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790화 (44권) (785/1,794)

템빨 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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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44권 - 1화

“사람들을 잘 지켜줘.”

“알겠다냥. 주인은 이 몸만 믿으면 된다냥.”

고양이 한 마리가 그리드의 어깨에 앉아있었다. 반짝이는 흰색 털과 통통한 배, 그리고 젤리 같은 분홍색 발바닥이 인상적인 고양이었다.

대장장이들은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다.

지옥제일마수 멤피스.

용족의 특성 일부를 물려받아 고도의 지능과 비행 능력을 자랑하는. 심지어 조악한 브레스까지 쏘아내는 <비룡>을 모든 면에서 압도하는 괴물.

20억 플레이어 중 단 한 명. 오직 그리드만이 길들였다고 알려진 최강의 펫이다.

‘귀여워....’

날름날름.

노에는 틈만 나면 털을 고르고 있었다. 무척 청결한 성격 같았다. 이따금씩 그리드의 뺨에 얼굴을 비비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납치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장장이들은 노에에게 섣불리 접근하지 못했다.

“키야아앙!!”

노에는 그리드를 제외한 모든 존재에게 포악한 성질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담벼락을 뛰어넘고 나타나 일행을 덮쳐온 강시 중 절반 이상이 노에의 앞발에 얻어맞고 벽에 얼굴을 처박았다.

“....꿀꺽.”

바위를 부수고, 거목을 쓰러뜨리는 괴력의 강시들을 할퀴기 한 방으로 날려버리는 노에. 벽에 처박힌 강시의 뼈를 웃으며 분쇄하는 템빨골. 일어나지 못하게 된 강시에게 마무리 일격을 꽂는 랜디. 그리고 대장장이들의 주위를 맴돌며 그들을 보호하는 빛의 정령과 황금 칼날에 이르기까지.

그리드 1인이 거느린 펫과 아이템은 이미 하나의 파티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리드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홍해가 갈라졌고 대장장이들은 안전을 보장받았다.

대장장이들은 희망을 엿봤다. 강제적으로 발생 중인 연계 퀘스트를 마지막까지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템빨단원들이 왜 그토록 그리드를 신뢰하고 찬양하는 것인지, 대장장이들은 새삼 깨달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낭패를 느끼는 중이다.

‘어디로 가야하는 거지?’

독강시에게 포위당해 있는 주민 30명을 찾아 구출할 것.

그리드가 진행 중인 퀘스트 내용이다. 제한 시간은 고작 1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폐허가 된 도시는 거대했고 사람을 찾기는 힘들었다.

도시의 크기에 비해서 <마력 탐지>의 범위는 한정적이었으며, 퀘스트 시작과 동시에 도시를 물들인 짙은 안개는 <플라이>를 활용한 시야 확보를 원천 차단했다.

‘이거....’

그리드는 이번 퀘스트를 깰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흩어져야 된다.

자신과 100명의 대장장이들, 전원 도시 사방팔방으로 산개하여 ‘직접’ 안개를 뚫고 주민들을 찾아내야했다. 그 방법이 아니면 퀘스트 클리어가 불가능했다.

‘괜히 좋은 보상을 주는 게 아니었군.’

끊임없이 출몰하는 강시. 강시와 싸워 이길 리 없는 대장장이들. 대장장이들이 분산되게끔 유도하는 퀘스트 내용...

확실하다. 클리어 하라고 만든 퀘스트가 아니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보상의 가치가 큰 것이다.

‘이거 망했네.’

깨달으며, 좌절하던 그리드가 문득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는 대장장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들은 그리드가 자처해서 데려온 인원이었다.

퀘스트 실패는 그들의 믿음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드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다.

“.....”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해야할까?

안개를 해치고 나아가며 고민하던 그리드가 어떤 스킬의 활용법을 떠올렸다.

“다들 여기서 기다려요.”

타앗-

가까운 가옥의 지붕 위로 몸을 날린 그리드가 몇 개의 지붕을 더 건넜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고지에 서더니 암흑의 룬에 각인 된 힘 하나를 해방시켰다.

“루쏜의 힘.”

스파아아아아아앗-!

그리드가 7번 뱀파이어 도시에서 레이드했던 백작급 뱀파이어.

‘혈향’을 쫓는 뛰어난 후각으로 ‘상처 입은 대상’에 한정해서 완벽한 탐색 능력을 발휘, 어쌔신들의 은신을 철저히 무력화시켰던 루쏜의 능력이 그리드를 통해서 발현된다.

푸아아아-

힘껏 숨을 들이마시는 그리드의 후각 일부가 퇴화했다. 안개를 스칠 때마다 코끝을 자극하던 물비린내와 강시의 악취를 그리드는 더 이상 맡을 수 없었다.

그리드의 코끝은 오직 인간의 피 냄새만을 탐닉했다.

그 끝에.

“저기군.”

개처럼 킁킁거리던 그리드가 희미한 혈항을 감지하는데 성공했다. 독강시에게 포위당했다는 주민들이 흘린 피의 냄새였다. 거리는 대략 3킬로미터. 동쪽이다.

‘다른 힘에 비해서 너무 허접해서 쓸모없는 스킬인 줄 알았더니 나름 도움이 되네.’

미소를 피어올린 그리드가 지상의 노에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에는 뒹굴뒹굴, 등을 바닥에 문대며 발바닥을 핥고 있었다. 목욕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다. 태생적으로 강한 생물답게 긴장감을 느끼는 기준이 다른 거겠지.

“노에, 잠시 다녀올 테니까 사람들 잘 지키고 있어.”

“하움. 알았다냥.”

하품을 동반한 대답.

노에는 태평했다. 노에에게 의존하게 생긴 대장장이들 입장에선 불안해지는 태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노에를 신뢰했다. 대악마 아스타로트의 마력이 담긴 우레석을 먹어치운 녀석은 일반적인 멤피스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초월종이었으니까.

터엉-!

혈향을 맡은 대가로 <굶주림> 상태에 돌입, 포만감을 잃은 대신 이동속도가 크게 상승한 그리드의 신형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

독강시.

육체능력은 철강시와 비슷한 수준에 불과하나 상처를 입을 때마다 독기를 방출하는 송장이다. 놈들의 독기는 상처가 깊어질수록 짙어졌고, 놈들에게 중독 된 사람들은 죽음의 고통에 몸을 떨었다.

“허억... 허억.... 우리도 이제 끝이구먼.”

영주 한속봉.

양반을 능멸한 죄로 초왕에게 붙잡혔다가 탈출한 대역죄인.

그가 ‘주작궁 제작자’에게 납치당한 이후 판게아는 방치되었다.

초왕은 새로운 영주를 파견하지 않았고, 남겨진 소수의 주민들은 스스로 생존해야했다. 각오했던 바다. 양반의 눈 밖에 난 도시를 지킨다는 건 환국에 대한 반란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남겨진 주민들은 초왕이 판게아를 버릴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각오를 무뎌지게 만들 정도의 지옥이었다.

강시들은 군대를 잃은 도시의 장벽을 손쉽게 넘나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강시들의 습격 탓에 주민들은 무너진 판게아의 경제를 회복시킬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기 바빴다.

그리고 이제 한계였다.

주민들은 굶주렸다. 강시에게 저항할 힘이 부족했다. 하늘은 그들을 가엽게 봐주지 않았다.

껑충! 껑충!

강시가 한 번 뛰어오를 때마다 주민들과의 거리가 급격히 좁혀졌고, 짙은 안개는 독으로 오염됐다.

그나마 저항하던 무사 출신 주민들은 베면 벨수록 더 큰 위협이 되는 독강시에게 저항을 포기했다.

“그날 영주님을 따라갔어야 해.... 이 땅에 희망은 없었어....”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누구도 그를 꾸짖지 못했다.

이들은 지쳤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고향을 지켜내고, 영주님께서 다시 돌아오실 수 있게끔 초왕을 설득해보이겠노라. 다짐했던 숭고한 정신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챙강. 챙강.

주민들이 간신히 쥐고 있던 낡은 병장기를 손에서 놓기 시작했다. 안개너머 밀려오는 독강시들에게 둘러싸인 그들은 이제 완전히 포기했다. 그저 양반과 우민으로 나뉘어졌을 뿐인 이 기형적인 세계를 원망하며 눈을 감았다.

푸학-! 푸하하학!!

두개골이 깨지고 살이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가족이, 친구가. 그리고 또 자기 자신이 죽어가는 파육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고 비명도 없었다.

“....?”

슬그머니 눈을 뜬 주민들이 안개 너머에서 휘몰아치는 섬광을 보았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강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영의 목이 날아갔다. 누군가가 강시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누, 누구....?”

대체 어떤 이가 하늘에게조차 버림받은 우리를 돕는가?

주민들은 안개 너머에서 강시들을 학살 중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갔다가는 지독한 독무에 중독될 것이 뻔했다.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누군가가 침음했다.

“어떤 귀인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대로는 죽고 말게야....”

“당장 저분을 말려야하네. 우리를 도왔다가는 저분까지 하늘의 분노를 사는 수가 있어.”

당장 독부터 문제다. 주민들은 안개 너머 귀인이 독강시의 특성을 모르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그가 이대로는 독에 중독되어 죽을 거라고 보았다.

하지만 독강시의 독이 아무리 강할지언정 전설이 된 자를 위협하지는 못한다.

전설은 기적을 일으키기에.

“무사하십니까?”

저벅. 저벅.

위풍당당한 걸음걸이.

독무와 안개를 헤치고 다가온 사내가 주민들에게 얼굴을 비춘다. 놀랍게도, 사내의 뒤편에 쓰러진 독강시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독에 중독된 채 죽어가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을 알아보고 경악한 주민들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판덕공....!”

주작궁을 잃고 위기에 빠진 판게아에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사내.

그는 주작궁을 ‘제작’함으로써 판게아를 구원했고, 양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다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한속봉 부녀를 구출했다. 그리고 양반의 분노를 산 한속봉 부녀와 판게아의 백성들을 납치해 서대륙으로 떠났었다.

덕이 높다하여 덕공(德公). 판게아의 판을 따서 판덕공(PAN德公).

판게아에 남겨진 주민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될 영웅의 귀환이었다.

[★히든 퀘스트★ <동대륙 체험(2)>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축복 받은 무기 강화석> 1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구출한 주민의 숫자가 30명을 초과합니다. 초과 인원 1명당 1개의 추가 보상이 발생합니다. <무기 강화석> 107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연계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동대륙 체험(3)>

★히든 퀘스트★

판게아의 대장간들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남은 무기가 별로 없습니다. 판게아의 주민들이 강시와 싸울 수 있도록 무기를 제작해주십시오. 철강시와 독강시의 습격에 주의하세요.

퀘스트 클리어 조건:판게아 주민들에게 에픽 등급 이상의 무기와 갑옷을 제작해줄 것. 사용 제한 레벨이 250이어야함. 기한 3일.

*구출한 주민의 숫자는 137명입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

1.연계 히든 퀘스트 생성.

2.축복 받은 방어구 강화석 20개.

퀘스트 실패 시:레벨 마이너스 1. 가장 높은 능력치 영구적으로 20 하락.

이번 퀘스트 난이도 또한 비상식적으로 높았다.

구출한 주민들의 숫자만큼 에픽 등급 이상의 무기와 방어구를 제작해야 한다고? 그것도 3일 안에?

“그, 그리드 님!!”

“이걸 어쩝니까!!”

역시나, 대장장이들이 울상을 지은 채 달려오고 있었다.

“3일 내에 에픽 아이템 274개를 제작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노말, 레어, 에픽, 유니크, 레전드리.

Satisfy의 아이템 등급 체계다.

준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에픽 등급 아이템은 결코 쉽게 만들 수 없었다.

아이템 20개를 만들면 1개 만들어질까 말까한 아이템이 바로 에픽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하나를 오토 제작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2시간에서 3시간인 점을 고려해 봤을 때, 고작 101명의 대장장이가 에픽 아이템 274개를 3일 만에 찍어낸다는 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장장이들은 절망했다.

30명만 구하면 될 주민을 왜 137명이나 구했느냐고, 내심 그리드를 원망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가 없었다면 진작 죽었을 그들이다. 또한 상처 입은 주민들의 모습을 보자 가여워서 그리드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혼란 속에서, 그리드는 대장장이들에게 질문했다.

“혹시 유니크 등급 이상의 대장장이 망치 쓰시는 분 있습니까?”

좋은 망치를 사용할수록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할 확률이 상승하는 바.

고등급 망치는 모든 대장장이가 갖기를 꿈꾸는 궁극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만들기 쉽지 않았고, 100명 중 손을 드는 대장장이는 고작 5명에 불과했다.

그들의 망치 정보를 확인한 그리드가 미소를 지었다.

“자, 어서 대장간으로 이동합시다.”

“....?”

관찰력이 좋은 몇 명의 대장장이가 눈을 의심했다.

흑요석 같은 그리드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머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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