 만든 그녀가 유명한 방송프로그램에 출현해 눈물을 보였다.

“집단이 개인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만인에게 모범이 되어야할 세계 최고의 길드가 단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수 년 동안의 노력을 버리고 Satisfy를 떠나야하는 건가요? 경쟁자를 없애려는 템빨단의 이런 무차별적인 폭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요? 여러분 또한 저처럼 힘없는 개인에 불과한 이상 언젠가 저와 같은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요?”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드와 템빨단을 비난했다.

임모탈 때와는 달랐다.

로제가 템빨단과 자신을 ‘집단’과 ‘개인’으로 강조한 효과가 컸다.

속사정이야 어찌됐든, 집단이 한 사람을 억압하는 행위는 비겁하고 잔학한 짓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 힘없는 개인에 속하는 대중들은 템빨단의 이번 행위를 묵과하지 않았다. 로제의 말대로, 언젠간 자신들 역시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템빨단이 폭주하지 못하도록 고삐를 잡을 필요성을 느꼈다.

템빨단 역시 바로 대응했다.

템빨단의 주둥이. 아니, 대변인 후로이가 공식 성명을 내놨다.

“야탄의 종 로제는 수많은 플레이어와 NPC를 학살해왔습니다. 물론 그것이 그녀의 게임 상 역할이고 권리이니 평소 그녀의 행동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템빨단원들과 템빨국의 백성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녀에게 권리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권리가 있습니다. 그녀가 어떤 일을 벌였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합니다. 이건 무차별적인 폭력이 아니라 정당한 복수입니다. 템빨단은 로제에게 복수할 것입니다. 그녀가 우리에게 저지른 죄에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힘없는 개인을 억압하는 게 아니다.

후로이는 그렇게 강조했고 충분한 효과를 얻었다.

특히 로제는 야탄의 종이라는 특성상 많은 살육을 자행해왔기 때문에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템빨단을 옹호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템빨단을 옹호하는 건 아니었다.

-시바견ㅋㅋ 템빨단 지들도 평소에 민폐 끼치고 다니면서.

-ㄹㅇ 뱀파이어의 도시만 봐도 대놓고 통제하고 있잖아.

-XX놈들임. 나라 세워서 돈도 오지게 많이 버는 주제에 사냥터까지 독점하는 거 보면 진짜 역겨움.

-심지어 국가대항전 메달 보상도 거의 템빨단원들이 싹쓸이 하고 있지. 지들끼리 다 해먹음.

-뭔 개소리들이야? 템빨단이 국대전 보상 싹쓸이 하는 거야 걔네가 강하니까 그런 거고, 사냥터도 자기들 영토에 있는 사냥터니까 당연히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거지. 던전 크기는 한정돼 있는데 그걸 남들하고 다 같이 나눌 이유가 어디에 있냐? 안 그래도 템빨단은 길드원도 포화 상탠데.

-템빨단이 권리 누리는 거 욕하는 놈들 보면 개웃김. 템빨단은 뭐 거저먹었나? 다 자기들이 직접 노력해서 이룩한 성과를 누리는 건데 그걸 왜 욕하는 거야?

-고생은 템빨단이 하고 권리는 우리들도 같이 누리자 이거지. ㅋㅋㅋㅋ

-근데 템빨단이 내로남불이 심하긴 함. 카츠가 템빨단 가입하기 전에 막피하고 다녔던 거 알지? 지금 누가 카츠한테 복수한다고 해봐. 템빨단한테 바로 척살령 맞을걸?

-극검은 툭하면 인종 차별하는데도 매번 흐지부지 넘어가잖아. 인성 쓰레기들임.

-폰이 반트너한테 대머리라고 놀리는 것도 전대협이 멈춰달라고 요청했는데 무시당함...

-전대협이 누구임?

-전국 대머리 협회.

-저런...

템빨단이 이대로 계속 승승장구해선 안 된다. 언젠가 템빨단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 수도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단순한 질투심과 시기심을 넘어서는, 보다 원초적인 공포였다.

템빨단이 평소 이미지 관리를 아무리 잘했어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템빨단은 동요하지 않았다.

매번 겪던 일이고 각오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라우엘이 후로이에게 조언했다.

“여론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론이 뭐라고 떠들던 간에 로제에게 응징하겠다는 의사만 강력하게 피력하면 됩니다.”

의도야 간단하다.

로제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역시나, 템빨단이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 로제는 곧바로 협상을 시도해왔다.

템빨단의 실세 라우엘에게 친구를 요청하더니, 라우엘이 이를 수락하자마자 귓속말을 보낸 것이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교황청 침략 사건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네. 그때 당신 때문에 우리 왕비님과 왕자님께서 위험을 겪으셨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대체 언제 적 일을...! 그곳에 템빨국 왕비와 왕자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리고 애초에 저는 퀘스트를 수행했을 뿐이라고요! 제가 주도해서 교황청을 습격한 것도 아니고, 왜 제게 책임을...!

-교황의 연임식 자리에 템빨 왕실이 참석할 걸 몰랐다고요? 교황과 템빨단의 관계를 뻔히 알고도 그딴 핑계를 대는 겁니까?

억울해서 외치는 로제의 말을 도중에 끊은 라우엘이 선택지를 제시했다.

-앞으로 평생 우리에게 시달리거나, 아그너스 님의 누명을 증언해주시고 깔끔하게 관계를 청산하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하세요.

-아그너스...? 설마 아그너스도 템빨단에 가입하게 됐나요? 아니, 그럴 리 없어. 그가 왕비와 왕자를 도와준 일 때문에 빚을 갚는 개념이군요?

-당신은 대답만 하시면 됩니다.

로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조금의 틈만 엿봐도 바로 파고드는 유형의 인물이었다.

야탄의 종.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일시적으로 ‘네임드화’할 수 있는 그 강력한 적에게 빈틈을 드러내봤자 좋을 게 없었다.

로제는 거절했다.

-싫어요. 야탄교를 배신했다가 무슨 꼴을 당하라고요? 유라처럼 지옥으로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후회하실 겁니다.

-흥, 글쎄요? 제가 당신들에게 폭력을 당할 때마다 그 장면을 인터넷에 올리면 여론이 어떻게 변할까요? 두고 봐요. 저를 건드렸다가는 템빨단도 고립 될 각오를 해야 할 거예요.

만만치 않은 반응이었지만 라우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

영우는 외진 곳에 있는 포장마차를 찾았다.

사람이 많은 곳은 이미 오래 전부터 피해왔다.

“아이고, 유명하신 분이 오셨네.”

영우가 포장마차에 들어서자, 주인아주머니는 단번에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요란하게 반응했다.

세계적인 톱스타가 이런 누추한 곳에는 웬 일이냐며, 입맛에 맞는 술과 음식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영우가 특별한 사람인양 대했다.

자리에 앉은 영우가 쓰게 웃었다.

“저, 5년 전까지는 돈 없어서 컵라면도 제대로 못 사먹었어요. 소주 한 병이랑 닭발 주세요.”

“어머, 정말이유? 아! 맞아, 맞아! 자수성가한 양반이라는 소문 들었던 것 같아.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 정말.”

“운이 좋았죠, 뭐.”

“운은 뭐 댁한테만 가나? 운을 잡는 게 능력이고 재능이야.”

아주머니가 점점 편하게 대해주기 시작하자 영우의 마음도 편해졌다.

잠시 후 소주가 나오자 영우는 곧바로 잔을 채워 기울였다.

알코올 향이 코끝을 찌르자 칸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부인과 아들을 잃고 술독에 빠져 살았던 양반. 곁에만 가도 술 냄새가 지독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세상에 혼자가 되었다.

그가 느꼈을 고독과 절망의 무게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칸은 그 고독과 절망을 이겨냈다.

재기하겠노라 다짐하고 술을 끊으려고 노력했다.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또 웃기다.

‘술을 안 먹으니까 손이 떨린다면서 망치도 못 쥐었지.’

대장장이가 망치도 못 쥐는 모습을 보고 황당해서 얼마나 웃었던지.

하지만 칸은 결국 술을 끊고 망치를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던 영우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었다.

‘부디, 행복하기를.’

처음 만났던 그날의 칸은 혼자였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닐 것이다.

천국에서 재회한 가족과 함께 매일매일 웃고 있겠지.

영우는 그렇게 믿었다.

술 한 잔을 비울 때마다, 부디 내 믿음이 현실이기를 바란다고 신께 빌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손 한 번 안 댄 닭발과 우동국물이 어느새 차갑게 식었다. 기본안주로 나왔던 생오이도 표면이 말라붙었다.

빈 소주병만 3병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벌써 시간이....’

칸과 함께 했던 추억을 더 많이 회상하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서는 돌아가 자야한다.

시간을 확인하고 아쉬움을 달랜 영우가 마지막 남은 한 잔의 술을 밤하늘에 마주쳤다.

‘내년에 또 한 잔 해요.’

인간에게 영혼이 존재할까?

확답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은 이를 몇 번이고 추억하고 애도한다.

영우가 칸에게 하는 행동도 그와 같은 이치였다.

마지막 잔을 비운 영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깡패새끼.”

적의 깃든 목소리가 귓가에 꽂혀왔다.

시선을 돌려 보니, 20대 중반의 남자 넷이 술에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사람한테 척살령이나 내리고 말이야. 힘이 남아 도니까 휘두르고 싶어 죽겠지? 아주 깡패야, 깡패.”

영우는 무시했다. 현금을 꺼내 아주머니께 공손히 건넨 후 부탁했다.

“죄송한데 남은 음식 좀 포장해주세요.”

“아이고, 그럼요, 그럼. 금방 포장해줄게.”

싸움이라도 날라.

걱정한 아주머니가 서둘러 남은 닭발을 포장용기에 담기 시작했다.

때마침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왔고, 처음 영우에게 시비를 걸었던 네 명의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영우를 둘러쌌다.

“이거 진짜 독한 놈이네. 돈도 억소리 나게 번다는 놈이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냐? 나였으면 지나가는 개한테 선물로 줬겠다. 하긴, 그렇게 독한 놈이니까 척살령이나 남발하고 다니겠지.”

“뭐야, 무슨 일이야?”

“앗! 그리드다!”

새로 온 손님들이 무슨 일인지 상황을 살피다가 영우의 얼굴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사진을 찍는 시늉을 하지만, 사실은 동영상을 촬영하려는 의도였다.

Satisfy의 지존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시비 붙다! 이건 당연히 큰 이슈가 될 사건이었다.

“야. 사람 무시하냐? 사람이 말을 하면 뭐라고 대꾸라도 해야지. 확 그냥.”

“새끼 이거 찐따였다더니 쫄았네. 아이고~ 게임이었으면 바로 척살령 내렸을 텐데 억울해서 어째? 응?”

“칼부림 한 번 춰보던가. 파그마의 검무! 얍! 얍! 요렇게!”

“푸하하하! 미친! 존나 웃겨!!”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게 마련이다.

시비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영우를 둘러싼 네 명의 사내들이 파그마의 검무를 따라하는 시늉을 취하며 영우를 조롱하고, 위협했다.

그러다가 한 명이 분위기에 휩쓸려 도를 넘어섰다.

술병을 들고 영우를 때리는 시늉을 한 것이다.

“아이고, 총각!!”

혼자서 네 명의 사내를 계속 말리던 주인아주머니가 사색이 되었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 중인 손님들은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때.

턱.

“...어?”

영우가 자신의 눈을 찌를 듯 위협하는 술병을 낚아채 조용히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자신을 둘러싼 사내들의 머리 위로 손을 들었다.

그 행동이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벼락처럼 빨라서 사내들은 순간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영우는 그들을 때리지 않았다.

들었던 손을 천천히 내려 그들의 뺨을 한 번씩 두드려주는 정도로 끝냈다.

한데 결과는 놀라웠다.

“하으으응...”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맥없이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다.

“엥...?”

동영상을 촬영 중이던 사람들도, 사내들을 말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주인아주머니도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귀신에 홀린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때린 것도 아니고, 단지 뺨에 손을 한 번 얹은 것뿐인데 죄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다니?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감사합니다. 번창하세요.”

침묵 속에서, 포장 된 닭발을 챙긴 영우가 꾸벅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포장마차 앞에서 팔짱 낀 채 기다리고 있는 툰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거, 라우엘 짓이지?”

“.....”

추측은 쉬웠다.

영우가 시비에 걸렸는데도 툰이 나서지 않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구경꾼들이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시비를 건 녀석들도 로제 사건을 유난히 강조했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는 올바른 행동을 비아냥거리며 자신들의 인성이 비뚤어졌다는 점도 밝혔다.

“이미지 메이킹 지리네.”

3시간 후.

<그리드가 현실에서 남자 4명 보내버림>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전 세계 인기 동영상 1위에 등극했다.

사람들은 일방적인 모욕을 겪고도 상대방을 보듬어준(?) 그리드의 인성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로제는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짓을 벌였기에 저토록 착한(?) 그리드가 그녀에게 척살령을 내렸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애초에 임모탈한테 척살령 내렸던 것도 걔들이 템빨국 대장장이들을 죽여서 그랬던 거잖아. 그 후로 템빨단이 척살령 내린 경우가 또 있어? 없어. 이번 로제가 처음이야.

-결국 로제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는 뜻이 되네.

-그치. 아주 더러운 짓을 저질렀을 게 분명해.

-그와중에 그리드 포장마차 아줌마한테 90도로 인사하는 것 봐.

-닭발 포장해가는 갓리드....

대한애국협회 직원들.

키보드를 이용한 여론 조작의 달인인 동시에 기본 4개국어를 마스터한 엘리트인 그들이 세계 각국 인터넷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그러자 여론은 일방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제 로제를 옹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판단력 좋은 로제는 금방 백기를 들었다.

-...아그너스의 누명을 벗기도록 노력할게요. 단, 제가 교단을 배신했다는 사실이 들키지 않으려면 은밀하고 신중하게 진행해야하는 일이에요. 어느 정도의 유예는 주실 거라고 믿어요.

-3일. 그 이상은 안 됩니다.

-너무 짧....

-긴 말 않습니다.

-...네. 최선을 다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척살령 좀 풀어주세요.

템빨단과 적대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절실히 깨닫는 로제였지만, 하이랭커 생활을 오래 겪은 그녀는 자존심이 부쩍 상승한 상태였다.

그녀는 속으로 칼을 갈았다.

조만간 브누아 황자와 함께 새로운 대악마를 소환하게 될 때, 반드시 템빨국을 진탕내고 자신은 커다란 힘을 얻어 복수의 발판을 다지리라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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