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5권 - 17화
-미국 트리오 트롤링 오지네.ㅡㅡ;
전반적인 반응이었다.
크라우젤은 사태 방관.
지발은 잘못 된 정보를 유포해서 사태 악화 유발.
마왕에게 정면으로 덤벼들었다가 칼질 1방과 대포를 맞고 사망한 하스터는 사기 저하에 공헌.
...한심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행태였다.
그들을 칭송하는 열렬한 팬조차도 그들을 변호하지 못했고, 미국 국민들은 나라 망신이라며 수치심마저 느꼈다.
“지겠지?”
“당연하지. 저걸 어떻게 잡아?”
하스터의 허무한 죽음은 관중들과 시청자들의 희망을 꺾어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마왕을 토벌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수십 억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결코 꺾을 수 없는 적’을 상대로 광대 노릇이나 하게 된 선수들을 동정할 지경이었다.
마침 마왕은 쐐기를 박고 있었다.
쿠우웅-!
마법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지는 칠흑의 거신.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녀석의 머리 위에 선 마왕이 음침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모두 죽어라.”
공격 대상의 반경 10미터에 있는 모든 존재(피아 구분 불가)에게 공격력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피해를 총 30회 입힙니다.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0분
십만대군 학살검이었다.
원래라면 적자색이었어야 할, 은빛의 검기가 그나마 남아있는 마법사들에게 쏟아져 폭발했다.
이제 채 300명이 남지 않게 된 선수들.
사람들은 선수들이 포기할 거라고 보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선수들의 의지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명색이 랭커들이 쉽게 좌절할 리가.
“포격 간격은 정확히 5분이다.”
“두 번의 포격 지점 모두 마왕의 시선이 닿는 방향을 향했어. 마왕의 시선을 읽으면 포격에 대비할 수 있을 거야.”
“활을 버리고 검을 든 순간부터 생명력 회복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어요. 지슈카 님이 말씀해주신 주작궁의 옵션 효과를 잃어서겠죠. 마왕의 자연 회복 속도는 보스 몬스터치고 무척 느려요.”
“마왕이 스킬 쓸 때마다 팽이처럼 회전하는 거 말이야. 기세만 위협적일 뿐이지 곁에 다가가도 베이지 않더라고. 단순히 스킬 발동 모션 같은데, 물리적인 제약을 걸어서 도중에 회전을 멈추게 만들면 스킬 발동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아.”
“갑옷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무는 해독이 어려운 대신 전개 속도가 느리다. 거리 유지에 신경 쓰면 충분히 피할 수 있어.”
10분간의 전투 동안 마왕은 일방적으로 선전했다. 벌써 1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선수들이라고 해서 넋 놓고 당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전투 내내 마왕을 분석하면서 공략법을 궁리했다. 정보 수집과 분석이야말로 레이드의 기본이었으니까.
“보법에 회전 모션을 덧씌운 거란 말이지... 데미안, 사전에 입을 맞췄던 사람들에게 슬슬 준비하라고 해요. 마왕의 마장기가 회수되는 시점부터 역공에 나서도록 하죠.”
작게 혼잣말하던 지슈카가 지시했다.
그녀의 시선에 걸리는 칠흑의 거신은 점점 더 많은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당장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잘은 몰라도 마법의 연속적인 사용이 화가 된 듯했다.
데미안이 의문을 표했다.
“마왕의 생명력은 아직도 거의 최대치입니다만. 승부처로 삼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우리 숫자가 삼백이에요, 삼백. 한 명이 수천씩의 데미지만 누적시켜도 200만 정도의 피통쯤이야 금방 소모 시키죠.”
“공중에 떠있어서 동시에 여러 명이 접근할 수도 없을뿐더러 기껏 접근해봤자 죽잖습니까?”
“결국 지상에 내려오게 될 거예요. 그리고 당분간 대량 학살은 없어요.”
그리드의 약점은 쿨타임과 자원이다. 그의 스킬들은 하나 같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대신 대량의 자원을 소모했고 쿨타임이 길었다.
이쪽의 기세를 죽이겠다고 10분 내내 스킬을 남발한 그리드는 분명히 약화 된 상태였다. 플라이도 언제까지고 사용할 수 없을 테고.
지금부터는 시간을 줘선 안 된다는 게 지슈카의 판단이었다.
‘이제 광역기는 초연만 남았어. 그건 내가 보법을 차단하면 돼.’
지슈카는 그리드가 무명이던 시절부터 그와 함께해온 동료다. 스킬 이팩트가 변했다고 해도 그 스킬이 유발하는 효과를 통해서 그리드의 스킬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10분 동안 100명. 예상보다는 피해가 크지만 할만 해.’
전장을 최대한 넓게 쓰고 산개해 있을 것.
지슈카와 크리스가 선수들에게 내린 오더다. 그리드의 광역기로부터 입는 피해를 최소화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오더를 신뢰하지 못한 일부 선수들이 밀집해 있었고, 그 탓에 그리드의 광역기가 큰 효력을 발휘했다.
특히 마법사 대부분을 잃은 것이 뼈아팠다.
하지만 아직까진 허용 범위 내의 피해다. 여전히 300대 1의 전투.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화살을 꺼내는 지슈카에게 슬그머니 다가온 폰이 속삭였다.
“저거 그리드 아닌 것 같은데? 마장기를 소환했잖아?”
“그리드의 분신이 그리드의 아이템을 복제했었어. 그때 분신을 잡고 히든 피스로 복제 스킬이라도 얻었나보지.”
“합체, 변신에 이어서 복제라고?”
말만 들어도 사기 스킬 아닌가?
폰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지슈카는 단호했다.
“잊었어? 우리들의 대장은 상식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야.”
그 옛날, 지슈카는 천외천 크라우젤을 보고 불가해(不可解)의 영역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드에게서 느꼈다.
아군일 때도, 적이 된 지금도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적이 된 지금은 한없이 두렵다는 것. 넘어선 안 될 강을 건너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오래간만에 피가 끓어오르네.’
지슈카는 맹수다.
잡아먹는 쪽이지 먹히는 쪽이 아니다.
붉은 입술을 핥으며, 자신의 본질을 끄집어내고 불안을 억누른 그녀가 활시위를 놓았다.
마왕이 마장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을 정확히 노린 활 쏘기였다.
터엉-!
차징샷.
이름 그대로 차징의 기능을 발휘하는 화살에 가슴을 적중당한 마왕의 몸이 멀찌감치 날아가더니 마장기에 처박혔다.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앙!!
안 그래도 불안한 낌새를 보이던 마장기가 폭발했고,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총공세를 시작합니다!”
광역 버프를 사용한 데미안이 소리치자.
[<달콤한 사탕>을 입 안에 넣었습니다.]
[<헤르메스의 신발>을 덧신습니다.]
[<스킬 강화서>를 사용합니다.]
[<새끼용의 불>을 삼켰습니다.]
[<발본의 검>을 착용하였습니다.]
...
...
하이 랭커들이 <명성 상점>에서 구매해놓았던 아이템을 복용하거나 장착했다.
마왕을 염두에 두고 4천왕과의 교전에서는 사용을 아꼈던 아이템들이다.
하이 랭커들의 명성이 제아무리 높다한들 그리드와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그들의 명성 포인트는 그리드와 비교해서 무척 제한적이었고 사용에 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콰작-!
폭발 속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마왕을 크리스의 거검이 베어버렸다. 데미지가 상당한지 이를 악 문 마왕이 반격을 시도하려 했으나, 레가스의 금나수가 마왕의 등을 지면에 처박게끔 만들어버렸다.
“큭...!”
피를 토하며 허우적거리는 마왕의 가슴을 폰의 창이 찍어 눌렀고, 데미안의 성검이 연계되며 치명상을 입혔다.
마왕의 갑옷으로부터 독무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무시하고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고작 수천 대의 데미지에 위축될 정도로 나약한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섬(殲)!”
<이야루그트집>에서 <도취>상태까지 마력을 충전, 공격력이 500퍼센트 상승한 이야루그트가 극검의 최강 스킬을 빌려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영웅 크라우젤을 단 2격에 쓰러뜨렸던 필살의 발검술이었다.
[230,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견갑과 갑옷의 이음새가 약해져 약점을 노출합니다!]
달콤한 사탕과 데미안의 버프까지 등에 업은 극검의 공격력 앞에서 마왕의 방어력이 허물어진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여전히 폰의 창에 붙들려있는 마왕에게 수백 명의 선수들이 달려들면서 강력한 스킬을 퍼부었다.
“블러드 레인.”
지면을 붉게 물들인 마왕의 피가 하늘로 솟구쳤다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4천왕 코볼트전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던 광역기다.
마왕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힘과 동시에 시전자 카츠를 강화시키는 그 마법이 전장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한 번 쓰러진 마왕은 쉽게 일어서지 못한 채 생명력을 잃어갔고, 선수들의 기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슥삭슥삭!
남들 다 열심히 싸우는 이때 혼자서 삽질과 시멘트질 중인 포식이불족발의 던전 제작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포식이불족발은 아군의 자원 회복량을 상승시키는 한편 대포의 포격을 막아내는 작은 요새를 전장 한복판에 설치하는 중이었다.
“허허,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군요.”
대진그룹 임원 회의실.
이진명 회장의 호출을 받고 모인 계열사 사장들이 감탄했다.
10분 내내 선수들을 학살했던 마왕이 이제는 반격조차 못하고 구타를 당하자 속이 다 후련하다는 반응이었다.
“한국 선수 세 사람 다 크게 활약하고 있네요. 어쩌면 한국에서 금메달이 여러 개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2개만 따도 3위권을 노려볼 수 있죠? 이것 참 기대되는군요.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둘수록 관련 이벤트 효과가 증폭 될 테니까요.”
마왕의 정체를 아직 모르는 임원들이 한껏 들떴다.
특히 국가대항전과 관련한 이벤트를 진행 중인 계열사 사장들은 노났다고 신나했다.
반면 이진명 회장과 대진 자동차 사장, 그리고 그룹 홍보 이사 세 사람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그들은 마왕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드가 승리한 후 자신의 정체를 밝혀주길 기다렸던 입장에서, 작금의 전개는 실로 최악이었다.
‘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중이 패배자에게 열광할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마왕이 패배한 후 정체를 밝혀봤자 환호가 아닌 조롱과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나라까지 버리고 마왕으로 출전한 주제에 결과가 고작 그 따위냐면서.
“쯧.”
패배자를 그룹의 간판으로 내걸 수는 없는 법.
쩌적. 쩌저적...
마왕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반쪽짜리 회색 가면.
이제는 피로 붉게 물든 그것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이진명 회장이 혀를 찼다.
그리드라는 대어를 놓친 것이 내심 아쉬운 한편 그리드가 괘씸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다니.’
고자인 점도 그렇고, 냉정하게 보면 참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다. 손녀 사윗감으로 한참 부족하다.
잠시나마 저런 녀석을 탐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이진명 회장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를 향해있었으나, 모니터 속 상황이 머릿속에 들어오진 않았다. 유라를 후계자로 앉힐 계획만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때였다.
『....!!』
『아니...!! 무슨...!!』
“....?”
상념에 빠져있던 와중에 정신이 사나워졌다.
대회를 중계 중인 방송사 해설진이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뭐라고 떠들어 대는지, 현재 화면 속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진명 회장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는 그의 귓가로 대진 자동차 사장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아싸!!”
“....?”
아싸라니?
대 대진그룹의 모회사이자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대진 자동차의 책임자가 임원들 앞에서 저런 경박한 태도를?
눈살을 확 찌푸린 이진명 회장이 뒤늦게 대회 상황을 인지했다.
화면 속, 상처투성이 마왕 그리드는 여러 명으로 분산돼 있었고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핵폭발이었다.
300명의 선수 중 200명 이상이 잿빛으로 산화했다. 그 200명 중에는 이진명 회장도 이름을 알고 있는 템빨단원들도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랭킹 1위라는 크리스도.
해설진은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호들갑이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선수들은 완전히 넋이 나가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이진명 회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아싸!!”
“....!?”
임원들이 경악했다.
업계에서 ‘무언의 독재자’, 혹은 ‘카리스마 이 회장’이라고 통하는 대진그룹의 주인이 임원들 앞에서 아싸라니?
지금 우리가 뭘 잘못 보고 있나?
당황해서 눈만 껌뻑이는 임원들과 달리.
“가오리!!”
대진 자동차 사장은 추임새까지 넣었다.
이진명 회장은 대진 자동차 사장이 썩 마음에 들었다. 역시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은 대단하다고 자부했다.
‘그래, 증손자야 의학의 힘을 빌리면 될 일이다.’
그리드를 바라보는 이진명 회장의 눈빛에 주체할 수 없는 탐욕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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