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786화 (781/1,794)

템빨 43권 - 21화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군.’

그리드에게는 <광물 강화> 스킬이 있다. 이름 그대로 광물의 성능을 강화시켜주는 스킬이다.

설명만 보면 좋은 스킬이었다. 하지만 실제 효용성은 굉장히 떨어졌다.

‘강화 틀’에 넣을 수 있는 광물의 중량이 30그램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강화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이 무려 30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드는 지난 7년 동안 <푸른 오리하르콘>을 강화해왔지만, 여태껏 그가 확보한 <강화 된 푸른 오리하르콘>의 중량은 2.5킬로그램 수준에 그쳤다.

한손 검을 제작할 때 필요한 광물의 중량이 평균 4킬로그램인 점을 감안했을 때, 그리드는 7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고도 검 한 자루 만들 광물조차 확보하지 못한 셈이었다.

사실상 무용지물의 스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헥세타이아 신을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전설적인 광물 강화>

강화 틀을 이용해서 광물의 성능과 내구력을 강화시킵니다.

강화 틀에 넣을 수 있는 광물 중량:최대 1킬로그램

강화까지 필요한 시간:3일

그리드가 헥세타이아 신과의 대결에서 6번째 신화 아이템을 제작하였을 때 발생한 ‘특수한 일’이 <광물 강화>스킬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사실, 그리드는 별로 기쁘지 않았었다.

무려 7년 동안 쓸데없이 스킬창만 차지하던 스킬이다. 없어도 그만인 스킬이 이제 와서 업그레이드 됐다고 해봤자 어떤 감상을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실제로 대량의 강화 광물을 확보, 놀의 갑옷 재료로 사용해본 그리드는 생각이 싹 바뀌었다.

‘좋아. 흑철과 푸른 오리하르콘을 강화해놓길 잘했어.’

흑철은 평범하게 구할 수 있는 제작 재료 중에서 성능이 수위에 꼽혔다.

그만큼 수요가 많았지만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을 정도의 공급량이 뒷받침됐다.

반면 푸른 오리하르콘은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정도로 공급량이 적었다. 하지만 흑철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고, 템빨국은 푸른 오리하르콘을 드롭하는 <숲의 수호자>를 독점하고 있었다.

흑철과 푸른 오리하르콘을 꾸준히 확보, 강화해온 그리드의 첫 번째 결과물이 놀의 갑옷이다.

<강한 신뢰의 발할라>

등급:신화

내구력:1,745/1,745 방어력:1,322

*생명력 회복 효과 30퍼센트 상승.

*마법, 물리 공격에 받는 피해 20퍼센트 경감.

*다수의 적 상대 시 추가 방어력. (인당 5. 최대 100)

*어두운 장소에서 물리방어력과 마법저항력 20퍼센트 상승.

*패시브 스킬 <움직이지 못하는 요새> 생성.

마침내 신과 대적한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가 칸의 작품을 오마주한 갑옷입니다.

강화 된 흑철이 전신을 구성하고 있으며, 강화 된 푸른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철판이 어깨와 가슴, 허리 부분에 덧대어져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아름다운 휘광을 뿌리는 이 갑옷의 주인은 전장의 신이 되어 길이길이 회자될 것입니다.

무게:4,770

사용 조건:레벨 400. 근력 3,200. 체력 2,200.

‘칸이 만든 발할라와 달리 ‘탄생 배경’이 부족한데도 신화 등급으로 책정됐어. 강화 광물들이 내구력과 방어력을 극한까지 높여준 덕분이다.’

제작자 그리드의 의도가 고스란히 깃든 갑옷이었다.

그리드는 ‘밤’을 주무대로 삼는 뱀파이어의 종족 특성이 강화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푸른 오리하르콘을 이용했고, 놀의 회복 능력이 강화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한한 애정의 발할라>의 일부 특성을 참고했다. 또한 ‘포식’할수록 강해지는 놀의 잠재력을 잊지 않고 <다인슬레프>의 옵션을 참고하기도 했다.

그 결과 발생한 옵션이 흡혈 강화, 어둠에서 방어력 상승,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방어력 상승 등의 옵션이었다.

그리드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다양한 제작법을 확보할수록 다양한 종류의 옵션을 알게 되고, 그 옵션들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돼.’

그런 의미에서, 템빨단원들의 지난 도움들이 무척 컸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템 제작법을 얻을 때마다 가장 먼저 그리드에게 달려왔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각종 퀘스트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동료들 덕분이었지... 다른 대장장이들이랑 다르게 제작법을 구하려고 시간을 할애한 경우가 없었으니까.’

물론, 일방적인 은혜를 받은 건 아니었다.

그리드 또한 꾸준히 동료들의 아이템을 제작해주었고, 그 가치가 자신이 얻은 은혜보다 결코 작지는 않았다.

놀이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그리드! 이것 봐라! 하핫! 갑옷이 빛난다!! 파랗게 빛나!!”

“그러게. 멋지네.”

[당신을 향한 ‘놀’의 호감도가 20 상승하였습니다.]

강한 신뢰의 발할라는 현금 수십 억. 아니, 수백 억에도 판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리드를 움직이는 건 단순한 재물이 아니었다. 그리드는 동료와 부하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기뻤다. 자신 덕분에 강해진 동료와 부하들이 재물 이상의 가치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방패가 유니크로 뜬 바람에 아쉽긴 하지만 뭐...’

방패까지 전설로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다. 오로지 운빨이 점지해주는 ‘등급’에 집착하다가는 여기서 몇 달을 지낼 수도 있었다.

그리드는 바쁜 사람이다.

“자, 그럼.”

각종 대장장이 도구를 정리한 그리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에 삼각 방패를 쥔 채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던 놀의 표정이 굳었다.

“벌써 가는 게냐?”

“갑옷에 3일, 방패에 3일. 벌써 일주일 가까이 여기에 있었어. 이만 돌아가야지.”

“나는 2백 년을 넘게 살았다.”

“응?”

“일주일은.... 짧다고.”

“....”

꼬옥, 그리드의 옷깃을 붙잡는 놀의 작은 손이 처량하다.

어린 소년을 이 적막한 어둠의 도시에 혼자 놔둬야한다는 사실에 그리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여유는 없었다.

피아로, 아스모펠, 메르세데스의 상태도 점검해야했다.

“놀, 너는 이곳을 지켜야 돼.”

“왜냐? 그놈의 논밭 때문이냐? 나는 논밭을 대체 얼마나 더 크게 키워야하는 거냐?”

“나도 정확히는 몰라. 일단 앞으로 153일 정도만 계속 농사를 지어봐. 논밭이 일정 규모 이상 확대되면 이곳을 영토로 인정하고 내 나라에 귀속시킬 수 있거든.”

“153일? 나보고 153일이나 더 농사를 지으라고? 감자나 씹어 먹으면서?”

“2백 년 넘게 살았다며? 일주일도 짧다며? 그럼 153일도 금방이지.”

“이, 일주일과 153일은 다르지 않느냐!! 그... 153일이 지나면 나도 너를 따라가도 되는 것이냐?”

버럭 소리치던 놀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어지간히도 그리드와 함께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건 물론 그리드도 바라는 일이었다.

놀처럼 강한 NPC가 곁에 있으면 당연히 그리드에게도 큰 힘이 됐다. 로드도 또래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기뻐할 테고....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안타깝지만 이곳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내 동료나 부하들은 대부분 인간이라서 지하 도시에서의 생활이 불가능하거든. 당장 나만 해도 여기 일주일 있었다고 호흡이 가빠지는 중이다.”

“그럼 뭐냐? 나는 평생 이곳에 있어야 되는 거냐?”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 너, 태양도 못 보지 않아?”

“흥, 이 몸은 순혈이다. 햇빛에 다소 제약은 받지만 아예 못 보지는 않.... 가만? 나를 대신해서 이곳을 다스릴 녀석만 구하면 되는 거 아니냐?”

“대신할 녀석?”

“나와 같은 뱀파이어 말이다.”

“그렇기야 한데.... 다른 뱀파이어들은 너랑 다르게 잠만 자잖아? 노파심에 미리 말하는데, 잠만 자는 녀석 데려다가 영주로 앉히면 안 된다?”

영주는 최소한의 운영능력을 발휘해야한다. 그래야 도시가 발전하고 세금이 걷힌다. 운영능력이 아예 없는-대체적으로 지력 스탯이 낮은 부류- 영주는 도시를 발전시키기는커녕 완전히 망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라우엘이 매일 인재 타령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놀이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야탄 새끼....”

나태의 저주가 지독히도 원망스러운 듯하다.

그래도 명색이 신인데 대놓고 욕이라니, 놀의 성깔이 보통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엿본 그리드는 내심 안도했다. 놀이 같은 편이 됐다는 사실이 더욱 든든해졌다.

“그럼 진짜 간다. 앞으로 153일 동안 도시를 잘 지켜줘. 네 동족들을 최대한 많이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싶거든.”

뱀파이어의 도시는 흡혈 반지와 엘릭서를 드롭하는 매우 진귀한 사냥터다. 그래서 템빨단은 뱀파이어 도시를 통제하고 있었지만, 그 통제라는 것이 완벽할 순 없었다.

호전적인 세력들이 무단으로 도시를 침범한 사례가 빈번하게 있었다. 도시 입구에 세워놓은 템빨국 병사들을 해치면서까지 말이다.

템빨국이 처단해야할 주적에는 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흥, 내 땅을 범할 수 있는 인간은 오로지 너뿐이다.”

“든든하네.”

피식 웃은 그리드가 손을 흔들었다.

점차 멀어지는 그를 잠자코 바라보던 놀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갑옷과 방패.... 고맙다.”

태어나 처음으로 받은 선물.

소중하지 않을 리가 없다.

***

파직! 파지직!!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일직선상의 경로에 스파크가 튀기고 있었다.

발검의 잔재다.

“크음....”

검을 다시 칼집에 돌려놓는 극검의 오른팔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그가 오른 손에 착용 중인 건틀렛 때문이었다.

<청룡의 장갑>

극검이 작년 국가대항전에서 얻은 <청룡의 숨결>을 재료로 만든 건틀렛이다.

공격력과 공격 속도를 대폭 상승시킴으로써 발검술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아이템이었지만 페널티가 너무 심했다.

보통 확률로 발동하는 ‘전광’효과가 발검술의 위력을 2배로 상승시켜주는 대신 착용자의 생명력을 12퍼센트 소모시키고 5초 동안 상태이상 ‘한쪽 팔 골절’을 유발했다.

골절은 전투력 하락과 직결되는 바, 전광의 발동은 양날의 검인 셈이다.

‘쩝.... 국대전 시작하기 전까지 등급을 올려놓고 싶었는데....’

작년, 극검과 유라를 비롯한 템빨단의 금메달리스트들은 그리드의 조언대로 <사신의 부산물>을 보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리드에게 아이템 제작 의뢰를 부탁하였으나, 제작 아이템의 결과물은 전부 유니크~전설 수준에 그쳤다.

그중에서도 극검의 <청룡의 건틀렛>은 유니크 등급이었다.

하지만 극검은 크게 아쉽지 않았다.

애초에 신화 등급 아이템은 바라지도 못했을 뿐더러, 청룡의 장갑의 등급 앞에는 ‘성장형’이라는 수식이 붙어있었으니까.

그래, 청룡의 장갑은 최소 전설 등급까지 성장할 여지가 있는 아이템이었다. 등급이 오를 경우 청룡의 장갑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페널티가 완화 될 가능성이 높았고, 성장형 아이템은 그 특성상 등급이 오를 때마다 옵션이 추가된다. 동급 아이템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할 여지가 컸다. 극검은 그 부분을 기대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템 경험치가 쌓이는 속도가 극검의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느리다는 점이었다.

극검이 8개월 동안 쌓은 청룡의 장갑 경험치는 고작 20퍼센트에 불과했다. 퀘스트를 진행할 때를 제외하면 내내 사냥터에만 틀어박혀있었는데도 말이다.

‘갓리드가 몇 년이 지나도록 엘핀스톤을 소환 못하는 이유가 있었어....’

천하의 갓리드가 ‘등급 성장형 아이템 참 X같다’고 간간히 욕하던 모습을 회상한 극검이 문득 격정에 휩싸였다.

오늘 오전 속보로 떴던 그리드의 국대전 불참 선언 기사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지금쯤 별 잡놈의 새끼들이 우리 갓리드를 욕하고 있겠지?’

극검의 그리드를 향한 애정은 무한에 가까웠다.

조국의 명예를 드높인 영웅이자 내게 셀 수 없이 많은 도움을 준 은인...

극검은 그리드가 좋았고, 타인이 그리드를 욕하는 행위를 무척 혐오했다. 종종 그리드를 비하하거나 비난하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극혐’이라는 인터넷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악플을 달 정도였다.

“안 되겠다. 내가 어서 가서 클린한 댓글창을 만들어놔야겠어.”

어차피 점심을 먹을 시간이기도 하다.

미련 없이 로그아웃하고 대한애국협회장 강대한으로 돌아온 그는 곧바로 인터넷을 켰다.

역시나,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는 온통 그리드와 관련 된 것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드를 검색하면 그리드의 국대전 불참 선언과 관련 된 기사가 끝없이 떠올랐다.

뚜둑, 손을 푼 강대한이 ‘극혐’ 아이디로 로그인한 후 인기순위 상단에 있는 기사를 클릭했다.

그는 그리드를 비난하고 있을 댓글들마다 ‘비공감’과 ‘신고’를 누른 후 대댓글로 한 사발 욕을 해줄 각오였다.

한데.

“이 쌍놈의 새끼들 또 매국노니 뭐니 헛소리 지껄였다가는.... 응?”

추천순으로 정렬 된 댓글 중 그리드를 욕하는 댓글은 단 하나도 없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가장 큰 이벤트에 불참할 정도면.... 우리 갓리드 님 건강에 문제 생긴 거 아닌가요? 걱정 되네요.

추천:21,034개 비공감:509개

-갓리드의 쾌유를 빕니다.

추천:18,110개 비공감:288개

-그리드도 한 번쯤은 쉬어야지... 매 해마다 자기한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랑 국민들의 기대감이 많이 부담됐을 텐데.... 한 해 정도는 휴식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함. 금메달 보상이 아깝긴 하지만 휴식은 중요한 법이니까.

-추천:14,500개 비공감:1,209개

-제 생각에는 작년 라인하르트 침공 사건의 영향이 큰거 같네요. 임모탈인지 탈모임인지 개XX들이 템빨단원 없을 때 라인하르트 침공했다가 척살령 받았잖아요. 같은 일 반복될까봐 그리드는 나라 지키려는 생각인 듯.... S.A그룹은 시스템 개선 안 하고 뭐하지, 정말. 소통 너무 안 된다.

-추천:13,990개 비공감:102개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을 응원합니다!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리드를 위해서라도 더 힘내주세요!

-추천:12,010개 비공감:93개

“헐....”

강대한은 깨달았다.

그리드를 사랑하는 사람, 이제 자신 하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그리드를 아끼고 있었다.

물론.

<(칼럼)그리드는 배가 불렀다>

우리는 그리드가 지난 국가대항전마다 얻어왔던 보상 내역을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그 보상들이 당시의 그리드에게는 큰 도움이 된 반면, 지금의 그리드에게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할 아이템들이라는 점이다.

그리드는 배가 불렀다.

지금의 그리드에게 국가대항전이란 시간낭비일 뿐이다. 견고한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한 그는 국민들의 염원을 외면하는 일이 두렵지 않다.

그는 조국을 버렸고, 우리 국민은 그에게 버림 받았다.

조.... 아니, 전문가들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들이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했고, 그리드처럼 자극적인 소재는 드물기 때문이었다.

“이 쌍놈의 새끼들이....”

이를 간 강대한이 핸드폰을 들었다. 대한애국협회장의 권력을 행사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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