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5권 - 8화
투쾅-!
서문의 수호자 벤츠가 도약하자, 그녀가 밟고 섰던 지면이 움푹 파이면서 요란한 폭음이 발생했다.
단지 갑옷과 방패의 무게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기에는 과장 된 면이 컸다. 초월적인 각력을 지녔다고 해석하는 편이 옳았다.
“온다!”
무서운 기세에 긴장한 B조 선수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꺼내 쥐었다.
태양을 등질만큼 높이 솟아오른 여기사를 시선으로 쫓는 그들의 주변으로 모래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흙마법사 고샤루가 사용한 광역 보호 마법이다.
최초의 선공에서 활약하지 못한 것을 만회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내가 막을 테니까 그 틈에 공격해!”
독일 국적의 랭커 웰던이 선두에 나섰다.
그가 세운 방패 위로 벤츠의 선홍빛 장검이 떨어졌다.
텅-!
종 베기.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웰던은 수호기사 랭킹 6위. 방패를 세운 그는 강철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간 차 없이 이어진 찌르기가 강철을 두부로 만드는 위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쩌어엉-!
묵직한 쇳소리가 울린다 싶더니 웰던의 방패가 찌그러졌다.
‘무게가 늘어났다고?’
착각이 아니다.
단지 공격력이 상승한 것뿐만이 아니라 선홍빛 검의 무게 자체가 급격히 증가했다.
덜컥,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웰던의 손목 관절이 꺾이는 그때.
“버텨!”
격수들이 나섰다.
각자 스킬을 전개한 그들이 칼과 창을 내질렀고 누군가는 화살을 쏘거나 단도를 날렸다.
이중 절반은.
투두두두두둥-!
벤츠가 측면에 세운 방패에 가로막혔으며.
채채채채챙-!
나머지 절반은 호선을 그리는 벤츠의 검에 차단당했다.
동시에.
콰르르르륵!
울음을 토해낸 벤츠의 검이 수십 개의 선홍빛 결정을 사방으로 쏘아내었으니, 그 모습이 마치 돌덩어리를 쏘아대던 크라우젤의 검을 연상시켰다.
[4,3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몸에 박힌 결정이 회복 효과를 방해합니다.]
“뭐 이딴 엿 같은...”
일반 공격이 아니라 스킬 공격을 차단한다는 것은, 단지 검술과 방패술의 숙련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영역이다.
보다 고위의 스킬, 혹은 아이템에 귀속 된 옵션 효과가 분명했다.
선수들이 분석하는 동안에도 벤츠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선수 하나를 방패로 때려 쓰러뜨리더니 그 뒤에 있는 선수를 찌르며 도약, 좌우에서 공격해오는 선수들을 발차기로 날려버린 후 고샤루의 지척으로 떨어졌다.
모래바람이 자신의 공격력을 감소시키자 영 거슬리는 눈치였다.
“히잇...!”
광역 보호 마법을 발동 중인 고샤루는 미처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다. 괴물의 칼끝이 자신을 향해오자 무방비한 상태로 질색하는 그의 앞을 누군가가 보호하고 나섰다.
템빨단의 십공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비밀병기 코크였다.
쩌엉-!
벼락처럼 꽂힌 벤츠의 검을 방패로 막아낸 그가 도끼를 투척, 벤츠의 운신을 방해한 뒤 곧바로 창을 꺼내 찔렀다.
푹-!
벤츠가 처음으로 상처를 입었다.
견갑의 틈새를 꿰뚫고 들어온 창격에 움찔하는 그녀의 목젖을 노리고 섬전 같은 일격이 꽂혔다.
코크와 일직선상에 서서 은신했던 극검의 <발검>이 발현 된 것이다.
콰작-!
이야루그트집과 결합 된 채로 힘을 축적해놓았던 이야루그트는 맹수처럼 흉포했다.
벤츠가 쓴 투구의 목보호대가 산산 조각나면서 선혈이 솟구쳤다.
4천왕의 피 또한 인간의 피처럼 붉었다.
가녀린 목을 노출하게 된 벤츠의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한 극검이 혀를 내둘렀다.
“방어력 겁나 높네?”
말투는 가볍지만 낯빛은 어둡다. 이야루그트집에서 <만족> 상태까지 마력을 충전한 이야루그트가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니 동요를 감추기 어려웠다.
“피하세요!”
찰나의 동요가 큰 틈을 만들었나보다.
누군가가 다급히 소리쳤고, 극검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지만 이미 늦어서 어깨를 베이고 말았다.
[15,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쓰읍...!”
템빨국 십공신의 일원인 극검은 최고급 템빨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리드가 직접 제작해준 갑옷과 투구가 그를 지켜주었다.
한데 모래바람의 가호까지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당황하며 착검하는 극검에게 벤츠가 재차 공격을 날리려했으나.
“어딜!”
던전 제작자.
<던전>이라는 무대 안에서만큼은 전설 클래스와 비견되는 위용을 선보이는 포식이불족발이 벤츠를 기습해서 그녀의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
벤츠의 기세가 멈췄다.
코크와 극검, 포식이불족발.
한국 대표 3인방이 B조를 이끌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고샤루와 다른 랭커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의지하기 시작했다.
극검이 지시하면 곧이곧대로 따랐고, 코크가 전면에 나설 때마다 앞장서 그를 보좌하였으며, 포식이불족발이 던전의 구조를 유리하게 바꾸려고 시도할 때마다 목숨을 걸고 그를 지켰다.
한국인 시청자들의 피가 끓어올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던 한국인 랭커들이 이제는 세계의 주역이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인 플레이어 모두가 템빨단에 가입하고 싶다는 열망을 더 크게 불태웠다. 자신 또한 템빨단에 가입하고 그리드를 섬기게 되면 저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흥분이 그들을 지배했다.
***
남문의 수호자는 뚜렷한 특징이 없었다. 가벼운 체인아머 차림에 검 한 자루를 무장하고 있을 뿐인 그는 이름도 <빈>으로 지극히 평범했다.
그 무시무시한 마왕의 4천왕이라기에는 딱히 포스가 없었다.
“하긴 뭐, 포스가 있어봤자.”
4천왕은 과정에 불과했다. 마왕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격파해야하는 대상이다.
S.A그룹이 미치지 않은 이상에야 전 세계인이 기대하고 있는 <마왕 토벌전>을 수포로 돌릴 일은 없었고, 선수들은 ‘당연히’ 마왕에게 도달하게 될 것이었다.
이는 4천왕의 실력이 마왕처럼 절대적이지 않다는 뜻이 된다.
생각하면서, C조 선수들은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그들의 자신감의 근원은 쟁쟁한 하이 랭커들에게 있었다.
PvP에서 1위를 차지한 미국인 지발과 중국의 신성이라고 불리는 메이샤오, 장찌앤, 랴오위. 그리고 터키의 부바트, 아르헨티나의 수에론을 비롯한 최상위 랭커들이 이곳 C조에 몰려있었으니까.
저들과 함께하는 이상 고작 4천왕 수준에서 고배를 마실 리는 없다는 게 선수들의 판단이었다. 물론 본인들 스스로의 실력에도 자신이 있었고.
편안한 분위기에 누군가가 초를 쳤다.
“한손 검을 사용하면서 방패를 쓰지 않는다는 건 쾌(快)에 중점을 둔 검술을 구사한다는 뜻이에요. 빠를 겁니다. 모두 조심하세요.”
중국의 메이샤오였다.
기이하게 움직이는 채찍과 천으로 영웅 그리드를 5분 동안 괴롭혔던 실력자. 그녀가 긴장감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분위기가 사늘하게 식었다.
샤오위가 콧방귀 뀌었다.
“상대를 고평가하는 건 그 집 내력인가 봐? 좀 더 싸워보다가 안 되겠으면 무릎 꿇고 항복하겠네? 자기 오빠처럼 말이야.”
장찌앤이 거들었다.
“누구나 아는 상식을 잘난 듯이 떠드는 이유가 뭐지? 단지 잘난 척이 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바보라고 무시하는 건가?”
분위기가 더욱 사늘하게 식었다.
메달이 3개나 걸려있는 종목.
서로 의지해도 모자랄 판국에, 그것도 같은 국가 선수끼리 되도 않는 입씨름을 펼치다니?
“애새끼들인가.”
지발이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장찌앤과 랴오위는 울컥 했지만 뭐라고 따지지 못했다.
지발은 한자릿수 랭커 출신. 심지어 2위였던 인물로써 한때는 가장 정점에 가까웠던 괴물이다. 괜히 그와 충돌하는 일은 제아무리 기고만장한 중국의 신성들이라도 꺼려졌다. 못 들은 척 넘기는 편이 나았다.
가소롭다는 듯이 피씩한 지발이 메이샤오에게 말했다.
“저 녀석, 갑옷 입은 꼴만 보면 기사에 가까운데 가죽신을 신고 있어. 어쩌면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를지 몰라. 행동을 묶는 게 관건이다. 알았지?”
메이샤오의 채찍과 천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영웅의 행동을 제약했었다.
그리드의 황금 손처럼 자아를 가진 채 스스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고, 메이샤오가 직접 무장한 상태로 컨트롤하는 형태의 아이템이었지만 그만큼 움직임이 부드럽고 디테일했다.
지발도 놀랄 정도였고, 그렇기에 지발은 메이샤오를 의지했다.
감동 받은 메이샤오가 힘차게 대답했다.
“네! 최선을 다해서 발을 묶어볼게요!”
“기대하지.”
‘칫!’
장찌앤과 랴오위는 돌아가는 상황이 영 불쾌했다.
지금, 메이샤오는 수십 억 중국 인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내년의 영웅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메이샤오의 실력이 자신들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던 장찌앤과 랴오위는 억장이 무너졌다. 메이샤오만 빛나게 생겼으니 감당할 수 없는 시기심이 몰려왔다.
초조해진 그들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속삭였다.
“너희들, 계속 그렇게 넋 놓고 있다가는 병풍 되겠다?”
“병풍이라고...! 아!”
감히 누가 우리에게 막말을?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린 장찌앤과 랴오위가 욕설이 튀어나오려던 입을 황급히 다물었다.
다가와 속삭인 인물, 아르헨티나의 거두 수에론이었던 까닭이다.
수에론이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가장 먼저 싸움을 여는 사람이야말로 용맹을 칭찬받는 거 알지? 원래 내가 선공을 가하려고 했는데 너희들의 사정이 딱해보여서 양보하려고. 어때?”
“....”
힐끔, 장찌앤과 랴오위가 성문 앞에 묵묵히 서있는 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매우 건방진 녀석이었다.
홀로 100명의 적을 코앞에 두고도 팔짱을 끼고선 성문에 등을 반쯤 뉘이고 있었다.
무방비한 놈의 작태를 확인하는 두 사람을 수에론이 유혹한다.
“시청자들도 저 녀석의 태도를 재수 없다고 욕하고 있을 거야. 가장 먼저 나서서 거하게 때려주는 사람에게 잘 했다고 열광하겠지.”
“....”
“응? 설마 안 내키는 건가? 좋아, 그럼 내가...”
“아니요!”
수에론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자 초조해진 장찌앤과 랴오위가 무기를 뽑았다.
“저희에게 양보해주십시오!”
대답도 듣지 않았다.
이미 두 사람은 몸을 날리고 있었다.
쐐액-!
장찌앤의 창과 랴오위의 긴 낫이 빈을 덮쳤다. 그들의 공격 범위는 굉장히 길어서 2미터 바깥에서부터 쏘아진 반면 빈은 여전히 팔짱을 낀 상태였다.
성공적인 전투 개시였다.
하지만 불과 1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장찌앤과 랴오위는 착각임을 깨달았다.
푸욱-!
명성 높은 극검의 발검 속도를 초월하는 쾌검.
장찌앤과 랴오위의 창과 낫이 빈을 꿰뚫기 직전, 칼집에서 모습을 드러낸 빈의 검이 두 사람의 심장과 목을 베어버렸다.
“컥....!”
“휘유~ 예상보다 조금 더 대단한데?”
고통에 떠는 장찌앤과 랴오위의 귓가로 수에론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빨리 이 위기에서 탈출해야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미처 행동을 옮기기도 전에 빈의 검이 다시 한 번 더 그들의 몸을 갈랐다.
마치 화염처럼 일렁이는 짙은 냉기가 그들의 상처부위를 악화시키고 그들을 잿빛으로 산화시켰다.
수에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악마를 연상시키는 사악한 미소였다.
“쓸만한 영혼 겟.”
***
“아오, 이게 대체 뭐야?”
“성직자도 아니고 마왕의 부하가 왜 힐을 쓰고 앉았냐고.”
북문 돌파를 담당한 D조.
D조원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었다.
지슈카, 데미안, 카츠, 그리고 하스터가 D조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물리공격력과 원거리 딜링 능력, 그리고 광역 힐링 능력을 겸비한 지슈카. 광역 버프와 힐링 능력, 거기에 광속성 공격과 탱킹력까지 겸비한 데미안. ‘피’라는 근원을 이용해서 적에게 강력한 디버프를 걸고 본인에게는 무한 흡혈 능력을 부여하는 카츠. 한때 게임계의 황제라고 추앙 받았던 하스터.
최소한 레이드라는 무대에서만큼은 크라우젤, 크리스, 폰, 레가스가 함께 속해있는 A조보다 이쪽이 훨씬 더 강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북문의 수호자는 이름이 <코볼트>였다.
오크, 놀, 고블린 등과 함께 가장 약한 몬스터로 분류되는 최하급 몬스터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하여, D조원들은 성문을 쉽게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뚜껑을 열고 보니 전혀.
정말로 코볼트의 가면을 쓰고 있는 ‘거한’은 이름과 달리 무척 강했다. 온갖 광역 마법으로 D조를 폭격했을 뿐더러 지슈카가 날리는 화살과 데미안의 마법에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로 높은 방어력을 자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힐링 능력이다. 데미안의 버프 덕분에 마법 폭격을 견뎌낼 수 있었던 D조원들이 아무리 코볼트를 공격해봤자 녀석은 금세 회복해버렸다. 좀비 같은 것이 마치 카츠를 보는 듯했다.
“이거 재미있군...”
코볼트와 몇 번이나 충돌하는 과정에서 자극을 받은 것일까?
템빨단에 가입한 이후 오래토록 봉인돼있었던 카츠의 광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블러디 스카이.”
스아아아아-!
D조원들이 싸우며 흘린 피.
빗물처럼 대지를 적셨던 그것들이 모조리 상공으로 치솟으며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
“하여튼 대단한 녀석들이라니까.”
크리스는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캐나다, 한국, 영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의 선수들이 한조에 모여 협동하는 이때, 오직 미국인 선수 3인만이 각기 조를 나눠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우리는 따로 1명씩 움직여서 3개조의 메달을 하나씩 확보하겠다는.
심지어 은메달, 동메달도 아니고 금메달을 노리고 있을 테지.
다른 국가 선수들은 3인이 협동해야 비로소 1개의 메달을 노릴 수 있다고 판단해서 한 조에 속해 활동하는 것과 상반되는 선택이다.
“그리드도 나처럼 했을 테지.”
크라우젤이 대꾸하자 크리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녀석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
아마 그리드였다면, 자신이 속한 조를 제외한 모든 조가 성문 공략에 실패하기를 기도했을 수도 있다. 혼자서 4개 성문을 독식할 생각으로.
“어찌됐든 잘 해보자고.”
크리스가 크라우젤에게 악수를 건네자 다른 선수들이 속으로 위로를 보냈다.
크라우젤이 얼마나 고고한 인물인가?
족히 수백 명의 선수들이 사인을 요청했어도 무시했을 정도다. 하물며 악수라니? 응할 리가 없다.
모두가 생각했으나, 크라우젤은 의외로 기꺼이 악수에 응했다.
크리스는 그리드의 동료일뿐더러, 업적과 실력을 존중 받아 마땅한 최강자 중 하나였으니까.
“나도 잘 부탁한다. 아마도 우리가 최악의 적을 뽑은 것 같으니 긴장해야할 거다.”
“최악의 적?”
4천왕 내에서도 격차가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크라우젤은 그 격차를 무슨 수로 구분할 수 있는 거지?
어리둥절해진 크리스가 성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왠지 즐거워 보이는 표정의 동문 수호자는 얼굴에 망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벌초할 때 쓸법한 모자였다.
“...저게 정말 최악의 적이야? 확실해?”
“공교롭게도 그렇다.”
크라우젤은 성문 주변에 펼쳐진 맵의 구조를 확인했다.
갯벌이었다.
어패류를 양식하고 수확하기에 좋아보였다.
***
성문 너머 마왕 성.
아직 카메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인 그리드는 제련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휴대용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황금빛의 광물 파브라늄이었다.
무려 신화급 아이템인 <신을 겨누는 칼날>을 녹여버린 것이다.
국가대항전 서버는 본 서버와 별개의 공간인 바, 여기서 아이템을 소멸시킨다고 해도 본 서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쯤하고.”
파브라늄의 제련에 성공한 그리드가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를 전개했다.
[어떤 아이템을 창조하시겠습니까?]
“대포.”
디펜스의 기본은 광역화력 아니겠는가.
심지어 자동으로 발포하는 대포라면?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알람 마법을 사용하면서 미소 짓는 그리드의 모습은 더없이 악랄해 보였다. 같은 조원을 희생시켰던 수에론의 사악한 미소조차도 그리드의 미소와 비교하면 애교 수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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