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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00화 (795/1,794)

템빨 44권 - 10화

“템빨단 산하 길드를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그 길드의 주인들은 그리드 전하의 최측근이어야 하고요.”

인재가 부족하다.

라우엘의 말버릇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눈 높은’ 월드클래스 관점에서의 투덜거림이었다. 템빨단은 지금도 사람이 차고 넘쳤다. 길드마다 최대 수용 인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존의 2길드 체제를 유지한다는 건 더 이상 불가능했다.

대기업이 계열사를 불려나가듯이, 템빨단 또한 길드 내 산하 조직들을 별도의 길드로 분리, 운영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신중한 일이니만큼 점진적으로 실행해나갈 계획이지만, 그림자단만큼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설립해야겠습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좋아요. 아시다시피 가장 바쁜 조직이니만큼 인원 보충이 시급해서...”

“거길 내가 맡아달라?”

“그렇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라우엘의 태도가 조심스럽다.

현재 템빨단1의 소속원들은 피아로 산하의 ‘기사단원’으로 취급되며 능력치 보정을 받고 있었다. 템빨단1을 탈퇴하는 순간 능력치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체다카 시절부터 함께해왔던 페이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라우엘은 미안했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에게 페이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알았다.”

“....”

어떤 조건을 내세우지도, 섭섭함을 토로하지도 않는다.

그리드와 길드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그것이 페이커다.

페이커의 속 시원한 대답이 라우엘을 오히려 죄인으로 만들었다.

“차라리 화를 내주시면 덜 미안할 텐데 말이죠.”

길드 레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드가 마스터로 있는 템빨단1의 레벨은 진즉에 MAX다. 기사단원 버프 외에도 온갖 편의가 제공됐다.

반면 레벨 1부터 시작하게 될 템빨 그림자단 길드는 아무런 편의도 보장되지 않았다. 페이커가 겪게 될 불편은 단순히 소정의 능력치를 잃는 것으로 끝이 아닌 것이다.

한데 이렇게 순순히 응하다니?

예상은 했지만 현실이 되자 머쓱해진 라우엘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에게 페이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 각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페이커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눈을 비비는 라우엘의 귓가로 페이커의 음성이 이어졌다.

“내 조부님의 조국에는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길드를 키우고 운영하는 부분에 있어서 자신감도 있어. 믿고 맡겨라.”

페이커.

템빨단의 그림자인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라우엘과 협조해왔다. 누구보다 더 가까이서 라우엘을 관찰해온 그는 당연히 배운 점도 많았다.

“감사합니다.”

이날.

템빨단1에서 탈퇴한 페이커는 그 즉시 템빨그림자단을 설립했다.

템빨단1에 소속돼있던 어쌔신 플레이어 전원이 템빨그림자단으로 자리를 옮겼고, 템빨단 가입 대기자 중 일부가 템빨그림자단에서 템빨단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어쌔신 길드가 탄생한 것이다.

오직 그리드와 템빨국을 위한 칼자루였다.

***

“아이고 이 녀석들아. 애 좀 그만 갈궈라.”

그리드가 애원하듯이 말했지만 템빨골들의 <비웃기>는 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드는 자신이 고약한 악당이 된 기분이었다.

‘갈구노스라는 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기 집에 침입한 강도를 선심 써서 보내주려고 했더니, 정신 나간 강도놈이 고마운 줄 모르고 엿을 날리며 까부는 꼴이지 않은가? 상도덕을 논해야할 정도다.

“...뭐. 사람들한테도 악당 짓을 일삼아왔는데 몬스터 사정까지 생각해줄 필요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 됐다. 마음껏 비웃어라. 계속 갈궈. 어차피 이름도 갈구노스야. 닉값 시켜주려면 갈구는 게 맞아.”

쾅! 쾅! 쾅-!!

벽이 부셔지는 소리가 부쩍 가까워졌다.

<2개의 비급을 습득한 무신의 추종자>와 거리가 좁혀졌다는 뜻이다. 이제는 진짜 피할 수 없다.

신을 겨누는 칼날과 빛의 정령을 곁에 세우며 열망의 무아검을 고쳐 쥔 그리드는 오싹한 흥분감에 사로잡혔다.

‘진짜 중간 보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려나.’

템빨그림자단과 갈구노스의 사원을 사전 답사했던 라우엘의 보고에 따르면, 사원 1층에 출몰하는 ‘중간 보스’의 이름은 <무덤에서 빠져나온 무신의 추종자>였다.

평가 등급은 위험.

공격력과 민첩성이 그리드와 비견되며, 방어력은 반트너와 비슷한 수준이고, 생명력 수치는 최소 900만 이상. 심지어 무조건 반격이라는 스킬까지 보유했다.

단 하나의 스킬만을 보유했을 뿐이지만, 그 하나의 스킬이 너무 사기적이고 기본 스펙이 출중하므로 되도록 1대1 승부는 피하라고 조언했을 정도다.

그래, 라우엘과 템빨그림자단이 무덤에서 빠져나온 무신의 추종자를 중간 보스라고 ‘오해’한 이유는 그만큼 무덤에서 빠져나온 무신의 추종자가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드에게도 부담스러운 강적이었고.

한데 실상은?

그 강력한 몬스터가 ‘중간 보스’가 아니었다. 출몰 규모를 감안해 봤을 때 끽해야 정예 몬스터였다.

갈구노스가 직접 호출한 <2개의 비급을 습득한 무신의 추종자>. 즉, 진정한 중간 보스는 과연 얼마나 강할지 감도 안 잡힌다.

‘일단 이름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그리드의 사고가 가속한다.

‘2개의 스킬을 쓸 거라는 거. 무덤에서 빠져나온 무신의 추종자들은 반격 비급 하나밖에 습득하지 못한 반푼이인 반면, 지금 오고 있는 놈은 반격 비급 외에 또 다른 비급을 습득하고 있을 거다.’

‘일반 던전에서 정예 몬스터와 중간 보스의 레벨 차이는 최소 30에서 최대 60. 몬스터는 레벨 하나당 오르는 스탯이 플레이어의 몇 배니까 스탯 차이도 상당하겠지.’

‘가장 중요한 건 생명력이야. 혹여나 피통이 2배 이상이면 진짜 힘들어. 흑화, 대장장이의 분노, 섬화, 연살파극 콤보로 죽이지 못하면 이쪽이 죽을 걸 각오해야한다.’

사고가 가속화 된다고 해서 해답에 도달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세상에 전쟁이나 기아는 없었겠지.

“에라 염병. 싸워보면 알겠지.”

그리드는 현재 아무런 정보가 없는 입장이다. 2개의 비급을 습득했다는 무신의 추종자가 무덤에서 빠져나온 무신의 추종자처럼 언데드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익히고 있는 비급이 뭔지.

그리드는 아무 것도 몰랐다. 고찰이 무의미한 상황인 것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머릿속을 비우는 편이 더 좋다는 사실을, 그리드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란 오만이 아니다.

그리드는 Satisfy가 오픈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Satisfy를 거르지 않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니까.

“흑화. 신속한 몸놀림. 대장장이의 분노.”

콰르릉....!

그리드의 바로 눈앞에 서있던 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 벽을 넘고 튀어나온 것은 낡은 망토를 입은 좀비였다.

2개의 비급을 습득한 무신의 추종자 또한 언데드인 것이다.

그리드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벽을 부수고 등장한 무신의 추종자가 휘둘러오는 검에 마찬가지로 평타로 맞섰다.

쩌엉-!!

검의 내구력이 깎였다는 내용의 알림창도, 생명력이 손실되었다는 알림창도, 골절이 발생했다는 알림창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도 중간 보스의 ‘공격력’이 그리드의 공격력과 비등하거나 낮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채챙-! 채채챙!!

연속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무신의 추종자의 공격을 그리드는 계속 평타로 맞섰다.

결과.

[7,93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상에게 9,95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신묘한 기술에 반격 당했습니다. 9,95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2초 동안 그리드는 1번의 공격을 허용했고, 자신 또한 1번의 공격을 명중시켰다. 공격력과 마찬가지로 속도 또한 비등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단, 문제는 무신의 추종자가 보유한 반격 스킬이었다. 무신의 추종자는 ‘피격 당했다.’는 전제 조건을 달성한 순간 초월적인 속도로 그리드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리드가 입힌 ‘피해량’과 똑같은 수치로 말이다.

‘여기까지는 무덤에서 빠져나온 무신의 추종자들과 같고.’

생명력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고작 1만 가량의 피해를 입힌 정도로는 무신의 추종자의 생명력 게이지가 미동도 안 했으니까.

그리드의 사고가 더욱 더 맹렬히 회전했다.

‘결국 다른 스킬의 내용이 뭐냐는 건데.’

어쨌든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하다.

그건 무덤에서 빠져나온 무신의 추종자들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빌어먹을 무신의 추종자들은 ‘버프 상태’의 그리드와 똑같은 스펙을 자랑하는 괴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버프가 유지되는 동안 승부를 결정 지어야했다.

‘아니, 조금 더 여유 있어도 된다.’

채앵-!

무신의 추종자의 광포한 일격을 흘려보낸 그리드가 여전히 해롱거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45초 후에 깨어나게 될 저들이 그리드에게는 든든한 보험이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꽈드득!

이를 악 무는 그리드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그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대악마의 하수인에 불과하나 신격화 된 리치, 갈구노스.

놈이 섬기는 대악마가 과연 누구일지.

놈이 무신의 추종자의 시신들을 어디서 공급해 왔으며, 굳이 무신의 추종자들을 실험체로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신의 추종자들은 어째서 검의 무덤을 찾는 것이며, 검의 무덤에는 도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이 모든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그리드가 추구해야할 것은 오로지 승리였다.

그리고.

“아.”

승리를 갈망하며 전투에 열중하던 그리드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도전에 임해야할 때임을 눈치 챘다.

<벨리알의 힘>의 3가지 기능 중에서 애써 외면해왔던 ‘거짓’의 힘.

자신의 능력범위 밖이라는 이유로 사용할 엄두조차 못냈던 그것을, 그리드는 지금이야말로 사용할 때라고 믿었다.

보다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오와 도전정신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그리드는 정체와 도태를 원하지 않았다. 도전해야만 했다.

마왕 토벌전을 생각해서라도.

콰작-!!

무신의 추종자에게 공격을 성공할 때마다 반격 당하고 도리어 위기에 처하는 그리드.

무신의 추종자의 생명력은 멀쩡한데 반해 자신의 생명력 게이지는 벌써 절반가량 소모됐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는 <재단 기술>의 레벨을 올리겠답시고 제작해온 속옷의 +8 방어력조차 감사하게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그만큼 절박했다.

하여.

“벨리알의 힘.”

애써 외면해온. 아니, ‘지양’해왔던 힘에 도전한다.

[암흑의 룬에 봉인되어 있던 대악마 벨리알의 힘을 개방하였습니다!]

[벨리알의 세 가지 권능 전부를 인간이 소화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반마족 상태입니다. 육체가 거대한 힘의 압박을 견뎌냅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 가지 권능을 동시에 소화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벨리알의 세 가지 권능 <어둠>, <불>, <거짓> 중 하나만을 택일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거짓의 권능을 선택하였습니다!]

[벨리알의 힘이 유지되는 2분 동안 패시브 스킬 <조롱하고 유린하는 여왕>이 적용되며 <여왕의 왜곡> 마법이 활성화 됩니다. 지력이 4천을 초과할 경우 또 다른 마법이 활성화 됩니다.]

[당신의 지력 수치가 낮습니다. <여왕의 왜곡>을 제어하기 힘듭니다.]

“그리드....?”

그리드 홀로 2개의 비급을 습득한 무신의 추종자의 맹공을 버티는 사이 1분이 지났다.

크리스, 폰, 레가스가 상태 이상을 회복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세 사람은 자신들이 상태 이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제대로 자각할 수 없었다.

그들의 시야에 비치는 그리드의 모습이 하나가 아니라 5개였기 때문이다.

약에 취한 것처럼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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