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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99화 (794/1,794)

템빨 44권 - 9화

“럭의 직업이 무신하고 관련 있었던 거군.”

사투 끝에 마지막 무신의 추종자를 해치운 크리스가 휘파람을 불었다. 일종의 탄성이었다.

럭의 이름은 그리드에게도 익숙했다.

“아레스의 부하 말이야?”

“맞다. 아레스의 장수 중에서도 세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강자지. 녀석도 무신의 추종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조건 반격 패시브 스킬을 갖고 있어. 싸워보면 골치 아파. 자이언트 길드가 녀석 때문에 물 먹은 횟수가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을 지경이야.”

“럭 그분 참 강하죠. 초보 시절에 동선이 겹쳐서 자주 싸웠었는데 제가 거의 졌어요.”

“레가스 네가 졌다고? 무조건 반격 스킬이 사기긴 사기구만?”

“하하. 그때 럭은 반격 스킬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저처럼 평범한 무투가였습니다. 순수한 실력에서 밀린 셈이죠. 뭐, 그때는 제가 레벨이 좀 낮기도 했지만.”

레가스는 천재다. 단지 레벨이 밀린다는 이유로 싸워서 질 리가 없다. 상대방 역시 똑같은 천재라고 봐야함이 옳다.

“흐음....”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 그리드가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만약, 올해 국대전에 아레스 군단까지 참여하게 된다면 마왕 역할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크라우젤의 레벨도 이제 300을 훌쩍 넘었을 텐데...’

검성으로 전직하고 레벨이 초기화 되고도 국대전 PvP 결승 무대에 올랐던 크라우젤이다. 적정선까지 레벨을 복구했을 올해의 그는 도대체 얼마나 강할까? 최강의 전투 직업이라는 검성의 진정한 위력을 엿볼 수 있을까?

그리드의 안색을 살핀 폰이 음흉한 미소를 그렸다.

“뭐가 그렇게 좋아? 원하던 물건을 얻은 거냐?”

“좋냐고? 내가?”

“어. 계속 웃고 있잖아.”

“내가 웃었어?”

“호오? 완전히 넋 나간 거 보니까 애인 생각했나본데? 유라야? 지슈카야? 아니면 역시 둘 다?”

그리드는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데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드가 긴장을 원하고, 즐기는 위치에 있다는 증거였다.

너털웃음을 흘린 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원하던 물건도 못 얻었고.”

“그래? 근데 네가 원하는 물건이 도대체 뭐야? 자꾸 지도 타령하던데, 무슨 지도길래?”

“검의 무덤이라고 파그마, 브라함과 관련 된 장소가 있어. 그 위치가 표기 된 지도야. 무신의 추종자들이 지도 조각을 드롭하더라고.”

“무신의 추종자들이 그 둘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그건 아직 몰라. 차차 알게 되겠지.”

무려 2명의 전대 전설이 엮인 장소다.

일행은 그곳이 그리드에게 무척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 챘다. 돕고 싶었다.

“무신의 추종자들을 본격적으로 사냥하는 편이 좋겠군. 파티 맺고 같이 싸우자.”

“너희들 국대전 준비로 바쁘잖아? 사냥하면서 레벨 올려야지.”

단순 레벨 업이 목표라면 솔로 플레이가 좋다. 혼자서 일반 몬스터를 최대한 많이, 빠르게 잡는 것이 레벨 올리기에 주요한 방법이었다. 그리드처럼 여러 마리의 펫과 소환수를 거느린 사람과 파티를 맺었다가는 분배 받는 경험치가 너무 적었다. 하물며 레이드 위주 파티라니? 사냥 속도도 느려서 레벨 업과 담 쌓아야한다.

과도한 호의에 부담을 느낀 그리드가 거절하려고 했지만 폰이 허락하지 않았다.

“적당히 튕겨. 요즘에는 누구보다 이기적이었던 시절의 그리드가 그리워질 정도니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쟁취할 힘이 생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도리어 더 커지게 마련이었다. 한데 그리드는 반대였으니 신선했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는데, 혹시 그리드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 불안할 지경이다.

크리스와 레가스도 같은 심정이었나보다.

“그래, 그리드. 지도를 다 모을 때까지만이라도 같이 싸우자.”

“도와드리겠습니다.”

“거 참. 국대전이 머지않았는데 왜 굳이 나를 돕겠다는 거야? 너희들 밥그릇부터 챙겨.”

“국대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네가 더 중요하거든.”

“야! 닭살 돋는다!”

“닭살? 너한테 배운 거다. 잔말 말고 파티나 맺어.”

***

폰 일행과 파티를 맺은 건 신의 한수였다.

혼자서는 연살파극과 흑화가 활성화 됐을 때만 무신의 추종자를 노릴 수 있었던 그리드지만, 폰 일행과 파티를 맺은 지금은 아니었다. 궁극기가 재사용 대기 시간에 걸려있어도 충분히 무신의 추종자를 레이드할 수 있었다.

태산 같은 무게가 깃든 크리스의 거검이 무신의 추종자를 1초 가까이 무력화 시켰고, 그리드에게 선물 받은 단탈리안의 지식 덕분에 더욱 빠르고 날렵해진 레가스의 연타가 무신의 추종자의 관절 부위를 모조리 꺾어버린다. 폰의 날카로운 공격은 허우적거리는 무신의 추종자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무덤에서 빠져나온 무신의 추종자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21,506,070을 분배 받았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검의 무덤 지도 파편(2)>를 획득하였습니다.]

“생각보다 경험치도 짭짤하네.”

“워낙 센 놈들이니까.”

파티를 맺고 일주일이 지난 날.

그리드가 지도의 절반을 완성했다는 말에 일행의 표정이 밝아졌다.

순전히 그리드를 돕기 위해서 파티를 맺었건만, 의외로 경험치가 쌓이는 속도가 나쁘지 않았다.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국대전 전에 1레벨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게 그리드의 비현실적인 공격력 덕분이었다.

그리드가 노을에 물든 것처럼 보이는 열망의 무아검을 휘두를 때마다 무신의 추종자는 생명력을 크게 잃었다. 일행은 안심하고 서포터 역할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신의 추종자가 반격을 사용할 수 없게끔 무력화 시키는 일에만 집중했다.

쿠와아아아앙-!!

또 한 마리의 무신의 추종자가 폭발에 휩쓸렸다. 열망의 무아검이 토해내는 불꽃은 마치 먹처럼 검어서 무신의 추종자가 어둠에 삼켜지는 것처럼 보였다.

크리스가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그리드 네 검 말인데.... 레이단 연금술 시설에서 ‘멋짐’ 옵션을 귀속한 게 아니라 설마 강화에 성공한 거냐?”

“응. 4강밖에 안 되기는 한데, 신화 무기라서 그런지 벌써부터 외양이 바뀌더라.”

“뭐? 4강? 신화 아이템은 1강하기도 불가능에 가깝다던데?”

신화 무기의 기본 공격력을 고려해봤을 때 강화 시 상승하는 공격력의 폭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한데 4강이라니?

경악하는 일행에게 그리드가 씨익 웃어주었다.

“나, 행운의 사나이거든.”

“네가....?”

뭐만 했다하면 밥 먹듯이 실패를 반복했던 그리드이다. 특히 템빨단 초창기 멤버들은 그리드가 얼마나 재수 없는 녀석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일행은 그리드가 행운을 운운하자 웃겼지만, 열망의 무아검이 전보다 강력해진 건 확실했기 때문에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폰이 마음속에 묻어두려고 했던 의문을 꺼냈다.

“기껏 그렇게 강해져놓고 올해 국대전에 불참하는 이유가 뭐야?”

크리스와 레가스도 궁금했었다. 확정적인 금메달 보상을 몇 개나 챙길 수 있으면서 굳이 국대전에 불참하는 이유가 뭘까? 일행 모두 그리드의 대답에 집중했다.

마왕 토벌전에 대해서 외부에 유출하면 안 된다는 S.A그룹과의 계약 조건을 떠올린 그리드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내가 손해 보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줘.”

뭐라고 더 덧붙일 수도 없었다.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는 것도 있었고, 당장의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쿠구구구구궁-!

“뭐지?”

근처에서 화산이라도 터진 건가?

그리드 일행이 일주일 동안 직진하고 또 직진해도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었던 거대한 미궁이 당장 무너질 것처럼 진동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네 사람이 다가올 충격에 대비해서 스킬과 물약을 준비하는 그때.

[지하의 갈구노스가 이변을 감지했습니다.]

[자신의 군세가 줄어들었음을 확인한 갈구노스가 위층의 침입자들에게 경고합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꺼져라...””

[강한 마력이 깃든 목소리가 당신의 정신과 마음을 괴롭힙니다.]

[상태이상 혼란, 공포, 정신 쇠약에 걸립니다.]

[정신 쇠약의 효과로 마나가 빠르게 소진됩니다. 1분 동안 초당 1,000의 마나를 잃습니다. 10분 동안 마나 물약을 복용할 수 없습니다.]

“큭....!”

일행이 고통을 호소했다. 벽에 기대어 선 그들 모두 이를 악 문 채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멀쩡한 사람은 그리드가 유일했다.

‘보스 방에는 얼씬도 안 했는데 보스가 나섰다?’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처음에는 ‘중간 보스’인 줄 알았던 <무덤에서 빠져나온 무신의 추종자>들조차도 ‘정예 몬스터’ 수준으로 취급하는 던전이 바로 이곳 갈구노스의 사원이었다.

갈구노스의 사원은 템빨단이 사전에 조사한 것 이상으로 위험한 사냥터였고, 출현 보스의 수준은 귀족급 뱀파이어들을 가뿐히 압도할 가능성이 높았다.

역시나.

“불쾌하군....”

[티라멧이 관으로 돌아갑니다.]

“무서워....”

[사색이 된 랜디가 도망칩니다.]

“흐냐아응.... 졸리다옹....”

[노에가 축 늘어집니다. 노에의 모든 마나가 고갈되었습니다.]

갈구노스는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등장한 것도 아니고 단지 ‘경고’를 보낸 것만으로 정예 파티를 무력화시켰다. 1분 뒤부터 서서히 회복할 거라지만 이미 역소환 된 펫을 다시 소환하려면 24시간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 이때 무신의 추종자들이 습격해오기라도 한다면?

‘이건 위험....’

숫적 우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유형의 던전.

‘정신 쇠약’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기 전까지는 템빨단 전원을 대동하고 와도 이곳을 정복할 수 없을 것이다.

판단하며, 혹시 모를 적들의 습격에 홀로 대비하던 그리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떨리는 시선은 눈을 반달로 그리고 있는 2마리의 대두 해골에게 향해있었다.

[템빨골1이 춤을 춥니다.]

[템빨골2가 <비웃기>를 사용합니다.]

알림창 내용 그대로였다.

템빨골1은 쇄골과 어깨를 흔들흔들 거리면서 신나게 리듬을 타고 있었고, 템빨골2는 연신 턱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갈구노스의 정신 쇠약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다.

‘해골이니까 당연한 건가?’

해골은 뇌가 없다. 쇠약해질 정신이 애초에 없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그리드가 문득 노에의 말을 떠올렸다.

‘리치는 언데드를 수족으로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고 했는데?’

단지 뇌가 없다는 이유로 정신 쇠약에 저항한 건 말이 안 된다는 뜻. 오히려 템빨골들은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갈구노스의 ‘경고’에 큰 영향을 받아야했다. 템빨골들이 정상적인 언데드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템빨골이 어디 정상적인 언데드던가?

이 녀석들은 평범한 해골이 아니다. 뱀파이어 자작 라티나가 남긴 유산이었고, 브라함조차도 그 저력을 가늠하지 못했었다. ‘학습’과 감정의 표현이 가능한 지적능력까지 갖춘 해골이었다.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지하의 갈구노스가 이변을 감지했습니다.]

[자신이 조롱당했다는 걸 확인한 갈구노스가 위층의 침입자들에게 경고합니다.]

““베리아체의 실험체 따위가 감히...! 당장 그 웃음을 멈추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강한 마력이 깃든 목소리가 당신의 정신과 마음을 괴롭힙니다.]

[상태이상 혼란, 공포, 정신 쇠약에 걸립니다.]

[정신 쇠약이 중첩되어 마나의 소진 속도가 빨라집니다. 회복까지 필요한 시간이 2배로 늘어납니다.]

[저항하였습니다.]

[템빨골2가 <비웃음>을 사용합니다.]

[템빨골1이 <비웃음>을 학습하였습니다.]

[템빨골1이 <비웃음>을 사용합니다.]

““이놈들!! 가루로 만들어주마!!””

[분노한 갈구노스가 자신의 실험체를 호출합니다.]

[<2개의 비급을 습득한 무신의 추종자>가 당신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쿵-! 쿵-! 쿠웅!!

저 멀리서부터 연속적인 폭발음이 들려왔다. 진정한 ‘중간 보스’가 여기까지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서 벽이란 벽을 죄다 부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얘, 얘들아? 빨리 일어나봐.”

사색이 된 그리드가 여전히 해롱거리고 있는 일행들의 뺨을 때려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다들 정신을 못 차렸다. 앞으로 1분 동안 그리드는 혼자서 싸워야만 했다.

“이거 엿 된 거 같은데.”

딱! 딱딱!!

그리드의 심정이야 어찌됐든 템빨골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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