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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20화 (815/1,794)

템빨 45권 - 9화

국대전 서버는 본 서버와 별개로 취급한다. 국대전 서버에서 변동되는 아이템, 캐릭터 정보는 본 서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제4회 국가대항전부터 새롭게 적용 된 규칙 중 하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 규칙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들은 지난 국대전에서 아이템을 잃고 심대한 타격을 입은 선수들의 고통과 분노를 목격했으니까.

앞선 피해자들과 같은 신세가 되지 않게끔 안전장치가 마련되었으니 새 규칙을 반기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시작 된 <마왕 토벌전>.

선수들은 새로운 규칙이 적용 된 이유를 뼈저리게 통감했다.

콰작-!

[<듀른힐드의 방패>가 모든 내구력을 잃고 파괴되었습니다!]

[파괴당한 아이템은 성문 돌파 시 자동으로 복구됩니다.]

“큭...!”

마왕 토벌전 개시 후 20분.

동서남북 모든 성문에서 선수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과 20분 전까지만 해도 유니크, 혹은 레전드리 아이템을 무장하고 뽐내던 랭커들이 지금은 마치 패잔병처럼 빈손으로 넝마가 됐다.

그렇다.

S.A그룹이 국대전 서버와 본 서버를 완전한 별개로 취급하게 된 이유.

그것은 순전히 선수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너무나도 막강한 4천왕에게 모든 것을 잃게 될 선수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

그리드에게 마왕역을 부탁하겠다고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단계부터 준비해놨던 안배다.

“쿨럭, 쿨럭!! 말도 안 돼...!”

서문.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는 독일 대표 웰던의 안색이 창백하다.

그는 여태껏 수많은 레이드에 참전해온 역전의 용사였지만 방패가 파괴당한 경험은 몇 번 없었다. 심지어 방패가 파괴된 모든 경우는 레이드가 8시간 이상 장시간 진행됐을 때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한데 벤츠라는 이름의 여기사는 단 20분 만에 웰던의 방패를 부셨다. 더군다나 지금 탱커는 웰던 혼자가 아니었다. 웰던은 20여 명의 탱커 중 1명에 불과했고, 웰던이 직접 감당한 벤츠의 공격은 15회밖에 안 됐다.

Lv.8의 <최상급 방패술>을 등에 업은 유니크 등급의 방패가 고작 15회 공격에 모든 내구력을 상실했다는 뜻.

웰던이 회피가 아닌 방어를 선택한 경우는 벤츠가 평타를 날렸을 때뿐이라는 점을 감안해 봤을 때, 벤츠의 공격력은 작년 기준 템빨왕 그리드를 연상시키는 수준. 아니, 명백히 그리드를 상회하고 있었다.

“저런 놈이 4명에다가 그 위로 마왕까지... 이걸 어떻게 깨냐고!”

전의를 상실한 웰던이 절망어린 심정을 토해냈다.

팀의 전체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섣부른 발언이었지만, 그 누구도 웰던을 책망하지 못했다.

B조원 태반이 웰던과 같은 심정이거나 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침착했다.

그들은 웰던의 섣부른 발언에 동요할 정도로 정신력이 나약하지도, 판단력이 흐리지도 않았고, 20분 동안의 전투를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았다. 전투 내내 벤츠를 분석한 그들은 벤츠의 공격 패턴과 특징을 상당량 파악한 상태였다.

‘스킬을 남발하는 스타일이 아니야. 우선 평타로 틈을 만들어내고 확실한 틈이 생겼을 때만 스킬을 사용한다.’

‘광역기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아. 한 명을 확실히 죽일 수 있는 화력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일기에만 국한 된다.’

‘방어력은 높지만 별도의 치유 능력은 없어. 가장 큰 문제는....’

‘...생명력이 낮아질수록 공격력이 높아진다는 점.’

‘버서커다.’

서문의 수호자 벤츠.

그녀의 본명은 메르세데스다.

그리드의 기사이자 전설의 기사인 그녀는 그리드가 직접 제작해준 신화급 방어구 <영웅왕의 갑옷>을 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영웅왕의 갑옷의 가장 큰 강점은 피격을 입을 때마다 공격력이 상승하는 옵션에 있었다.

하지만 아직 벤츠의 정체조차 모르는 선수들이 그녀의 갑옷 옵션까지 파악했을 리 만무하다.

선수들은 벤츠가 생명력이 하락할수록 강해지는 이유가 <버서커>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버서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생명력을 대가로 공격력이 높아지는 대신에 방어력은 낮아진다는 점이지. 타이밍을 잘만 노리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모두 일단 궁극기를 아껴놔. 대상의 생명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그때 총공세를 가한다.”

B조의 생존 인원은 59명.

불과 20분 만에 41명의 선수가 사망했다.

하지만 그들 전원 나라를 대표하는 최강자들답게 쉽게 죽진 않았다. 벤츠에게 치명상을 입을 때마다 물귀신처럼 달라붙어서 데미지를 누적시켜놓았고, 덕분에 현재 벤츠의 생명력은 70퍼센트 아래까지 떨어져 있었다.

‘조금만 더.’

‘생명력이 30퍼센트... 아니, 40퍼센트가 되는 순간에 승부를 본다.’

슬금슬금.

B조원들이 벤츠를 경계하는 한편 포식이불족발의 근처로 모여들었다.

이곳이 인스턴스 던전이라는 점을 이용한 포식이불족발이 던전의 구조를 아군에게 유리하게 바꿔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식이불족발 근처로 갈수록 지형이 유리해졌고 소량의 버프까지 얻을 수 있었다.

적당한 크기로 솟은 방벽 사이에 선 코크가 방패와 쇠사슬을 꺼내 쥐었다. 공격력을 버리는 대신 방어와 CC에 주력하는 무장이었다.

“던전이 완성될 때까지 제가 탱커 역할을 맡겠습니다.”

“감당할 수 있겠어?”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실력이 뛰어나시고... 극검 선생님께서도 계시니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난 던전 완성에 주력하마.”

포식이불족발은 코크를 신뢰했다.

무려 그리드와 십공신들이 인정한 인재를 신뢰하지 않으면 누구를 신뢰하겠는가?

포식이불족발은 코크가 잘 버텨 주리라 믿었다.

역시나.

채챙-! 터터텅!!

코크는 쇠사슬과 방패를 절묘하게 활용해서 벤츠의 공격을 연달아 무력화시켰다. 중간 중간 벤츠의 검을 낚아채서 아군에게 그녀를 공격할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장장 5분.

무려 5분 동안 코크는 벤츠의 어그로를 홀로 감당했다.

물론 팀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몇 안 되는 성직자들의 힐과 성기사들의 버프가 코크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쉬지 않고 벤츠에게 공격 마법을 퍼부었다.

좁은 길목에서 1대1로 겨루는 두 사람이었지만, 이건 분명히 59대 1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코크는 금방 초조해졌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상대와의 교전은 급격한 스태미나 하락을 불러오는 바, 체력을 적당히 안배하지 않으면 위험해질 거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애초에, 벤츠의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방패 너머로 전달되는 충격이 너무 컸다. 벤츠의 생명력이 소모되고 공격력이 상승할수록 코크에게 쏟아지는 성직자들의 힐량이 부족해졌다.

“코크!”

아슬아슬한 순간.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코크가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고, 그 위로 붉은 검선이 그려졌다.

이야루그트집에서 마력을 70퍼센트까지 충전하고 <흥분>상태에 돌입한 이야루그트의 일검이었다.

푸우우욱-!!

가슴을 찔린 벤츠의 신형이 전투 개시 후 최초로 허물어졌다.

비틀,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그녀의 생명력 게이지가 어느새 40퍼센트에 도달했다.

이때.

“...감미롭다.”

흥분 상태의 영향으로 이야루그트가 폭주하더니 멋대로 실체화했다.

구부정한 외뿔 마족 노인이 나타나 폐부 깊숙이 빨려오는 공기를 음미하면서 벤츠를 노려봤다.

오직 검술 하나만을 단련하여 대악마와도 호각을 겨뤘던 지옥 최강의 검사.

생전과 비교할 바 없이 약화 된 상태라고는 하나, 그의 직감은 여전히 예리했고 벤츠가 강적이라고 판단했다.

하여, 달콤한 공기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휘두르는 그의 공격을.

“태산지체.”

선홍빛 가면을 쓰고 있는 <천하를 짓뭉갤 고귀한 백호의 검>에 귀속 된 스킬, <백호 자세>를 다른 이름으로 전개한 벤츠가 맞상대했다.

채챙-! 채채채채챙!!

콰쾅! 쿠콰콰콰쾅!!

벤츠에게 온갖 공격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쇠사슬 대신 검을 뽑아 쥔 코크를 비롯한 B조원들 모두가 궁극기를 발동했다.

생명력이 하락할 때마다 방어력이 낮아지는 버서커의 허를 찌르는 총공세였다.

결정적인 실수였다.

벤츠는 버서커가 아니었기에.

그녀가 생명력을 잃을 때마다 공격력이 상승하는 이유는 오로지 템빨 덕분이었고, 버서커가 아니기 때문에 방어력이 하락한다는 페널티도 받지 않았다.

아니, 지금은 오히려 방어력이 오른 상태다.

백호 자세는 공격력이 80퍼센트 하락하는 대신 방어력을 198퍼센트 상승시켜주는 스킬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

“뭐....!?”

“마, 말도 안 돼!”

B조원들의 총공세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남겼다.

<숭고한 용맹>과 <기사의 결의>를 전개, 방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벤츠는 세계 최고 수준의 랭커들이 쏟아 부은 궁극기를 상당량 허용하고도 생명력이 20퍼센트 가까이 남아 생존했다.

쿠오오오오오--

벤츠가 무장한 영웅왕의 갑옷이 자색과 적색의 기운에 휩싸이고 있었다.

마치 그리드의 투기를 연상시키는 기운에 모두가 압도당했다.

스르륵.

벤츠의 눈을 가리고 있던 붕대가 허물어진다 싶더니 이내 완전히 벗겨졌다.

우주가 담긴 듯한 깊은 눈동자가 코앞에 선 이야루그트를 비롯한 B조원 전원의 근원을 엿봤다.

[서문의 수호자 벤츠의 깊은 시선이 당신을 관조합니다.]

[서문의 수호자 벤츠에게 당신의 능력치와 스킬 목록 일부가 강제적으로 공개됩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서문의 수호자 벤츠의 날카로운 검기가 당신을 위협합니다. 강한 압박감이 당신의 몸과 마음을 위축시킵니다. 모든 속도가 30퍼센트, 스킬 시전 속도가 20퍼센트 저하됩니다.]

[저항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강력하기에 제약 받았던 힘.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고 풀린 제약은 막을 수 없는 인재(人災)였다.

펄럭-!

검기로 구현 된 한 쌍의 날개가 벤츠의 등에서 솟구쳐 나왔고,

츠카카카칵-!!

영웅왕의 갑옷을 매개로 누적 된 <불완전한 투기>의 영향까지 받아 궁극의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벤츠는 가장 먼저 이야루그트를 베어 없앴다.

이 순간.

‘이건...!’

‘그리드 님의...!’

단 두 명.

템빨단 소속원답게 그리드를 잘 알고 있는 극검과 코크만이 벤츠의 정체를 눈치 챘다.

단 한 명만을 섬기는 전설의 기사, 메르세데스.

그 이름이 지닌 무게를 모를 리 없는 극검과 코크는 직감했다.

마왕 토벌은 개뿔, 4천왕 토벌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콰콰콰콰콰콰콰쾅!!

흑빛(본래라면 은빛이어야 할)의 마력을 마구잡이로 방출하는 메르세데스의 폭격 앞에 모든 것이 잿빛으로 산화하기 시작했다.

한 방에 2킬.

초당 10킬.

궁극기는 죄다 쿨타임에 걸려있는 상태.

모든 힘을 소진한 직후에 겪는 역공은 선수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포식이불족발이 힘들게 만든 던전조차도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붕괴했다.

***

[서문 공략을 담당했던 B조가 전멸하였습니다.]

[서문의 수호자가 큰 피해를 입은 상태입니다.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공략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A조, C조, D조 선수 전원에게 동시에 떠오른 알림창.

“....”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심한 B조 녀석들, 전투 개시 30분 만에 전멸했다고?

책망하며, 비난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직 생존해있는 A조, C조, D조 전원 모두 4천왕의 강함에 경악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니까.

그들은 먼저 전멸한 B조가 약해서, 혹은 뭔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서 궤멸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가 무척 강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중들과 시청자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B조가 약하긴 약하네.”

“미국인 랭커가 유일하게 한 명도 없는 조였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템빨단원이나 데미안급의 네임드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한국인들만 불쌍하게 됐네. 실컷 양념만 해놓고 다른 나라한테 메달 뺏기게 생겼으니.”

“불쌍하기는? 쌤통이지. 한낱 소국인들 주제에 기고만장한 꼴 더 이상 안 봐도 돼서 얼마나 좋아?”

“메이샤오 힘내라! 빵쯔들 떨어진 마당에 네가 금메달을 따면 인민의 영웅이 될.... 응?”

흥분해서 미친 듯이 외치던 중국인 관중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메이샤오가 속한 C조.

마장기라는 사기적인 탈 것을 보유한 PvP 우승자 지발과 영혼 약탈자 수에론이 함께인 만큼 B조와는 비교도 안 되는 화력을 보유했다고 믿은 그 C조가.

[남문 공략을 담당했던 C조가 전멸하였습니다.]

[남문의 수호자가 큰 피해를 입은 상태입니다.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공략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B조와 같은 전철을 밟았으니까.

데미안, 카츠, 지슈카가 있는 D조도 마찬가지였다.

[북문 공략을 담당했던 D조가 전멸하였습니다.]

[북문의 수호자가 큰 피해를 입은 상태입니다.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공략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대경실색한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마지막 남은 A조가 있는 방향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천하의 크라우젤이 비산하는 해산물에 얻어맞고 있었다. 작은 조개들이 일제히 폭발하면서 날카로운 껍질 조각들을 분출, 크라우젤의 움직임을 봉쇄하였고 이어서 날아온 참게의 집게발이 크라우젤의 아킬레스건을 꼬집었다.

랭킹 1위 크리스는 어망에 갇힌 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레가스와 폰은 머드 축제에 놀러온 사람마냥 갯벌을 뒹굴었고.

“.....”

이러다가 마왕은 구경도 못하는 거 아닌가?

세상사람 모두가 불안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예외다.

그는 묵묵히 망치질에만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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