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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22화 (817/1,794)

템빨 45권 - 11화

마왕 토벌전 참가자들에게 회의 시간이 주어졌다.

시간은 20분. 4천왕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다. 20분 동안 석상화 된 4천왕의 스킬 쿨타임은 회복되지 않고 제자리였다. 물론 그리드에게도 이 시간은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드의 생명력 누적 버프와 대장일도 멈춰버렸다.

“중국,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상위 20개국 선수들은 모두 한 팀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중국 선수 장찌앤의 의견이었다.

“메달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고 싶은 마음에 강한 나라끼리는 서로 견제하고 팀이 나눠지게 되었는데, 바로 이게 패착이었죠. 괜히 전력을 분산시켜서 진흙탕 싸움하지 말고 차라리 한 팀에 전력을 집중하는 게 옳습니다.”

“나머지 3개 팀은 버리고?”

“네, 한 팀이 4개 성문을 순회하면서 돌파하면 되니까요.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닙니까? 나머지 3개 팀 선수들이야 뭐.... 결국 마왕하고 만나게 되면 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오겠죠.”

세계 각국의 방송사들은 지금 이 회의 장면조차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세계인들의 관심과 집중이 여전히 마왕 토벌전에 쏠려있다는 증거였고, 실제로 많은 방송사들이 시청률 기록을 갱신 중이었다.

하지만 장찌앤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타국 국민들이 자신의 냉정한 판단에 욕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거침없이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의 의견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진행할 거면 상위팀에서 중국은 빼지? 너희들 더럽게 약하잖아? 깜찍한 녀석이 제일 첫 번째로 탈락한 주제에 버스 타려는 거 보게?”

그렇다.

아르헨티나 대표 수에론의 말대로 중국은 ‘자격’이 없었다. 중국 대표 3명 중 2명은 전투 시작과 동시에 죽어버린 머저리였으니까.

“그건 당신 때문에...!”

얼굴을 대춧빛으로 물들인 장찌앤이 반박하려고 했지만 극검이 말을 잘랐다.

“나쁜 중국인은 그냥 조용히 있고. 나는 기존의 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옳다고 판단한다.”

“뭐? 나쁜 중국인? 무슨 뜻이냐!”

외국인들이 착한 중국인과 나쁜 중국인을 어떤 방식으로 구분하는지, 장찌앤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지독한 인종모독에 치를 떠는 그였으나 극검은 프로다. 과연 대한애국협회장답게 오만한 중국인과 일본인을 다루는 방법에 정통해 있었다.

“내 의견에 의의 있어?”

어차피 민심을 잃은 장찌앤은 노골적으로 무시한 채 최상위 랭커들을 번갈아 보면서 묻는다.

약자에게 으름장 놓는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잘난 사람 앞에서는 겁쟁이가 되는 법이니까.

“....”

역시나.

장찌앤은 크라우젤, 크리스, 지발 등의 강자에게 발언권이 넘어가자 곧장 입을 다물어버렸다. 더 이상 따지지 못하고 한 걸음 슬쩍 물러났다.

크리스와 지발이 극검의 의견에 동의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이미 한 번 싸워본 경험이 있는 상대하고 싸우는 편이 편하니까.”

이곳에 모인 400명의 선수들.

능력과 재능의 고하는 있을지 몰라도 전원 랭커다. 이미 한 번 데이터를 수집한 상대와 싸울 때는 처음보다 배 이상의 실력을 낼 수 있었다.

크라우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대로 가도록 하지.”

“좋아.”

그리드가 없는 지금, 크라우젤이야말로 모두가 인정하는 지존이었다. 그가 승낙한 마당에 굳이 반발해서 일을 크게 벌일 사람은 없었다.

400명의 선수들은 처음 그대로 각자의 조에 소속됐고, 이미 한 번 공략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성문 앞으로 집결했다.

“다들 알고 있지? 적은 강해. 능력치가 30퍼센트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특정 스킬을 허용했을 때 한 방에 죽는 사실은 변함없을 거다.”

서문.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B조를 이끌게 된 극검이 조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냥 상대가 갓리드라고 생각해. 센 스킬은 아예 맞지를 마.”

“....”

“무려 30분이나 싸운 상대야. 어차피 공격 패턴은 대부분 파악했잖아? 다들 할 수 있어. 상대가 태산지체라는 스킬을 쓸 때는 방어력 관통 스킬만 쓰도록 하고... 아, 그리고 고샤루랑 마법사들.”

“어?”

“너희, 싸울 때 폼 잡지 마라.”

템빨단에는 최고의 마법사가 2명이나 있다.

바람술사 제드노스와 화염술사 라엘라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템빨단의 마법사들에게 늘 하는 말이 ‘마법사는 추하게 싸워야한다.’는 것이었다.

마법 주문을 빠르게 외우겠답시고. 혹은 실드 등의 지속형 마법을 믿는답시고 제자리에 선 채 마법을 캐스팅하는 행위는 마법을 조금 더 빨리 쓸 수 있게 해줄지는 몰라도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고 했다.

물론 고샤루와 마법사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면서 싸우라는 거잖아?”

“아, 그거 진짜 폼 안 나는데.”

마법사의 최대 장점은 ‘멋’이다.

일반 전투 직업군과 달리 제자리에 선 채 주문만을 외워서 적을 학살하는 모습은 가히 전장의 꽃이라 할 수 있었다.

Satisfy에서 직업을 마법사로 선택한 사람 중 태반은 폼에 살고 폼에 죽는, 그런 부류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국대전에서 빨빨거리고 쏘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뭐, 이기려면 할 수 없지.”

“메달도 따야하니까.”

고샤루와 마법사들이 자존심을 버렸다.

상대가 고만고만하다면 또 모를까, 여태껏 만났던 보스 중에서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강한 마당에 자존심을 챙기는 건 어리석었다.

처음에야 상대가 이만큼 강한 줄 몰랐고, 당황하다가 판단력이 흐려진 것도 있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제대로 가자.”

다짐한 고샤루가 극검에게 손을 내밀며 말하자 극검이 흔쾌히 그 손을 맞잡았다.

“그래, 이기자고.”

도전 2회차.

반드시 성공해야한다.

동메달 보상이 삭제되는 3회차 도전부터는 선수들의 의욕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공산이 크고 이는 필시 전력 약화로 이어질 테니까.

결의를 다진 선수들이 석화에서 풀린 4천왕에게 돌진했다.

***

D조.

허공에 둥실둥실 떠있는 북문의 수호자를 발견한 지슈카가 투지를 불태웠다.

“이번에는 제대로 뚝배기를 날려줄게.”

지슈카는 눈을 사납게 치켜뜬 채 으르렁거려도 아름다웠다. 사나운 표정이 강렬한 인상과 맞물려서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탐스러운 독 사과랄까. 오직 한 명의 사내에게는 스스로 독을 거두겠지만.

“이봐, 데미안. 내 화살에도 웨폰 블레스트를 걸어줘.”

코볼트.

그러니까 뱀파이어 백작 놀은 유페미나와 공통점이 있었다.

조건부 최강자라는 점이다.

포만감과 아군의 숫자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는 피아로, 메르세데스보다 강한 존재가 바로 놀이었다.

하지만 현재 놀은 혼자다. 그래도 버티는 능력은 여전히 최고였지만 화력 면에서는 다른 4천왕보다 부족했다.

즉, 첫 번째 전투에서도 D조에게는 승산이 있었다는 뜻이다.

만약 지슈카가 서포터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오직 딜러 역할에만 충실했다면.

데미안이 놀의 ‘지속 광역 딜’을 의식해서 광역 힐링에 집중하기보다 지슈카와 카츠, 하스터 오직 세 사람의 공격력만 강화시켜줬다면.

놀의 버티는 힘은 생각보다 빠르게 무너졌을 것이고 D조는 유일하게 1차 도전부터 성문을 공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D조는 모든 조를 통틀어서 가장 레이드에 특화 된 조이기도 했으니까, 그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D조는 놀의 광역 마법에 위축돼서 소극적이 됐었고 그게 패착이 됐다.

뭐, 정상적인 일이기는 하다.

본래 레이드는 첫 번째 도전이 가장 어려운 법이니까.

아직 보스의 특징과 패턴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레이드를 성공시킬 확률은 원래 지극히 낮다.

따지고 보면 A조, B조, C조도 보스 레이드에 아슬아슬하게 실패한 셈이다. A조는 피아로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갯벌이라는 필드를 무력화시킬 방법을 너무 뒤늦게 알아냈고, B조는 메르세데스를 버서커로 착각한 게 실수였으며, C조는 아스모펠의 검에 냉기가 맴돌 때야 비로소 발휘되는 쾌속에 초반부터 너무 많이 당해줬던 게 문제였다.

“알겠습니다. 화살을 꺼내실 때마다 버프를 걸어드리죠.”

첫 번째 전투에서는 중열에서 광역 버프와 힐링을 담당했던 데미안이 이번에는 후방에 포지션을 잡았다. 그의 버프가 지슈카, 카츠, 하스터 등 일부의 하이 랭커에게 집중됐다. 특히 지슈카는 활이라는 무기뿐만 아니라 화살이라는 보조 무기까지 공격력 상승 버프를 얻었다.

끼릭-!

코볼트 가면을 쓰고 있는 놀의 미간을 정확히 조준한 지슈카가 활시위를 당기자 5개의 화살촉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어느덧 찾아온 밤의 어둠 속으로 화살들이 자취를 감췄다.

“미안, 놀. 워낙 단단해서 편하게 보내주지는 못할 것 같네.”

----!

소리 없이 쏘아진 다섯 발의 화살.

그것의 궤적을 완벽히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플레이어 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검성 크라우젤의 초감각조차도 ‘시야’와 ‘소리’라는 근거가 있어야 대상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인데 지슈카의 화살에는 그런 게 없었다.

푸푸푸푸푹!

놀의 미간에 화살이 한 발, 그 위로 또 한 발, 또 한 발...

총 다섯 발의 화살이 거의 시간 차 없이 정확히 같은 지점에 박혔다. 놀의 머리가 크게 뒤로 젖혀지면서 피를 비처럼 뿌렸다.

“전투 개시야.”

지슈카의 고혹적인 음성이 D조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

400명의 선수와 4천왕들의 2차 격돌은 1차전과 양상이 크게 달랐다.

마치 오래 된 동료처럼 환상적인 호흡을 맞추게 된 선수들의 공격은 4천왕에게 위협적으로 작용하는 반면 4천왕들의 스킬은 적중률이 크게 떨어졌다.

특히 각조 조장들이 광역 스킬의 전조를 곧바로 캐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점이 컸다.

“괜히 랭커들이 아니네.”

“와, 그러게. 나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랭커들의 분석력과 협동력에 몇 번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4천왕들은 단지 능력치가 30퍼센트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무력해진 것이 아니었다. 단 두 번째 도전 만에 그들의 기술과 특성 자체가 공략당하고 있었다.

채챙-!

영상을 2배속 해놓은 것처럼 홀로 빠르게 움직이는 빈의 쾌검이 C조원들의 협동에 진로를 방해 받아 멈췄고.

푸푸푹-!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생명력을 회복했던 코볼트가 교황의 비호를 받는 신궁의 화살에 지쳐갔으며.

쩌정-!

스태미나가 고갈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니면서 마법을 쏘는 마법사들의 폭격 앞에 벤츠의 혜안이 무뎌졌다.

모든 4천왕들이 하나씩 갖고 있는 비장의 수를 써서 방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봤지만 이제 선수들은 그 타이밍을 명확히 읽고 있었다. 방어력을 무시하는 관통형 스킬들을 적절히 잘 활용하자 4천왕의 생명력 게이지가 빠르게 소모됐다.

애초에 100대 1의 싸움이다.

100명이 1번씩만 공격을 날리고 이중 10분의 1만 적중시켜도 10대였다. 4천왕도 생명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언제까지고 그 피해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특히 크라우젤과 크리스, 지발과 극검, 지슈카와 하스터 등 각조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공격력은 4천왕들에게도 제법 위협적인 것이었다.

결국.

[북문의 수호자 코볼트가 쓰러졌습니다.]

[D조가 북문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북문 공략의 일등공신은 브라질 대표 지슈카입니다!]

[북문 공략의 이등공신은 일본 대표 데미안입니다!]

[북문 공략의 삼등공신은 일본 대표 카츠입니다!]

전투 개시 37분 만에 첫 번째 승전보가 울렸다.

“우와아아아아!!”

선망하는 선수들의 활약에 흥분한 관중과 시청자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랭커의 실력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절감한 그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마왕의 최후를 떠올리고 있었다.

오프닝 영상과 마왕 등장 이벤트를 멋지게 장식한 마왕이라고는 하나, 저 대단한 랭커 400명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가라! 지슈카!!”

“크라우젤! 크라우젤! 크라우젤!”

“극검 멋지다!”

“나도 마장기 타고 싶다!”

모든 관중과 시청자들이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서 한 마음이 됐다. 국대전을 통틀어서 처음 있는 광경이었다.

마왕은, 전 인류의 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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