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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43화 (838/1,794)

템빨 46권 - 12화

“제국 소속 플레이어가 최소 5억 명 이상이라는 소문이던데.”

템빨국 병력이 마안족 도시에 주둔하고 6일째 되는 날.

폰은 제국의 침략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동료들의 낙관적인 태도에 우려를 표했다.

“제국이 플레이어 전체에게 퀘스트를 내리면 우리도 그냥 쓸려버리는 거 아니냐?”

“....”

장내의 분위기가 사늘하게 식었다.

무려 5억 명의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몰려오는 광경을 떠올린 것이다.

베고, 또 베도 계속 충원되는 적을 상대로 과연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플레이어 병력은 생각 못했네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코크와 일부 템빨단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포가 그들을 지배했다.

라우엘이 그들을 안심시켰다.

“퀘스트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라야하는 법입니다. 특히 전쟁 퀘스트 보상은 일반 퀘스트 보상의 몇 배나 되죠. 제아무리 제국이 돈이 많아도 수억 명의 플레이어 전체에게 퀘스트를 내리는 건 어렵습니다.”

“음... 플레이어 국민이 너무 많아도 문제인 건가?”

“뭐 그만큼 군대에 입대하거나 기사 작위를 받은 플레이어도 많을 테니까 마냥 나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군인이나 기사에게는 ‘특정 의무’가 부여되는 만큼 적은 보상으로도 쉽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군인... 굳이 게임에서까지 군대에 입대하는 녀석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원....”

극검이 투덜거렸다.

대한민국 국민인 그는 병역의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아무리 애국심이 투철해도 두 번 다시 군대에 입대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굳이 군대에 입대하는 플레이어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템빨단원들은 충분히 이해했다.

“한국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군 입대가 의무인 국가는 드무니까. 군대에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아.”

“맞아. 현실에서는 못 가본 군대, 게임에서라도 가보자 이거지.”

“...음.”

“그런 이치에서, 우리 템빨국 소속 플레이어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때때로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게임에서까지 군대에 입대할 생각이 결코 없으니까요.”

“템빨국이 운영할 수 있는 플레이어 병력이 타국보다 적다는 뜻인가?”

“네. 현실에서 한국이 빨리 통일하지 않는 이상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되겠죠.”

“신기하군....”

현실의 국가 정세가 게임에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칠 줄이야?

템빨단원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자, 다시 근무 서러 갑시다.”

어느덧 교대 시간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템빨단원들이 마안족 도시 각지로 흩어졌다.

***

템빨국 병력이 마안족 도시에 주둔하고 열흘째 되는 날.

“겁나 지루하네.”

“쉬부럴 사냥해야 되는데. 제국 놈들 어차피 쳐들어올 거면 좀 빨리 쳐들어오면 안 되나?”

십공신 중에서 인내심 없기로 유명한 극검과 반트너가 드디어 한계를 맞이했다.

완전한 벽지. 그것도 지하에 위치한 마안족 도시는 마땅한 오락거리나 사냥터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사람은 벌써 열흘째 하릴없이 성문만 지키고 있었으니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고 마음도 초조했다.

“지금 바깥에서는 다들 사냥한다고 난리라더라.”

“그렇겠지. 국대전 버프 기간인데 사냥 안 하면 손해지.”

“우리만 사냥 못하고 손해 크게 보네....”

“쩝. 여기 근방에 사냥터라도 있었으면 교대 시간마다 후딱 사냥하고 왔을 텐데 사냥터 자체가 없으니 원....”

“하아....”

“후우....”

신세가 처량하다고 느낀 극검과 반트너가 습관처럼 시간을 확인했다.

빨리 교대시간이나 왔으면 하는 심정이다. 로그아웃하고 TV 앞에 앉아 맥주나 먹고 싶었다.

“응?”

마안족 왕이 기거하는 작은 성.

그 앞을 지키고 선 채 연신 투덜거리던 극검과 반트너가 건너편 골목길 어귀로 시선을 돌렸다.

유난히 키가 작은 마안족 3명이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들은 키가 1미터가 채 안 됐다. 얼굴도 유난히 동글동글하고 뺨에는 붉은 홍조가 있었다. 한 놈은 투명한 콧물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고.

“어린 애들인가.”

“귀여운 녀석들이군.”

마안족은 귀여운 인형 같은 외모를 자랑했다. 가끔 얼굴에 십자 흉터가 있거나 눈매가 유난히 사나운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귀여웠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생김새랄까.

하물며 어린 마안족은 어떻겠는가?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그린 극검과 반트너가 마안족 어린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마안족 어린이들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지 화들짝 놀라면서 골목 뒤로 숨어버렸다.

극검과 반트너는 그마저도 귀엽게 느꼈다.

“쟤들은 입만 안 열면 참 좋네.”

“그러게. 입만 안 열면.”

마안족 도시에 처음 왔던 날이 떠오른다.

데스티니 가디언즈가 신원을 확인해준 덕분에 도시에 쉽게 입장할 수 있었던 십공신은 광장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 천 명의 마안족과 대면해야만 했다.

그건 실로 지옥이었다.

라우엘 같은 녀석이 천 명이나 모여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데 손발이 어찌나 오그라지던지....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미리 귀마개를 준비해 와서 망정이지, 아니면 실신했을 수도 있다.

일부 저주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 됐다는 귀마개.

평소에는 쓸모없는 잡템으로 구분되기 쉽상인 그것이 그토록 유용한 아이템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마안족 왕의 중2병은 훨씬 더 대단할 텐데 갓리드는 마안족 왕하고 어떻게 친구를 먹은 걸까? 갓리드는 정말이지 대단해. 괜히 GOD이 아니라고. 이거 참. 갓리드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는군....”

“....”

오늘은 잠잠하다 싶던 극검의 그리드 예찬이 또 다시 시작됐다.

하도 써먹은 탓에 꼬질꼬질해진 귀마개를 꺼낸 반트너가 그것을 귀에 꽂으려다가 멈칫했다.

마안족 꼬마 삼인방이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출입 금지다.”

반트너는 마음과 달리 딱딱한 목소리가 나왔다.

마안족 꼬마들이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임무가 지루하다고 해서 경계심까지 흐려진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제 제국의 암살자가 올지 몰라서 위험해. 여기서 얼쩡거리지 말고 다른데 가서 놀아라. 아니, 아예 집에서 나오지를 마.”

반트너가 재차 차갑게 말하자 마안족 꼬마들이 우물쭈물했다. 그리고 저들끼리 몇 번 눈빛을 교환하는가 싶더니 뒤에 숨기고 있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고사리 같은 손 위에 사탕이 잔뜩 있었다.

“먹어라. 이것은 우리 셋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지를 넘어서 구해온 영약이다.”

“...사탕 빼돌리다가 엄마한테 혼났구나?”

“큭큭큭? 네놈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 설사 모친이라고 해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내 안에 잠재 된 힘은 혈육의 정마저도 무시하는 난폭한 녀석이라 위.험.하거든. 큭큭큭.”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맙다.”

이 아이들의 간식이리라.

마안족이 인간 세상에서 물건을 공수해오려면 큰 위험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뻔히 아는 극검과 반트너는 사탕을 딱 하나씩만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그들에게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탄생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그대들은 영광으로 알아야할 것이다.”

“....?”

“....우리의 위대한 왕을 지켜주어서 고맙다.”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힌 마안족 아이들이 감사를 표하자마자 후다닥 도망쳤다.

멀어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던 극검과 반트너가 이내 질색했다.

“X 됐다.”

“...플래그가 섰군.”

그것도 사망 플래그!

만화나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전개다.

주인공이 누군가를 도와줄 때, 도움 받는 대상이 평소에는 쌀쌀맞게 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고맙다고 말하면.... 그건 곧 자신이 죽을 때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복선이었다.

“빨리 라우엘한테 연락... 큭!?”

다급히 소리치던 극검이 황급히 발검의 자세를 취했다.

허공에서 새카만 인영 2개가 떨어지더니 마안족 꼬마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이들이 주춤거렸고, 극검과 반트너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아이들의 앞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기척도 없이 등장한 2명의 적은 엄청난 실력의 어쌔신들이었다.

쐐액-!

어쌔신들이 날린 단도가 극검과 반트너의 기세를 죽였고.

덥썩!

두 사람이 단도를 막아내는 사이, 어쌔신들은 마안족 꼬마들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인질로 삼으려는 의도였다.

한데 쉽사리 의도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극검과 반트너도 강했으니까.

“어딜!”

“...!?”

스팟-!

섬전처럼 날아온 검격을 어쌔신들이 간신히 피했다. 기껏 붙잡은 마안족 꼬마들을 방패로 삼지 않은 이유는, 그들 ‘선발대’의 임무가 마안족의 생포였기 때문이다.

“그 어린 애들을 붙잡아다 뭐하려는 거지?”

재차 발검의 자세를 취한 극검이 이를 갈며 물었다.

물론 어쌔신들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잠시 틈을 보던 그들이 <폭발>의 주문이 귀속 된 단도를 쏘았다.

방패를 꺼낸 반트너가 단도를 막아내자.

퍼엉-!

강력한 폭발이 발생했다.

반트너가 방패와 함께 폭사했을 거라고 판단한 어쌔신들이 그대로 자리를 이탈하려했지만.

“X만한 놈들이 까부네. 흐흐.”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무엇인가가 회전하며 날아왔다.

둥그런 방패였다.

쩌어어엉-!

어쌔신들이 서로의 단도를 교차시켜서 방패를 막아냈다. 한데 방패에 깃든 힘이 무척 강해서 저도 모르게 신음을 토하고 말았다.

여태껏 한 마디도 없던 어쌔신들이 앓는 소리를 하자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방패를 회수한 반트너가 캬캬 웃었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아이들 내려놓고 제대로 덤벼.”

“칫...!”

어쌔신들이 싸워줄리 만무했다.

수호기사 랭킹 1위 반트너와 발검술사 랭킹 1위 극검의 조합은 공방 양면에서 극강의 위력을 발휘했으므로 전면전은 승산이 적은 것이다.

애초에 이곳은 적진.

전투가 길어져봤자 본인들만 불리했다.

퍼엉-!

어쌔신들이 연막을 뿌렸다.

극검과 반트너가 잠시 시야를 잃고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도시를 벗어날 의도였다.

그때였다.

“훌쩍. 이봐.”

어쌔신의 손에 붙잡혀있던 마안족 꼬마가 콧물을 훌쩍이며 물어왔다.

“내 몸에 손을 대다니, 죽고 싶은 건가?”

“....!”

이들 ‘선발대’가 굳이 마안족 ‘꼬마’를 납치 목표로 설정한 이유는 당연히 만만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녀석들이니만큼 마안의 위력이 부족할 거라고 판단했었다.

한데 아니었다.

쩌적-! 쩌저저저적!!

코찔찔이 마안족 꼬마가 안대를 벗는 순간, 녀석을 붙들고 있던 어쌔신이 산 채로 얼어갔다.

“으... 으아아아...!”

겁에 질린 어쌔신이 마안족 꼬마를 던지듯이 내려놓았지만 소용없었다.

마안의 이능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 발동하는 힘.

세계에서 가장 불합리한 힘이었으니까.

“이런...!”

순식간에 얼어 죽은 동료의 모습에 놀란 어쌔신이 자신이 생포한 2명의 마안족 꼬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포승줄에 단단히 묶인 녀석들은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했고 안대도 벗지 못하는 상태였다.

‘병신 새끼, 나처럼 제대로 포박해놨으면 됐을 걸!’

죽은 동료에게 욕설을 날린 어쌔신이 은신술을 전개했다. 그는 연막이 완전히 걷히기 전에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한데....

“....?”

은신술이 발동하지 않는다!?

또한 적의 시야를 방해해야할 연막이 더욱 짙어지면서 나의 시야까지 방해하기 시작했다.

“....!”

당황하며 두리번거리던 어쌔신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손아귀에 있던 2명의 마안족 꼬맹이가 눈앞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포박을 푼 거지?’

새벽 호숫가의 안개처럼, 점차 더 짙어지는 연막 속.

그 한가운데 홀로 선 어쌔신의 혼란이 극대화되었다.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진 마안족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영원히 안개 속을 헤매다가 죽어라. 큭... 큭큭큭...! 크하하하하!!”

“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안개는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와....”

검풍으로 연막을 꿰뚫고 달려온 극검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견하기에도 하이 랭커급이었던 어쌔신 2명이 그 잠깐 사이에 당해있었기 때문이다.

한 놈은 완전히 얼어 죽었고, 다른 한 놈은 환술에라도 빠진 건지 비명을 지르면서 혼자 땅을 기고 있었다.

‘사망 플래그조차 뽑아버리는 힘이라니...!’

마안족은 정말 굉장했다.

그리드와 라우엘이 마안족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제 완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환술의 지속 시간은 영원이 아니다. 그놈을 미리 제압해놓는 걸 추천하지.”

어느새 다시 안대를 쓴 마안족 꼬마들이 환술에 빠져있는 어쌔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극검과 반트너가 어쌔신에게 다가가 녀석을 꽁꽁 묶어놓았다. 그리고 복면을 벗겨보자 녀석은 NPC였다. 한데 정체를 알고 나서도 공격이 가능했다.

즉, 이 어쌔신들의 소속은 제국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제국 소속 NPC였다면 휴전 협정에 의거해서 서로 공격이 불가능해야 정상이었으니까.

‘외부 단체를 끌어들였나보군.’

힘껏 도약한 극검과 반트너가 체공 시간 동안 도시 전역을 살폈다.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흠.... 어쩔까?”

“여기 있어야지 뭘 어쩌겠어.”

극검과 반트너의 임무는 매우 중요하다. 성문을 지킨다는 말은 즉 마안족 왕을 지킨다는 뜻과 일맥상통했으니까.

“너희들, 위험하니까 집으로 가지 말고 성 안으로 들어가.”

극검과 반트너가 마안족 꼬마들을 수습해서 성 안으로 들여보냄과 동시였다.

스파아앗-

허공에서 수십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선발대’의 침략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선 너희들부터 처리하고 마안족을 확보해야겠군.”

기고만장하게 지껄이는 어쌔신 부대를 마주한 극검과 반트너가 낄낄 웃었다.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부터 개꿀잼이겠군.”

“그러게. 지루해 죽느니 맞아 죽는 게 훨씬 더 재밌지.”

“...미친놈들.”

눈살을 찌푸린 어쌔신 대장이 손짓하자 어쌔신들이 한꺼번에 두 사람을 덮쳤다.

이야루그트가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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