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815화 (810/1,794)

머리에는 1개의 큰 뿔과 2개의 작은 뿔이 달렸고, 가면 너머 눈은 붉은빛을 쏘고 있었으며, 등에는 2장의 날개가, 얼굴보다 더 큰 2개의 손에는 칼날 같은 손톱이 뻗어 있었으니 사람 같지 않다.

그가 바로 마왕이었다.

***

템빨단의 에이스이자 PvP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레가스.

이름난 강자들을 상대로 승승장구했던 그가 8강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를 쓰러뜨린 인물은 지발.

화려한 복귀에 성공한 것이다.

무려 2년 만에 동네북이라는 오명을 떨쳐 낸 지발은 무척 흡족했지만 기쁨도 잠시.

“쯧! 요즘에는 별짓을 다 하네.”

현재 지발은 큰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4강전을 앞두고 자신에게 집중됐던 사람들의 이목이 예정된 일정대로 등장한 <마왕>에게 쏠린 탓이다.

“그래서 마왕 저놈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본래 지발의 재능은 레이드 쪽으로 치중됐다. 남다른 안목으로 보스 몬스터의 패턴을 분석하고 파티를 효율적으로 통솔하는 그의 레이드 능력은 그리드의 템빨에 밀리기 전까지만 해도 독보적인 것이었다. 히든 클래스로 전직한 지금에 와서는 레이드에 더욱더 자신이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고작’ 보스 몬스터 따위에 조명을 맞추는 주최 측이 마음에 안 들었다.

다른 선수들의 심경도 비슷했다.

마왕 토벌전 참가자 400명.

마왕 토벌전의 예고 형식으로 2분 동안 진행된다는 <마왕 등장>에 참가하게 된 그들 중 태반이 입을 삐죽이고 있었다.

특히 방금 PvP에 참가했다가 탈락한 사람들이 예민했다.

“요호! 화풀이나 해 볼까?”

흙마법사 랭킹 1위 고샤루.

32강에서 탈락한 후 대기실에 멍하니 앉았다가 마왕 등장에 참가하게 된 그가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왕 등장에서 참가자의 행동은 자유.

홀로 기고만장하게 선 마왕에게 한 방 먹여 줘도 문제 될 건 없었다.

머리 위에 <마왕>이라는 이름을 떡하니 달고 있는 뿔 달린 놈을 노린 고샤루가 마법을 전개하려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관중들의 투표가 시작됩니다!]

[<마왕 등장> 이벤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많은 득표를 받는 분께는 금메달 가치에 준하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단, 메달 집계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

마왕 등장 이벤트에 대해서 사전에 고지받았던 선수들조차도 투표는 모르고 있었다.

귀찮다는 식으로 반응하던 선수들이 알림창을 본 순간 의욕을 불태웠다.

고샤루는 웃고 있었다.

“요호홋호홋! 관중들의 표는 내 거다!”

먼저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법!

남들보다 먼저 마법을 캐스팅해 놨던 고샤루의 입장에서는 관중 투표 시스템이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거인의 소오오온!! 요호홋……!”

마법 발동과 동시에 고샤루가 밟고 선 지면이 모래로 변했고, 모래는 거대한 손의 형상을 갖췄다.

동시에.

[<마왕>에게 마법의 술식을 간파당했습니다. 마법의 사용이 취소됩니다.]

[<마왕>이 당신의 마법 술식을 복제합니다!!]

“…홋, 호잇?”

두 눈이 찢어져라 커진 고샤루가 석상처럼 굳었다.

기껏 소환한 거인의 손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싶더니 새로운 거인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고, 그 손이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우우웅-!

“…….”

벌레처럼 짓뭉개지는 고샤루.

관중들도, 선수들도, 시청자들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입만 벙긋거렸다.

침묵 속에서.

“한꺼번에 덤비지 그래?”

마왕이 이죽거린다.

오프닝 영상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손을 까닥이면서.

“…몹 주제에 싸가지 없는 것 보게.”

“가소로운 놈이 누가 보면 그리든 줄 알겠네.”

일부 호전적인 선수들이 울컥했다. 마법사들은 성질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지만 전사들은 아니었다. 병장기를 꺼내 든 그들이 무리를 지어서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

이벤트 시간 동안 마왕의 전력을 최대한 파악해 놓는 편이 좋다는 계산이 그들의 저변에 깔려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먹구름이 짙다 싶더니 비가 쏟아졌다.

빗줄기 속 마왕이 손가락을 한 번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콰르르릉-!

쿠콰콰콰콰쾅!!

폭풍이 휘몰아쳤고, 하늘에서는 수십 개의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마왕에게 달려들었던 수십 명의 선수들이 난데없는 벼락과 폭풍에 휩쓸려서 넝마가 됐다.

“끄… 끄으윽…….”

“피, 필드 마법…….”

단지 의지만으로 마법을 파훼하며 접근을 불허(不許)한다.

마왕의 위용은 사람들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선수들의 긴장감이 두려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고, 해설진은 침묵했다. 관중들과 시청자들은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화면에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가 마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왕은 시선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자신 때문에 얼어 버리는 분위기도 수십 번 이상 체험한 사람이었다.

그는 태연히 말했다.

“안 덤빌 거면 내가 가고.”

빗속에서, 창인지 검인지 모를 무기를 꺼내 쥔 마왕이 선수들을 향해서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마왕 등장> 이벤트가 종료됩니다.]

제한된 2분이 끝났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마왕의 몸이 검은 안개로 흩어져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은 선수들은 침묵할 뿐이었다.

지발과 수에론, 그리고 데미안과 템빨단원들을 비롯한 극소수의 하이 랭커만이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단 한 명.

‘그리드…….’

마왕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내가 몸을 떨었다.

그것은 전율이었다.

사내는 마왕 그리드가 영웅 그리드보다 몇 배나 강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새로운 알림창이 떠오른다.

[관중들의 투표가 종료되었습니다.]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대상은 <마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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