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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96화 (791/1,794)

템빨 44권 - 6화

총 234개의 엘릭서로 그리드가 올린 스탯 총량은 2,340이다. 이중 4대 스탯이 오른 비율은 10분의 1도 안 됐지만, 그래도 200은 넘게 올랐다. 그 가치는 단순하게 계산해도 20레벨을 올린 셈이었다.

더군다나 대량의 행운 스탯을 확보하고 아이템 강화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그리드는 들뜬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단 한 번 동대륙에 다녀온 것만으로 계단을 몇 개나 한 번에 뛰어올라버렸으니 횡재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판게아 비밀 던전이라는 곳도 뭔가 엄청날 것 같은데.’

이쯤 되면 마지막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입장권을 빨리 사용해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가람.”

또 그 빌어먹을 놈의 함정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가람과 비교했을 때 그리드는 무력한 꼬맹이였다.

몇 개의 계단을 한 번에 껑충 뛰어올랐다고?

무의미하다.

가람은 수백 개의 계단을 더 올라가야 눈높이가 맞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었으니까. 가람뿐만 아니라 당장 서대륙에도 강적이 수두룩했다. 가람은 그리드가 겪게 될 시련 중 일각에 불과했다.

‘부족해.’

기쁨의 여운이 짧게 끝난다.

그리드는 도리어 갈증에 휩싸였다.

‘아직도 많이, 한참 부족하다.’

강해져야한다.

되새긴 그리드가 몇 명의 동료들을 떠올렸다.

유페미나, 페이커, 레가스, 유라, 지슈카, 크리스...

그들은 한 번 본걸 잊지 않는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습득 속도는 타의 추정을 불허하고 배운 걸 응용하는 방식은 감탄을 유발시킨다.

그리드는 그들과 가끔 사냥에 나가기라도 할 때면 소름이 돋았다. 같은 입장에서 같은 것을 봐도 내놓는 해석의 수준은 어른과 어린애의 차이였으니까.

그래, 천재의 영역에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 천재들이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있다.

진정한 천재는 오직 크라우젤 뿐이라고.

“내년에도 안 따라잡힐 거야.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템빨이랑 스탯빨로 찍어 누를 거라고.”

존경하는 경쟁자가 있다.

그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리드의 열정과 발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라우엘은 템빨국의 내정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템빨단까지 관리한다. 템빨단원들이 보다 나은 혜택을 누리고 더욱 발전할 수 있게끔 궁리하는 것이 라우엘의 업무 중 하나였다.

갈구노스의 사원.

라우엘이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찾아낸 새로운 사냥터다. 뱀파이어의 도시처럼 엘릭서나 흡혈 반지 등의 초희귀 아이템을 드롭하지는 않지만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다.

단, 문제는 난이도다.

등장하는 몬스터의 숫자와 종류, 그리고 레벨을 고려했을 때 갈구노스의 사원은 뱀파이어의 도시보다 2배 이상 난이도가 높은 사냥터였다.

[갈구노스의 사원에 입장하였습니다.]

[마기의 근원이 느껴집니다.]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하락하고 생명력 회복 효과가 50퍼센트 하락합니다.]

[저항하였습니다.]

“분위기 오지네....”

고오오오오-

미궁처럼 깊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사원이었다. 저주를 떨쳐낸 그리드가 라우엘의 말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폰이랑 레가스, 크리스가 요즘 여기에서만 사냥한다고 하던데.... 걔네는 저주에도 저항 못할 텐데 힘들지도 않나....”

세 사람의 성격 상 파티 플레이를 할 가능성도 낮다. 아마 지금쯤 미궁 각지에 흩어진 채 혼자서 사냥 중일 것이다. 하여튼 보통내기들이 아니었다.

“침입자인가.”

미궁을 배회하던 인간형 몬스터 <갈구노스의 사자>가 그리드를 발견하고 신형을 날려 왔다.

최소 2천대의 민첩성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날쌘 속도였다.

하지만 민첩성이 3천을 가볍게 넘는 그리드를 압박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람의 속도와 비교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사자의 공격을 회피한 그리드가 그대로 반격했다.

[약점 공격이 발동합니다!]

[대상에게 16,94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검은 불꽃이 폭발합니다!]

콰르르릉!!

압도적인 공격력!

판금 갑옷을 무장하고 있는 갈구노스의 사자는 한 눈에 봐도 높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듯했지만 그리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리드는 단지 평타만으로 사자의 생명력을 10분의 1 가까이 떨어뜨렸다. 높아진 행운 스탯 덕분인지 약점 공격과 크리티컬, 검은 불꽃과 붉은 벼락이 터지는 횟수도 평소보다 배 이상 많았다.

한 명의 사자가 잿빛으로 산화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초였다.

“대박이네.”

정예 몬스터도 아닌데 직계 뱀파이어와 비슷한 수준의 경험치를 드롭하다니?

잡템 하나 드롭 안 하는 배은망덕한 놈이지만 사랑스러울 지경이다.

“국대전까지 여기에 죽치고 있으면 되겠어. 애들이 여기서 안 나오는 이유가 있었군....”

더 강해져야한다.

이처럼 결심한 그리드가 선택한 단련법은 당연히 사냥이었다. 한동안 등한시했던 레벨 업에 집중해서 스탯과 각종 자원을 성장시킬 계획이었다.

“소환, 티라멧.”

그리드가 소리치자 묵색의 허리띠가 혈빛을 머금더니 거구의 뱀파이어가 튀어나왔다.

중성적인 외모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지닌 일반적인 뱀파이어들과 달리 티라멧은 호남이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비죽비죽 솟은 머리카락이 사나운 인상을 주었다.

“음....!”

하지만 인상과 달리 행동은 소심했다.

소환되자마자 몸을 움츠린 티라멧이 다가올 공격에 대비했다.

며칠 전, 오래간만에 바깥 세상에 나오자마자 양반 가람에게 얻어맞고 역소환 당한 사건이 있기 때문이었다.

“야. 괜찮아. 적 없으니까 쫄지 마.”

생긴 거랑 다르게 겁먹은 고양이처럼 움찔움찔 거리는 티라멧의 어깨를 두드려준 그리드가 몇 개의 아이템을 건네주었다.

+7<둘리아니의 검>

등급:유니크

내구력:1,250/1,250

공격력:1,890 방어력:340

*공격 시 실드 생성. 실드량은 최대 생명력과 비례. 최대 5회 누적 가능.

+7<에모우스의 갑옷>

등급:유니크

내구력:785/785 방어력:930

*받는 피해 12퍼센트 경감.

*생명력 회복 효과 50퍼센트 상승.

*2세트 효과:생명력 10,000 추가.

+7<에모우스의 투구>

등급:유니크

내구력:566/566 방어력:675

*급소 피격 확률 20퍼센트 경감.

*2세트 효과:방어력 50 추가.

유니크 등급의 무기 제작법과 방어구 제작법에서 선택할 수 있는 아이템 종류는 총 23개였다.

그리드는 그중에서도 티라멧의 맷집을 강화시켜줄만한 아이템을 선택해서 제작했고, 남은 강화석을 이용해서 적당히 강화까지 해놓았다.

“신발이랑 장갑은 에픽 등급이기는 한데 일단 당분간 이걸 써. 에모우스 신발이랑 장갑 제작법 구하게 되면 다시 만들어줄 테니까.”

“알았다....”

티라멧은 이야루그트와 달랐다. 순순히 아이템을 건네받아 무장하더니 그리드 곁에 똑바로 섰다. 고분고분한 태도였다.

‘역시. 상태창을 봤을 때부터 알아봤어.’

그리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티라멧이 자신의 예상대로 완벽한 ‘펫’이었기 때문이다.

소환수 이야루그트의 경우 상태창이 ‘스탯’으로 표기되고 성격까지 NPC의 성질을 띄웠지만, 티라멧은 상태창부터 성격까지 완전히 펫의 성질을 띄웠다. 펫처럼 소환 유지 시간도 무한정이었다.

그리드가 티라멧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당장은 우울증과 낮은 레벨 때문에 여러모로 초라했지만, 티라멧은 그리드와 늘 사냥을 함께할 수 있었고 그만큼 성장 가능성도 높았다. 노에 다음가는 파트너가 될 여지가 다분했다.

“앞으로 쭉쭉 커서 활약해 줘.”

“....알았다. 혈왕의 자격을 지닌 마스터를 섬기게 되어서 영광이다.”

‘아, 이거였군.’

그리드는 티라멧의 태도가 고분고분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티라멧은 단지 펫이라서가 아니라 그리드가 지닌 칭호 <혈왕 후보> 효과에 매료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주 긍정적인 소식이었다.

그리드가 상대했던 귀족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엘핀스톤 백작.

언젠가 소환할 수 있게 될 녀석 또한 자신에게 순순히 충성할 거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들떴다.

‘하여튼 이야루그트만 문제지.’

그리드는 이야루그트를 극검에게 맡긴 상태다. 이야루그트가 말을 잘 안 들어서 짜증나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극검의 발검술 위력을 극대화시켜주는 칼집과 이야루그트의 궁합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리드는 극검이 더 나은 무기를 얻기 전까지 이야루그트를 사용하면서 이야루그트를 성장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리드와 극검 서로에게 윈 윈이었다.

“좋아. 가자.”

템빨골들과 노에, 랜디까지 소환한 그리드가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전방에는 티라멧, 2열에는 그리드와 랜디, 3열에는 템빨골들, 후위에는 노에가 자리를 잡은 대열이 미궁 깊은 곳에 발을 들이자 점차 더 많은 사자들이 일행을 덮쳐왔다.

갈구노스.

대악마의 하수인에 불과하나 위대한 마법을 부려 신격화 된 리치. 그의 동상을 모셔놓은 이 사원은 끊임없는 마기를 방출하고 있었고 갈구노스의 사자들은 폭발적인 공격력을 발휘했다. 사원의 마기를 자원 삼아서 공격 스킬을 난사했다.

하지만 이제 템빨까지 갖춘 티라멧을 무력화 시킬 만큼의 화력은 아니었다.

[당신의 펫 ‘티라멧’이 입은 피해의 일부를 회복합니다.]

[당신의 펫 ‘티라멧’이 입은 피해의 일부를 회복합니다.]

[당신의 펫 ‘티라멧’이 입은 피해의 일부를 회복....]

“파그마의 검무, 연!”

“파그마의 검무, 파!”

티라멧이 탱킹을 할 동안 그리드와 랜디는 검무를 춰서 사자들에게 역습을 가했다. 사자들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지만 두려움을 몰랐고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템빨골들이 방해했다. 멀리서 은사를 쏴대다가 기회만 오면 접근해서 뼈를 분질러 댔으니 사자들의 행동에 큰 제약이 생겼다.

“침입자에게 천벌을!”

몬스터의 리젠 속도가 그리드의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그리드 파티가 사자 20마리를 상대하느라 분주할 때, 후방에서 또 새로운 사자들이 나타났다. 판금 갑옷이 아닌 로브를 뒤집어 쓴 사자들이었다.

“이거 좀....”

그리드가 위험을 감지했다.

역시나.

파앗-! 파파파파팟!!

로브를 뒤집어 쓴 사자들은 마법사였다. 녀석들이 뭐라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자 곳곳에 붉은 마법진이 생성되면서 그리드 파티를 조준하는 공격 마법이 발현됐다.

그리드에게는 큰 위협이 아니었다. 하지만 랜디와 템빨골은 사정이 달랐다. 그리드는 랜디와 템빨골들이 역소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애들 레벨을 최대한 올려놓으려고 했는데....’

쿠콰콰콰쾅!!

거대한 불구덩이가 수십 개 날아온다.

그리드는 초연으로 요격할까도 싶었지만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불구덩이들과 초연의 검기가 맞부딪치는 순간 폭발이 발생할 것이었고, 랜디와 템빨골들에게는 이때 발생할 스플래시 데미지를 감당할 방어력이 없었다.

라우엘이 말해준 ‘중간 보스’를 상대하려면 아직 흑화나 신속한 몸놀림을 소모해서는 안 되는 상황.

결국, 랜디와 템빨골들을 포기한 그리드가 회의 검무를 추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당신의 펫 ‘노에’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노에’의 레벨이 100을 달성하여 새로운 스킬을 습득합니다.]

랜디와 템빨골들의 협공에 당한 사자 하나가 잿빛으로 산화하자 이와 같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동시에.

“니야앙!!”

일행의 후방에서, 날아오는 마법들을 정면에서 마주보고 섰던 노에가 갑자기 양팔을 번쩍 세워들었다.

그러자.

파칙-! 파치치치칙!!

노에의 앞에 전격의 장막이 펼쳐졌다.

사자들이 쏜 마법을 모조리 차단해버리는 강력한 보호막이었다.

“헐?”

수십 개의 마법을 완전히 소멸시켜버리다니?

사자들보다 당황한 사람은 그리드였다.

적막 속에 노에의 웃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냥핫핫핫!! 바로 이 몸이 지옥 제일 마수 멤피스 님이다... 냥.... 헤롱헤롱....”

노에의 활약으로 상황은 다시 역전되었다.

티라멧에게 전방의 사자들을 맡긴 그리드가 후방으로 돌격, 파그마의 검무를 연속으로 전개하여 마법사들을 빠르게 무력화시켰다.

이어서 티라멧에게 붙어있는 사자들까지 모조리 처치한 그리드가 노에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리드는 노에가 새로 익힌 스킬이 궁금했다.

<무엄할지다(SSS)>

지옥 제일 마수 멤피스가 우레석의 마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모든 종류의 공격을 원천 차단하는 전격의 방어막을 2초 동안 생성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30분.

*스킬 사용 후 1분 동안 탈진에 걸립니다.

“사랑한다. 노에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노에를 꽉 끌어안고 그 복슬복슬한 털에 얼굴을 비벼대는 그리드의 행동에는 깊은 애정이 묻어나있었다. 노에도 행복하다는 듯이 그르릉 거렸다.

이후.

“그리드, 나도 레벨이 올랐어. 나도 부비부비해줘.”

“그, 그래. 일단 변신부터 풀면 해줄게.”

딱! 딱딱딱!!

“템빨골 너네도 축하한다.”

그리드 일행은 사원의 미궁을 쾌속으로 돌파했다.

현재 미궁의 다른 장소에서 솔로 플레이 중인 폰, 레가스, 크리스보다 최소 4배 이상 빠른 사냥 속도였다.

우레석을 먹고 진화한 후 레벨이 초기화됐던 노에와 원래부터 레벨이 낮았던 템빨골들은 거의 30분 단위로 레벨이 올랐고 그리드의 경험치 게이지 또한 빠르게 차올랐다.

지난 1년 동안 랭킹이 80계단이나 떨어진 그리드를 놓고 왈가왈부하던 전문가들이 또 새로운 후회를 맞이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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