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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48화 (843/1,794)

템빨 46권 - 17화

정령 등의 일부 소환수가 그러한 것처럼, 영혼체인 이야루그트 또한 레벨이라는 성장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정체나 한계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이야루그트는 수복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강적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살아생전의 감각을 되찾는 중입니다. 더 많은 승리를 거머쥘수록 실력을 회복할 것입니다.(5/10)

이야루그트의 상태창에 표기 된 내용이다.

네임드급 보스 몬스터를 레이드할 때마다 한계를 돌파하고 힘을 수복하는 것이다.

현재 시점의 이야루그트가 시전하는 <지고의 검>의 위력은 극검의 궁극기 섬(殲)보다 4배 이상 강력했고, 이는 연살파극(聯殺派殺)의 ‘모든 콤보’가 적중했을 때와 비견되는 위력이라 할 수 있었다.

쩌어어어어엉-!!

“큭...!”

방패를 세워서 지고의 검을 막은 아폴로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신음했다.

방패와 함께 통째로 뜯겨나간 그의 왼쪽 팔이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단장님!”

기사들의 경악성이 울려 퍼졌다.

갑자기 나타난 마족이 동료들을 도륙하고 급기야 단장의 한쪽 팔을 날려버렸으니 청천벽력을 맞은 기분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마안족은 지옥에서 추방당한 종족이라고 들었다. 마족이 왜 그들을 돕는 거지?”

4차 전직 기사의 응급 처치 스킬 <점혈>로 상처를 지혈한 아폴로가 원망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이야루그트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무도(武道)만을 추구해온 마(魔).

남의 입장 따위, 관심도 없다.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정도로 친절하지도 않았다.

“뭐래 쉬불.”

“....”

후비적, 귀를 파며 퉁명스레 대꾸하는 이야루그트의 태도에 장내의 분위기가 사늘해지는 순간이었다.

“남을 원망하기에 앞서서 본인들의 행동부터 되돌아봐야하는 거 아니냐?”

이야루그트의 등 뒤에 숨은 극검이 버럭버럭 소리쳤다.

“네놈들은 일방적인 침략자다! 타인의 영토에 멋대로 쳐들어와 그들을 해치고 평화를 빼앗으려는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남을 원망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 하냐! 이 오랑캐 같은 놈들아!!”

“...소개를 생략해서 오해가 생겼군. 우리는 가우스 왕실 소속 청염기사단이다. 이곳은 우리의 영토이며, 우리에게는 정당한 방위권을 행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침략자는 우리가 아니라 마안족이다.”

“가, 가우스 왕국? 큭...! 하지만 마안족이 너희 백성을 해친 것도 아니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해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마족이다. 심지어 지옥에서 추방당할 정도로 흉포한.”

“읏....!”

“아니... 이건 종족을 논하기에 앞서서 기본적인 국가 안보관의 문제지... 네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너희 템빨국 영토 지하에 특정 무력 단체가 도시를 만들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너희는 과연 묵과할 수 있을까?”

“....!”

극검이 점점 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갔다.

아폴로의 말에서 이치에 어긋나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대한민국 영토 지하에 중공군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한국인 입장에서 그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생태였다.

“그, 그렇군... 너희들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엄밀히 따지면 너희들이 피해자군...”

솔직하게 인정하는 극검.

하지만.

“아, 몰라! 어쨌든 가우스 왕국은 우리의 주적! 이참에 네놈들을 모조리 해치워주마!”

불리한 진실은 외면하면 그만이다.

도끼눈을 치뜬 극검이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그리고 묵색의 장검을 뽑아 쥐었다. 그리드가 벨리알의 뿔로 제작해줬었던 장검이다. 단지 성능만 놓고 본다면 이야루그트보다 조금 더 뛰어날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다.

“가자, 이야루그트! 적들을 섬멸하자!!”

타앙-!

이야루그트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졌고, 극검은 제자리에 선 채 허리를 숙였다.

“지옥달 베기.”

서걱-!

전방의 기사들을 양단시킨 이야루그트가 적에게 포위 될 형국에 처함과 동시에.

“섬(殲).”

극검의 발검술이 이야루그트를 둘러싸는 적들을 휩쓸었다.

터무니없이 공격적인 호흡이었다.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폴로가 외팔에 쥔 검 끝에 푸른 검기를 둘렀다. 화염 같은 검기였다.

“나를 불살라 조국을 지키겠노라!!”

쿠와아아앙-!

강력한 기파!

발검술을 사용한 여파로 빈틈을 노출하고 있던 극검이 기세에 눌려서 휘청거리자, 그의 곁으로 달려온 반트너가 방패를 세웠다.

이어서.

쩌어엉!

아폴로가 날린 검기가 반트너의 방패를 강타했다.

반트너가 침음했다.

‘차원이 다르군...!’

역시, 현재 시점에서 4차 전직자는 너무 벅찬 상대다.

3차 직업군만해도 2차 직업군을 압도해왔으니 4차 직업군의 실력은 오죽하겠는가?

한쪽 팔이 절단당한 탓에 능력치가 대폭 하락한 상태일 텐데도, 아폴로의 공격력은 반트너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상을 입고 피를 토한 반트너가 소리쳤다.

“야! 이야루그트! 빨리 그놈을 없애!!”

“주인도 아닌 주제에 닥치거라 문어야.”

사납게 쏘아준 이야루그트가 아폴로에게 바짝 붙었다. 자신이 아폴로를 해치우지 않으면 극검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

쩌정-! 쩌저저정!!

인간의 검술과는 궤를 달리하는 마족의 검술.

마족의 타고난 공격력과 생명력에 의존하는 공격일변도의 현란한 검술이 아폴로를 강하게 압박한다.

아폴로는 이야루그트가 드러내는 빈틈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뻔히 엿보면서도 함부로 틈을 노리지 못했다.

이것은 함정이다.

빈틈에 현혹되어 반격하는 순간 더 큰 피해를 입을 거라는 사실을, 아폴로는 직감했다. 그나마 외팔이 신세만 되지 않았다면 방패를 활용해서 반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냈을 텐데 아쉽다. 처음 공격의 위력을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큰 패착이다.

“좋아! 잘한다!”

“밀어붙여, 이야루그트!”

극검과 반트너는 괜히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온전한 상태도 아닌 자신들이 나서봤자 방해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놈들!”

이제 10명도 채 남지 않은 청염기사들이 분노와 살기를 토했다.

자신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때, 웬 미친 마족 뒤에 숨어 응원이나 하고 앉은 템빨국 놈들이 그들은 지독히 얄미웠다.

“네놈들은 우리가 상대해주마!”

푸른 불꽃 같은 검기를 두른 청염기사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오랜 세월 동안 훈련해왔음을 증명하듯, 그들의 협공 실력은 예술에 가까웠다.

“으아악!”

채챙! 챙!!

왼쪽을 협공해서 파고드는 두 놈을 칼 한 자루로 막아내느라 정신없던 극검이 사색이 되어서 비명을 질렀다. 다른 두 놈이 오른쪽을 공격해왔으니 양쪽 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체면도 잊고 몸을 굴려 위기를 모면한 극검이 그리드를 떠올렸다.

4명의 실력자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일도 이렇게 힘든데, 그리드는 무슨 수로 1대 400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일까?

정말 대단하다.

터무니없이 굉장한 녀석이다.

멋지다! 너무 좋다!

“갓리드 짱이다아아!!”

‘저놈 저거 또 병이 도졌네.’

당장 죽게 생긴 와중에 다짜고짜 그리드를 찬양하는 극검의 모습은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

방패 뒤에 숨은 채 쯧쯧, 혀를 차던 반트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패의 내구력이 다 떨어져서 파괴되기 직전의 상황이 온 까닭이다.

‘명색이 왕실 기사단이라 이건가!’

청염기사들은 진짜배기 실력자였다.

협공 능력과 검술 수준이 무척 높아서 빈틈을 찾기가 어려울 뿐더러 공격력이 무척 뛰어났다.

급기야, 푸른 화염이 깃든 네 자루의 검이 안 그래도 너덜너덜했던 반트너의 방패를 산산이 부셔버렸다.

“억! 야! 나 죽어!”

배에 칼침을 제대로 맞은 반트너가 우는 소리를 했지만 극검이라고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극검도 반트너와 똑같은 신세였다. 등이며 배에 벌써 몇 번이나 칼침을 맞았다.

“이런 썅! 네가 탱커니까 네가 나를 지켜줘야지! 내가 먼저 뒤지겠다!”

“....”

템빨국을 세운 십공신들.

템빨국 내에서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사투를 숨죽인 채 지켜보던 병사들이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치열하고 멋진 싸움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개판이었다.

“우리도 싸우자!”

“그래! 가자!”

잠시 멍하니 있던 병사들이 각자 무기를 고쳐 쥐었다. 여태까지는 괜히 끼어들지 말고 피해있으라는 반트너의 신신당부 때문에 잠자코 있었지만 이제는 한계다.

병사들은, 죽음을 각오했다.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 극검과 반트너를 구출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우와아아아아!!”

“으윽.... 도망치라니까....”

극검과 반트너는 병사들의 합류가 달갑지 않았다.

자신들이야 죽어도 경험치나 아이템만 잃고 다시 부활할 수 있었지만 병사들의 목숨은 하나뿐이었으니까.

피아로, 아스모펠, 그리고 쥬드가 힘들게 키운 정예 병사들. 벌써 한 달 이상 함께 사선을 넘어온 그들의 죽음을 두 사람은 원치 않았다.

“제길...! 이야루그트!! 병사들을 도와줘!!”

병사들의 합류 덕분에 당장의 위기를 모면한 극검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야루그트는 부름에 응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아폴로 또한 일국을 대표할만한 강자.

그가 목숨을 포기하고 동귀어진을 노렸으니 이야루그트의 실력으로도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제기랄! 마안족 놈들은 끝까지...!”

콰앙! 어깨치기로 기사들을 밀쳐내고 아군을 구한 반트너가 굳게 닫힌 성문을 노려보았다.

이정도 소란이면 성문을 열고 나와 도와줄 법도 하건만, 마안족 녀석들이 감감무소식이다.

‘얄미운 놈들, 우리가 누굴 위해 싸우는데...!’

우리가 목숨 바쳐 지키는 대상이 정작 우리를 외면하고 있었으니 극검과 반트너는 허망함을 느꼈다.

전문 용어로 현자 타임이라고 한다.

쉽게 채울 수 없는 허무가 그들의 의욕을 꺾어가는 그때였다.

스파앗.

전장 한복판에 한 떨기 꽃이 피었다.

그 붉은 꽃은 청염기사의 심장으로부터 개화했다.

“....?”

환각인가?

갑자기 심장에 핀 붉은 꽃을 발견하고 어리둥절해진 기사.

주르륵, 코피를 쏟는다.

그리고.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몸을 꺾으며 쓰러졌다.

그의 심장에 피었던 꽃은 이미 사방에 꽃잎을 흩뿌리며 시들어가고 있었다.

후두둑.

허공에 흩어졌던 꽃잎이 혈액으로 녹아 대지를 적신다.

그렇다.

지금 막 쓰러진 기사의 심장에 피었던 붉은 꽃은 꽃이 아니라 심장이 뿜어낸 피였다.

“....뭣이!!”

누가 기척도 없이 우리의 동료를 해쳤는가?

누가 어디서 나타나 우리를 도왔는가?

청염기사단과 템빨국 병사들 양측 모두 믿기지 않아 경악하는 반면.

“...휴, 살았다.”

극검과 반트너는 미소까지 지으며 안도했다.

그들은 전장에 난입한 원군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보고 있었다.

템빨국을 보위하는 그림자.

살신(殺神) 페이커다.

털썩!

또 한 명의 청염기사가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도대체 어디서?’

동료 두 명이 비명횡사하자 바짝 긴장한 기사들이 기감을 돋았다. 필사적으로 집중하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란스티어의 술법을 발동한 페이커는 은밀성과 기동성이 극의에 오른 상태였으니까.

두근. 두근. 두근....

겁먹은 기사들의 심장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전장.

그곳에 완전한 침묵이 찾아온다.

...털썩.

청염기사단 전원, 자신이 누구에게 살해당한지도 모른 채 고꾸라지며 잿빛으로 산화해버렸다.

“...하여튼 폼 난다니까.”

“일부러 멋있어 보이려고 무리한 거잖아. 피토하고 있겠네.”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극검과 반트너가 이야루그트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야루그트와 아폴로는 전장을 무척 넓게 쓰고 있었다. 어느덧 성문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져 시가지를 교차하며 검격을 교환했다.

그들 사이로.

쩌어엉-!

검은 인영이 떨어졌다.

페이커였다.

안 그래도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아폴로는 갑자기 적이 늘어나자 역전할 기회를 완전히 놓쳤다.

결과는 대승.

극검과 반트너를 포함한 성문 보호 병력은 예상보다 훨씬 적은 피해만 입고 청염기사단을 물리칠 수 있었다.

잠시 후.

“꼴들이 말이 아니군.”

그리드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가 이끌고 온 원군을 확인한 극검과 반트너가 그제야 안도하며 大자로 뻗었다.

“힘들어 죽겠다. 뒷일은 맡기고 우린 이제 쉬러 간다.”

“그래, 푹 쉬어. 고생 많았다.”

“헤헤... 로그아웃.”

“우와아아!! 그리드 전하!!”

병사들이 환호했다.

대규모 원군을 이끌고 나타난 그리드는 구세주 그 자체였다.

“너희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

생존자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사투를 벌여왔을지 모를 리 없는 그리드는 그들의 면면을 기억해두었다. 차후 반드시 큰 보상을 내릴 생각이었다.

“전하.”

스틱세이가 다가왔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성 안에서 강대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성 안에서?”

그리드가 성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아군의 활약 덕분에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은 일체 없었다.

“마안족 왕의 마력을 말하는 거야?”

“물론 마안족 왕의 마력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마안족 왕만큼 강력한... 아니, 그보다 몇 배나 더 강력한 또 다른 마력도 함께 느껴집니다.”

대현자 스틱세이.

마법왕 골드히트를 마주했을 때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누군가가 성의 결계를 자력으로 돌파한 게 분명합니다.”

그 누군가란 당연히.

“마법왕 이상의 실력자이겠지요.”

“....설마!”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리드가 당장 성문을 열고 성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보았다.

왕의 대전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흥건한 핏자국을.

이곳은 <복종안>을 사용하는 마안족 대신들이 상주하던 장소.

핏자국의 주인을 유추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길!”

마안족 왕이 위험하다!

초조함에 휩싸인 그리드가 전력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마안족 왕이 있는 알현실에 들어서자마자.

[시대를 초월하는 강자와 조우하였습니다.]

마안족 왕을 속박하고 있는 젊은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딘지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가녀린 미남자였다.

“그대가 운명을 앞당기는 자인가.”

사내의 정체는 지크프렉터.

본명보다는 그랜드마스터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존재였다.

“흐음, 편의상 템빨왕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겠군.”

[알 수 없는 생존 본능이 발동합니다! 투기가 최대치로 충전됩니다!]

“그 손 놔라!!”

신격을 전개, 신을 겨누는 칼날과 열망의 무아검을 합체시킨 그리드가 십만대군 학살검을 전개했다.

쿠콰콰콰콰쾅!!

수십 줄기의 적자색 검기가 그랜드마스터를 덮쳤다.

하지만 손에 쥔 마안족 왕을 방패로 삼은 그랜드마스터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네게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희박하게 작용하겠지만, 그래도 피해가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 죽어줘야겠다.”

무표정하게 읊은 그랜드마스터가 하얀 거울 같은 것을 꺼내더니 마안족 왕의 두 눈을 가리고 있는 띠를 풀어버렸다.

순간.

“매스 텔레포트!”

마법을 센스 있게 사용한 스틱세이 덕분에 공간을 도약, 마안족 왕의 곁으로 이동한 그리드가 마안족 왕에게 안경을 씌워버렸다.

쉽게 양도가 가능한 장신구.

엘리자베스가 만든 에테르 안경이었다.

“....?”

그랜드마스터의 얼굴에 물든 피로감이 더욱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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