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785화 (780/1,794)

템빨 43권 - 20화

“귀화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뭡니까?”

호주에 도착한 자일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국가대항전에 참가하고 싶었습니다.”

자일은 통합랭킹 1,071위의 최상위 랭커였다. 스스로 쌓은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하이 랭커답게 스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은 너무 넓었다.

미국에는 자일보다 강하고 유능한 인물이 차고 넘쳤고, 자일은 상대적 약자가 되었다. 단 한 번도 국가대표로 선출되지 못했다. 기회의 나라가 자랑하는 ‘풍요’가 자일의 기회를 앗아간 셈이다.

***

“지발? 오래간만이군.”

뉴욕 지역 선발전.

무대에 오른 수백 명의 참가자들이 지발에게 집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지발이 제1회, 제2회 국가대항전에서 미국을 이끌었던 모습을 떠올린 사람들은 지발을 환영했고, 고작 몇 번의 패배를 감당 못하고 은둔자의 길을 택했던 지발의 유리 멘탈에 실망한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놓고 비웃거나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네북 소리 들을 정도면 은퇴해야하는 거 아닌가? 무슨 낯짝으로 다시 기어 나온 거야?”

“퇴물 따위가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지 말라고.”

적의마저 느껴진다.

지발은 겸허히 받아들였다. 저들의 적의가 애정과 기대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나를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그래, 미국은 지발을 기다렸다.

지발이 러시아의 크라우젤, 한국의 그리드에게 패배했다고는 하나 미국 최고의 실력자라는 사실은 변치 않았으니까.

미국 국민들은 지발이 다시 활약해주기를 바랐다. 제3회 국가대항전에서 미국이 다시 1위국의 영광을 차지하길 기원했다.

하지만 지발은 국민들의 기대에 응답하지 않았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그는 제3회 국가대항전을 외면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1등의 자리를 빼앗겼다.

기대했던 만큼 배신감도 크리라.

지발은 이들이 자신에게 느꼈을 배신감을 이해했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크라우젤이 있어. 당신 따위 필요 없다고!”

아직 10대로 보이는 어린 랭커가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한때 아메리카의 ‘캡틴’ 지발을 보고 꿈을 키웠던 소년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기대를 묵살했던. 저 동방의 괴물 ‘그리드’가 미국을 짓밟는 광경을 외면했던 지발이 원망스러웠다.

“흠.”

지발은 대기실에서 이미 일장 연설을 하고 온 상태였다.

다른 대기실을 이용했던 후보들에게 또 같은 말을 되풀이해줄 정도로 친절하진 않았다.

그저, 힘을 보일 뿐이다.

콰아아아앙-!!

첫 번째 선발전 종목은 PvE.

탈 것 ‘강철 쌍두마차’를 소환하더니 몰려오는 소형 몬스터들을 짓밟아버린 지발이 소년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시련을 극복한 주인공은 강한 법이지. 꼬맹이, 너도 영화 많이 봤을 거 아니야?”

“아.... 아아....”

마차 위 거한을 올려보는 소년의 눈동자에 잊고 있던 선망의 빛이 떠올랐다.

지발을 비웃거나 조롱했던 이들 모두가 침묵했다.

때마침 2번째 몬스터 웨이브가 나타났다. 고속 비행형 몬스터들이 정신없니 날아다니면서 지발을 에워쌌다. 날카로운 발톱이 지발을 향해있었고, 지상에서나 위력을 발휘하는 마차 위 지발은 위기에 빠진 듯했다.

“백익.”

몬스터들이 가소롭다는 듯이 실소를 흘린 지발이 두 번째 탈 것을 소환했다.

커다란 날개가 달린 백색의 사자였다.

마차를 버리고 녀석 위에 탑승한 지발이 하늘을 수놓았다. 거대한 삼지창으로 몬스터들을 모조리 꿰뚫어 해치웠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발이 소리쳤다.

“미국은 승리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 조국을 버리고 떠난 다른 패배자들과 나는 명백히 다르다! 나는 시련을 극복하고 돌아온 귀환자! 진정한 주인공이다!!”

오글오글!

멀리서 지켜보고 선 라우엘의 흑염룡을 자극하는 지발의 외침이 좌중을 압도했다.

확실히, 지발은 2년 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수많은 강자들을 초라하게 만들어왔던 미국에서조차도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작년에 보았던 크라우젤과 견줄만한 정도였다.

‘어쩌면 올해는....’

‘크라우젤과 지발이 힘을 합치면 제아무리 그리드도...!’

작년에 목격했던 그리드의 무위에 여전히 위축되어 있던 미국 랭커들이 희망을 품기 시작하는 그때.

“승리는 네가 아니라 내가 만들 것이다. 끝났으면 비켜.”

저벅저벅.

한 사내가 지발을 밀치고 무대의 중심에 섰다.

소년 랭커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20대 이상의 랭커들은 전원 그를 알아보고 경악했다.

“하스터...!! 하스터라고!?”

FPS게임계의 황제.

한국의 페X커, 임X환 등과 비교되며 미국의 게임 황금기를 견인했던 신화적인 프로게이머.

Satisfy의 출시와 함께 게임계에서 은퇴했던 저자가 이곳에 나타나다니?

예상치 못한 인물의 출현에 충격 받은 사람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왜들 난리야?’

구세대를 모르는 소년 랭커들은 의문에 빠진 상황 속에서.

콰자자자작!!

콰르르르릉!!

하스터는 유니크 클래스 <붉은 현자>의 위용을 마음껏 뽐냈다. 1차, 2차 몬스터 웨이브를 얼음의 장벽으로 속박하고, 불의 길로 태워버리면서 몰살시켰다.

지발처럼 호쾌하지는 않았지만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한 솜씨였다.

‘제법이군.’

지발과 하스터의 실력을 잠자코 지켜본 스컬과 제퍼가 이채를 띠웠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통합랭킹 10위권의 강자 스컬과 20위권의 강자 제퍼.

역대 국가대항전마다 미국 대표로 출전해온 그들은 지독한 현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몬스터 몇 마리 잡고 득의양양하는 수준으로는.’

‘결코 그 괴물을 이길 수 없다.’

괴물이란 그리드였다.

3년 연속 그리드를 만나고 직접 상대하거나 목격해온 그들은 그리드의 성장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알고 있었다.

단지 스탯과 스킬이 강해지는 개념을 초월해, 종 그 자체가 진화하는 듯한 느낌의 무한 성장력.

‘그리드는 이미 오래 전에 플레이어의 한계를 넘어섰다.’

‘놈은 이런 잡다한 몬스터가 아니라 드래곤과도 대적하는 기세를 보였었다. 우리 미국이 한국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드처럼 한계를 넘어선 초월자가 필요해.’

그 초월자가 크라우젤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글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눈치였지만, 스컬과 제퍼는 그리드와 크라우젤 사이에 존재하는 격의 차이를 확실하게 엿보았다.

작년 PvP 결승전 당시, 그리드는 전력도 다하지 않고 크라우젤을 꺾었으니까.

지난 수년 동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외천’이라고 추앙했던 크라우젤을 그리드는 아이처럼 다룬 것이다.

‘1위는 포기해야 돼.’

지발이 돌아왔어도, 하스터가 등장했어도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리드가 건재한 이상 미국은 영원히 2등에 머물 것이다.

우울한 현실을 엿본 스컬과 제퍼가 씁쓸한 미소를 그리는 순간이었다.

[2번째 시험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고, 보스 몬스터가 출현했다.

백작급 직계 뱀파이어였다.

템빨국이 독점한다고 알려져 많은 랭커들의 공분을 샀던 몬스터다.

“포식을 원한다.”

창백한 얼굴의 뱀파이어가 뾰족한 어금니를 드러내자.

콰르르르르르르릉!!

핏빛 마력이 휘몰아치며 무대를 장악했다.

모든 플레이어를 약화시키는 <블러드 필드>의 발현이었다.

“움직이자.”

스컬과 제퍼가 몸을 날렸다.

보스 레이드 종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보스에게 데미지를 누적시키거나 보스의 어그로를 끌고 생존해야했다. 스컬과 제퍼는 선발전에서 탈락할 계획이 없었으므로 여유를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선발전 참가자들을 뒷걸음질 치거나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쿠르릉-!!

갑자기 어둠으로 물든 하늘에 우레가 들끓고 있었다.

쩌적-! 쩌저저적!!

전광에 휩싸인 하늘이 갈라졌다.

“뭐지?”

갑작스러운 이변에 당황한 참가자들이 이내 질색했다.

“피, 피해!”

쿠우우우웅-!

갈라진 하늘의 틈새로 거신이 강림하고 있었다.

5미터에 육박하는 키. <화이트 드래곤>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단단한 외피.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건담....?”

뱀파이어 백작조차 질리게 만드는 거신의 출현은 참가자들의 정보에 없던 이벤트였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무대 곳곳으로 흩어졌고, 그중에는 하스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 괴물은 뭐지?’

서서히 강림하는 거신의 기파는 붉은 현자의 패시브 스킬 <정신 보호>를 위협하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스터가 장담하건데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상태이상 ‘공포’나 ‘혼란’ 등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단지 출현하는 것만으로 수백 명의 랭커를 위협하는 저 거신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압도당했다.

“어서 와라, 레이더스.”

“....!!”

쿠우우우우웅....

거신이 무대에 착지하는 순간 기파가 걷혔다.

하스터의 떨리던 다리가 멈췄고, 상태 이상에 빠져있던 다른 참가자들은 자유를 되찾았다.

지발은 거신에 탑승하고 있었다.

[레이더스와 동기화합니다.]

...

...

[동기화 성공!]

[레이더스가 가동합니다!]

[최대 마나 수치가 낮습니다!]

[당신이 레이더스를 가동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21초입니다.]

“내가.”

<고대의 라이더>

제국의 4황자 에단을 만나 전직 퀘스트를 수행한 끝에 얻을 수 있었던 성장형 유니크 클래스.

“주인공이다.”

유물 등급의 전용 아이템, 마장기 <레이더스>에 탑승한 지발의 존재감은 스스로의 주장대로 주인공 그 자체였다.

콰아아아아앙!!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뿌리 채 뽑아온 듯한 봉이 뱀파이어 백작의 한쪽 팔을 날려버렸고.

‘이거 어쩌면....!’

스컬과 제퍼의 얼굴에 환희가 찼으며,

‘저게 내가 알던 지발이라고?’

하스터의 동공은 흔들렸다.

또한.

‘사하란 제국의....?’

레이더스의 가슴 한쪽에 음각 된 제국의 상징을 목격한 라우엘은 침음했다.

지금, 이들은 개인의 사정이야 어찌됐든 모두 공통 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올해 국가대항전 PvP의 우승자는 지발이 될 것이며, 미국은 다시 1위를 차지하게 될 거라고.

같은 시각, 대한민국.

<템빨왕 그리드, 제4회 Satisfy 국가대항전 불참 선언>

각종 언론사에서 내보낸 속보가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모든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가 그리드, 신영우, 템빨왕 등으로 도배되기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따앙-! 따앙! 따앙!!

“됐다.”

여기저기서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을 가볍게 묵살한 그리드는 <무한한 애정의 발할라>와 꼭 닮은 갑옷을 완성했다.

오래간만에 수작업을 했더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무척 피곤했지만, 완성 된 결과물을 확인한 그리드는 피로를 싹 잊을 수 있었다.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셨습니다.]

[신화 등급 아이템 제작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20, 대륙 전역 명성이 1,000 상승합니다.]

[명성 포인트가 20만을 초과한 상태입니다. 명성 상점을 이용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가 제법이라며 칭찬합니다.]

[헥세타이아 신이 특전을 내립니다. 손재주가 100 상승하였습니다.]

“고귀하신 이 몸께 갑옷 따위를 입으라니.... 따,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당장 입어보겠다.”

3일 동안 그리드의 곁을 지키고 있던 놀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눈을 호수처럼 빛낸 녀석이 곧바로 갑옷을 무장했다.

자신과 꼭 닮은 갑옷을 무장한 놀의 모습을 확인한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군.”

놀이 밤하늘의 별이라면 그리드는 돼지우리의 똥이었다.

둘의 외모 격차는 그만큼 컸다.

놀을 보고 자신의 젊은 시절은 운운하는 그리드는 양심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놀은 불쾌해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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